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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김 영 관   장편소설

                          2007년

반군 홍경래

지은이 : 김 영 관(소설가)

1960년생. 문학박사.

1998년 미국 크랩 오쳐드 리뷰 아시아 작품 특집에 <황색도시> 발표

1999년 슬로바키아 문화시디에 <곱사등이) 발표

소설집 <회오리바람>

kimyoung@korea.com

거짓과 위선이, 불의가 정의로 판을 치는 시대에, 민심은 천심인 백성을 위하여 불꽃처럼 일어났다 사라진-    

         반 군   홍 경 래

                                           김 영 관 (소설가)

   ‘내 어른이 되면 기필코 쓰러진 집안과 나라를 다시 세우리라. 글로서 아니 되면 창을 들고서라도’

  어린 홍경래의 머릿속에는 눈앞에 펼쳐진 책보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했다.

  “이 놈이 오늘따라? 종아리를 걷어라!”

  외숙 유학권은 이제 열 살을 갓 넘은 홍경래에게 호통을 쳤다.

  “글은 배워서 무엇 합니까?”

  어린 홍경래였지만 벌써 세상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유학권도 알고 있었다.

   몰락한 양반 가문의 유학권은 이름 그대로 학문에 매진하는 양반이었지만 집안은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가난에 찌든 홍경래의 아버지였지만 아들 홍경래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유학권에게 맡기고 없는 보리쌀이라도 꾸어 그에게 주곤 하였다.

  홍경래는 1771년(영조 47년)에 평안도 용강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형이 둘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 말이 양반이지 당시는 굶주린 누걸래치(거지의 평안도 사투리)들의 삶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지조라는 것은 무언인가. 광활한 자연 속에서 보통보다 더 비범한 것이란 무엇인가를 늘 생각해 보는 아버지는 어린 홍경래에게 일부러 그런 것들을 가르치진 않았어도 이런 것들이 훗날 홍경래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거칠고 삭막한 대자연 속에서 생활한 평민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선비의 아들이었으므로.

  봄만 되면 밥 한 끼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것이 평민들이었다.

  홍경래의 집안도 이제는 평민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홍경래는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그의 아버지와 유학권과 평안도의 수려한 자연 속에서 배웠다.

   그 자연 속에서 익힌 풍수와 평민 사상은 훗날의 홍경래에게 굶주린 백성을 구원하려는 초인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1791년 홍경래의 나이 스물의 그는 평안도 박천의 청룡사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몸과 마을 닦고 있었다.

  이미 세상은 무능하고 비겁한 탐관오리들이 나눠먹고 있었다.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굶주림과 실의와 좌절에 빠뜨려 죽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제 몸도 하나 못 굴리는 놈이 잡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쯧쯧!”

  바로 이곳 청룡사의 노승이었다.

  “네 놈 나이가 몇이냐!”

  “스물이옵니다.”

  “한심한 놈!”

  홍경래가 여기로 들어와 절 안팎을 청소하고 나무를 하고, 밥을 짓고 했지만, 무술은 혼자서 막대기로 책을 보고 연마하는 것이 고작이지 결코 노승이 홍경래에게 가르쳐주는 적이 없었다. 절 눈칫밥 몇 년에 홍경래도 스스로 터득해 배우라는 노승의 뜻은 알았지만 도무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그 깊은 속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또 홍경래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급제해 관직으로 나가 출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이 놈의 절간을 나가야 공부를 더 하지, 스님은 책도 못 보게 하니-’

  사실 홍경래는 아침에 물을 길러와 밥을 짓고 산에 가서 나무해 오는 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생활이 지겨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무술을 가르쳐주기는커녕 노승은 염불만 외고 그저 하염없이 바람 소리만 듣고 푸르디푸른 풀과 나무들과 하늘과 구름만 쳐다 볼 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산을 내려갈 수 있었지만, 그러나 노승에게는 홍경래가 느끼는 놀라운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축지법이었다.

  산을 오르는데도 분명 자기 뒤에 축 처져 오르기 시작한 노승이 어느새 자기와 나란히 섰는가 하면, 그래서 홍경래가 이까짓 노인을 못 이기겠느냐 싶어 다시 발걸음 재촉하다가 조금 처진다 싶어서 잠시 한눈을 팔면 노승은 쑥 나타나서 홍경래를 앞지르곤 하였다. 분명 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노승은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산길을 타고 사라졌다.   

  ‘이 놈의 늙은 중이 날 놀리는구나. 어디서 숨어 있다가 뛰어와 놓고는 또 숨어 있다가 다시 뛰어 가는 거겠지’

하고 홍경래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고 있던 지게마저 내려놓고 노승을 따라잡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산길을 달렸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어렵쇼, 노승은 계곡 폭포 물에 들어가 몸을 닦고 있는 게 아닌가.

  홍경래도 얼굴이나 씻으려고 물에 손을 담그자 노승은 이제 슬슬 나오려는 게 아닌가. 발가벗은 노승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물가로 걸어 나왔다. 몸은 단단해 보였지만 홍경래가 보기에 뭐 그리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난다는 말인가? 도무지 홍경래는 믿기지 않아, 노승이 옷을 다 추슬러 입기도 전에 슬쩍 먼저 일어나 출발했다. 노승은 이제 짚신을 신고 있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홍경래의 바로 뒤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홍경래는 깜짝 놀라 재빨리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노승의 발이 바로 자신의 발 옆에 와 있었다. 그러는가 싶더니 어느새 노승은 바위 두개를 갈 지 자로 짚으며 쑥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죽죽 나가는 노승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이미 노승은 보이질 않았다. 홍경래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마치 자신이 뭔가에 홀린 듯하기도 하고, 기운이 그대로 좍 빠져 달아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긴장감이 한 순간에 달아나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이구, 저 늙은 중!’

하며 한탄해 보았지만 이미 소용없는 짓이었다.

  노승은 산꼭대기 바위 위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또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스님, 그 축지법은 어떻게 쓰는 것입니까?”

  홍경래는 뭔가 어색하고 겸연쩍기도 했지만 힘을 내 물어보았다.

  “난 그런 거 모른다.”

  “아니 스님, 아까 산 올라오실 때 그 걸음 법이 있지 아니 합니까?”

  “무슨 소리, 네가 앞섰느냐, 내가 앞섰느냐?”

  이건 또 무슨 선문답이란 말인가? 홍경래는 또 선문답 시작이군 싶어서 더 이상 노승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럴 힘도 이제 없었다. 그래서 나무그늘 아래쪽으로 가 벌렁 누워버렸다. 바람이 시원했다. 가을바람 냄새가 나는군. 홍경래는 슬슬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한편 나중에 반군 홍경래의 모사(참모)가 될 우군칙은 천하를 같이 할 동지를 찾아 강호를 떠돌고 있었다. 원래 서자 출신이라 차별을 받으며 이렇게 산야를 몇 년째 돌아다니고만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몰골이 거의 거지꼴이었지만 그 동안 산야를 돌아다니다 풍수를 익힌 게 된 다음에는 묘 자리며 집 자리 봐주다 조금씩 돈도 벌게 되면서부터는 웬만한 산과 강만 보아도 그 지방에 인물이 많은지 적은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군칙은 키는 작았지만 산과 들을 걸어 다녀 팔다리와 어깨살은 돌처럼 단단한데다, 심심할 때마다 평평한 돌을 손바닥으로 쳐본 것이 이제는 오석이나 차돌이 아니면 웬만한 돌을 둘로 따갤 수 있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나중에 모일 홍경래의 반군에는 유독 차력술과 풍수지리에 능한 인물들이 줄줄이 모이게 된다.
 

  그 중 한 명이 도총(군수 보급)을 맡게 될 이희저라는 인물이다. 그는 평안도 가산의 역속 출신이었지만 어떻게 돈을 모아 무슨 수를 썼는지, 나중에는 무과에 급제까지 한 담력 하나만은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원래 출생이 서민인 이희저가 아무리 과거에 급제했다하더라도  귀족 집안들이 줄줄이 끈을 잇고 있는 양반 사회에서 출세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던 시대가 바로 조선 중기 사회였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이 바로 홍총각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근처에는 늘 여자들이 따라 다닌다. 기골이 장대한 데다, 얼굴까지 반질하게 생겼으니 여자들이, 특히 나이깨나 든 여편네들이,

  “홍총각-. 홍총각-.”

하며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자꾸 말을 붙인다.

  원래 평안도 곽산 출신의 역사였으나 씨름판에서 그를 당할 자는 평안도에서 없었으므로 요즘은 슬슬 함경도나 황해도 쪽으로 내려가 볼까 하고 유랑이나 하고 있었는데 들리는 주막 마다 홍총각을 보려는 아낙들로 붐비기 일쑤였다.

  여기서 결혼 안 한 남자를 가리키는 ‘총각’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798년(정조22년) 홍경래는 나이 스물일곱에 처음으로 사마시에 응시하러 한양으로 떠났다. 어릴 때부터 외숙인 유학권에게 글을 배운데다가 청룡사에서 보고 들은 풍월도 무시 못 할 정도로 홍경래를 비범하게 만들었다.

  비록 생원 진사 시험이지만 왠지 모르게 홍경래는 자신에 넘쳤다. 과연 그 청룡사의 노승은 홍경래에 무엇이었던가?

  노승은 늘 홍경래에게 말하곤 했다.

  “나한테 배우려들지 말고 저 자연 속에서 배워라.”

  사실 홍경래는 그 노승을 뭐 별반 배울 것도 없는 땡중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해가 가고 두해가 가면서 홍경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저절로 닦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저 아침 해가 뜰 때면 잠이 덜 깬 눈으로 아궁이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하고, 싸리비로 절간을 쓸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하면 온 몸에 땀이 났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었다. 한낮에는 산에 올라가 혼자 나뭇잎과 바람을 가르는 무술 연습을 했고, 땀에 흥건히 젖은 몸을 차고 맑은 계골 물에 씻었다. 그리고 집에서 들고 왔던 책과 스님이 생전 보지도 않는 절간 책을 뒤적거렸다. 처음에는 무슨 책인지 알 수도 없었던 절간 책도 수십 번을 넘겨보는 동안에 저절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밤하늘에는 어느새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수많은 별들이 은하수 물결처럼 빛나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땅의 나뭇잎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난 홍경래도 스님의 축지법만을 결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경래는 문득 생각했다.

  ‘처음부터 축지법 따위란 없는 게 아닐까? 단지 나보다 몇 걸음 더 발걸이 빠르고 힘이 좋은 게 아닐까? 그것이 시간이 가면서 나를 바람처럼 앞서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그는 힘이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제일 직선  거리로 힘을 받을 수 있는 바윗돌만을 골라 힘차게 재빨리 죽죽 내딛는다면 그와 같이 계속 걷지 못하는 자는 결국 시간이 가면서 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산길이 멀고 가파르면 가파를수록 뚜렷해진다. 그래, 바로 그거다!, 축지법이란 처음부터 없었던 게다, 단지 어리석은 자의 눈에 그렇게 보이고 그걸 축지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홍경래는 그날 이후로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나 계곡 쪽에 무술을 연마하러 갈 때면 힘을 받을 수 있는 최단거리 이어져 있는 바윗돌을 골라 죽죽 힘차게 밟고 올라가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얼마 못가서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올랐다. 그러나 이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해 두해씩 반복하면서 이제 홍경래가 산길을 오르며 노승에게 뒤쳐지는 일은 어느 사인엔가 없어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홍경래가 노승과 거의 똑같이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숨이 턱에 차 죽을 것 같았지만, 그날, 노승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홍경래도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그런 노승이 전처럼 밉지만은 않았다. 이제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축지법은 홍경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홍경래가 과거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 스님은,

  “그걸 봐서 무얼 하게?”

하고 말했다.

  “사내로 태어나 이름을 떨쳐 보겠다는 것이 잘못 된 일입니까?”

  사실 홍경래는 쓰러진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입신양명하여 세상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마음을 어릴 때부터 품고 있지 않았던가.

  “절밥을 먹어도 한참 먹은 놈이 아직 속세에 미련 남았단 말이냐! 그리고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그렇게 몰라서야-. 쯧쯧.”

  스님은 홍경래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절간에 처박혀 있는데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걸 안다는 말입니까?”

  홍경래는 큰 소리를 쳤다.

  “절간은 속세가 아니더냐? 그럼 절간은 극락이냐 지옥이냐?”

  스님의 선문답 같은 말은 항상 홍경래를 답답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선하고 미묘한 데가 있었다.

  하기야 절간은 극락도 지옥도 아닌 인간 세계다. 인간 세계? 그게 바로 속세지 않은가.

  홍경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늘엔 구름 한점 없는 가을날이 펼쳐져 있었다.

  스님은 홍경래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다만 그때 그것뿐이었다. 그것 또한 집착이니 그저 홍경래가 떠나는 길을 만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홍경래는 뒤돌아서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면서 절을 했다.

  그러나 고개를 든 순간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평지에서는 축지법을 어떻게 쓴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며 홍경래는 빙그레 웃었다.

  평양.

  평양성 쪽으로 들어왔을 때는, 벌써 시중이 왁자지껄했다.

  속세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이것 또한 만행 수도구나, 홍경래는 스님의 큰 뜻이 눈앞에 가르침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새삼 놀랐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어느 하나 가르침이 아닌 게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과거를 보러 왔는가?’

  순간 묘한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홍경래는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은 부질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장이 늘어선 대동문 쪽은 왁자지껄했지만, 상인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모두가 화가 난 듯한 얼굴에 지나가다 어깨가 부딪쳐도 미안하오, 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니 피해서 가도 될 것을 일부러 다가와 홍경래의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홍경래도 처음에는 시장이 복잡아 그런가, 싶었지만 막상 넓은 길 다 놔두고 일부러 다가와 치고 가는 패거리를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또 막상 남자들만 그런 게 아니라, 흰 치마를 바싹 동여 맨 아낙네들조차도 전혀 피할 생각 없이 홍경래의 앞길을 막곤 하였다. 그때마다 홍경래는 부딪쳤다가는 여자들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먼저 거리를 두고 피해 다녔지만 그것도 몇 번이지 나주에는 슬그머니 화가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홍경래는 다음부터는 약간만 피해 보았다. 그러자 아기똥한 자들과 홍경래가 조금씩 부딪치기 시작했는데 몇 년간 산에서 갈고 닦은 홍경래의 단단한 몸과 부딪쳐 아파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건 그렇게 아프면서도 전혀 홍경래에게 시비를 건다거나 뒤돌아보며 욕을 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 스스로 불만에 가득 차 일부러 부딪친 것이다. 제가 먼저 나쁜 마음으로 못 된 짓을 저질렀으니 된 통 당하여도 아무소리 못하는 것이다. 홍경래는 이 희한한 광경에 후후, 하고 웃으면서,

  ‘민심 한번 야박해졌군, 아니 이상해졌어.’

하고 생각했다.

  주막 옆을 지날 때 홍경래도 배가 출출해졌으나, 가진 것이라고는 등에 맨 봇짐에 든 생감자가 전부였다. 바로 그때였다.

  “이 놈의 세상 확 뒤집어 엎어버려야지.”

  주막 한 자리를 떡 하게 차지하고 앉아 막걸리 사발을 나누는 두 사내였다. 그런데 그 몰골을 보아하니 두 사람의 덩치가 주막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컸다. 어디서 힘깨나 쓰던 역사들로 보였다. 힘과 덩치라면 홍경래도 빠지지 않았지만 그들도 만만치가 않게 보였다.

   그 중에 나이가 좀 적어 보이는 자가 말했다. 바로 홍총각이었다.

  “형님, 말조심하소. 여기는 시골 장터가 아니라 어디에 탐관오리들이 풀어놓은 끄나풀들이 있는지도 모른다오.”

  “뭐라고? 내가 그런 거 겁낼까. 세상 잘 못 되도 한참 잘 못 되었지. 있는 놈은 모두 다 탐관오리와 그 놈들에게 돈 갖다 바치고 장사하는 놈들이고, 우리 같은 백성들은 이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으니.”

  이번에는 검고 거친 수염이 양 뺨따귀까지 타올라간 자가 말했다. 아까 말했던 우군칙이라는 자다. 그래도 눈빛만은 제법 빛나 어디서 글이라도 한 줄 읽은 듯은 보였다.  

  ‘음-.’

  홍경래는 아까부터 겪어보던 행인들의 언행과 저 역사들이 나누는 말을 듣고는 민심이 보통 흉흉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맑고 찬 대동 강물이 평양성을 휘감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어디 가서 감자라도 좀 구어 먹어야겠군.’

  하기야 홍경래가 청룡사 절에서 쌀 구경을 한 것은 일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감자나 고구마, 강냉이가 거의 주식이었고, 거기에 소금에 절인 무나 나물이라도 먹으면 잘 먹는 것이었다.

  “이 보시오, 형씨. 그 어디 유랑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여기 와 목이라도 축이시오.”

  우군칙은 한눈에 홍경래의 비범함을 알아보았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아도 딱 벌어진 어깨에 그 만큼이나 두꺼운 다리. 날카로운 눈매-.

  홍경래는 그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홍총각은 우군칙이 괜한 말을 꺼냈다는 표정으로 못마땅하게 홍경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리마를 봐도 볼 줄 모르면 소금 수레나 끄는 말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럽시다. 오늘 듣던 중 반가운 말이오.”

  홍경래는 얼른 주막 안으로 들어섰다. 주막이래야 가마니를 돗자리 대신 깔아 놓고, 하늘엔 비를 가리기보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막을 심산으로 쳐놓은 싸리나무 발이 전부였다.

  우군칙이 홍경래의 사발에 막걸리를 철철 넘치듯 따랐다. 홍경래는 상대방의 호의에 조금 미안한 듯 그만 됐다는 듯이 사발 앞으로 손을 내저었다.

  참으로 달고 시원하고 걸쭉한 막걸리였다. 이게 몇 년 만에 마셔보는 술이었던가.

  “난 홍총각이라 하오.”

  홍경래가 단숨에 사발을 비우자 우군칙이 한 잔 더 따르라고 홍총각의 어깨를 툭 쳤던 것이다.

잔에 또 부연 막걸리가 가득 담기고 있었다.

  “난 홍경래라 하오.”

  같은 성씨에 홍총각의 눈이 약간 동그래졌다.

  “난 우군칙이오. 남의 묘 자리나 봐주며 유랑하다 이 역사를 만났게 되었소.”

  ‘그럼 풍수를 본다는 말이군.’

  홍경래도 청룡사 노승에게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읊듯 곁눈질로 스님의 땅 고르는 법을 봐왔지만, 아직 풍수 지사로 밥 빌어먹고 살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우군칙은 얼굴에 기름이 짜르륵 흐르는 게 엽전깨나 허리춤에 차고 있을 듯했다.

  “그래, 어디라도 가시오?”

  우군칙이 물었다.

  “예, 한성에 좀-.”

  불쑥 과거를 보러 간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사마시 보러 가시는 게군.”

  홍경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대번에 그렇게 꿰뚫어 맞춘다는 말인가.

  “예, 그렇소. 그런데 그걸 어떻게.”

  홍경래는 우군칙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야 등에 맨 봇짐에서 먹 냄새가 솔솔 나니-.”

  우군칙은 막걸 잔을 그 큰 손으로 덥석 잡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형님은 풍수, 지리에 다 능하다오. 이 평안도에서는 알아주는 지사라오.”

  홍총각이 은근히 뻐기듯 말했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아직 어리달까, 순박하달까 그런 것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아, 역시.”

  홍경래는 그 정도로만 말하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사람 보는 눈은 서로가 그 정도로 되었으니 말이다.

  셋이 그렇게 말과 잔을 주고받는 동안에 어느새 가을날은 저물고 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겨우 하룻밤을 같이 지새웠는데 셋은 벌써 몇 년 지기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가을밤의 대동강변은 써늘했지만 셋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봐, 홍총각. 우리도 서울로 내려갈까?”

  우군칙이 말했다.

  “가서 뭐 하게요?”

  퉁명스럽게 홍총각이 말했다.

  “뭐, 거기 가면 반갑게 맞아주기라도 한답디까? 천대 받을 바에야 안 가는 게 낫지”

  당시 조정과 한성에서는 관서 출신 즉, 평안도 지역을 차별하고 있었다.

  “에잇, 지미.”

하고는 홍총각이 불뚝 일어서더니 강가에 있던 큰 바위를 하나 덥석 머리 위로 집어올리고는 강물에다가 그대로 던져버렸다. 순간 큰 물결이 파도처럼 밤하늘로 솟아올라 자신은 물론이고 홍경래와 우군칙에게 물이 튀었다.

  “아니 이 사람이.”

우군칙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린 아이만 한 바위를 저렇게 단숨에 들어올리다니-.’

  홍경래는 역사 홍총각의 힘에 내심 놀랐다.

  힘이라면 남에게 지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홍경래는 술이 취해 그런지 홍총각과 한번 겨루어 보고 싶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 쪽으로 몇 걸을 걸어 나가며 아까 그 만한 바위를 찾아보았으나 그렇게 큰 바위가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금 작을 성 싶은 바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엇차!”

하며 홍경래는 강으로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그걸 보고 있던 우군칙이 다가왔다.

  “우 하하하. 이거 힘 쓸 때 없더니 잘 되었네.”

하고는 바위를 하나 버쩍 들어 강물 멀리 내던졌다.

  셋 중에서는 홍총각이 아무래도 제일 힘이 센 듯 했지만 요령에서는 우군칙과 홍경래도 만만치 않았다.

  셋은 이제 한성으로 떠났다. 좁고 험한 산길이었지만 기골이 장대한 장사 셋이니 뭐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해도 두려울 게 없어 길 떠나는 자들의 기분은 후련했다.

  원래 가문은 양반 출신인 듯한 우군칙도 과거에 미련이 좀 남아 있으련만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우군칙과 홍총각은 풍수와 지기를 살핀다고는 하나 유랑객이나 다름없었다.

  조선 중기에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다다르면서 조선 팔도는 도적 떼거리와 거지 떼거리, 땅도 집도 없어 먹고 살 게 없는 유랑민, 농민, 수십 번을 도전해도 뇌물을 아니 쓰고는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몰락 양반들로 들끓고 있었다.

  민심은 날로 흉흉해지고, 엉터리 사주팔자를 미끼로 돈을 착복하는 점쟁이와 있지도 않은 귀신을 쫓아야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평민과 양반 모두를 농락하는 무당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또, 충청도 계룡산 쪽의 정씨 성을 가진 자가 이씨를 누르고 새로운 임금이 될 것이라는 정감록이 글이라도 읽을 줄 아는 자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미 그걸 어디선가 읽어 본 우군칙이 홍경래에게 이야기했다.

  “이보, 형씨. 계룡산 정씨 다음에 올 세상에는 누가 왕이 되는 줄 아오? 가야산 조씨라는 게요, 그 다음은 어디 범씨, 그 다음이 재미있는데 이건 또 송악의 왕씨가 다시 왕이 된다는 이야기요.”

  홍경래는 그 말을 듣고 좀 황당했다. 그렇게 수백 년 앞을 내다볼 혜안이라면 지금 이 나라 하나는 왜 못 구하는지, 그 정감록이란 게 다 민심이 피폐해지니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해도만 해도 주막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려는 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게 중에는 진짜 과거를 볼 마음이 있는 겐지, 없는 겐지, 마누라 무서워 몇 해마다 과거나 본답시고 양반 행세하려는 자들도 있었고, 도적팬지 껄렁팬지 구분이 안 가는 치들도 있었으며, 이들을 감시라도 하려는 듯한 이상한 눈매의 염탐꾼들도 섞여 있었다.

  보통 때는 주모 혼자면 충분할 주막에도 술상을 나르는 여염집 처년지 아낙인지도 하나 있었는데 다홍치마를 겨드랑이 있는데 까지 치켜 올려 입고는 연신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술을 나르고 있었다. 이런 데서는 흔히 밤만 되면 저런 년들이 몸을 판다고 했다. 이런 풍속도 십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는데 나라꼴이 엉망이다 보니 강산도 더럽게 변한 것이다.

  아직 초가을인데다 황해도만 해도 평안도보다는 훨씬 따뜻했다. 그래서  잠자리 걱정은 하지 말라는 우군칙을 달래 답답한 이 주막보다는 한데로 나가 모닥불이라도 지펴 놓고 전날처럼 눈을 부치자고 했다.

  우군칙도 기꺼이 따라주었다. 그는 어딘가 귀족적인 데가 있었지만, 한편 평민적이었고, 산야를 옮겨 다니며 익힌 풍수지리로 박식했으며, 특히 제갈량 이야기를 곧잘 하곤 했는데 그를 흉내내 부채를 늘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홍경래는 그런 그가 어쩐지 믿음직스러웠다.

  홍총각이 주섬주섬 돗자리며 봇짐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뒤에서 있던 자들이 눈초리를 아래로 깔고 굳이 이쪽을 보지 않는 듯했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한 자들이었다.

  ‘모닥불 타는 소리가 왜 이리 바스락거려?’

  홍경래는 잠결에서도 정신은 놓지 않고 있었다. 모닥불이 아니었다. 불은 거의 꺼져 가고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분명 저 큰 나무들 뒤쪽에서 뭐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짐승인가?’

  바스락, 바스락-.

  아니 분명 그건 사람 소리임을 홍경래는 직감했다. 순간, 홍경래는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끌어 잡으며 한쪽 발로 우군칙과 좀 떨어진 홍총각을 툭 차면서 튀어 올랐다.

  “거기 누구냐!”

  적의 기선을 제압한다는 것은 승부의 절반이다.

  그때 큰 나무 뒤에서 얼굴만 흰 천으로 가린 자들 셋이 한꺼번에 튀어 나왔다. 그들은 놀라 부들부들 떨면서도,

  “야-앗-.”

하면서 홍경래에게 달려들었다.

  홍경래는 가지가 많은 나무를 마치 봉을 다루듯 옆으로 잡고는 그들의 얼굴을 쓸어버렸다. 녀석들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자 우군칙과 홍총각이 어느새 각각 한 녀석씩 허리를 꺾어 부둥켜안고는 버쩍 들어 집어 던져버렸다. 그때 홍경래도 마지막 녀석의 팔을 잡아 비틀고는 한 바퀴 획 돌려버리니 녀석이 제 풀에 나가 떨어졌다.

  “뭐 하는 놈들이야?”

  홍총각이 제가 집어던진 놈의 목덜미를 꽉 누르며 말했다.

  “저흰, 그저-.”

  “어제 주막에 있던 껄렁패 녀석들이야.”

  홍경래가 그들을 꿰뚫어 보았다.

  “이 놈들. 네 놈들도 백성들을 괴롭히는 못 된 놈들이구나. 사내로 태어나 그래 할 일이 이 짓뿐이더냐!”

  산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녀석들이 벌벌 떨었다. 

  한편, 나중에 민중 반란 때 무기와 식량을 책임질 도총 이희저는, 평안도 선천과 가산 관아를 붓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는 한때 평안도 가산의 역속이었으나 이제는 이미 무과에 급제한 무인이었는데, 하루는 선천부사 김익순이 가산에 유람을 왔다가 급히 말을 쓸 일이 있어서 이희저에게 말 몇 필을 내어줄 것을 부탁했지만, 이희저는,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부사라는 자가 어떻게 기생들과 유람을 한답시고 말을 내어달라는 말이오?”

하며 한 마디에 김익순의 말을 거절했던 게 화근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 뒤 어떻게 된 일인지 윗 놈들에게 농민을 위한답시고 입바른 소리만 한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게 되었다. 그래서 기분도 그렇고 하여 이것을 평소 알고 지내던 같은 평안도 곽산 출신의 진사 김창시(나중에  농민군의 북진군 참모)에게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또 선천부사인 김익순(김삿갓의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희저와 김창시는 의금부로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곤장을 맞았다.

  이희저(나중에 농민군 군수 보급 총병관)와 김창시는 곤장을 맞고 하옥이 되었다가 무관 이희저는 관직마저 빼앗겨버렸다.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고, 백성의 고통을 이야기한다고 의금부에 끌려간다면 누가 바른 소리를 하려고 하겠는가!

  자기 아래 사람이 의금부에 끌려갔다 왔다는 말은 들은 가산 군수 정시는 당장에 선천부사 김익순에게 항의의 전갈을 띄웠다. 비록 백성들의 살과 피를 빨아 먹는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지만 가산 군수 정시처럼 조선 선비로서의 지조와 기개를 잊지 않는 자도 있었다.

   -비록 무관 이희저가 부사에게 무례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맡은 바에 충실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젊은 무관의 강직함이 백성을 위하고자 하였으니 부디 관리가 익혀야 할 덕목이 아니었던가 싶소-.

  “똑 같은 놈들-. 군수라는 자가 목이 몇 개는 되는가 보군.‘

  김익순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 놈, 어디 두고 보자. 이 놈들이 나를 놀려?”

  김익순은 제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분에 못 이겨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서울은 전국 각지에서 과거를 보러 온 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주막마다 사람들이 넘쳐났고, 더러는 잘 곳이 없거나 돈이 없어 과거 시험장 옆에 돗자리를 펴고 며칠을 기다리는 자도 많았다.

  그러나 홍경래 일행은 평안도에서 황해도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에 주로 우군칙이 각 고을의 부호나 송상, 인삼 상인들의 풍수나 운수를 봐주면서 내려왔기 때문에 먹을 것이나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우군칙이 학창의(흰색 천에 목과 손목 등 가장자리만 검은 비단으로 두른 덕망 높은 선비 옷)를 입고 한 손에 부채를 든 제갈량 흉내를 너무 낼 때는 은근히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성 땅은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관리들은 부패했으며, 들르는 주막마다 인심은 고약했고 민심은 흉흉했다. 한 마디로 조선 전체가 썩고 있었다. 청룡사의 노승이 말한 산하를 보고 민심과 천하의 풍수를 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말로만 듣던 과거 시험장은 보기보다 개판이었다. 한 선비는 너무 옷이 큰 가 싶더니 과거장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옷을 땅바닥에 좍 깔았다. 처음에 엉덩이가 배겨 그러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온갖 문구를 미리 다 도포 자락 안에다 써온 것이었다. 또 받은 한지 대신에 담 너머로 답지를 바꿔치기 하는 자도 있었고, 이미 장원에 급제할 자는 정해져 있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의 시제가 ‘백락’이라고 나왔을 때 홍경래는 암담했다. ‘백고’로 나와도 시원찮을 것인데 뭐 하나 백성을 위해 잘 하는 게 있다고, 홍경래는 백성들에게 백 가지 괴로움은 있을지언정 한 가지 기쁨도 보지 못했다.

  조정과 과거를 담당하는 자들이 과거의 시제를 일부러 ‘백락’으로 낸 것이다.

  ‘백락이라, 백락? 내가 이걸 써서 꼭 생원 진사라도 되어야겠다는 말인가? 아-,’

  홍경래는 다른 유생들이 이미 먹을 갈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지만 아직 한 자로 쓰질 못하고 빈 한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백락이라, 백락-.’

  그 순간 홍경래는 무언가 결심한 듯 먹을 갈고 붓을 쥐었다.

  - 백락이 없으니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끄는구나. -

    백락은 주나라 사람으로 천리마를 품평하는데 일가견이 있던 사람으로 백락이 한번만 보면, 명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뜻이었지만 그 명마를 알아보는 자가 없으니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끈다는 고사를, 홍경래는 일부러 한글로 써내려 간 것이었다. 백락을 한자로 쓰면 다르지만 한글로 쓰면 같기 때문이었다.

  “형님, 그래 급제하겠소?”

  담장 밖에서 우군칙과 쪼그리고 앉아 홍경래를 기다리던 홍총각이 흙을 툭툭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백락이라, 백락, 세상에 낙도 많구먼. 하하하-. 그 백락이 죽었는데 누가 천리마를 품평하라, 하하하-.”

  하고 홍경래는 대답 대신에 껄껄껄 웃었다.

  홍총각은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멀뚱멀뚱 홍경래와 우군칙을 번갈아 쳐다보고만 있었지만 글깨나 읽었던 우군칙은 대강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꺼덕거리며,

  “하여간에 잘 했소. 형님, 목도 컬컬할 터니 막걸리난 한 사발 하러 갑시다.”

  이때 우군칙은 어느새 홍경래는 형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와 같이 평안도에서 한양까지 한달을 같이 내려오면서 어딘가 기개와 풍채가 남달라 배울 것도 많았고, 또 자기보다 나이도 몇 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붉은 먹으로 동그라미와 줄을 그어가며 채점을 하던 과거 시험관들은 순 한글로 적힌 홍경래의 답지를 집어 들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 백락이 없으니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끄는구나. -

  “이 놈이, 어딜 감히 조정을 조롱해.”

  이조판서 박종경은, 홍경래가 쓴 글의 참뜻을 알아내느라 웅성거리던 다른 예조 관리들과는 달랐다. 예조가 관리하는 시험장에 이조판서가 설친다는 것도 그의 위세를 말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락을 일부러 한글로 쓰고는 아무런 낙이 없는 백성들이 소금수레를 끈다는 뜻이렸다.’

  박종경은 호통을 쳤다.

  “이 놈을 당장 잡아들여라!”

  홍경래는 좀처럼 거나하게 취하는 법이 없었다. 늘 적당히 마시고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스물일곱 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함부로 취한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저버리는 길이었다. 게다가 고향인 평안도 용강에는 이미 혼인을 약속한 최소사라는 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말술을 마다하지 않는 홍총각과 우군칙은 취해 있었다. 좀 시끄럽긴 해도 주위의 다른 손들도 다 그러하니 오히려 이런데서 일부러 떠들며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홍경래, 우군칙, 홍총각은 셋 다 장사들이 아닌가. 술잔을 기울이는 그들의 어깨와 등을 보노라면 하나같이 고래 등처럼 미끈하고 우람했다. 그리고 시정 껄렁패와는 달리 이런 씨름깨나 한 사람들이 더 순박한 데가 있는 법이다.

  “자, 이제 그만들 마시지.”

  홍경래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바람마저 찼다.

  “알겠수. 형님. 내 오늘부터는 확실히 형님 대접하겠소.”

  우군칙이 말했다.

  “그러면 난 큰 형님, 작은 형님 따로 불러야겠군. 하하하.”

하고 홍총각이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주막 싸리문 밖의 이상한 낌새가 이상했다.  

  순간 홍경래는 아까 과거 시험의 문구가 생각났다.

  “이봐, 저 밖이 이상하다-.”

  홍경래가 눈짓으로 슬쩍 밖을 가리키며 둘에게 이야기했다.

  우군칙과 홍총각이 마시던 막걸리 사발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평상에서 내려와 짚신을 신는가 싶더니 셋은 후다닥 그대로 반대쪽 싸리문을 날듯이 튀어 넘었다.

  “잡아라!”

  그 순간 포졸들이 칼과 창을 들고 주막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홍경래 일행은 벌서 어둠을 뚫고 저 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포졸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맨 앞장을 선 좌포도청의 군관(당시 한성부의 동남쪽 치안을 맡음) 박정(나중에 관군의 군관)은 바로 이조판서 박종경의 친척뻘로 뇌물을 바치고 관직에 들어온 자였다.  

  홍경래는 이제 걷고 있었지만 우군칙과 홍총각이 보기에는 걷는 게 아니라 달음박질이었다. 둘은 뒤에서 헉헉거리며,

  “형님, 좀 천천히 갑시다. 이제 녀석들도 따돌린 것 같은데-.”

  둘이 아니라면 홍경래는 벌써 남산을 넘어 매봉산 꼭대기에 들어섰을 게다.

  셋은 매봉산 옴팍한 곳에서 숨을 돌리며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로 목울 축였다.

  “그런데 아까 형님 축지법이라도 쓴 것 아니우?”

하고 홍총각이 물었다.

  “축지법은 무슨, 그런 거 없네.”

  홍경래는 짧게 말했다.

  “아니, 사실 나도 궁금해 죽겠소. 나도 풍수한답시고 웬만한 산은 다 타보았지만, 그렇게 날아다니는 듯한 걸음은 처음 보오.”

    “그럼 알겠구먼. 축지법이란 없다는 것도.”

  홍경래는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산을 타고 내리는 것보다 평지를 타고 내리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홍총각이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입을 바위에 대고 물방울을 죽죽 빨았다.

  “언제 박천 청룡사로 한번 찾아오게. 거기엔 진짜 축지법을 쓰는 노승이 한 분 있지.” 

  홍경래는 그 스님을 잠시 떠올렸다.

  ‘삶과 죽음을 넘어섰으니-.’

  우군칙과 홍총각은 어느새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한편 남산 끝자락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좌포도청의 군관 박정은 날이 새자 산을 포졸들과 에워싸고 오르기 시작했다.

  잠이 들면 안 되는데, 깜빡 잠이 든 게 잘못이었다. 새벽녘에 제일 먼저 눈을 뜬 홍경래는 위험을 직감했다.

  군관 박정과 포졸들은 이미 남산 자락을 빙 둘러싸고 올라오고 있었다. 퇴로는 매봉산 밑으로 이어지는 한강뿐이었다. 그래도 어젯밤 남산을 넘어 이곳 매봉산까지 몸을 피했던 게 그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직 술도 잠도 덜 깬 우군칙과 홍총각이었지만 무술로 연마된 장사들이라 얼마 가지 않아 대번에 몸이 풀렸다.

  다행히 매봉산 끝자락은 한적한 마을이었고 포졸들도 보이지 않았다. 드믄드문 초가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새벽을 깨우는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고 어느 집에서 밥을 짓는 냄새가 났다.

  마을을 얼마 벗어나지 않아 바로 한강이었다.  

  두뭇개 나루터.

  세종대왕 때 이종무 장군이 왜놈 해적 소굴 대마도를 정벌하러 떠났던 곳이다.

  나루터에는 나룻배 몇 척만 묶여 있었고 아직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은 두 서넛 밖에 없었다.

  “나룻배는 언제 뜨나요?”

  홍경래가 휜 수염이 덥수룩이 난 노인에게 물었다.

  “그야 삯만 주면 지금이라도 뜨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마을에서는 처음 보는 자들이라 수상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뭣 하는 사람들이요?”

  노인이 기골이 장대한 홍경래 일행에게 다시 의심쩍게 물었다.

  “예,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풍수 지사들입니다.”

  우군칙이 재빨리 대답했다.

  “쫓기는 몸은 아니고?”

  노인은 벌써 한 눈에 그들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아까 해가 뜨기 전에 남산에 봉화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제일 먼저 본 것도 바로 이 노인이었다.      “민심이 흉흉하던데요.”

  이번에는 홍경래가 먼저 넘겨짚으며 말했다.

  “백성들 삶아 먹고 제 배만 불리는 놈들 세상이니, 망할 놈들, 에잇, 망할 놈의 세상-.”

  장사 셋이 오르자 나룻배가 가라앉을 듯이 겨우 물위에 떴다. 

  “보통 장정들이 아니구먼, 내 이래도 몇 십 년 사람 실어 나르다 보니 웬만한 관상은 볼 줄 알지-.”

  노인이 힘차게 노를 저으며 말했다.

  “곳곳에 민란이 있었다는구먼. 곧 큰 민란이 한번 일어날 게야.”

  “민심은 천심인데 백성들이 고루고루 잘 살아야지요.”

  홍경래가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

  바로 그때였다. 나루터 쪽을 보고 있던 셋의 눈에 포졸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이 보였다. 배는 이미 강 한가운데에 이르고 있었지만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녀석들이 저기 있다! 사격하라!”

  좌포도청의 군관 박정은 포졸들에게 활과 조총을 쏘도록 명령했다.

  “어서 거기 내 앞으로 엎드리시오!”

  노인은 노를 저으며 배 밑바닥으로 엎드리라고 했다. 날아오는 화살과 총알을 진작 자신은 허리를 굽히며 피할 뿐이었다.

  “아-.”

  그때 노인의 외마디 비명이 들였다. 노인이 젖던 노가 노인의 팔에서 힘없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노인의 등에 총알이 맞은 것이다.

  “어르신! 어르신!”

  노인이 홍총각 쪽으로 푹, 쓰러졌다.

  엎드려 있던 홍총각이 노인을 흔들어보았지만 그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아무런 힘없는 백성이 또 그렇게 죽어갔다.

  그 노인에게 과연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놓쳤단 말인가!”

이조판서 박종경은 좌포도대장 유효원과의 군관 박정을 다그쳤다.

  “그래, 겨우 그 한 놈을 놓쳐!”

  “한 놈이 아니라 장사 같은 놈이 셋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비호같던지.”

   박정은 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도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좌포도대장 유효원과 박정이 물러간 다음, 박종경은 다시 아까 홍경래가 쓴 글을 펼쳐 보았다.

  - 백락이 없으니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끄는구나. -

  ‘무서운 놈이다. 글깨나 익힌 놈이야. 게다가 장사라니-. 한문도 다 아는 놈이 왜 하필 언문(한글을 낮추어 부르는 이름)으로 썼을까? 그 천리마라는 것은 백성들이 아닐까? 그럼 낙이 없는 백성이 소금수레를 끌며 고생만 하고 있다, 라는 말인데, 그래, 녀석이 일부러 언문으로 쓴 것은 바로 백성을 나타내고자 함이야.’

  박종경은 기존 세력에 도전하는 놈들은 미리미리 싹을 잘라버려야 상책이라고 믿는 양반 세력의 거두였다.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에 필사적이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보를 무너뜨린다고 권력과 부에 조그만 금이 가도 그들은 마치 모든 명예와 인생을 잃는 것으로 생각하는 어찌 보면 가련한 자들이요, 어찌 보면 무서운 자들이었다. 그 권력과 부가 선한 토대 위에서 쌓아진 것이라면 누가 그들을 탓하랴! 사람을 짓밟고 사람 위에 올라서려 쌓은 것들이 아닌가!

  악덕은 악업을 쌓는 법!

  양반 자식들은 그 권세를 믿고 여자들을 겁탈하고, 탐관오리들은 관직을 뇌물로 사고팔고, 백성들이 굶어죽어 가도 마지막 쌀 한 톨마저 인두세로 빼앗아 가고, 청나라 오랑캐들이 조선의 여자들을 쓸어가도 아무소리 못하는 조정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먹을 것도 농사지을 땅도 없는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압록강은 너머 천리 길을 걸어 청나라로 끌려가 성노리개가 된 자신의 아내와 딸을 돈을 주고 그녀들을 다시 찾아와도 환향녀(화냥년)로 부르는 이 나라의 민심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사람의 부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쓰러져 가는 나라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백성은 하늘이라는, 그래도 민심은 천심이라는 생각이 있는 자는 나라의 훌륭한 관리라 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조무래기 같은 자들은 조무래기 같은 탐관오리들에게 관직을 사 권력과 부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다.”

한강을 무사히 건너고 노인을 양지 바른 곳에 묻고 난 다음 홍경래가 말했다.

  “아니, 왜요, 형님.”

  홍총각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지.”

  홍경래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민란이나 거사를 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 노인이 죽었다. 우리는 뭉쳐 다니면 안 된다. 이 노인과 같은 괜한 백성들이 죽게 될 지도 모른다. 민심을 더 알고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었을 때, 그러고도 우리가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그때 박천 청룡사를 찾아오너라.”

  우군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홍총각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자기들을 태워준 이 노인의 죽음 앞에서 이상하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들 셋은 두 해가 지나서 평안도 박천 청룡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가산 군수 정시는 강직한 인물이다. 그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지방과 조정 관료들이 제 욕심만 채우는 것이다.’

  평안도 가산의 역속 이희저(나중에 농민군 군수 보급 총병관)는 썩어빠진 관리를 갈아 치우는 길이 백성이 살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건 그를 도와주려 했던 곽산의 진사 김창시(나중에 농민군의 북진군 참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곽산의 부호 출신이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추도 염전과 운산 촉대봉의 광산도 그의 집안과 관계가 있다고 했는데 운산은 예로부터 금이 나오는 곳이었다. 생원진사시에도 붙었지만 관직에는 나가지 않고 집안을 도우며 글을 읽는 모양이었다. 광산노동자들 가운데는 빈민과 유민들이 많았는데 김창시는 그들을 차별하지 않고 일반 광산노동자들과 똑같이 잘 대해주어 근처에서는 평판이 좋았다.

  하루는 이희저가 몰락한 향족 출신의 이제초(나중에 농민군의 북진군 선봉장)를 데리고 김창시의 집을 찾았다. 주위를 살폈으나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리어리한 기와집에 우뚝 솟은 대문이 과연 곽산의 부호임을 말해 죽도 있었다. 기와를 얹은 담벼락은 잘 쓸어 놓은 흙길로 끝 간 데를 모를 만큼 이어져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오시오. 무관께서 직접 다 찾아주시고-.”

  김창시가 반갑게 맞이했다.

  “무슨 말씀을-. 제가 저번 일로 진사께 죄송해서-.”

하고 이희저가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이쪽은 이제초라는 사람으로 저와 같은 가산 사람입니다.”

김창시는 한눈에 그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차력이라도 하는지 팔뚝은 굵기가 어지간한 사람 허벅지만 하였고, 떡 버티고 앉은 어깨 넓이가 미닫이 문짝만 하였다.

  “이제초라 합니다.‘

  “김창시라 하오.”

  둘은 짧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뜻이 같은 사람들은 금방 친하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어릴 때는 글도 읽었나 봅니다만, 나이고 들고는 무술을 연마했다고 합니다. 이 손이면 엔간한 돌도 두 동강을 내어버리지요.”

하고 이희저가 이제초의 손을 잡아 보이며 말했다.

  김창시가 그의 손바닥을 보니 이건 무슨 큰 두꺼비 같기도 했고 솥뚜껑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저희 집안에 두면 딱 좋을 사람으로 보입니다만-.”

하고 말했다.

  “아이고, 이거,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이희저는 집안이 몰락해 어려워하던 이제초를 광산 일에라도 좀 써주었으면 하고 김창시에게 데리고 왔던 것인데, 그걸 먼저 김창시가 그렇게 말해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셋은 그날 몰락한 향족들 이야기며, 전국에 빈민과 유민이 셀 수도 없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들을 밤이 깊도록 나누었다. 

  한편 평안도 태천에는 어릴 f때부터 신동이라 불렸던 자가 하나 있었는데 원래 이름은 김사용(나중에 농민군의 북진군 부원수)이지만 훌륭한 선비가 될 용이라는 ‘사룡’이라는 별명이 더 알려져 있는 자였다.

  그러니까 그의 할아버지 적에 그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살 만 하던 것이, 그의 아버지 때에 와서는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안도 출신들을 인사차별하면서부터 더 이상 관직에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더 이상 사서삼경 따위의 학문이 아니라 병법서였다. 그는 손자병법을 벌서 수십 번도 더 읽어 싸움의 지략에는 통달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부터인가 초인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것은 자신의 지략이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하는 데 한 몫을 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어도 8할을 지주와 세금과 빚으로 내고 나면 소작농들에게 남는 곡식은 두 달을 가지 못했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짓고 밭을 갈아도 돌아오는 것은 앙상한 벼만 남아 헐벗고 굶주리는 처자식의 울음소리뿐이었다. 그래서 조선 땅을 버리고 압록강을 넘어 조선도 청나라도 내버린 척박한 땅 간도로 이주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는 살을 에는 추위와 자갈밭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여기서 굶어 죽는 것보다야 제 땅이랍시고 농사라도 한번 해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농민들의 원망과 원성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뼈 빠지게 일하다 죽고, 곡식 한 톨 없어 굶어 죽고, 세금 못내 끌려가 곤장 맞아 죽는 것 보다야 제 땅 한 마지기라도 생긴다면 천리 길 유랑을 택하는 유민들이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는 들끓고 있었다.

  이제 제 식구를 스스로 거둬야 할 된 김사용도 뼈만 남은 처와 두 눈이 한 치는 쑥 들어가고 뱃가죽과 등가죽이 달라붙은 아이들을 보며 화전도 일구고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결국은 거지가 되든, 간도로 가든, 이대로 죽든, 세상이 뒤바뀌든,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제 글도 병법서도 다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늘이여, 제발 우릴 구해 주소서!”

  김사용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울부짖었다.

  홍경래는 혼인을 약속했던 용강의 처녀 최소사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다. 그러나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져 갔다. 과거도 이제는 한낮 사고파는 양반들의 놀음에 불과했다.

  우군칙, 홍총각과 헤어진 지 두 해가 지난 1800년(순조 원년) 홍경래는 박천의 청룡사로 향했다. 아내 최소사에게는,

  “여보, 어차피 백성들은 이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내 말 뜻을 알겠소. 저 두 아들놈을 부탁하오.”

라는 말만 남겼다.

  “어찌 저희만 놔두고 살라합니까-.”

  시집 올 때 그 곱디고운 섬섬옥수 손도 다 갈라지고, 얼굴에는 윤기 없이 잔주름만 진 최소사는 땅바닥에 엎드려 울며불며 통곡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순간이 아내 최소사와 두 눈만 말똥거리던 두 아들과의 마지막이었다.

  우군칙과 홍총각은 무얼 하고 있을까? 그러나 그들이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홍경래는 생각했다.

  그 동안 우군칙과 홍총각은 한강이남 전국을 떠돌며 풍수 지사로 때로는 장이 서는 곳에서 차력술을 팔아가며 장돌뱅이처럼 두 해를 보냈던 것이다. 어느새 그들 자신이 바로 유민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하루를 굶어도 며칠씩은 굶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둘 다 역사 출신이라 도적이나 껄렁패들에게 맞지도 당하지도 않았고 잘만 하면 부잣집에서 며칠을 묵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본 빈민이나 농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은 자도 많이 보았다. 그게 그들이 본 망해가는 세상이었다.     

  “박천 청룡사라 그랬지.”

  우군칙이 홍총각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거기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내 생각엔 형님도 거기에 가 있을 것 같아-.”

  “에잇, 그걸 어떻게 아우?”

  홍총각은 배가 고파 뭐라도 좀 먹었으면 싶었지만 요즘은 장도 제대로 서지 않고, 또 명당자리나 묘 자리 찾는 집들도 잘 없어 하루에 그저 한 끼로 때우는 적도 많았다.

  “벌써 두 해가 지났지, 형님과 그 한강에서 헤어지고. 후우-.”

  우군칙이 감회에 젖은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됐지요. 형님은 잘 있을 거유. 용강에 처자도 있다고 했으니까. 아, 그리고 보니 용강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홍총각도 잠시 그때의 회상에 잠겼다. 처음 만나 대동강가의 바위 들기 시합, 한성의 과거 시험장에서 포졸에 쫓겨 도망가던 날 밤, 한강 나루터에서 날아오던 화살과 조총 소리, 그리고 노를 젓던 노인의 죽음-.

  “일단 청룡사로 가자.”

  우군칙이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섰다.

  “박천 청룡사의 노승을 아시오?”

  이희저가 김창시에게 물었다.

  “예, 말은 몇 번 들었습니다만, 도술이 굉장한 스님이라더군요.”

  김창시가 말했다.

  “우리 한번 그 노승을 찾아가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거 무슨 일이라도 터져야지-.”

  이희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김창시는 그의 번득이는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초라는 자는?”

  “아, 그 사람은 지금 운산 촉대봉 광산에 나가 있지요. 어찌나 힘이 장사인지 거기서 보통 사람 두 배나 흙을 캐고 나른다고 합니다. 왜요, 이번에 같이 데리고 갈까요?”

  이번에도 김창시는 이희저의 생각을 먼저 알아내고 말했다.

  “예. 꼭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지요. 그 힘을 좀 빌려야지요.”

  이희저의 말에 김창시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곽산에서 박천까지는 그리 멀지 않는 길이었다. 김창시만 말을 탔을 뿐 이희저와 이제초는 걸어서도 며칠을 가지 않아 박천에 닿을 수 있었는데, 한번은 꽤 험한 산 고개를 넘어가다가 산적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 이제초가 아니었더라면 둘은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

  이희저도 무관 출신이라 힘에는 뒤지지 않았지만 워낙 산적의 숫자가 많은지라 혼자서는 감당을 못해내었는데, 이제초가 산적 놈들을 무슨 쌀가마 던지듯 하니 산적의 두목이라는 자가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살려주십시오. 우리도 굶주리다 못해 이 짓을 합니다만 사람을 죽이거나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을 약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네 놈들이 백성을 못살게 구는 건 탐관오리와 뭐 다를 게 있어?”

  이제초가 씩씩거리며 산적을 머리채를 휘어잡고 말했다.

  “다시 도적질을 하지 않겠다면, 그만 놓아주게.”

  이희저가 말했다.

  “너희들, 우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 있다간 뼈도 못 추스를 줄 알아!‘

하고 이제초가 산이 쩡쩡 울리게 말하고 산적들을 놓아주니,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산적들이 달아났다.

  “산세 한번 우람하군.”

홍총각이 박천 청룡사 산문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음-. 한 봉우리만 바라봐도 명당이 하거늘 일곱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으니.”

  우군칙이 가을이 깊어가는 산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파란 하늘에는 쌀뜨물이 흩어지듯 하얀 구름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찬 가을바람이 산문으로 들어서는 그들을 따라 들어왔다.

  절간은 적막마저 감돌았다.

  “뚝, 딱, 뚝-.”

  그대 어디선가 장작 패는 소리가 들렸다. 우군칙과 홍총각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웃통을 벗었지만 풍모가 느껴지는 넓적하면서도 미끈한 등. 홍경래였다.

  “형님!”

  이때가 바로 1800년(순조 즉위) 서자 출신의 우군칙과 역사 홍총각이 박천의 청룡사의 홍경래(이때 나이 29세)를 찾아 거사를 모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잘들 있었나.”

  홍경래는 꿇어앉은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이제 그 때가 되어 가나 보군.”

  “저희도 유랑민이나 다름없는 꼴입니다요.”

  홍총각이 말했다. 그도 전에 보다는 몸이 말랐고, 우군칙도 얼굴에 윤기가 없이 남루해 보였다.

  “고생 많았구먼."

  세 사람은 눈부신 가늘 햇살을 등에 이고 걸으며 절간 마루로 올라섰다.

  “ 이 절에 전에 말하던 스님은?”

  우군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올 겨울에 돌아가셨지. 아니 흙으로 돌아가 들꽃으로 다시 피어난 게지”

  홍경래는 먼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 참 산세가 좋습니다. 일곱 봉우리가 이어져 있으니 천하의 명당입니다.”

  우군칙이 말했다.

  “음-.”

  홍경래가 무얼 말하려다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이거 참. 자네들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리게.”

  사실 우군칙과 홍총각은 오늘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질 못했다. 그저 계곡물을 마시며 배를 채웠을 뿐이었다.

  잠시 후 홍경래가 소쿠리에 무얼 가득 담아 왔다.

  그런데 홍총각이 입을 벌리며 소쿠리 안을 보았을 때, 거기에는 솔잎 위에 찐 감자가 몇 개 들어 있었다.

  홍경래도 지난 두 해 동안 쌀밥은 먹어보질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이 아직 늦은 잠에 빠져 있을 때, 홍경래는 산꼭대기 비산봉 바위 위에 올라 있었다. 거기에 새벽 햇빛이 아직 새벽안개에 쌓인 청룡사의 기와지붕을 천천히 비추고 있었다.

  ‘쓰러지는 나라를 바로잡고자 민란을 일으키기에 너무 힘이 모자란다. 당장 우리 셋이 먹을 식량도 없지 않은가. 거사엔 식량도 무기, 군사가 있어야 한다. 우군칙, 홍총각도 큰 봉우리지만 일곱 봉우리가 아직 다 모인 것은 아니다. 돌아가시기 전 스님이 말씀하셨지. 이 청룡사에 일곱용이 모일 때 큰 기운이 일거라고-.’

  “아니, 형님은 벌써 일어나셨나?”

  우군칙이 눈을 떴지만 홍총각은 배를 드러내놓고 자고 있었다.

  청룡사의 가을 아침은 눈부셨다.

  문밖에서 강냉이 죽 쑤는 냄새가 났다.

  “다들 일어났으면 밖으로 나오게. 내가 강냉이 죽을 좀 쑤어놨네.”

  홍경래의 그 소리에 홍총각이 벌떡 일어났다. 어지간히 배가 고프긴 고팠던 모양이었다.

  “이 강냉이도 임진년 왜란 때 명나라에서 들어왔다는구먼.”

  홍경래가 후룩후룩 강냉이 죽을 떠 마시며 말했다.

  “어이쿠. 어이쿠.”

  홍총각은 너무 맛이 있어 그런지 그 소리만 하고는 죽을 삼키기 바빴다.

  셋은 혀로 핥은 듯 죽사발을 깨끗이 비우고는 홍경래가 따라주는 차를 마주하고 앉았다. 

  홍경래가 말했다.

  “백성들이 굶어죽는데도 탐관오리들은 제 배만 채우기에 급급하고, 조정은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판을 치고, 도적 떼는 들끓고, 가난한 백성들은 유랑민 신세가 되어 떠돌고, 평안도는 차별이 날로 심해지니, 이제 우리가 뜻을 모아 굶주린 백성을 위하고자 일어설 때가 온 것이다-.”

  “예. 우리도 그리 생각하고 여기로 찾아온 것입니다.”

  우군칙이 나직하지만 힘이 있는 소리로 말했다.

  “형님. 오늘 당장에라도 관아로 쳐들어갑시다!”

  홍총각이 격앙되어 말했다.

  “우리 셋이 말인가? 아무 무기도 없이, 맨 손으로?”

  우군칙이 홍총각을 보며 말했다. 그 소리에 홍총각이 조금 머쓱해졌다.

  “훈련된 관군들을 이기려면 앞으로 10년은 준비해야 된다.”

  홍경래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예? 10년요?”

하고 홍총각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우군칙에게도 좀 뜻밖이었다. 아무리 준비를 한다 해도 1, 2년이면 되겠지 싶었던 게다.

  “그 동안에 거사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한다. 운산 광산처럼 광산 일꾼을 모은다고 사람을 모아야지.”

  홍경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예? 운산에 광산이라뇨?”

  홍총각이 생소하다는 투로 말했다. 

  “곽산의 부호 김창시가 추도 염전과 광산 일꾼들을 많이 모으나 봐.”

  홍경래가 말했다.

  “음-. 곽산의 김창시 진사 이야기는 저도 한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배고픈 백성들이나 찾아오는 유민들에게 보리쌀을 나누어준다더군요. 그런데 형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우군칙이 말했다.

  “앉아서 천리를 본다는 말이 있잖아.”

  홍경래가 농담처럼 말하자, 셋은,

  “하하하.”

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그들도 분명 무얼 찾고 있을 걸세. 뭉칠 힘이지.”

  다시 홍경래가 말했다.

  “형님은 정말 앉아서 천리를 보는군요."

하고 홍총각이 말했을 때 셋은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거사 이야기에 대한 긴장이 좀 풀리자 그 다음부터 술술 풀렸다.

  “자네들은 그 유민들을 모아야 하네. 그 다음은 몰락한 양반들이나 향족, 토호, 상인들도.”

  “야-아.”

  홍총각의 입에서 가볍게 탄성이 나왔다.

  “모인 자들이 있을 곳, 모은 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제일 문제야.”

  이번에는 홍경래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십 년을 모으며 기다린다면 천명도 넘을 텐데요.”

  우군칙이 말했다.

  “그 식솔까지 3천은 넘어야겠지.”

  홍경래의 말에 홍총각이 놀라,

  “예? 3천명이나요?”

  “무기도 변변치 않다면 그야말로 중과부적이지. 더 중요한 건 농민이나 유민들이 과연 따라줄까 하는 문제야.”

  “음-.”

  셋은 좀 심각해졌다.

  청룡사 지붕 위에 가을 해가 내리쬐어 기와들이 달구어지고 있었다. 

  “여긴 시원하구만.”

  청룡사의 산문에 이르러 이희저가 말했다.

  김창시도 말에서 내려 이제초와 함께 낙엽이 뒹구는 산길을 걸어올라 청룡사에 들어섰을 때는 가을 저녁 햇살이 비치고 있었는데, 거기엔 웬 장정 셋이 서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두 손에 들고 서 있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들지도 못할 굵은 통나무였다. 그걸 멀리 던지는 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시오?”

  홍경래가 들고 있던 통나무를 땅바닥에 툭 내던지며 말했다.

  “아, 우리는 청룡사 노스님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쿵, 하는 통나무 소리에 좀 놀란 김창시가 대답했다.

  이희저는 홍경래의 범상치 않은 얼굴과 단단한 몸집을 보면서,

  ‘흠-.’

하고 콧숨을 깊이 내쉬었다.

  이제초는 세 장정들의 통나무를 쳐다보며 금방이라도 달려가 힘을 겨누어보고 싶은 눈치였다. 홍총각이 그런 이제초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스님은 올 겨울에 돌아가셨소.”

  홍경래가 짧게 말했다.

  “아-.”

이희저와 김창시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곽산에 사는 김창시라 합니다.”

  순간 홍경래와 우군칙과 홍총각의 귀가 번쩍했다.

  김사용(나중에 농민군 북진군 부원수)은 결심했다.

  ‘이대로 죽기보다 세상을 뒤엎자. 온 나라에 유랑민과 누걸래치가 깔렸다. 그래, 그들을 모아 세상을 뒤엎는 게다’

  김사용도 몰락한 향족이었지만, 조선 중기에는 거지나 다름없는 양반들도 수두룩했다. 이제 그들의 신세는 오히려 평민보다도 못한 자들이 숱하게 많았고, 관로가 막힌 관직에 나가지 못한 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가산, 정주, 선천, 태천, 철산, 용천, 평안도 곳곳에 빈민들이 넘쳐났지만 제 입에 풀칠도 못하는 김사용에게 그들을 먹여 살릴 돈도 집도 없을뿐더러, 그것보다도 대놓고 그렇게 사람들을 모았다간 관아의 의심을 살 게 뻔했다. 

  그러나 빈민들은 한결같이 김사용에게 말했다.

  “양반 어른, 제발 우리를 좀 살려 주십쇼. 벌서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그들은 제 식구들을 옆에 꿰차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고 혼자서 빌어먹는 

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하루하루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자들뿐이었다.    하루는 김사용이 그들 가운데서 그래도 좀 나아보이는 자들 몇몇을 데리고 곽산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마침 어느 대문 집 앞을 지나려는데 키가 작은 하인 하나가 문밖 쌀가마니 자루 옆에 쪽박을 들고 섰다가, 걸인들에게 한 쪽박씩 보리쌀을 퍼주는 게 아닌가!

  김사용을 따라온 예닐곱은 하인한테 절을 껍죽껍죽 하고는 웃통을 벗어 보리쌀을 받았다. 수수나 조, 강냉이로 죽을 쑤어 먹거나 감자만 삶아 먹다가 이게 몇 해 만에 보는 곡식인지 모두 입이 좍 벌어졌다.

  “우리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이네만 요즘에도 이런 양반이 있다니, 이 집 어른은 누구신가?”

  행색이 거지꼴이라 다름없는 김사용이었지만 나오는 말이 어딘가 양반 말투였다. 

  그러자 김사용에게 보리쌀을 퍼주던 하인이 대번에,

  “아니, 이 놈이, 똥간에 들어가기 전에 말하고 나오고 다르다더니 네 놈이 꼭 그 짝이네.”  

하면서 들고 있던 쪽박으로 김사용을 내리쳤다.

  그러나 김사용이 한 손으로 하인의 쪽박 든 손을 휙 꺾어버리니, 키 작은 하인 녀석은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멈추어라!”

  그때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그집 주인인 김창시가 말했다. 벌써 아까부터 같이 청룡사에 갔던 이희저, 이제초와 함께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안으로 들어오시오.”

  김창시가 김사용에게 그렇게 말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김사용의 뒤를 따르던 예닐곱의 사내들도 따라들려고 했다, 그때 하인이 그들 앞을 가로막으며,

  “네 놈들은 여기 섰어.”

하고 말했다. 그러자 김창시는,

  “아니다. 그들도 마당 평상에서 밥과 국을 주어라.”

하고 말했다.

  이희저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다부지게 생긴 김사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청룡사에서 홍경래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빈민들과 유민들을 모아야 합니다.’

  “음-.”

  이희저는 이것도 분명 인연일 게야, 하고 생각했다.

  이제초는 아까 그 키 작은 하인에게 자기 밥과 국도 한 그릇 부탁한다고 하면서 김사용이 데리고 온 유랑민이 앉은 평상에 같이 앉았다. 운산 촉대봉에 나가 광산 일꾼들과 일을 하더니 이런 유랑민들에게는 익숙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청룡사를 다녀오기 며칠 전과는 사람이 아주 딴 판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앉자마자 고향이 어디며, 나이며 식구들은 몇이나 되는지 하나하나 묻고 있었다.

  “저런 유랑민들을 좀 모아 줄 수 있겠소?”

  김창시가 김사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희저는 그의 눈매와 얼굴을 살피면서 그저 예사로운 유랑민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이희저는 김창시, 이제초와 함께 며칠 전 청룡사에서 이미 홍경래로부터 거사 모의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누며, 십 년 거사 준비의 도총(농민군 총병관)이 되어줄 것을 부탁 받았는데 그것은 가산 무관으로 있었던 점이며, 거기서 말이며 군수 물자 관리를 해본 점 등이 군수 보급 참모에 적격이었던 것이다. 

  한편 진사 출신의 김창시는 홍경래로부터 부원수가 되어줄 것을 부탁 받았지만 그건 당연히 무용과 지략이 뛰어난 자가 해야 된다며 애써 사양하고는 자신은 아무래도 추도 염전과 광산 일꾼들을 꾸려나가고 있으니 모사(농민군의 북진군 작전 참모)나 맡겠다고 한 것이었다.

  힘과 차력술, 무술이 뛰어난 이제초는 당연히 선봉장(북진군)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기개나 풍채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던 것이다.

  “예. 깔리고 깔린 것이 유랑민이요, 누걸래치들입니다. 전 태천 출신이라는 이유로 관로가 막힌 다음부터는 식솔을 거느리고 가산, 정주, 선천, 철산, 용천 일대를 떠돌기만 했지요. 세상 물정을 그들처럼 잘 아는 자들로 아마 드물 겝니다. 몇 달 전에 임금님(정조대왕)이 돌아가시자 나이 어린 세자가 새로 임금(순조)이 되셨다는 것도 다 알고 있지요.”

하고 김사용은 담담하게 자신과 세상 물정을 이야기했다.

  한때 가산의 무관이었던 이희저나 곽사의 진사인 김창시도 불과 달포 전에 정조대왕이 승하했다는 것과 열한 살의 어린 세자가 새 임금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터이라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빤한 김사용에게 새삼 놀랐다.

  “나이 어린 임금(순조) 대신에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정순황후, 영조의 계비)는 사도세자파 없애기에 바쁘고, 안동김씨는 권력 잡기에 바쁘고, 그 틈에 탐관오리들은 백성 잡기에 바쁘니, 백성들은 백성이 백성을 구하는 민란만이 살 길일세-.”

  김사용은 아주 타령조로 읊어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희저와 김창시란 놈이 사람들을 모아?”

  선천부사 김익순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이유가 뭐라더냐?”

  “예. 운산 광산과 추도 염전 일꾼들을 모은다고 합니다.”

    부사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이창이 말했다. 그의 오른쪽 뺨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다.

  “김창시가 돈을 끌어 모으는군.”

  김익순이 입과 코를 찡그리자 눈까지 가늘게 찢어졌다.

  “내 그 기고만장한 꼴을 볼 수야 있나. 한번 또 정신 차리게 해주어야겠어. 이봐라, 이창. 곽산 김창시에게 가서 나한테 한번 들르라고 일러라.”

  그날 밤이 늦어서야 이창은 말을 달려 김창시의 대문 앞에 이르렀다.

  “이리 오너라.”

  이창은 상놈 출신이었지만 선천부사 김익순에게 엽전 백 냥을 갖다 바치고 그의 손발이 되어 호위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새 양반 흉내를 내며 거들먹거리기고 있었다.

  아까 낮의 그 키 작은 하인이 졸음이 오는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안 사랑채엔 아직 낮에 왔던 사람들이 가지 않아 촛불이 훤하게 밝았다.

  “누구시오. 이 밤중에.”

하며 하인은 문을 열었다.

  “이 집 어른 계시냐?”

  “계시오만 누구신데-?”

  “네 놈이 그건 알 것 없고-.”

하고는 이창이 하인을 툭 밀려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뒤로 밀려났던 하인이,

  “아니, 누구신데 함부로 남의 집에-.”

하면서 문간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사랑채의 문이 열리며 이제초가 앞으로 나왔다. 밤이라 그런지 그의 덩치가 마치 불곰 같기도 하고 무슨 도깨비 같기도 했다.

  “누구냐, 넌?”

  이제초가 단숨에 마당으로 뛰어내리며 말했다.

  덩치로는 이창이 한참 작았지만 그도 옆에 찬 칼을 꽉 잡아 쥐면서,

  “이 집 주인 양반을 뵈러 왔소.”

  하고 말했다.

  “이 놈아, 진사 어른이시다. 양반 같지도 않은 놈이 양반 흉내를 내네.”

하고는 이제초가 이창의 주위를 마치 불곰이 냄새라도 맡듯이 천천히 한바퀴를 돌았다.

  그러자 이창이 기분이 나빠,

  “아니, 이 상놈이.”

하면서 칼을 빼들었다.

  순간 이제초가 좀 멈칫했으나, 이내,

  “음. 역시 상놈은 상놈을 알아보는 법이군.”

하고 말하자마자 냅다 녀석의 옆구리를 발로 콱 차버렸다.

  이창이 캑, 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사랑채에 있던 김창시와 이희저, 그리고 김사용마저 밖으로 나왔다.

  “넌 누구냐. 어디서 왔어?”

하고 이제초가 녀석의 멱살을 잡고 캐물었다.

  “난 선천부사 김익순 어른의 명을 받고 심부름을 왔을 뿐이오.”

  김익순이라는 말에 김창시와 이희저가 깜짝 놀라며 잠시 서로 마주보았다.     “그래, 무슨 심부름이냐?”

  김창시가 말했다.

  “부사께서 한번 들르라고만 합디다.”

  ‘뭐, 들르라고? 이 놈이 또 무슨 꿍꿍이속이 있구나, 뇌물을 바라든지.’

  김창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곽산에 사는 내가 왜 선천부사께 가야 하느냐? 이상하지 않냐? 아마 부사께서 무얼 잘 못 알고 그러시는 모양인데, 내 언제 선천에 갈 때 부사께 한번 찾아뵙겠다고 일러라.”

하고 말해버렸다.

  이희저와 이제초가 쿡쿡하며  웃었다. 김사용도 긴장이 풀렸는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봉우리 일곱 개 가운데 여섯 봉우리는 제 임자를 만났는데-.”

  홍경래가 모두 다 떠나 텅 빈 청룡사에서 혼자 먼 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군칙과 홍총각이 떠나고 절간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휑뎅그렁했다.

  아니 이제 그들도 임무를 띤 농민군들이다. 지난 번 김창시, 이희저, 이제초가 찾아왔을 때 청룡사에서 결의하지 않았던가. 재간이 많은 우군칙은 모사(농민군의 남진군 작전 참모)로, 무술과 힘이 센 홍총각은 선봉장(남진군)으로 정해졌다.

  홍경래, 아니 이제 농민군 대원수가 된 그는 우군칙과 홍총각에게 박천, 영변, 안주, 정주 쪽의 부호와 몰락 양반들, 서자층과 관직에 나가지 못한 향족들, 도인, 기인, 술사, 무인, 역사, 그 밖에 차별을 받고 뜻을 펴지 못하는 자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으라고 했다. 

  모인 자들은 하나, 둘씩 김창시의 광산과 추도 염전 일꾼으로 보낸다, 소리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군사 훈련을 시킨다, 식량과 무기는 이희저와 김창시가 맡고 군자금은 부호, 토호들에게 빌리거나 송상이나 만상, 인삼 상인들을 이용한다, 는 것이 홍경래의 생각이었다. 특히 의주의 부호 인삼 거상 임상옥이 협력해줄지가 의문이었다. 돈이 많은 거상은 그걸 지키기 위해 관료들과 협조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우군칙과 홍총각이 그 일을 잘 해줄까. 지금쯤 정주나 안주에 있을 텐데.’

홍경래는 몇 년 안에는 거사 준비를 마쳤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희저와 김창시가 김사용을 홍경래에게 데리고 왔다. 

  그저 총명하다기 보다는 간담을 써늘하게 하는 듯한 눈빛, 홍경래는 한 눈에 그가 마지막 일곱 번째 봉우리임을 알았다.

  “태천 출신이라 하고, 지리와 세상 물정에 밝고 지략이 뛰어나다 하니 태천과 선천, 철산으로 나갈 북진군을 맡아주시오.”

  김사용보다 막상 더 놀란 것은 이희저와 김창시였다.

  “박천 청룡사와 가산 다복동에서 훈련을 한댔지.”

  우군칙이 홍총각에게 말했다.

  “예. 그런데 무기 살 돈은 돈은커녕, 사람들을 모으려 해도 무슨 돈이 있어야지요.”

  홍총각이 시큰둥하니 말했다.

  “음-. 우선 정주 부자 이침 집을 찾아가 보자. 무슨 수가 있을 게야.”

  홍총각은 여전히 시큰둥한 채 어디 가서 허기도 때울 겸 막걸리나 한 사발 들이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있는 돈도 우군칙이 가지고 있어서 그 술 소리가 술술 나오지는 않았다.  

  “으흠, 이침 어른 계시오?”

  우군칙은 제갈량이 그랬듯이 학창의와 부채를 들고 서 말했다.

  이침의 집은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에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고 있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계집아이 하나가 문을 열다 덩치가 어마어마한 홍총각과 우군칙을 보며 깜짝 놀랐다.

  “누구, 누구신지요?”

  “이침 어른 안에 계시느냐?”

  “예. 계시옵니다만-.”

  우군칙은 부채를 탁 펴들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래. 날 찾은 까닭이 무엇이오?”

  정주 부호 이침이 말했다. 그는 듣기보다는 사람이 퍽 평범했으며 보통 부자들과는 달리 집안에 해 놓은 것들도 그렇고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예. 우리는 사람도 보고 당도 보는 풍수사들인데 요즘 하도 백성들이 배가 고파, 돈도 받지도 못하고 사람 자리나 명당자리나 봐주고 있는데, 이침 어른의 집은 우리가 볼 것도 없이 명당입니다.”

  우군칙은 우선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군칙의 그 말이나 학창의를 입고 부채를 든 모습이 재미있어서 이침은 빙그레 웃으며,

  “명당자리 보는 풍수사들은 많이 봤어도 사람 자리까지 봐주는 자들은 못 봤소만.”

하고 말했다.

  이번에는 우군치과 홍총각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으로 세 사람은 마치 지기라도 된 듯이 금세 가까워졌다.

  “그래, 혹 김창시라는 진사 어른을 아십니까?”

  우군칙이 말했다.

  “음-. 가난한 백성들을 먹이려면 자금이 필요하겠지요.”

  이침은 김창시를 잘 안다, 모른다는 말은 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는 대뜸 일어서드니 뒤에 있던 병풍을 옆으로 밀치는가 싶더니, 족히 천 냥은 되어 보이는 엽전 꾸러미를 앞으로 툭 던지면서,

  “오래 머무르다간 해 떨어지겠소. 앞으로 갈 길이 멀 텐데-.”

하고 말했다.

  홍총각은 그 말이 무얼 뜻하지는 어리둥절했지만 우군칙은, 이 어른 이침은 김창시 진사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왜 사람을 모으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래 있으면 냄새가 나기 쉬우니 어서 여기를 나가라는 말이라고 대강 짐작이 갔다.

  “혹 잠자리가 없다면 정주 땅에서 나보다 잘 사는 김약하 어른에게나 찾아가보시오. 이곳에 다시 올 생각은 말고-. 으흠-.”

하고 이침은 헛기침을 했다. 이침은 어딘가  치밀한 데가 있는 사람 같았다.

  우군칙과 홍총각이 이침의 집을 나오니 그야말로 해는 떨어지고 갈 길은 먼 나그네 신세였다.

  “우리가 몇 해 전에 정주에서 명당자리 집터 하나 봐 준 집이 있지. 이름이 김, 약, 하, 그래 부자 김약하, 맞아, 바로 그 집이야!”

  우군칙이 신이 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홍총각의 봇짐 속에는 엽전이 천 냥이나 두둑하게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농민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침은 농민군에게 등을 돌리고 관군의 편에 서게 된다.

  북진군의 선봉장이 된 이제초는 운산 촉대봉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거기는 광산 일꾼들이 주로 모여 있었는데 아침에는 철광석을 캐고 낮에는 훈련을 받았다. 그들 대부분은 빈민이나 유민들이었는데 이희저와 김사용이 평안도나 함경도에까지 가서 사람을 모아 보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사람씩이나 늘어났다. 그래서 운산 촉대봉에는 몇 백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일부는 김창시가 직접 나서고 있는 추도 염전에 보냈고, 일부는 박천의 청룡사에도 보냈다.

  청룡사에는 사람 눈에 띄지 않아 훈련하기에는 촉대봉 만큼이나 안성맞춤 이었지만, 식량과 무기, 옷, 잠잘 곳이 모자라 사람을 많이 보낼 수가 없었고, 추도 염전 쪽에는 우군칙이나 홍총각이 돌아와야 제대로 군사 훈련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검붉은 얼굴에 긴 수염을 한 선봉장 이제초가 구령을 하면 촉대봉이 쩡쩡 울렸다.

  “어잇! 어잇! 으랏차!”

  누가 봐도 남루하게 옷을 입은 일꾼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몸과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이라고만 일러두었다. 아직 거사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했기 때문에 철저히 비밀리에 모든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런데 하루는 정민시라는 자가,

  “우군칙이라는 자가 여기에 있소?”

하며 이제초를 찾아와 물었다.

  한 눈에 보아도 무슨 산적이나 마적 떼에 있었던 자처럼 보였다.

  “아니, 이 놈이. 네 놈이 우군칙 모사는 어떻게 알아?”

  이제초가 퉁명스럽기 짝이 없게 말했다.

  “나 여진족 마적 우두머리 정민시오.”

  마적 같던 정민시는 진짜로 마적 우두머리였다. 정민시의 그 말에 놀라 자빠졌던 이제초가,

  “아니, 뭐요? 당신이 여진족 마적 우두머리라고?”

  “그렇소. 풍수사 우군칙과는 몇 해 전에 함경도에서 만나 적이 있소. 그때 내가 한 수 가르쳐 주었는데-.”

하고 정민시가 비씩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이제초가 발끈하며, 다시 주먹을 꽉 지었으나, 정민시의 오른쪽에는 마적보다 더 마적 같은 자가 하나, 왼쪽에는 산적보다 더 산적 같은 자가 각각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게다가 이 우두머리라는 자는 어깨와 등과 옆구리와 앞가슴에 무기란 무기는 다 꽂고 있었다. 칼, 긴 칼, 짧은 칼, 활, 화살, 도끼, 심지어 밧줄까지 어깨에 두르고 있었는데 그게 아마 녀석들 족장의 장식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한참 당하던 그가, 네 놈 몸에도 조선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어찌 같은 나라 사람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하지 않겠소. 말인즉 여진족의 핏속에는 신라인들과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인데, 신라 진흥왕이 함경도까지 올라 왔을 때, 신라인들이 함경도를 거쳐 여진족이 되어 나중에 금나라까지 세웠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놓아주었는데, 사나이로 태어나 어찌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도적질이나 하느냐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질 않겠소. 그때 훗날 다시 보자고 보내주었는데, 이번에 다시 함경도에서 이희저와 김사용이라는 자와 우연히 만나 싸움이 벌어졌소. 그들도 무술이 보통이 아니더구먼, 그런데 그때 다시 신라와 조선, 그리고 우군칙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소. 그리고 그가 지금 조선 땅에서 큰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래 내 생각한 바도 있어서-.”

  분위기가 좀 숙연해졌다. 분명 그는 신라, 조선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걸 이야기한 이희저, 김사용, 우군칙에게 분명 감복 받은 것 같았다.  

  홍총각은 이침에게 받은 돈 천 냥을 가지고 청룡사로 먼저 돌아왔다. 그걸로 보리쌀과 무기를 먼저 구입한 다음에 추도 염전과 광산에 있던 일꾼들을 청룡사와 가산의 다복동으로 불러들였다.

  다복동은 일종의 군수 창고와 같은 곳으로 군량미와 무기를 관리했지만 농민군 훈련도 가산의 무관 출신이었던 이희저가 도맡아 했다.

   이제 농민 남진군 선봉장 홍총각은 청룡사에서 그동안 홍경래가 하던 훈련대장 맡으면서 신이 났다. 사실 우군칙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 집 저 집 구걸하듯 군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거의 거지 신세가 되었고, 홍총각을 따라 다니던 아녀자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말아 아무 재미도 없었다.

  그런데, 운산 촉대봉에서 훈련대장을 하던 이제초가 아무래도 여진족 마적 정민시와 그 부하들은 감당을 못 하겠던지, 아니면 정민시가 우군칙을 만나려 해선지, 하여간에 그들을 몽땅 청룡사의 홍총각에게 보내버렸다.

  대원수 홍경래로서는 조선의 피가 흐르는 여진족 마적 우두머리가 그것도 부하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뻤다.

  “반갑소. 어서 오시오. 나 홍경래라 하오.”

하고 홍경래는 인사를 나누었다.

  “우군칙 모사는 곧 돌아올 것이오. 우선 부하들을 좀 쉬게 하고 여기 지리나 익혀둡시다. 그리고-.”

  진정한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를 알아보는 법. 아무리 하찮은 무리의 우두머리라도 분명 우두머리는 좀 다른 법이다. 어딘가 겸손하면서도 상대를 제압하는 듯한 힘은 마적의 우두머리 정민시가 스스로 느껴야 되는 것이지, 억지로 홍경래가 그리 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홍총각과 정민시는 서로 만만치가 않았다. 누군가 힘겨루기가 결판이라도 나지 않으면 남진군 선봉장 자리도 위태로울 정도였다.

  “여기 훈련대장은 나야!”

  홍총각이 여진족 마적단 두목 정민시에게 말했다.

  “무술과 힘이 모자라면 훈련대장 아니라 선봉장이라도 물라나야지.”

  정민시가 맞받아쳤다.

  “아니, 이 놈이-. 그래 좋다, 무술과 힘이라? 거기에 네 머리는 무겁게 달고만 다니는 것이냐? 그럼 차라리 돌을 매달지 왜?”

  둘에게 일전불사의 장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으랏찻찻차-.”

  홍총각이 정민시에게 달려가 옆구리와 배를 잡고 단번에 들어올리고는 그리고는 빙글빙글 몇 바퀴 돌리고는 힙 겹게 툭 내던졌다. 

  그러나 나뒹굴어진 정민시가 금방 발딱 일어서더니 홍총각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며 달려들었다. 몇 방은 맞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홍총각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차력술로 다져진 그의 몸이 바위덩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를 놓칠라 홍총각이 정민시의 몸을 다시 한번 버쩍 들어 내던져버리니 이번에는 그도,

  “에구, 에구-.”

하며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옆에 있던 그의 부하 둘이 그를 부축하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우군칙, 또 그 누구야, 이희-, 하여간 그들보다 더 세구만. 훈련대장에게 내가 졌소.”

  뜻이 있어 찾아온 자는 이미 싸움과 약탈을 일삼는 마적이 아니었다. 그도 이제 홍경래의 농민군이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병력과 자금이 모이고 있었다. 이희저, 김사용이 평안도 북쪽과 함경도 쪽에서 모은 자들이 5백을 넘었고, 우군칙과 홍총각이 모은 자들도 3백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제 발로 찾아오는자들까지 합하면 이제 천에 가까운 되는 농민군이 모여 추도 염전과 광산 일꾼으로 아침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군사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의심하는 자가 아직까지는 없었다.

  특히, 촉대봉 쪽 광산에서 철광석을 캐내어 직접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었고, 운산 금광에서 금도 캤고, 우군칙이 정주 부호 이침과 김약하에게 군자금으로 2천 냥이나 받아 보내었고, 또 김약하에게 안주상인 나대곤, 송상(송도, 즉 개성상인) 박광유, 홍용서를 소개받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과 돈을 더 모으기 위해 황해도, 강원도까지 가서 고생고생하며 사람들은 모아 보냈지만 돈은 많이 모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로 들어갔다.

  우군칙이 서울에서 돈 있는 사람이라고는 마땅히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딱 한 사람이 있었다. 김재찬-, 그는 서울에서 재력보다는 발이 넓은 자였다.

   홍경래와 헤어진 다음, 우군칙은 홍총각과 강호를 떠돌 때 우연히 김재찬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건 송파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달맞이봉으로 들어왔을 때, 거기 좌포도청의 군관 박정이 하필 유람을 나와 있다가 이들의 수상한 거동을 보고는 뒤를 쫓아왔는데, 그때 정자에서 술잔치를 하고 있던 김재찬이 학창의를 입고 부채를 든 우군칙을 보고는 얼른 도포를 벗게 하고 그들 둘을 술자리에 얼른 끼워주었던 것이다. 아무리 포도청의 군관이라고 해도 서울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양반의 술잔치 손님에 그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는,

  “여기 거동이 수상한 자 둘이 지나가지 않았소?”

하고 묻기만 했는데,

  김재찬이,

  “못 보았습니다만-.”

하고 겸손하게 말하자 그냥 휙 지나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우군칙은 김재찬의 집에 머물렀다.

  “백락이 없으니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끄는구나, 라고 과거에 쓴 글이 화근이었지요.”

  우군칙은 김재찬에게 홍경래가 과거에서 썼던 글이며 쫓기던 까닭을 이야기했다.

  “천리마를 품평하는 백락이 죽었으니 천리마를 알아보는 자 없고, 하늘같은 백성들은 채찍을 맞으며 소금수레를 끈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거늘-.”

  김재찬은 좀 흥분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이 홍경래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소?”

  “예. 평안돕니다-.”

  우군칙은 가산 다복동이나 박천 청룡사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음, 천리마가 하루에 천리를 달리래도 잘 먹이고 채비를 갖춰야 하고 호랑이를 잡으려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평안도라면 평안감영에서 공납금을 차용해야지.”

  김재찬이 그렇게 말했지만 눈이 휘둥그fp진 우군칙은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백성이 소금수레를 끈 돈을 가져갔으니 다시 빌려오는 게지.”

  아무래도 김재찬은 평안감영의 관찰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선지를 하나 꺼내더니 붓으로 자기가 보내는 사람에게 공납금 2천 냥을 차용해주도록 관찰사 앞으로 글을 썼다.

  “어지간하면 내어줄 걸세-.”

  이제 우군칙도 평안도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었다. 홍총각을 먼저 홍경래에게 보낸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또, 전라도, 경상도에서 사람을 모아 평안도까지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6년 뒤, 1811년 10월.

  농민군 남진군의 부원수가 된 김사용은 비밀 거점으로 새로 정한 가산의 신도에서 홍경래, 이희저와 만났다.

  벌서 천마산 자락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쯤 거병할 작정입니까? 10년 거사 준비는 이미 끝이 났습니다.”

  “섣달 스무날(12월 20일)-.”

  홍경래가 조용히 말했다.

  “평안 감사 이만수가 새로 온 병마절도사 이해우와 선천부사 김익순과 자주 만난다지?”

  “예. 김익순이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김사용이 다급해졌다.

  “음-.”

  홍경래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이게 도총(이희저)이 그린 가산 관아일세.”

  거기에는 한때 이희저가 있었던 가산역이며 관아의 위치가 자세히 붓으로 그려져 있었다.

  “가산 군수 정시는 죽이기 아까운 사람이야-. 무신인데다, 제 뱃속만 채우는 벼슬아치들과는 달라.”

  “그럼 가산 관아부터 친다는 말입니까?”

하고 김사용이 말했다.

  “정시는 항복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관아를 지킬 걸세. 강직한 사람이니까.”

  이희저가 잠시나마 자신을 도왔던 정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첫 전투는 남진군, 북진군 모두 가산 관아부터 친다. 첫 전투에서 승리를 해야 군의 사기가 오르는 법.”

  홍경래의 의지는 단호했다.

  “두 달을 견딜 수 있을까? 이 보게. 부원수도 잘 알겠지만 결국은 평양과 한성을 쳐야 하지 않는가. 남쪽을 칠 때는 겨울에, 북쪽을 칠 때는 여름에 이게 병법의 기본이지-.”

  “그래서 섣달을 택한 거로군요.”

  김사용은 옛날에 즐겨 읽었던 병법서들이 떠올랐다. 

  “봄이 오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지-.”

  홍경래가 말했다.

  “지금 농민군은 얼마나 되는가?”

  군수 보급 총병관인 도총 이희저가 대답했다. 

“예. 농민군 2천에 식솔을 포함한 아녀자 1천 합해서 3천 명 정도입니다. 운산 촉대봉과 추도 염전에 1천, 박천 청룡사와 천마산에 우군칙과 홍총각이 2천을 이끌고 있습니다.”

  “군량미와 무기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예. 아직까지는-.”

  “왜 그러나?”

  “서너 달은 버틸 수 있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음-.”

  홍경래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는 말을 바꾸어,

  “김익순에게 사람을 하나 붙여두게.”

하고 말했다.

  “예. 우군칙이 모은 사람 가운데 김이대, 최이륜, 윤언섭이 몸이 빠르고 재치가 있습니다만.”

  “음-. 세 사람이라-. 그러면 평안감사 이만수와 병마절도사 이해우, 김익순에게 한 사람씩 붙여두게.”

  “임신기병의 소문이 파다합니다요. 대원수 홍경래라는 자가 수천의 농민군으로 민란을 일으킨다는-.”

  오른쪽 뺨에 칼자국이 난 선천부사 김익순의 부하 이창이 말했다.

  “대원수? 홍경래? 그 자가 누구냐?”

  김익순이 이창에게 물었다.

  “예. 이희저와 김창시가 자주 만나는 인물입니다.”

  “운산 금광과 추도 염전에 모인 일꾼이라 하지 않았느냐.”

  김익순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좀-.”

  이창이 말을 머뭇거렸다.

  “홍경래라는 자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습니다요.”

  “뭐, 뭐라고? 그러면 그 자가 무슨 판서 양반이라도 된다더냐?”

  김익순은 자기에게 조랑말 한 마리를 내어준다거나 뇌물은커녕 한번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옛 가산의 무관 이희저와 진사 김창시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그래, 그 홍경래라는 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예. 주로 가산의 다복동과 또 어디를 오가는 것 같은데-.”

  김익순의 수족과 같은 이창도 벌서 몇 해 전에 홍경래와 이희저가 거점을 비밀리에 가산의 신도로 옮긴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복동의 무기고도, 훈련장도 청 텅어 있었지만 홍경래가 사람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거기를 한바퀴 휙 돌고는 그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또 어디라니? 네가 녀석의 뒤를 직접 밟아보지 그랬느냐?”

  “그게,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가다가 휙 사라집니다요.”

  “휙 사라져? 뭐가 이 놈아. 사람 말이냐, 귀신 말이냐?”

  “홍경래라는 자가요.”

  서서히 김익순의 복장이 터지기 시작했다.

  “네 놈이 뒤를 바싹 따르는데도-.”

  “예-. 그게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져버려는 게-.”

  그 순간 김익순이 들고 있던 장죽으로 이창의 대갈통을 갈겼다.

  “그럼 홍경래가 축지법이라도 배웠다는 것이냐?"

  며칠 후, 김익순과 이창은 평안감사 이만수와 포졸 수십 명과 같이 가산 다복동을 덮쳤다.

  그러나 헛간으로 쓰인 듯한 곳은 텅 비어 있었고, 넓은 마당이 둥그렇게 펼펴진 곳에는 잡초들만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김익순이 헛간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나 평안감사 이만수는 좀 달랐다.

  “여기 창을 세워놓은 흔적이 있군.”

하고 말하며 헛간 벽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는 삼지창 모양으로 햇볕이 많이 받고 들 받은 것에 따라, 또 바람을 탄 먼지가 앉은 자국이 희뿌옇게 남아 있었다.

  “창만 수백 자루가 넘는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가산의 무관이었던 이희저라는 자와 곽산 진사 김창시가 유난히 일꾼을 많이 모아서 좀 이상하다 싶어 이 놈을 붙혀 뒤를 밟도록 했는데, 아무래도 수상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일꾼들은 유민이나 빈민들로 운산 금광이나 추도 염전에서 일한다 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게 천 명은 넘을 것 같아서요-.”

  “뭐? 뭐라고? 천 명이 넘어? 그런 일꾼이 여기 무기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만수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와 풀이 메말라 있는넓은 터를 살피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하도 많이 밟혀서 군데군데 아예 풀이 자라나지 못하고 누런 흙이 맨질맨질하게 닳아 있었고, 활 과녁 조각인지 둥근 나무 판도 버려져 있었다. 

  “군사들 훈련장이 틀림없어.”

  이만수가 말했다.

  “이희저와 김창시를 잡아 들여라.”

  “그게 저, 이희저라는 놈이 곽산 김창시 집에 드나들 때를 기다려야-.”

  선천부사 김익순이 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아니면 운산 촉대봉 광산까지 가야 합니다요.”

  “에잇, 거기가 어디라고-.”

  이번에는 평안감사 이만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야, 이거 아무래도 절도사 이해우와 의논을 해봐야겠어.”

  운산 촉대봉에도 눈발이 나리고 있었다.

  “거사일은 이달 스무날이오.”

  가산의 비밀 거점 신도에서 운산 광산으로 돌아온 농민군 부원수 김사용이 모사(작전 참모) 김창시와 선봉장 이제초에게 말했다.

  “열흘-.”

  이제초가 하루라도 빨리 치자는 투로 말했다.

  “진사 어른 댁은 벌써 쑥대밭이 되었다고 합니다요.”

  “음-. 이제는 날 모사라고 부르게. 선봉장이 언제까지 진사 어른만 찾을 겐가.”

  “하지만 제가 감히 어떻게 진사 어른을-.”

  “어허, 참. 좋아, 그럼 모사 어른이라 부르게, 됐는가?”

  “예-. 진사 어른, 아니, 모사 어른.”

  세 사람은 잠시 파안대소했다.

  “대원수는 빌미를 잡으려고 하는지 몰라.”

  김사용이 말했다.

  “말은 겨울을 기다려 남쪽을 친다고 하지만, 농민과 유민들이 확실히 우리를 따라줄 빌미, 그건 관군이 우리를 먼저 치도록 하는 게 아닐까?”

  “농민들의 항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렇게 위험한 일을-.”

  모사 김창시가 말을 이었다.

  “아직, 농민들이나 유민들이 확실히 우리를 도와줄지 그게 의문인데. 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거사는-.”

  여태껏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모사 김창시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무도 무슨 말을 선뜻 꺼내지 않았다.

  “거사의 명분 같은 그런 거 백성들은 잘 모르오, 다만 우리가 일어났을 때, 그걸 보고 믿고 따라줄 민심이 제일 중요한 것이오. 민심은 바로 천심이니까.”

  김사용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우리는 그 민심에 따를 수밖에-.”

  “여기보다는 운산 쪽을 치지 않을까요?”

  남진군의 모사 우군칙이 대원수 홍경래에게 말했다.

  “이곳 천마산은 워낙 산세가 험해서, 관군들도 쉽게 오지는 못 할 겁니다.”

  “까짓것 오면 싹 쓸어버리지요, 뭐.”

  홍총각이 선봉장답게 말했다. 몇 년 동안의 훈련대장을 하면서 반질하던  그의 얼굴은 구리 빛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제 그이 나이도 어느덧 서른이었다.  

  “음-. 관군들도 숫자가 많지 않으니, 운산 촉대봉을 기습하겠지.”

  홍경래는 앞일을 다 내다보고 있었다.

  “평안 감영과 김익순에게 붙였던 사람에게 무슨 소식 있으면 곧장 알리게. 참 그들 이름이 김이대와 최이륜, 또 윤언-.”

  “예. 윤언섭은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해우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우군칙은 대원수가 농민군 병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데 새삼 놀랐다.

  “새로 온 병마절도사 이해우의 관군이 천 명이나 됩니다. 여느 절도사와는 달리 직접 병사들을 훈련시킨다고 합니다.”

  “조선 팔도에 그런 절도사와 관찰사(감사), 현감, 군수, 부사만 있다면 이 나라는 이 꼴이 되지 않았겠지. 관군들이 조총을 갖추고 있으나, 우리는 천자총통과 낡아빠진 조총 몇 자루, 화살, 창과 칼뿐이다. 병사들의 사기,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들의 뜻이 따라야 한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격문을 준비해야겠어.”

  “예? 격문이라면?”

  “농민군에 참여하지 않은 평민들과 유민, 빈민들에게 우리의 뜻을 알릴 격문 말일세.”

  그때 밖에서 평안감사 이만수를 감시하던 김이대가 돌아왔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평안감영 비장들과 포졸 수백 명이 운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이대는 숨을 헐레벌떡거리며 몹시 지친 모습으로 홍경래에게 보고를 했다.

  “지금쯤 영변을 지났고 있을 것이니, 모레 새벽이면 운산에 닿을 것입니다.”

  “음-. 수백 명이라-. 박천으로 오질 않는 걸 보니 이곳 천마산은 아직 모르는 게 분명하다. 모사와 선봉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가서 도우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전령을 띄워 관군의 기습 소식만 알려주는 게 낫겠는가? 아니면-.”

  “아니면, 다른 방도라도 있습니까?”

  모사 우군칙이 물었다.

  “그들을 가산 다복동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지-.”

  “거기는 이미-.”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우군칙과 홍총각은 잠시 서로 마주보았다.

  “음-. 그래-. 이보게, 모사. 발 빠른 전령을 띄워 부원수 김사용에게 즉시 가산 다복동으로 군사들을 움직이라 하게!”

  평안감사 이만수의 비장들과 포졸들은 운산 촉대봉 기슭에서 어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민군들이 잠이 들 깬 미명을 틈 타 기습할 작정이었다. 사람은 잠이 깨기 전이 가장 약해지는 법이었다.

  섣달의 묘시는 아직 깜깜했다.

  관군들이 풀숲을 헤치며 산기슭을 내려왔다.

  “좀 이상한데-.”

  비장 중의 하나가 말했다.

  농민군들이 있을 움막이 너무 깜깜했던 것이다.

  “처부셔라!”

  그때 또 다른 비장 하나가 소리쳤다.

  “야-!”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명의 포졸들이 일시에 칼과 창을 휘저으며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없다, 없어. 녀석들이 없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비장들과 포졸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날이 새고 있었다.

  나무와 가마니로 만든 수십 개의 움막에는 그야말로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뭐라? 운산 촉대봉이 텅 비었다고? 그렇게 많던 광산 일꾼들이 하나도 없다고?”

  선천부사 김익순이 이창에게 말했다.

  “예. 그것뿐만이 아니라 추도 염전 일꾼들도 하나같이 사라졌다 합니다.”

  이창이 말했다.

  “또 사라져? 천 명이나 된다는 금광과 염전 일꾼들이 모두? 도대체 어디로 말이냐? 하늘로 솟았단 말이냐, 땅으로 꺼졌단 말이냐?”

  “그게-.”

  그 순간 다시 김익순의 장죽이 높이 올라갔다가 이창의 대갈통을 후려갈기려다가 이번에는 그냥 내려왔다.

  “어서 평안감사께 가서 자세히 알아보아라. 아니, 아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바로 그때였다. 김익순의 미닫이 방문 앞에 바스락, 하며 무슨 소리가 났다.

  “부사 어른-. 밖에 누가 있사옵니다.”

  이창이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김익순이 고개를 끄덕했다.

  이창이 방문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가 후다닥 방문을 열어버렸다.

  그때 툇마루 끝을 잡고 있던 낯선 자 하나가 깜짝 놀라 도망가려다 그만 마당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창도 무예도 단련된 무사라 그런지 단숨에 뛰어 내려가 그 자의 목덜미를 누르고 팔을 비틀어버리니 그 자가 꼼짝도 못하였다. 그때 다른 하인들도 그 소리를 듣고 몽둥이랑, 싸리비를 들고 쫓아 들어와 이창을 도와 그 자의 양쪽 팔을 하나씩 잡았다.

  “네 놈은 누구냐!”

  김익순이 툇마루에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자는 씩씩거리며 김익순을 쏘아볼 뿐, 도저히 순순히 말할 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창이 칼을 빼들어 그 자의 목에 갖다대었다.

  “누구냐, 너는?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

  이창의 칼날에 그 자의 목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811년 섣달 열엿샛날(12월 16일).

  “김익순을 감시하던 최이륜이 평안감영으로 끌려갔습니다!”

  우군칙이 홍경래에게 말했다.

  “뭐라? 뭐라고? 그럼 여기도 위험하다! 지금 즉시 우리도 가산의 다복동 거점으로 간다. 거기서 북진군과 합류한다?”

  대원수 홍경래가 다급하게 우군칙과 홍총각에게 말했다.

  “도총은 가산으로 떠났나?”

  “예. 아침 일찍 남진군을 만나기 위해 가산 다복동으로 갔습니다.”

  모사 우군칙이 말했다.

  “그럼, 거사일은-?”

  “열여드레 날(12월 18일)로 앞당긴다. 어서 서둘러 짐과 무기를 싸라! 거기 도착하면 날이 새겠군.”

  우군칙과 선봉장 홍총각은 부리나케 병사들을 모으고 군장을 꾸리도록 지시했다.  

  “서둘러!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올 것이 왔군.”

  우군칙이 이리저리 뛰며 짐을 꾸리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섣달의 천마산은 을씨년스럽게도 추웠다.

  거기에 솟은 일곱 봉우리 위에는 하얀 눈이 조금씩 쌓여 있었다.

  대원수 홍경래는 그것을 비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1811년 섣달 여드레(12월 18일)날 새벽.

  “모두 다 모였나?”

  “예-!”

도총(군수 총병관) 이희저, 남진군 모사(작전 참모) 우군칙, 선봉장 홍총각, 북진군 부원수 김사용, 모사 김창시, 선봉장 이제초 그들 모두가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홍경래는 그런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모두가 결의를 굳힌 늠름한 모습이었다.

  “진정 백성을 위한 자는 자신의 시체가 도랑에 나뒹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모두 각오는 됐는가!”

  “옛-!”

  아까보다 더 크고 무거운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 열기로 섣달이 그대로 세월 속에 녹아들 것만 같았다.

  가산 다복동을 다시 거점으로 잡은 대원수 홍경래의 생각은 적중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를 감시하던 윤언섭의 첩보에 의하면 관군은 박천 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친 병사들이 하루를 꼬박 벌 수가 있었다.

  눈이 나리는 다복동 훈련장에 임시 움막이 처졌다.

  “날이 밝기 전에 가산 관아를 친다. 두 선봉장은 각각 농민군 5백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라!” 

  홍총각과 이제초가 신이 났다.

  천여 명의 농민군이 줄을 지어 선 가운데 눈발이 나리기 시작했다.

  “남진군 앞으로!”

  홍총각이 기세도 늠름하게 소리쳤다.

  그에 질세라, 이제초도,

  “북진군 앞으로!”

하고 외쳤다.

  그들 뒤를 대원수 홍경래와 부원수 김사용, 도총 이희저, 모사 우군칙과 김창시, 그리고 나머지 천여 명 농민군과 그 식솔들이 따랐다.

  “농민군들이, 농민군들이, 벌떼처럼 몰려옵니다요!”

  가산 관아의 포졸들이 쇠도리깨와 창을 메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가산군수 정시에게 말하였다.  

  “그들은 모반을 일으킨 역적들이다. 떨 거 없다. 이제 곧 관군이 올 것이다. 한 나절만 버티며 이 관아를 지켜라! 그때까지 내가 그들을 구슬려볼 테니! 또 도망치는 자들은 내가 직접 목을 베겠다!”

  전에도 말했듯이 가산군수 정시는 단호한 인물이었다. 한때는 가산의 무관 이희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가! 조정이 썩었다하나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비록 그 수는 적었다하여도 백성을 위하는 자 또한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홍경래라고 했지?”

  “평안도 용강에서 한낱 평민에 불과했던 자가 천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관아를 치러 온다? 아, 이 모두가 썩은 조정과 탐관오리들 탓이 아니겠는가! 백성은 연일 굶어 죽어나가는데 제 뱃속들은 기름진 음식으로 채우고, 세금으로 고혈을 짜내고, 부자들은 소작농 곡식을 이래저래 다 가져가고, 하다못해 불만을 품거나 민란을 일으키는 자는 대역죄로 참수하니, 이래저래 제 땅 한 마지기 없는 백성은 굶어죽고 맞아죽고-. 아-.”

  가산군수 정시는 탄식했다.

  그러나 관아는 지키는 게 관리로서 마땅히 할 일, 반란군에게 그냥 항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와, 와, 하는 함성이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기세에 눌려 수십 명의 포졸들이 벌벌 떨며 관아 담벼락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쳐라!”

  두 선봉장의 호령에 농민군들 와-, 하면서 그대로 가산 관아의 대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야-!”

하면서 농민군들이 순식간에 포졸 수십 명에게 달려들었는데, 이미 기가 깎인 포졸들은 저항 하나 하지 않고 들고 있던 쇠도리깨며, 창을 땅바닥에 그대로 던져버리고 항복했다.

  그때 이 모습을 마루에서 바라보던 가산 군수 정시가,

  “네 이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관아를 쳐들어 와!”

하고 호통을 쳤다.

  그 위세에 농민군들이 오히려 움찔했다.

  그러나 농민군 가운데 하나가 나서며,

  “아니, 저, 저 놈을-.”

하며 창을 들고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마루 쪽으로 올라섰다.
  “물러나라!”

  어느새 대문 안에 들어온 이희저가 소리쳤다.

  “대원수께서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약탈을 하지 말라고!”

  이때, 군수 정시가 이희저를 알아보았다.

  “아니-, 네 놈은 가산 무관으로 있던 이희저가 아니냐!”

  “예-.”

  농민군 도총 이희저가 짧게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군수 어른이 저를 위해주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직에 있던 자가 어찌 백성의 고통을 모른다 하겠습니까? 이들 또한 관직에 있던 하급 군관들이요, 농민이며, 유랑민이며, 가난한 백성들입니다. 이들이 왜 농민군에 가담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사옵니까?”   

  “그렇지만 조정이 있고, 임금이 계신다! 네 놈들이 저지른 일은 나라를 배반한 모반대역죄이니라!”

  칼을 든 정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나라를 배반하고자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임금의 눈을 멀게 한 썩어 빠진 조정 대신들과 백성의 재물을 탐하는 관리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모여든 백성들입니다.”

  농민군 도총 이희저가 조용히 말했다.

  “군수 어른. 항복하시오. 그럼 목숨은 건질 수 있소.”

  이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홍경래가 큰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여기서 지체할 수도 없거니와, 가산 군수와 왈가왈부할 노릇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의 길이, 대원수 홍경래와 농민군에게는 다시 가야할 길이 있었다.

  “옳아, 네 놈이 홍경랜가 뭔가 하는 놈이구나!”

  군수 정시가 소리쳤다.

  “마지막이오. 항복하시오. 우리는 당신에게 원한이 있는 게 아니요. 민심은 천심임을 저버린 관리와 조정 대신을 없애고자 할 뿐이오. 이게 마지막이오. 군수 어른-.”

  홍경래의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대원수로서의 위엄이 있었다.

  “네, 이 놈!”

하면서 가산군수 정시가 홍경래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선봉장 홍총각의 칼이 정시의 목을 쳤다.

  “이 자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어라. 자신의 본분을 다한 자다-.”

  가산 관아를 손에 넣은 농민군 대원수 홍경래가 먼 산을 바라보았다.

  내리던 눈발이 그쳐가고 있었다.

  “정감록에 나온다는 정씨가 이 가산군수 정씨 아닌가? 하여간에 기개가 대단한 사람이야. 혼자서 천 명이 넘은 농민군 앞을 막다니.”

  김이대가 앉아서 쉬고 있던 눈이 가냘픈 농민군 하나에게 말했다. 그 자의 이름은 조문형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아니 그러면 정시 다음에는 가야산 조씨, 그 다음에는 뭐 완산 범씨, 또 다음에는 송악의 왕씨가 왕이 된다고? 그러면 고려로 다시 돌아가나? 하하하-.”

하고 껄껄껄 웃었다.

  그때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여진족 마적 정민시가,

  “나도 정씬데-.”

하고 말하자, 아까 그 농민군이 다시,

  “여진족 정씨가 아니라, 계룡산 정씨 말이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한때 간도와 함경도 일대를 누비던 여진족 두목 정민시가 발칵 일어서면서,

  “뭐라고? 네 놈이 나를 놀리는 것이냐!”

하고 칼을 빼들었다.

  그때, 

  “그만 멈추게!”

하고 모사 우군칙이 말했다.

  “함부로 칼을 빼서야 되겠나? 자네와 또 같이 온 자들도 조선의 백성이 되고자 와서, 그 백성을 위한 농민군이 된 게 아닌가!”

  “아니, 뭐, 싸우자는 게 아니고-.”

하고 여진족 두목 정민시가 칼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머리에 상투를 트지 않은 여진족 부하들 몇몇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뭐 어려운 건 없는가?”

  우군칙이 옛정이 생각난 듯 정민시에게 이야기했다.

  “아직 말이 잘 안 통하니 답답구먼.”

하고 말했다.

  “그거야, 점점 나아지겠지. 우리가 함경도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아 다짜고짜 싸움질부터 하지 않았나. 하하하-.”

  우군칙의 그 말에 정민시도 하하하, 하며 크게 웃고 말았다.

  그때 홍총각이 뛰어와,

  “대원수께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했다.

  한때 여진족 두목이었던 정민시가 그만 가보라라는 투로 한 손을 조금 위로 들었다.

  우군칙이 돌아가자 아까 말을 꺼냈던 농민군 조문형이,

  “그것 말고도 정성진인출래설(鄭姓眞人出來說)은 모사들이 퍼뜨렸다는 말도 있어.”

하고 말했다.

  조문형은 어딘가 삐딱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 김이대가,

  “초인이 나타나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한다는 말이지-. 그게 뭐 나쁜 겐가, 대원수가 왕이 된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대원수는 성이 홍씨가 아닌가.”

하고 맞받아 말했다.

  “여기서 북진군과 남진군은 나눈다. 북진군은 곽산, 정주, 태천, 선천, 철산, 용천에서 의주를 치고, 남진군은 박천, 영변, 안주 쪽으로 내려간다. 그 다음은 다시 가산 다복동에서 합류, 평양성을 치고, 봄이 오기 전에 서울로 쳐들어간다.”

  대원수 홍경래는 북진군과 남진군 모사와 선봉장들에게 지도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북진군의 선봉장 이제초가 물었다.

  “그럼 함경도는 치지 않습니까?”

  “한겨울에 백두산에 오를 순 없지-. 우리의 목표는 서울이다. 소한에 평양을, 대한에는 서울에 들어서야 한다. 남쪽을 칠 때는 겨울에 쳐야 한다.”

  홍경래가 말했다.

  “조정에서도 관군을 내려 보낼 텐데요.”

  도총(군수 총병관) 이희저가 말했다. 날씨가 추운지 그는 아주 두툼한 솜옷을 몇 겹이나 입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우리 작전만 맞아 떨어진다면 관군도 그리 많은 수가 많지 않을 터이니, 충분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홍경래가 말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안주성이나 영변으로 올 것 같습니다”

  남진군의 모사 우군칙이 말했다.

  “영변이라면 청천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번에는 남진군의 선봉장 홍총각이 좀 뜻밖이라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천강은 섣달이면 꽁꽁 얼어붙어 충분히 건너갈 수 있다. 우리와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지.”

  한때 풍수사로 팔도를 누볐던 우군칙이 괜히 모사가 된 게 아니었다.

  홍총각이 좀 멋쩍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겨우 3백 명만 데리고 왔다는 말이냐!”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새로 관군의 군관으로 온 박정에게 소리쳤다. 박정은 십 년도 더 전에 홍경래와 우군칙, 홍총각을 한강 두뭇개 나루터에서 쫓던 바로 그 한성부 좌포도청의 군관이었다.

  “예. 서울에도 하도 병력이 모자라는 터라-.”

  “겨우 천 3백 명의 관군으로 3천의 농민군을 막아라?”

  이해우가 탄식하며 말했다.

  “저들은 의분으로 똘똘 뭉쳐진 자다.”

  “제가 그래도 조총에 쓸 화약은 충분히 갖고 왔습죠.”

하고 이해우가 마당에 쌓아둔 짐짝을 가리키며 우쭐했다.

  “이보게, 군관. 지금 하늘이 어떤가?”

  “예?”

하면서 박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하늘은 금방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듯 시커멓게 바뀌어 있었다.

  “역적의 무리들은 박천 쪽으로 내려 올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평양과 서울을 치려고 할 테니까.”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는 뭔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안주, 영변도 있지 않습니까?”

  박정이 말했다.

  “음-. 안주, 정주라-. 그렇게 많은 농민군을 모으고, 먹이고, 무장하려면, 분명 역적의 무리들을 도우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곽산과 가까운 정주는 위험하니 놔두고 자네는 안주상인들과 송상, 불만을 가진 향장들과 토호 등 의심스러운 자들을 잡아다 가려내도록 하라!”

  “옛. 절도사 어른-.”

하고 박정은 그 박정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비로서 자신을 인정받을 기회가 왔다는, 제 출세 길에는 기가 막힌 재주를 가진 간신배처럼 박정은 간살스럽게 웃었다.

  박정은 그 길로 우군칙을 도왔던 안주상인 나대곤을 잡아들였다.

  “네, 이 놈. 네 놈도 반란을 일으킨 자들과 한 패렸다. 너 말고 역적을 도운 놈들이 또 누구누구냐! 이름을 대라! 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안주상인 나대곤의 입에서 영변 내응 세력과 그리고 송상 박광유와 홍용서의 이름이 새어나왔다.

  “의주의 인삼 거상 임상옥은 아니더냐!”

  박정이 다그쳤다.

  “ 그 사람이 뭐가 답답해서 농민군을 돕겠소. 그의 뒤에는 조정 대신들이 있는데-.”

  이조판서 박종경이 거상 임상옥에게 청나라와의 인삼 무역 독점권을 주었다는 것은 박정도 한성부에 좌포도청의 군관으로 있을 때 들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뭔가 잘못 이야기했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이 역적의 무리들이 이조판서 박종경을 제일 먼저 없애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정은 왠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자신 또한 누구 못지않게 뇌물을 받았고, 가난한 백성을 좀먹는 관리였기 때문이리라!

  “관군이 이미 안주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모사 우군칙이 홍경래에게 말했다.

  홍경래는 평서대원수로서 남진군을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관군은 천 명이 넘었고, 또 조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박천까지는 올라오지 못할 거야. 그 쪽이라면 우리가 더 잘 아니까. 천마산도 그렇고, 청룡사도 그렇고.”

하고 말하는 대원수 홍경래의 얼굴에 자신감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일단 박천을 점령한다. 관아를 지키는 몇몇 포졸을 빼고는 이렇다 할 군사도 없을 것이다.”

  “영변에서 우리 편을 돕던 향임(수령 보좌)들과 이속(아전), 그리고 안주상인 나대곤이 잡혀갔다고 합니다.”

  우군칙이 말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그 부하들을 시켜 우리와 내통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음-. 농민군 가운데도 언행이 수상한 자를 한번 찾아보게, 북진군에도 곧장 사람을 보내고-.”

  “예.”

  “영변 공격은 어렵겠군. 그렇다면 안주인데, 안주라, 안주-.”

  “오히려 영변을 친다면 적들은-.”

  우군칙이 영변을 고집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세. 일단 박천이 먼저야.”

  홍경래의 말투에는 친근하고도 감히 거역하기 힘든 데가 있었다.

  “가산 다복동은 어떤가?”

  “예. 북진군과 우리 남진군에게 반반씩 군량미와 군수를 나누었고, 운산 광산 일꾼들이 무기를 만들어 가산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고 우군칙이 말했다.

  가산 다복동 거점에는 도총 이희저가 군량미, 군수품. 무기, 그리고 전비를 북진군 모사 김창시와 정주 부호 김약하에게 받아, 북진군과 남진군에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산역에 있던 말 칠십여 마리가 각 군의 이동과 수송을 크게 도왔다. 특히 선봉장과 선봉 농민군들 모두 말을 타고 공격을 할 수 있어 선봉대에 필수적인 기동력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말들은 모두 고려 말 몽고에서 들여온 제주도 조랑말이었지만, 추위에 강하고 힘이 억셌다.

  “아, 그리고 이걸로 각 고을마다 방을 써 붙이도록 하게.”

하고 홍경래가 우군칙에게 꺼낸 것은 붓으로 직접 쓴 격문이었다.

  굶주린 백성은 더 굶주리고, 조정 대신 관료들은 나날이 썩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백성을 좀 먹는 탐관오리들의 행패는 이제 극에 다다랐다.

  안동 김씨 세도 정치가 판을 치니 관직은 돈으로 주고 사고, 평안도 출신은 관로가 막혀 있고, 가난한 선비는 그 뜻을 지키고자 하나 먹을거리가 없다.

  이에 가난한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민심은 천심이 새로운 세상을 세우고자 하노라!     

  대원수 홍경래의 격문은 한글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문을 모르는 농민과 유민과 빈민들이 읽기 위한 글이었다.

  이때가 1811년 12월 22일이었다.

  “격문을 읽어 보셨습니까?”

  북진군 선봉장 이제초가 밖에서 떼어온 방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음-. 여기도 있네.”

  북진군 부원수 김사용은 모사 김창시가 가져온 이미 격문을 읽었던 것이다.

  “땅 한 떼기 없는 농민을 위해서는 꼭 땅을 나누어준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가난한 선비에서 빈민으로 살았던 김사용은 땅을 잃은 농민들에게 제일 절실한 게 바로 그들이 일구어 먹고 살 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없었던 것은, 당시에 이모작과 이앙법 등 농업 기술이 늘어나 한 사람의 경작 능력이 전보다 서너 배가 되면서 남아도는 농민들이 유랑민이 되기도 했지만, 양반 지주층과 부농들이 대부분의 땅을 차지했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바로 궁핍한 백성을 살피지 못한 관료들 때문이며, 탐관오리들이 가난한 백성의 땅을 빼앗아 간 탓이며, 지주에게, 세금으로, 8할의 곡식을 농민들은 갖다 바치며 굶주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쓸모없는 양반과 평민을 나누는 것도 없어져야지.”

  모사 김창시가 말했다.

  “백성들의 제일 큰 불만이 먹고 살 땅과 아무리 노력해도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그 놈의 양반과 상놈을 나누는 신분 탓 아닌가.”

  모사 김창시가 이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선봉장 이체초가 놀라서 한때는 곽산 진사 어른으로 모셨던 그를 바라보았다.

  “백성들이 농민군으로 와주지 못한다면 우리를 밀어주기라도 해야 하는데.”

  부원수 김사용이 말했다.

  “그래, 선봉장. 방을 보는 백성들이 뭐라 하던가?”

  “예-. 그냥 방 앞에서 웅성거리기만 할 뿐-.”

  하기야 이제초도 그들의 심정까지야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방 하나 툭 떼어 온 것이었다.

  “북진군보다 남진군이 더 어려울 게야. 평양, 서울에서 관군이 계속 올라올 테고-.”

  김창시가 말을 돌렸다. 아직 봉기를 일으킨 지 얼마 안 되니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곽산은 우리 손아귀에 있는 거나 다름없고, 다음은 정주, 선천 쪽인데 정주성만 우리 손에 들어온다면 의주까지는 일사천리인데-.”

  “의주와 검산성도 쳐야지-.”

  한때 유랑민으로 선천, 태천, 철산, 용천을 떠돌던 부원수 김사용은 지리와 지략에 뛰어났다.

  “정주성 다음은 선천부사 김익순을 쳐야지. 거기에는 관군이 몇 백 명은 있을 테고, 검산성보다는 의주가 어려울 거야, 의주는 우리를 도울 세력이 없어서-.”

  “그 놈이 거사를 눈치 채는 바람에 관군이 저리 빨리 안주로 들어왔으니.”

  모사 김창시가 말했다.

  “서울에서 순무군라도 파견되는 날에는-.”

  “순무군라니요?”

  선봉장 이제초가 부릅뜨며 말했다. 그의 거무튀튀한 얼굴도 한겨울 바람에 많이 얽어 있었다.

  “민란이나 반란이 일어났을 때 급파하는 관군 말일세.”

  “정주, 선천만 치고 나면 제가 남진군 선봉장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음-. 그래야 되겠지-.”

  부원수 김사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1811년 12월 20일, 남진군이 박천을 차지하고 난 다음 북진군은 12월 28일까지 곽산, 정주, 태천, 선천, 철산, 용천 등 청천강 북쪽을 점령했다. 정주성을 칠 때는 농민군도 십여 명 죽고, 수백 명이 다쳤지만, 정주성주가 곧장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사기가 꺾인 성 안의 관군들이 화약이 떨어진 조총과 칼을 버리고 투항해버려 하루 만에 정주성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12월 18일 농민군이 봉기해서 불과 열흘 안에 거둔 승리였지만, 청천강 바로 위쪽의 영변은 예외였다. 그것은 바로 홍경래의 농민군을 돕던 영변의 하급 군관과 향임, 이속, 군비를 지원하던 상인, 부호들이 영변부사 오연상에게 발각되어 모조리 병마절도사 이해우에게 잡혀갔기 때문이었다.

  그와 반대로 북진군이 철산에 들어섰을 때는 철산부사 이장겸이 바로 자기 부하였던 향임과 이속에게 미리 항복을 해서 농민군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철산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욱 웃기는 일은 바로 선천부사 김익순의 항복이었다. 농민군 북진군 모사 김창시는 이 김익순을 잡고자 선봉장 이제초를 시켜 선천 관아를 염탐하게 했더니 김익순은 농민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쥐새끼 같이 미리 도망쳐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가 도망친 곳은 바로 전에도 부원수 김사용이 말했던 요새와 같은 검산성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검산성에 있으면 덜 잡힐 줄 알았는지, 아니면, 요새와 같은 곳에서 싸우지도 않고 자기 군사 백여 명과 함께 항복하면 봐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는지 김익순이 부하들과 투항한 것이었다.  

  김창시는 김익순의 목을 벨 것을 끝까지 주장했다.

  “선천부사 김익순은 몇 십 년간 백성들의 목숨과 땅을 빼앗아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던 관리로 죽어서 마땅한 자요!”

  도총 이희저가 가산 무관으로 있을 때, 기생과 유람하답시고 말을 빌려달라는 걸 듣지 않았다고 김창시와 함께 의금부에 찔러, 관직을 박탈케 하고, 농민군의 거사를 염탐하여 평안감영에 알린 자가 바로 선천부사 김익순이었다.

  김익순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면서도 이를 갈고 있었다.

  ‘내 언젠가는 네 놈을 죽여주리라.’

  김익순은 그러한 자였다.

  그러나 북진군이 아직 영변을 장악하지 못한데다가, 남진군의 형세가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안주에 이미 천여 명의 관군을 이끌고 들어와 있었고, 서울에서 양서순무사로 이요헌이 5백 명의 관군을 끌고 급파되었다는 소리마저 들리고 있어 농민군도 더 많은 병사가 절실했다.

  “나라의 녹봉을 먹는 관리로서 내 할 바를 다 해왔을 뿐이요. 그러나 핍박받는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농민군을 보며 잘못을 뉘우치고 항복하오니 부디 저희를 봉기군으로 받아주시면 대원수와 부원수께 이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자 합니다.”

  김익순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는 눈을 뜨고 김창시를 째려보았다.

  “부원수. 저 자의 항복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아니 되오. 저 자의 혀는 항복을 말하나 저자의 약은 얼굴과 눈빛이 거짓을 말하고 있소!”

  그러나 부원수 김사용은,

  “음. 일단 이 일을 대원수께 아뢰고, 답을 기다려 봅시다.”

하고 말하며 선봉장를 시켜 김익순과 관군들을 감옥에 가두도록 지시했다.

  “영변은 어렵다. 안주를 친다!”

  농민군 대원수 홍경래는 모사 우군칙과 선봉장 홍총각에게 말했다.

  그러나 모사 우군칙은,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보통이 아닙니다. 분명 얼어붙은 청천강을 건너 영변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다렸다가-.”

하고 말했다. 거사 이후로 모사 우군칙은 늘 학창의와 부채를 들고 군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영변에서 우리는 돕던 자들이 모조리 잡히지 않았나?”

  홍경래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풍수사로서-.”

  “이봐. 자네는 그게 탈이야. 자네는 이제 풍수사가 아니라 농민군을 지휘하는 모사가 아닌가! 그 옷도 당장 갈아입게!”

  홍총각은 홍경래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꼼짝도 못하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관군들이 속속 안주성으로 집결하고 있다. 내일 안주성을 친다!”

  홍경래의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은 결정이 되었다.

  이때 북진군 김사용이 보낸 전령이 들어왔다.

  “선천부사 김익순과 관군 백여 명이 투항을 했다고-. 음-. 김익순 그 자는 감옥에 가두어두고, 그 관군들을 앞세워 의주를 칠 준비를 하도록 부원수께 알려라.”     

  홍경래는 전령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과 같은 사령장을 하나 써주었다.

  김익순의 관군들을 이용하여 의주성문을 열도록 하고, 그들의 공이 혁혁할 경우 김익순을 처형하지 말고 농민군에 가담시켜 다른 고을의 수령들과 향장들에 본보기가 되게 하라.

  이는 무기의 열세를 만회하려면 군사의 수를 하나라도 더 늘려야 하는 농민군의 어려움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안주성에는 서울에서 파견된 양서순무사 이요헌과 관군 가운데서도 정예군이라 할 수 있는 순무영 군사 5백 명이 들어와 있었다.

  “뭐야? 곧 안주성을 칠 것 같다고?”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군관 박정에게 말했다.

  “확실한 겐가?”

  “예. 반란군 가운데 저희와 내통하는 자가 있습니다. 조문형이라고-.”

  박정은 이미 안주상인 나대곤을 잡아들여 반란군을 돕고 있던 영변의 향임과 아전을 미리 영변부사 오연상에게 찔러줄 만큼 염탐에 교묘한 데가 있었다.

  “조문형이라고? 하하하, 그 자를 한 번 더 써먹어야겠다. 적장이 죽으면 이미 반은 이긴 것이지. 이번에는 그 자를 자객으로 보내 홍경래를 해치우도록!”

하고 말하며 이해우는 빙그레 웃었다.

  ‘역적 놈들의 우두머리가 대원수라고? 후후-. 홍경래-. 민심이 천심인 새 세상을 세우겠다고? 네 놈 목은 몇 개나 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그런데 순무사에게는 이 일을 말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순무사 어른 안에 계시지?”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그렇게 말하고도, 좀 꺼림칙했다. 반란군을 물리칠 관군의 총지휘는 양서순무사로 임명된 이요헌이 맡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무군만 해도 5백 명이나 되는데 그것만 지휘하면 되지, 이 병마절도사의 관군 천삼 백까지 맡으려니, 나, 원, 참.’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순무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요헌은 전주 사람으로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포도대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반란군을 평정하라는 어명을 받고 양서순무사로 임명된 된 자였다.

  이해우가 먼저 인사를 했다.

  “잠자리는 편안하신지요?”

  “역적 무리를 물리치러 온 자가 어떻게 편안한 잠자리를 찾겠소? 한데서 자는 병사들도 많은데-.”

  이요헌은 이마와 눈썹이 곧고 반듯한 자였다.

  “내 오다 들으니, 관군들이 군량미랍시고 백성들을 약탈한다는 소리가 자자하오만.”

  “예? 그건 그저 소문일 뿐입니다.”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말이요?”

  이요헌의 따끔한 한 마디에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꼼짝도 못했다.

  “관군은 약탈을 하고 반란군은 농민의 편을 든다면 백성들은 누구를 따르겠소?”

  “그게 저 군량미가 부족하다 보니-.”

  이해우가 변명을 했다.

  “그러면 병마절도사는 밥이 모자라면 병사들의 밥을 빼앗아 먹을 셈이요?”

  순무사 이요헌은 한 마디 한 마디는 병마절도사 이해우의 가슴을 후벼 파고 들었다.

  “저들이 반란군이라 하나 대게 농민들이 아니요. 농민군에 참여하지 않은 백성들마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저들에게 간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요!”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대원수 홍경랜가 뭔가 하는 자가  써 붙인 방을 보았사온데, 방이 붙고 보름이 지나도록 반란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또 함부로 반란군에 끼어들었다간 대역죄에 몰릴 테니 조용합니다요.”

  이해우가 말꼬리를 슬쩍 돌렸다.

  “아니, 내 말은 관군의 약탈을 말하는 것이요! 그런 짓을 하는 관군은 지위를 불문하고 목을 베시오! 알겠소, 병마절도사!”

  이미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한 적이 있는 이요헌은 이해우의 머리 속을 손바닥 보듯 하고 있었다.

  이해우는 백성을 괴롭혀 제 뱃속만 채우는 탐관오리는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관리로서 마땅히 살펴야 할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자는 아니었다. 그저 제 공만 세우고 출세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반란군의 우두머리 홍경래를 없앨 계략이 있다는 것도 양서순무사 이요헌에게 일부러 말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 했으나 순무사가 보통 사람은 아니 듯하여 하는 수 없이 그럴 자가 하나 있다는 정도만 우선 말해 두었다.  

  “눈 좀 붙여두게. 날이 밝으면 안주로 들어가야 하니-.”

  홍경래가 내내 영변 공략을 고집하던 우군칙을 달래고, 같이 마시던 막걸리 잔을 놓으며 말했다.

  “참, 전에 말했던 거 있지, 농민군 가운데 언행이 이상한 자를 찾아보라는 거-.”

  “예. 별 수상한 자를 찾지는 못했습니다만.”

  우군칙이 말했다. 그는 학창의를 아직 입고 있었으나 부채는 들고 있지 않았다.

  “음-. 다행이군. 그래도 수상한 자가 있을지 모르니 선봉장에게도 이야기해두게. 북진군에도 한 번 더-.”

  섣달의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별들이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은하수를 타고 물결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홍경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바람 소리인가? 아니면 낙엽, 움막이 흔들리는 소린가? 아니면 짐승, 발자국 소리다, 라는 생각이 들자 홍경래는 머리맡에 둔 칼을 집으며 후다닥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검은 복면을 한 자가 냅다 덮치며 홍경래를 칼로 찔렀다.

  홍경래는 칼집에서 칼도 빼지 못한 채로 녀석을 내리쳤다.

  욱-, 하며 녀석이 나동그라지나 싶더니, 후다닥 이어나 움막 밖으로 튀어 나가버렸다.

  홍경래도 뒤이어 쫓아 나갔으나 녀석은 벌써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서야 망을 보던 농민군 하나가,

  “무슨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하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홍경래는 욱신거리는 옆구리에 손을 갖다대었다. 손에 피가 묻어 나왔다.

  “자객이다! 망보는 자를 늘리고, 어서 모사와 선봉장을 불러 오너라!”

하고 말하며 홍경래는 주위를 한번 훑어보고는 그대로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

  홍경래는 피가 나는 곳을 옷으로 지그시 누르며 바닥에 누웠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한기가 들었다. 그때 우군칙과 홍총각이 뛰어들어 왔다.

  “괜찮으십니까? 자객이라뇨?”

  우군칙과 홍총각이 놀라 말했다.

  “아니. 저 피는!”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자객이 어디서 들어왔지? 샅샅이 찾아보고 망을 더 세우게! 곧 날이 밝을 터이니 병사들에게는 아무 말 하지 말도록 이르고.”

  우군칙이 홍총각에게 깨끗하게 빨아놓은 솜옷 몇 벌을 가져오도록 했다.

  “아무래도 내일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홍경래는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선봉장이 왜 이리 늦게 오나 싶었더니, 홍총각이 화로를 들고 또 다른 농민군 하나가 두툼한 솜옷을 들고 들어왔다.

  “안주성은 아무래도 한, 사나흘 늦추어야겠어.”

  우군칙이 선봉장에게 말했다.

  “-.”

  선봉장은 아무 말 없이 아까 데리고 온 농민군 하나가 옷으로 피를 닦아 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 잠깐 밖으로 나오게.”

  홍총각이 모사의 뒤를 따라 나왔다. 새벽이 가까워 오면서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북진군에 연락을 해서, 부원수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게-.”

  “예?”

  홍총각은 좀 정신이 없었다.

  “모레까지 박천에 이르도록 부탁하게.”

  “대원수께서는?”

  “지금은 저러시지만 나으려면 며칠은 갈 거야-.”

  새벽인데도 아직 해가 뜨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날이 흐려질 모양이었다.

  “그래, 홍경래를 해치웠느냐?"

  박정이 농민 조문형에게 물었다.

  “예, 그게, 좀-.”

  조문형이 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 칼로 찌르긴 찔렀는데, 아직, 살아 있는 거 같습니다요.”

  “에잇, 이 놈!”

  관군의 군관 박정이 화를 벌컥 냈다.

  “그런데 이걸 절도사 어른께 어떻게 이야기하지-. 아냐 그래도 그 놈들은  큰 일 났을 터이니-, 음, 수고했다.”

  박정이 혼자 중얼거리며 말했다.

  “네 놈은 다시 부를 때까지 돌아가 있거라! 네 놈도 곽산에 산댔지.”

  “지금, 거기로 돌아가면, 전 죽습니다요. 곽산은, 이미, 농민군에 손에 떨어진지 오랩니다요.”

  조문형이 치를 떨며 말했다.

  “음, 그래. 그 곽산에선 농민군에 앞장 선 놈이 누구냐?”

  박정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물었다.

  “예, 진사 김창시란 자이온데, 지금 농민군 모사 어른입니다요.”

  “야, 이 놈아, 역적 놈한테 어른이라니!”

하며 박정이 호통을 쳤다.

  “남진군의 모사가 김창시라고? 음- 알았다. 네 놈은, 당분간 조용히 여기 병졸들과 섞여 지내고 있어라. 일체 아무 소리 말고-.”

  “뭐라! 홍경래가 칼에 찔렸어? 그래, 죽지는 않고-.”

  순무사 이요헌은 절도사 이해우의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했다.

  “놈들이 이 안주를 치려면 며칠은 더 걸릴 것이오. 우두머리가 다쳤다면 반란군은 사기가 크게 떨어질 터이니, 우리에겐 좋은 기회요. 더군다나 저들의 무기는 고작 칼과 창, 쇠도리깨, 화살, 천자총통 몇 문 정도지만 우리에게는 홍이포와 자모포와 조총이 있으니 우리가 이길 게야. 군관들은 무엇보다 화약이 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틀은 더 지나야 평안 감영에서 8백의 관군들이 화약과 조총을 가지고 올 터니, 후후-. 그리고 병사들에게 적장 홍경래가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그로부터 사흘 뒤, 밖이 시끄럽다 했더니 포졸 하나가 창을 든 채로 뛰어들어 와서는,

  “순무사 나리, 역적 놈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과연 안주성 밖에는 2천 명은 되어 보이는 적들이 진을 갖추고 있었다. 

  “떨지 말라! 우리에게는 2천 5백이나 되는 군사와 조총이 있다. 이 안주성에서 나가지 않고도 능히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평안 감영에서  8백의 관군들이 올라와 있지 않느냐!”

  양서순무사 이효헌은 용감하게도 안주성 상곽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직접 지휘를 하고 있었다.

  “홍이포와 자모포를 쏴라!”

  홍이포는 명나라 때 들여온 대포로 날아가 터지는 포탄은 아니었지만 탄환의 쇳덩이가 크고 무거워 수십 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당시로서는 신식 무기였고, 자모포는 조선에서 만든 대포였지만, 위력은 없었다.

  “제 1진 발사하라!”

  이요헌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관군들이 일제히 조총을 쏘아댔다.

  “제 2진 발사하라!”

  조총의 위력은 임진년 왜놈들이 쓰던 조총보다 화약을 넣고 쏘는 속도가 빨라 제 3진이 총을 쏠 즈음에는 다시 1진이 쏠 수가 있었다.

  조총의 유탄이 농민군들의 머리와 가슴, 배, 팔다리에 사정없이 파고들어 대번에 붉은 피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아악-.”

  “아!”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농민군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천자총통을 가져오너라!”

  대원수 홍경래가 소리쳤다.

  “저 성문과 성곽을 향해 쏴라!”

  청동으로 만든 천자총통은 천 2백 보나 날아가는 대장군전이었지만 날아가 터지지는 않았다. 다만, 대장군전의 무게가 무거워 타격을 입히기는 했지만, 이미 구식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농민군의 화살은 성문 위까지 날아가지도 못하고, 성벽에 맞아 그대로 떨어졌고, 얼마 되지 않는 낡은 조총은 위력이 없었다. 피에 젖은 팔 다리가 너덜거리고, 총에 맞아 쓰러져 가는 농민군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었다.

  농민과 백성을 위한 전쟁에서 농민군은 밀리고 있었다.

  홍경래의 옆에는 남진군을 도우러 내려온 북진군 5백 여명과 부원수 김사용, 선봉장 이제초가 있었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후퇴하라! 전 군사들은 후퇴하라!”

  대원수 홍경래는 후퇴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지난 나흘간 머뭇거린 것이 패배의 요인이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옆구리가 몹시 저려 왔지만 홍경래는 내색하지 않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대 북진군 선봉장 이제초가,

  “이대로 후퇴한다는 말입니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선봉장, 일단 퇴각했다가 다시 칠 것이다!”

  남진군 모사 우군칙이 말했다.

  그때 이제초와 남진군 선봉장 홍총각의 눈이 마주치자 홍총각이 고개를 끄덕했다.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퇴각하는 농민군 등 뒤로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농민군은 박천이 아니라 도총 이희저와 농민군의 식솔들이 모여 있는 가산의 다복동으로 회군했다.

그것은 농민군의 타격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시간과 물자가 필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분을 삼키지 못한 자는 농민군의 두 선봉장들이었다.

  “우리 둘이라도 안주성에 들어가 절도사와 순무사의 목을 베자!”

  북진군 선봉장 이제초가 말했다.

  “남군과 북군 각각 스무 명을 데리고 기습하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

  남진군 선봉장 홍총각이 맞받아쳤다.

  “그런데 대원수나 부원수가 아시면 괜찮을까?”

  “적장의 목을 따오면 뭐라 하시겠는가!”

  힘으로 맞서라 하면 막상막하이겠지만 아무래도 담력은 이제초가 더 있어 보였다. 지금 농민군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좋다! 그럼 오늘 밤 출발하여 내일 동이 트기 전에 안주성을 친다!”

  홍총각이 말했다.

  이리하여 아무도 모르게 밤을 틈 타 40명의 농민군이 안주성을 향해 말을 달렸다.

  안주성은 꼭대기에 불을 피운 한 곳을 빼고는 아직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한때 여진족 마적이었던 정민시와 그 부하들이 쇠갈고리를 성벽 위로 던져 넣었다.    

  “쨍-.”

  쇠갈고리가 성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성 안에서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가 났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두 선봉장과 농민군이 숨을 죽이며 정민시와 그 부하들이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만약 그들이 들키지 않고 성문을 열어준다면 기습은 성공할 지도 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성문이 삐꺽거리며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 적의 장수들만 찾아라.”

  홍총각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성벼겡 바짝 붙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성 안이 이상하리마치 너무 조용했다.

  “저 놈들을 쳐라!”

  아뿔싸!

  관군의 군관 박정과 그 병사들이 이미 정민시와 그 부하들을 사로잡고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기습을 당한 농민군이 맥도 못 추고 쓰러지고 있었다. 홍총각과 이제초도 적의 칼날에 베이면서도 관군과 맞붙어 싸웠다.

  바로 그때, 정민시가 벌떡 일어나더니 박정을 그대로 몸으로 밀어버렸다. 그 바람에 박정이 뒤로 나자빠지고 어느 틈엔가 이제초가 달려들어 박정의 목을 베어버렸다.

  “여기는 이대로 놔두고 어서 도망가십시오!”

  정민시가 이제초에게 소리쳤다.

  “모두 성 밖으로 나가라!”

  이제초가 소리쳤다.

  그 소리에 홍총각과 겨우 서너 명의 농민군이 성문으로 달려 나갔다.

  “뛰어라! 뛰지 않으면 죽는다!”

  홍총각과 이제초와 그 부하들은 있는 힘을 다해 어둠 속으로 뒤고 또 뛰었다.

  “잡아라!”

  관군들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이제는 뒤따라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민시는 죽었을까?

  이제초가 말했다. 그의 옷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얼굴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홍총각은 아무 말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양손에서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정민시, 그도 한때는 여진족 마적의 우두머리였다.

  “너희들도 같이 죽지 왜 돌아왔느냐!”

  대원수 홍경래는 두 선봉장에게 호통을 쳤다.

  “그래, 겨우 마흔 명으로 관군을 이기겠다고 기습을 해! 저 농민군 하나  하나는 그저 살아보겠다고 나선 가난한 백성들이다! 네 부모형제나 자식이라 생각하면 그리 무모한 짓을 할 수 있느냐!”

  두 젊은 선봉장은 혈기가 너무 앞섰다. 그 의분까지 때로는 참아내야 비로소 군사들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순무사와 절도사는 곧 박천을 칠 것입니다.”

  홍총각과 이제초가 물러가고 주위가 잠잠해지자 도총 이희저가 말을 꺼냈다.

  “평양감영과 서울에서 관군들이 계속 올라오기 전에 박천에서 우리도 승부를 내야 합니다. 순무영 군사들은 보통 관군과는 다른 정예군입니다.”

  “모사. 지도를 펴 보시오.”

  홍경래가 우군칙에게 말했다.

  “우리가 안주성을 치지 못한 것은 관군의 조총 때문인데, 이번에는 반드시 농민군들이 숨어서 화살을 쏠 수 있는 곳, 적의 유탄을 막을 수 있는 바위나 나무가 많은 곳을 골라야 하오!”

  워낙 남진군의 형세가 다급한지라 부원수 김사용도 북진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군칙, 이희저와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살폈다.

  “박천 송림리가 좋겠습니다. 거기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곳이라-.”

  모사 우군칙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김사용과 이희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천 송림리. 소나무가 유탄을 막아주겠지만, 우리 농민군의 화살도 막히지 않겠는가?”

  홍경래가 말했다.

  “그러면 창과 칼로 싸워야 된다는 말이지-.”

  “어차피 한판 승부입니다.”

  하고 우군칙이 나서자, 이희저가 말했다.

  “다만 관군의 정예군이 더 가세한다면. 게다가 민병마저-.”

  “민병이라니?”

  홍경래가 물었다.

  “관군 편을 드는 민병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희저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안주성 패배 이후로 우리를 도와주던 각 고을의 부호들과 상인들이 먼저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농민군에 들어오는 백성들도 나날이 줄어들고, 또, 여기 곡간이나 무기고도 얼마 안 있어 빌 텐데, 군사들 사기도 그렇고-.”

  “음-.”

  홍경래는 긴 한숨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우리를 돕고자 했던 사람들이 잡혀가거나 등을 돌리니,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겠지. 이번이 관군과 마지막 싸움이 될지 모른다면, 만약에 말일세, 우리가 진다면 다음은 어딘가?”

  “정주성입니다.”

  도총 이희저가 말했다.

  “남진군과 북진군이 뭉쳐 싸울 수 있는 곳은 정주성뿐입니다.”

  북직군 부원수 김사용과 님진군 모사 우군칙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 순간 대원수 홍경래가 고개를 들고 가슴을 좍 펴면서 말했다.

  “아니다! 우리는 가산과, 박천, 곽산과 정주, 선천, 태천, 철산, 용천을 이미 장악하지 않았는가! 이보게, 부원수. 북진군은 모사 김창시 혼자서 의주를 치려는가?”

  “예. 의주의 관군은 몇 백 명이 되지 않으니 천 명이나 되는 북진군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모사 김창시도 혼자서도 충분할 것입니다.”

  김사용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이번 박천 송림리에서 반드시 이겨 자네를 북진군으로 빨리 돌려보내야지. 자네와 함께 있으니 누가 원수인가 모르겠네.”

하고 홍경래가 말하자 네 사람이,

  “하하하-.”

하고 한꺼번에 웃었다.

  얼마 만에 웃어보는 겐지, 밖에 나가 있던 홍총각과 이제초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적을 박천 송림리로 끌어올 군사 몇 백 명과 특히, 발 빠른 자를 뽑아두게. 김이대와 윤언섭도, 아, 김익순을 감시하던 최이륜은 아직 평양 감영에 잡혀 있나?”

  “예. 아직-.”

  모사 우군칙이 나직이 말했다.

  “평양을 칠 때는 꼭 구출해내겠습니다.”

  “음1 그래야지! 도총과 모사, 그리고 두 선봉장은 잘 듣게! 우리가 관군을 물리치고 평양과 서울로 들어가, 이조판서 박종경의 목을 베고 썩어빠진 조정 대신들과 관리들을 잡아들이고 나면, 그때는, 그때는 말일세, 가난한 백성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양반도 평민과 같이 일하고, 평민도 관직에 나아가 관리가 될 수 있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요, 그래서 이 3천의 농민군을 일으켰노라고, 그렇게 군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게!”

  그렇게 말하고 홍경래는 어금니를 굳게 다물었다.

  ‘의주는 중요한 거점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북진군의 모사 김창시는 홀로 고민에 빠졌다. 이미 등을 돌린 의주 만상(청나라와 무역을 하던 상인)들과 인상 거상 임상옥은 자리를 잡지 못한 상인들뿐만 아니라 땅을 잃은 농민들을 일꾼으로 쓰면서 거의 그들이 관군 편으로 돌아 섰다는 것은, 민심이 그만큼 봉기군과 멀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임상옥은 바로 농민군이 제일 먼저 없애려던 조정 대신인 이조판서 박종경과 내통하면서 인삼 독점판매권을 얻어내더니 그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이 여러 상인과 농민을 모아 관군을 돕는 민병의 방수장이 되었다.

  이제 그들도 관군과 합치면 일천에 가까운 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일천의 북진군을 지휘하는 모사 김창시도 최후의 일전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안주성에서 대패하고, 박천 송림리에서 전투를 기다리는 부원수 김사용과 선봉장 이제초를 불러들일 수도 없는 처지였다. 대원수조차 의주의 관군은 많아야 5백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나날이 민병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그것은 토호들과 거상들이, 처음에는 불꽃처럼 일어나는 농민군이 천지를 바꿀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으나, 농민군이 영변과 안주 공략에 거듭 실패하자 홍경래를 믿지 못하겠다고 차차 민심을 교묘히 돌려놓은 것이기도 했다.

  불안한 민심은 돈과 땅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고 있었다.

  대원수 홍경래는 남진군이 박천 송림리에서 관군과의 일전을 치를 때 북진군도 의주를 치도록 명령했다. 이 날은 섣달 스무 아흐레(1811년 12월 29일)로 잡혔다. 그리고 의주나 박천, 두 곳에서 다 이기게 되면 다행이지만, 만약 두 곳에서 다 패배할 경우 최종 거점은 정주성으로 정했다.

  모사 김창시는 뭔가 점점 중요한 일전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북진군도 군량미와 무기, 의복들이 충분하지 않아서, 추위에 군사들이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다.    

  1811년 12월 29일.

  남진군 선봉장 홍총각은 김이대, 윤언섭 등 농민군 선봉대 백여 명을 데리고 울창한 소나무가 빽빽한 박천 송림리 쪽으로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아침 해가 그들이 타고 있는 말 머리 옆을 비추고 있었다. 그 뒤에는 2천 명의 관군이 병마절도사 이해우의 지휘하에 농민군을 쫓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달려라! 달려!”

  홍총각이 눈앞에 보이는 송림지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제일 뒤에는 김이대와 윤언섭이 적을 놀리듯 따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선봉장이 보인다. 제일 후미가 들어오면 화살을 쏴라!”

  대원수 홍경래가 말했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들 때문에 화살이 필요 없을 것 같았지만, 나무 위에서 미리 적을 기다리다 쏠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적들이 혼비백산할 것으로 판단한 홍경래는 키가 큰 소나무 위로 궁사 백 명으로 제1진을 배치하고, 가장 많은 제2진은 단칼로 무장한 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밧줄로 연결해서 적들이 말을 달려갈 때, 밧줄을 들어올리거나 그물을 던지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제3진은 송림지대를 빙 둘러싸고 있다가 불을 놓아 적들을 불속에 휩싸이게 만드는 적전이었다. 군사들에게는 긴 창이나 쇠도리깨보다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송림에서 유리한 칼을 쓰도록 했다.

  안주성을 함락했다면 평양까지는 한나절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박천으로 물러나 있고, 여기서 또 지면 이젠 반나절 거리의 정주성으로 물러가야 하는 절박한 처지였다.

  평양절도사 이해우의 관군과 양서순무사 순무군은 2천 5백 명이 넘었고, 조총을 갖고 있었다. 유탄을 막기 위해 송림리로 적들을 몰았지만, 민병이나 평양감영의 관찰사 이만수가 관군이 합세한다면 박천도 위험했다.

  기병을 앞세운 관군들이 송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뒤에는 조총으로 무장한 관군들이 몸을 낮추며 소나무 사이사이로 퍼져 있었다.

  “아직, 기다려라-.”

  대원수 홍경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선봉장 홍총각과 이제초의 손에는 흰 신호 깃발이 들려 있었다.

   “지금이다. 쏴라-.”

  홍경래가 역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두 선봉장의 흰색 신호 깃발이 올라가자, 그걸 기다리고 있던 궁사들이 송림 양쪽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휙-휙-휙-.”

  화살이 소리를 내며 관군들에게 날아갔다. 관군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제2진이 밧줄로 기병의 말을 쓰러뜨리고, 그물을 던지며,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천여 명의 농민군이 소나무 숲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적이다. 총을 쏴라!”

라는 소리와 함께,

  “탕, 탕-.”

하는 소리가 났지만 쓰러지는 농민군은 거의 없었다.

  칼로 무장한 농민군에 앞에 조총과 긴 창을 든 관군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적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우군칙이 소리쳤다.

  “앞으로 돌진하라!”

  부원수 김사용이 소리쳤다.

  그러나 홍경래는 뭔가 좀 꺼림칙했다. 오히려 농민군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제3진으로 하여금 불을 놓도록 하려 했으나, 김사용의 말에 농민군은 벌써 도망치는 관군을 따라붙고 있었다. 제3진이 불을 지를 순간을 놓친 것이었다. 이제 궁사들이 쏘는 화살도 소나무에 박힐 뿐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제 도망치는 관군을 끝까지 추격하면서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관군들이 송림을 벗어나고 추격하던 농민군도 소나무 숲을 다 빠져나가자 얕은 풀숲이 나타났다.

  바로 그때였다.

  풀숲에서 적장으로 보이는 자가 일어서더니 번쩍거리는 칼을 하늘로 몇 바퀴 빙글빙글 돌리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갑자기,

  “지금이다! 모든 순무군들은 사격하라!”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에 풀에 엎드려 있던 관군들이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농민군들이 퍽퍽 쓰러지고 있었다.

  “우 하하하-! 그런 걸 군사라고, 하하하!”

  승리에 도취된 순무사 이요헌이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해우와 평안감사 이만수 앞에서 소리쳤다. 이만수도 5백의 관군을 이끌고 박천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 관찰사(평안감사)께서 또 5백의 관군을 더 데리고 왔으니, 정주성만 치면 의주까지 한걸음에 내달릴 수 있겠소. 그려, 하하하!”

하고 말하자, 절도사 이해우가,

  “의주도 관군에 상인들과 토호들이 조직한 민병에 가담한 농민을 합치면 1천에 가깝다고 합니다.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북쪽을 맡은 반란군은 더 형편없다고 합니다.”

하고 덧붙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평안감사 이만수가,

  “듣자하니 이조판서께서 직접 의주 인삼 거상 임상옥을 민병 방수장으로 삼아 관군에게 군량미와 무기를 지원하게 한다하니, 의주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듯 같습니다.”

  “하하하-. 이거 호사다마일까 걱정이요, 하하하!”

하고 관군을 총 지휘한 순무사 이요헌이 껄껄껄 웃더니,

  “그런데 정주성은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을 궤멸시키고 정주방어사를 둔 난공불락의 요새라서-.”

하고 말했다. 

  절도사 이해우와 관찰사 이만수가 이내 잠잠해졌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 자자, 오늘은 막걸리나 마음껏 들이킵시다, 하하하!”

  순무사 이요헌은 철두철미하면서도 호탕한 데가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네 놈이 선천과 용천 일대의 농민들을 모아올 수 있다고?”

  북진군 모사 김창시가 그동안 가두어두었던 선천부사 김익순에게 말했다.

  “곧 의주를 친다. 그런데도 가능하단 말이냐?”

  김창시로서는 한 사람의 농민군이라도 더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저녁까지 무기와 사람 수백은 모아옵죠.”

  김창시는 김익순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저렇게 큰 소리를 치는 걸 보니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김익순은 처음 농민군이 일어났을 때와는 달리, 북진군 부원수 김사용과 선봉장 이제초가 떠나고부터 뭔가 농민군에게 일어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 같은 재주에는 귀신같은 데가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자들이었다.

  “좋다, 너와 농민군 열 명을 딸려 보내겠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너희들은 녀석이 딴 짓을 하면 즉시 목을 베고 돌아오너라!”

  그렇게 해서 보냈던 김익순이 아니나 다를까, 뜻밖에도 백여 명의 농민군을 모아 다시 김창시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안에는 김익순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놀랍게도 대원수 홍경래를 찔렀던 자객 조문형이 들어 있었다.

  1811년 12월 29일 저녁.

  그때까지 김창시는 남진군이 이미 박천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시 대패한 남진군은 정주성으로 철수하기 바빴고, 정주성에 겨우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오늘 밤 의주를 친다!”

  북진군 모사 김창시는 홍경래의 지시대로 김익순과 함께 투항했던 관군들을 앞세웠다. 칠흑 같은 밤, 살을 에는 겨울바람에 횃불만 몸서리를 치듯 이리저리 흔들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평양 감영에서 온 지원군들이오. 어서 문을 여시오!”

  군관으로 위장한 관군 하나가 의주성문 앞에서 외쳤다. 그 뒤로 약 천 보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는 천여 명의 농민군이 얼어붙은 땅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일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어떻게 된 일인지, 조총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관군을 위장한 작전은 들통이 난 것이었다.

  “돌진하라!”

  수십 마리의 말은 이미 부원수 김사용과 선봉장 이제초가 남진군을 지원하러 갈 때 끌고 갔기 때문에 농민군들은 의주성 앞까지 함성을 지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와아!”

  그러나 의주성곽에서 불꽃을 그리며 날아오는 유탄은 한꺼번에 수십 명씩 농민군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아!”

  “윽!”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농민군의 비명 소리가 밤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의주도 여기서 물러나고 마는가.’

  남진군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전략 거점인 의주성만은 꼭 점령하려 했던 북진군 모사 김창시는,

  “퇴각하라!”

는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영변 공략의 실패, 대원수 홍경래의 부상, 안주성, 박천 송림리, 의주의 연이은 패배는 농민군에게 이제 최후의 거점 정주성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한겨울의 거센 북풍이 퇴각하는 농민군의 뒤를 때리고 있었다. 용천, 철산, 선천도 위험했다. 북진군을 홀로 지휘하는 모사 김창시는 일단 자신의 집이 있었던 곽산으로 농민군을 이끌었다. 다치고 지친 군사들은 철수하는 동안에도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북진군은 사백여 명의 농민군을 잃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육백여 명 속에는 김익순과 조문형이 눈을 또렷이 뜨고 있었다.

  섣달 그믐날 밤, 동상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북진군은 곽산에 들어섰다.

  “이제 곽산과 정주뿐인가-.”

  농민군 대원수 홍경래는 혼자서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는 부원수 김사용과 도총 이희저, 북진군 선봉장 이제초, 남진군 선봉장 홍총각이 말없이 서 있었다.

  “북진군을 정주성으로 불러들일까요?”

  북진군 부원수 김사용이 말했다.

  “아니야. 곽산이라도 지켜야지-.”

  “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도총 이희저가 말했다.

  “이미 관군에게 점령된 곳이 많습니다.”

  북진군 성봉장 이제초는 울분에 못 이겨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모사는 곽산 출신이라 지리에는 능통하니 거기에서 다시 한번 전투를 벌일 게야. 우리가 도울 수 있을까?”

  농민군의 연전연패에 각 고을의 부호들과 상인들이 먼저 등을 돌리고, 오히려 관군을 지원하는 민병을 조직하기도 했다. 만상(청나라와 무역을 하던 의주 근처 상인)과 인삼 상인, 특히 홍경래가 타도하려 했던 박종경과 손을 잡은 의주 인삼 거상 임상옥이 의주 관군을 지원하면서 군량미와 군수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민군이 패배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살아갈 땅도, 신분도 얻지 못한다.”

  홍경래가 말을 이었다.

  “민심이 따르지 않으니 천운도 따라주질 않는군.”

  “이 정주성을 막아낸다면 민심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토호나 상인들과는 달리 정주 사람들이 군사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남진군 모사 우군칙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감격한 듯 한동안 홍경래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 이 정주를 지켜야지. 내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만 해놓으니-. 그래, 도총, 식량과 물자는 얼마나 있는가?”

  “두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군사와 식솔은 얼마나 되는가?”

  “군사 천5백에 그 식솔들이 천여 명이온데, 정주와 박천, 가산 농민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습니다.”

  도총 이희저가 말했다. 그러나 도망 간 군사들에 대해서는 이미 대원수도 짐작하고 있을 것 같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정주.

  정주는 고려 1019년(현정10년)에 거란군이 쳐들어 왔을 때, 용장 강감찬 장군이 그들을 궤멸시키고 정주방어사를 만들었고, 1231년(고종18년)에는 고려군이 원나라 몽고군을 격퇴시켜 정주대도호부가 된 곳이었다.

  이제 그 곳이 농민군이 지켜야할 마지막 거점이었다.

  그때 정주 농민 하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한 솥 가득 들고 들어왔다.

  “아니 이게 웬 떡국이오?”

  남진군 선봉장 홍총각이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설에 떡국도 아니 먹슴둥?”

  거칠기 짝이 없는 평안도 사투리로 그 자가 말했다.

  “어이구?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정월 초하루네.”

  홍총각의 입과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주 백성들이 농민군을 도와?”

  순무사 이요헌은 뜻밖이라는 듯 갸우뚱거렸다.

  “음. 관찰사는 역적을 돕거나 그 인척인 자, 장정을 모은 자, 식량이나 무기를 제공하거나 나른 자, 혼란을 틈 타 도둑질을 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하시오! 특히 군사를 일으켜 반역한 우두머리 홍경래의 처자식은 물론 친인척까지 모두 잡아야 하오!”

  평안도 용강에는 홍경래의 처 최소사와 두 아들, 홍경래의 형제들이 있었다. 평안감사 이만수 다음에 평안 관찰사로 온 정만석은 나중에 홍경래의 반란에 대한 모든 문초를 기록해 순조에게 올리게 된다.

  “병마절도사는 그 이유를 무어라 생각하오?”

  “글쎄요, 좀 안 됐다 싶어 측은하게 여기는지, 아니면, 요즘 들어,”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말했다.

  “농민군이 이기게 되면 땅도 나누어 준다, 양반, 상놈도 없앤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백성들이 솔깃해진 게지요.”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백성에게 땅을 준다는데 누가 마다겠는가. 땅이 없는 농민들이 유랑민으로 거지처럼 떠돌고 있는 게 한 두 해가 아니지. 조정 대신들과 관리들은 권세와 부에 눈이 멀어 가난한 백성들이 먹을 끼니가 없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지.”

  순무사 이요헌이 좀 상기되어 잠시 생각에 잠기어 있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적들은 성 안에 몇 달을 견딜 수 있다고 보나? 정주성 안에 우물이 있는가?”

  “성 안에 우물은 하나 있습니다만, 결국은 군량미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렸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가산 다복동에 있던 군량미과 물자를 거의 정주성으로 옮긴 듯 합니다.”

  이해우가 대답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정주성은 오래 가면 갈수록 반란군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식량이 떨어지면 더는 버틸 수가 없을 테니, 정주성은 그때까지 포위해두고, 의주에서 내려온 관군과 곽산을 먼저 치면 어떻겠습니까?”

  “음-. 곽산을 먼저 친다? 그 생각을 왜 미처 못 했을까?”

  이요헌이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의주에서 쫓겨 내려온 반란군의 등 뒤를 친다. 음.”

  “의주에서는 만상(청나라와 거래를 하던 상인)과 인삼 상인들이 방수장 임상옥의 민병에 참가해 수백에 불과한 관군을 도와 반란군을 물리쳤다 합니다요.”

  “방수장이라면?”

  그때, 서울을 자주 들락거리던 평안감사 이만수가,

  “예. 이조판서 박종경 어른이 임상옥에게 인삼 독점권을 주면서 방수장이 되어 민병을 만들도록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하고 말했다.

  “음-.”

  이요헌은 평소 이조판서 박종경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조정의 모든 권력은 그와 안동 김씨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양서순무사 이요헌은 나중에 난을 평정했다 하여, 조정 대신들이 공신으로 이름을 올려 원훈(元勳)의 호가 내려졌으나 받지 않은 인물이다.

  1812년 1월 10일.

  북진군은 평안도 곽산의 사송평 벌판에서 관군에게 쫓기고 있었다.

  “정주로 간다. 정주성으로!”

  모사 김창시는 군사들에게 외쳤다.

  퍼붓는 눈발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뒤에서 관군들이 쏘는 조총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탕-. 탕-.”

  “남진군은 왜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는 것이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농민군 몇몇이 모사 김창시에게 말했다. 

  검산성으로 도망갔다가 농민군에 잡혀 관군과 함께 투항한 선천부사 김익순과 홍경래를 찔렀던 자객 조문형은 옆에서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혹 남진군도 포위된 게 아니오?”

  “네, 이 놈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느냐!”

  김창시가 호통을 쳤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몇 백의 농민군이 죽게 생겼는데도 대원수는 보이지도 않으니-.”

  바로 그때였다.

  앞에 섰던 농민군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매복이다!”

라는 소리와 동시에 사송평의 풀숲에서 수천의 관군들이 일어났다.

  “쏴라!”

  관군의 조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농민군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관군이다! 화살을 쏴라! 돌격하라!”

  말을 탄 김창시가 소리쳤다.

  그러나 겁을 집어먹은 농민군들은 흩날리는 눈보라처럼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아, 이게 끝이란 말인가!’

  북진군 모사 김창시는 땅바닥에 떨어진 농민군의 쇠도리깨를 집어 들고는,

  “관군에게 잡히면 죽는다! 내 뒤를 따라라!”

하고 말하며 말머리를 옆으로 돌려 퇴로를 트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말을 탄  자와 아니 탄 백여 명의 농민군이 죽기 살기로 따라 붙었다.

  “야-!”

  모사 김창시가 쇠도리깨를 휘두르며 폭풍처럼 말을 내달리자, 이번에는 관군들이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놈들! 이 백성을 잡아먹는 악귀들아!”

  김창시는 앞으로 달리며 뒤를 보고, 또 보며,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김창시가 달리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백 명도 채 안 되는 농민군들이 저 만치 떨어져서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관군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여기서 각자 흩어져 너희들의 식솔이 있는 정주성으로 가거라. 아니면-.”

  김창시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니면, 각자 흩어져 아무 곳으로 가도 좋다. 아니, 흩어져야 살 수 있다! 관군의 토벌대가 언제 쫓아올지 모른다. 천운이 따르면 훗날을 다시 기약할 수 있을 게다. 어디 가 있더라도, 언제 토벌대가 닥칠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라, 알았나!”

  농민군 북진군 모사 김창시의 말을 들으며 농민군 가운데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자가 여럿 있었다. 

  김창시가 모질게 먼저 말을 돌렸다.

  “이랴!"

  그렇게 달려가는 김창시의 머리 위로는 다시 한바탕 눈발이 쏟아질 듯 하늘이 시커먼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관군의 토벌대가 흩어져 농민군들을 찾고 있었다.

  토벌대의 장수는 함종부사 윤욱렬이었다.

  토벌대는 곽산 사송평에서 도망친 농민군들은 대게 곽산과 선천 쪽에서 잡아들였으나 북진군 모사 김창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잡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잡아들인 자 가운데는 선천부사 김익순이 아직도 죽지 않고 다른 농민군과 함께 곽산 관아에 갇혀 있었다.

  ‘그 놈이 곽산에 산 댔지. 그놈은 분명 살아남아 곽산에 가서 그냥 아무 일 없었네 하고, 그냥 농민으로 살고 있을 게야.’

  간신 김익순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간신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미약하거나 미천한 자들이라 그것을 감추거나 만회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으로 꾸며대어 권력을 움켜쥐려 하거나 힘없는 백성을 짓밟고 빼앗은 재산으로 부를 쌓으려는 자들이었다.        

  김익순은 감옥을 지키는 포졸 하나를 구슬려, 자신이 선천부사인데 재산은 아직 선천에 많이 남아 있으니 이 일 하나만 들어주면 2백 냥을 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곽산에 사는 농민 조문형이라는 자를 찾아, 자신이 쓴 쪽지를 건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2백 냥이라면 당시 포졸은 만져보지도 못할 큰 돈이었다.

  며칠 뒤, 농민 조문형은 웬 낯선 자(이창)에게 쪽지를 건네받았다.

  자네가 이 글을 읽을 때면 난 이미 한성 의금부로 압송되어 있을 걸세.

  난 처음부터 자네를 곽산에서 가난한 농부로 살 사람으로 보지를 않았네.    그래서 이 부탁은 꼭 들어줄 걸로 믿네. 

  농민군 모사 김창시를 찾아 그의 목을 베고, 곽산 사송평 벌판에서 선천부사 김익순이 농민군의 모사 김창시의 목을 베었노라고 조정에 아뢰게.

  그렇게만 해준다면 선천으로 돌아가는 즉시 자네에게 천 냥을 줄 것을 약속하네. 만약 그 약속이 거짓이라면 그때 이 쪽지를 관군에 갖다 바치면 될 게 아니가. 내 어찌 매 목숨이 달린 큰 부탁을 하고도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선천부사 김익순.

  쪽지를 받아든 조문형은 처음에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대역 중죄인 김익순의 말을 따르면, 농민군 모사 김창시를 죽이고 천 냥이라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먼저 병마절도사에게 이 일을 알리어 비장 자리라도 얻을 겐가.

  ‘김창시의 목을 베고 조정에 갖다 바치면 천 냥이 생긴다? 천 냥이라, 천 냥-.’

  조문형은 잘만하면 돈도 벌고 관직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지붕 고치고 새알 줍고는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1812년 1월 17일.

  1811년 12월 18일 농민 봉기가 일어난 진 한 달 만에 농민군의 거점은 이제 정주성 하나만 남아 있었다.

  “북진군은 어떻게 됐나?”

  홍경래는 성 위에 서서 관군들이 이미 포위한 성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농민군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모사 김창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북진군 부원수 김사용이 말했다.

  관군은 성에서 천 보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언제 저들이 쳐들어  올지, 아니면 한사코 저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겐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홍경래가 말했다.

  “모사가 살아 있다면 운산 광산이나 추도(염전)에서 다시 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이 정주 농민들을 보게. 자기들은 굶으면서 우리 군사들에게 먹을 것을 들고 오지 않나. 2백여 명이나 새로 농민군에 들어오기도 하고,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어.”

  “관군의 약탈이 백성들을 돌려놓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농민군은 한 건의 약탈도 없었습니다."

  “농민군이 농민을 어떻게 약탈한다는 말인가. 그저 굶지 않고, 탐관오리 밑에서 노비처럼 살 바에야 사람답게 살겠다고 모여든 사람들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대원수 홍경래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관군이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농민들은 설이라고 떡국을 끓여 오지 않았나. 사람이 사람을 위해 착하게 살아야지.”

  “그 착한 백성들을 부려먹는 놈들이 수두룩하니-.”

  김사용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제는 백성들도 농사를 지으며 글을 읽어야지. 농사야 하늘과 자연을 닮은 일이지만 끝까지 착하게 살아남으려면, 간사한 무리들과 싸워 이길 만큼 강해져야지.”

  홍경래가 말했다.

  “병자호란(1636년) 이래 아직 청나라에 조공을 하는 속국이나 다름이 없는데도, 조정은 당파 싸움으로 갈라져 있고, 대신이나 관리들은 백성들을 깨우치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나라를 굳건히 할 생각은 않고 백성들은 굶주리는데도 제 잇속만 챙기니-.”

  홍경래의 말을 들으며 김사용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까 홍경래가 말한 그 ‘새로운 무기’라는 말이 생각나,

  “요즘 바닷가에 어마어마한 대포를 달고, 머리는 노란 사람들이 탄 이양선이 자주 나타난다고 합니다.”

  “나도 염전 상인들에게 들었네. 만상들 이야기로는 청이나 왜에 그런 자들이 자주 배를 타고 온다는구먼. 그런데 그들의 배나, 무기가 대단한 모양이야-.”

  그러다 갑자기 홍경래가,

  “아. 그렇지. 우리도 천자총통을 여기 성 위에 달도록 하게. 아직 이십 여문을 쓸만하니. 그리고 적들이 성벽을 기어오를 때 던질 돌을 여기 쌓아두게. 부녀자들에게는 작은 돌이라도 주어오게 하게.”

하고 말했다.

  아직 정주성은 태풍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놈은 분명히 곽산 제 집에 들를 것이다.’

  조문형은 그렇게 생각하고 어디선가 말 한 마리를 구해, 벌써 며칠 전부터

김창시의 집 뒤 소나무 숲에 숨어 있었다. 거기 키 큰 나무 위에 올라가면 집 안이 다 보였다.

  저녁부터 싸락눈이 내려 밤이 되어도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삐익-.

  ‘바람 소린가?’

  척, 척, 척-.

  조문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며시 기어 나무 가지 위로 조금 올라갔다.

  아니, 그런데 김창시의 집 마당 안에 누군가 걸어서 집 뒤 장독대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조문형은 얼른 몸을 낮추었다.

  그 자는 나무위에서 조문형이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큰 장독 하나를 들어내더니 땅 밑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보자기 같은 것을 가슴팍에 움켜 넣고는 서둘러 대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분명 김창시일 게야.’

  조문형은 나무에서 내려와 말을 나무에 묶어두고는 살며시 걸어 나왔다.

  그 자가 대문 앞에서 후다닥 뛰며 옆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말소리가,

  “휘잉-.”

하고 나는 게 아닌가.

  ‘저 자도 말이 있다.’

라는 생각이 들자 이거 잘못하다가는 놓치겠다 싶어, 조문형이 칼을 빼고 그대로 냅다 달려 막 말을 타려는 자의 등을 내리쳤다.

  “악-!”

  그 자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이랴!”

하면서 말을 타고 달렸다.

  “이런-.”

  조문형도 뛰어가 나무에 묶어두었던 말을 타고 그 자의 뒤를 따라 달렸다.

  달빛에 비친 눈 위에 그 자가 흘린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조문형은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달렸다.

  그런데 달려도, 달려도 그 자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군데군데 떨어진 피를 봐서는 아직 놓치지는 않았는데, 어느새 날이 새고 있었다.

  날이 완전히 밝고 아침이 되자, 조문형은 철산에 들어서 있었다.

  철산에도 관군이 이미 좍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자가 아직 김창시인지도 잘 모르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토벌대에게 들통이 났다가는 여태껏 고생한 것이 죽도 밥도 안 되는 생각이 들자 조문형은 말을 산 속 깊은 메어두었다.

  ‘녀석도 피를 흘린 채 돌아다니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혹 이 산 속에?’

  조문형은 가늘게 찢어진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는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계곡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서 조문형은 한 손으로 물을 떠서 잠시 목을 축였다.

  그런데 계곡 물에 붉은 피가 조금씩 섞여 흐르는 게 아닌가! 

   조문형은 칼을 빼고 뒤로 물러나 숲 속으로 들어가 위쪽으로 살살 걷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풀 무더기에 누워 있는 자를 발견했다. 그 자는 약간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었다.

  “네 이 놈!”

  조문형을 칼을 그 자의 목에 갖다대었다.

  그 자가 깜짝 놀라,

  “억-.”

하는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려 했다.

  분명 조문형이 보아온 농민군 모사 김창시였다.

  “날 알아보시겠소?”

  조문형이 피시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김창시는 피를 너무 흘려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당신 목 값이 천 냥이오. 어차피 토벌대에 잡혀 죽을 거 나한테 죽어줘야겠소.”

  조문형이 들고 있던 칼로 북진군 모사 김창시의 목을 내리쳤다.

  피가 대번에 하늘로 솟구쳤다. 

  언젠가 농민군 대원수 홍경래가 말하지 않았던가!

  백성을 위한 뜻을 가진 자는 자신의 시체가 도랑에 나뒹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뭐라, 의금부에 반란군 모사의 목을 가져왔다고?”

  이조판서 박종경은 그 즉시 의금부로 달려갔다.

  “그래, 이 반란군 모사의 목을 벤 자가 누구냐?”

  농민 조문형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예. 선천부사 김익순 어른입니다요. 저는 평안감영에 쌀을 나르던 자 이온데, 얼마 전에 죽은 박정 군관의 명으로 농민군에 들어가, 홍경래를 찌르고 달아나 한 동안 숨어 지내다, 다시 몰래 농민군에 들어갔습니다.”

  거기까지 말을 하고 눈치를 살피던 조문형이 갑자기 거두절미하고,

  “하여간에 제가 분명 곽산 사송평에서 선천부사 김익순 어른이 김창시의 목을 베는 것을 보았습니다요.”   

  “그럼 네 놈은 첩자라는 것이냐?”

  이조판서 박종경이 다그쳐 물었다.

  “예, 맞습니다요. 병마절도사 어른도 저를 아십니다요.”

  “그래? 그럼 네게 분명 김익순이 목을 베는 걸 봤다는 말이지?”

  박종경은 목곽 속에 든 것이 농민군 모사의 목이 맞는지 잡아들인 농민군들에게 확인하라고 의금부에 일렀다.

  그 뒤 김익순은 의금부에서 북진군 모사 김창시의 목으로 판명되어 농민군에게 항복한 죄를 사면 받고 선천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난 진짜 큰일을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일단 선천으로 돌아오자 김익순은 조문형에게,

  “야 이 놈아, 내가 너 같은 놈에게 천 냥이냐 줄 돈이 어디 있느냐. 이거나 받아라.”

하고는 단 오십 냥을 던져주었다.

  이미 홍경래를 찌르고 김창시의 목을 벤 조문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달포 뒤에 의금부로 찾아가서 농민군 모사의 목을 벤 것은 바로 자신이고, 김익순은 홍경래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라, 부하들과 같이 투항해 오히려 관군과 싸우기도 했다는 것을 알리었다.

  결국 김익순은 다시 의금부로 끌려와 모반대역죄로 참수 당했다. 그리고 그의 집안은 폐족이 되었는데, 당시 여섯 살이었던 그의 손자 김병연(김립)과 그의 형 병하는 노비였던 김성수가 도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도망쳤다. 그 뒤 김병연은, 죄는 사면 받았으나 폐족 집안이라 온갖 차별을 받으며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덧없는 부와 권력을 풍자하는 시를 지으며 산야를 떠돌게 되니, 그가 곧 방랑 저항시인 김삿갓이었다. 

  순무사 이요헌은 병마절도사 이해우와 평안감사 이만수을 불러놓고 나라의 관리가 반란군의 편을 들다 선천부사 김익순이 처형된 것과, 영변 향임과 아전 관리들이 농민군을 도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반란군에 항복하거나 농민군을 보고도 잡지 않는 자는 그 즉시 목을 베도 좋다고 하였다.

  “그 조문형이라는 자는 지금 어디에 있소?”

  이요헌이 병마절도사에게 물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순문사의 말에 깜짝 놀라며,

“저, 사실은 며칠 전에 저를 다시 찾아왔습니다만.”

하고 말하며 순무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자 이요헌은,

  “ 그 자의 목도 베시오!”

하고 말했다.

  “예? 의금부에서도 살려준 자를-.”

  “이 보시오. 병마절도사! 그 자는 돈에 눈이 멀어 의금부와 조정을 속이고, 관군의 이름을 더럽힌 자요. 당장에 목을 베시오! 그 놈은 언제라도 우리를 배신하고 제 뱃속만 채울 수 있다면 청이나 왜의 첩자라도 마다않을 위험한 놈이오!”

  순무사의 결단은 단호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그날로 조문형의 목을 베고 말았다.

  “2천의 관군을 3진으로 나누어 정주성을 칠 것이오.”

  순무사 이요헌은 병마절도사 이해우에게 제 2진을, 평안감사 이만수는 제 3진을 맡도록 하고 자신은 제 1진을 맡았다.

  “병마절도사, 화약은 충분하오?”

  “예. 대포와 조총에 쓸 화약은 충분합니다요.”

  “그거로는 되지 않소. 평안감영에는 화약이 얼마나 있소?”

  평양감사 이만수는 간이 덜컹했다.

  “화약은, 한성부에나 가야 있는뎁쇼.”

  “여보시오! 관찰사! 지금 적들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오!”

  “이 보시오, 관찰사. 당장에 화약을 한성부에 가 화약을 구해 오시오!”

  사실  평안감사 이만수는 웬 화약이 그리 많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조총에 쓸 화약은 충분한데도 왜 순무사가 더 많은 화약이 필요하다고 하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청과 왜에서 새로 만들었다는 날아가 화약이 터지는 대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홍이포와 자모포는 쇳덩이로 된 탄환만 날아가지 그 안에 화약을 집어넣어 터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투석기나 홍이포와 자모포로는 정주성을 무너뜨릴 수 없소.”

  순무사 이요헌이 말했다.

  “성벽을 무너뜨릴 화약이 필요하단 말이오.”

  “아-.”

  그때서야 병마절도사와 평안감사는 알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주성 때와는 정반대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오!”

  이요헌이 다시 말했다.

  “그때는 우리가 안주성에서 적들을 물리쳤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정주성을 공격해야 하오! 성을 칠 때는 적의 수보다 3배나 많은 군사들이 필요한 법, 그러나 지금은 관군 2천에, 적도 역시 2천이니 성벽을 무너뜨리고 순식간에 돌진하는 방법뿐이오.”

  “하지만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평안감사 이만수가 말했다.

  “백성들이 하루가 다르게 반란군을 돕고 있단 말이오. 싸움에 지기만 한 반란군을 동정한다면 또 모를까, 이건 아예 농민군으로 지원하는 백성들이 수백 명이라 하니, 게다가 백성들 사이에 정감록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고, 하루라도 빨리 이 역적의 무리들을 잡아들이지 않으면 조선 팔도에서 민란이 일어날 판이라 말이오.”

  순무사 이요헌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바로 간사한 조정 대신들이니 나라꼴이 어떻게 되려고. 반란군이 이조판서 박종경을 처단하겠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나라를 말아먹을 놈들!” 

  누가 나라를 말아먹을 놈이라는지, 이요헌의 말에 병마절도사와 평안감사는 몸이 바들바들 떨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용강에는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민군 인척은 다 잡아들인다는데.”

  선봉장 홍총각이 홍경래에게 말했다.

  “괜찮다. 그런 걱정 말고 네 군사들이나 더 살펴라.”

  용강에는 홍경래의 처 최소사와 두 아들이 있었다. 벌써 열두 살과 열네 살이었다. 특히, 둘째는 홍경래가 박천의 청룡사로 떠날 때 막 태어난 간난 아기였다.

  “김이대를 보내게.”

  모사 우군칙이 홍총각의 말을 듣고 김이대를 용강으로 보내 게 좋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평안도 보다는 서울이 안전할 것 같아, 그리고 한때 도움을 받았던 서울의 유력자 김재찬 앞으로 보내는 글을 써 김이대에게 주었다.

  조용해질 때까지 보내는 사람들을 잘 부탁합니다.

  모든 것이 끝나면 푸른 용이 되어 만납시다.

  그렇게만 써두면 김재찬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무슨 도술 쓰듯 우군칙이 말했지만, 홍총각과 김이대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절대 이 일은 대원수가 모르게 해야 한다.”

  홍총각이 김이대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성을 빠져나갈 때는 관군의 옷을 입도록 하게. 그리고 다시 정주성으로 돌아올 때는 ‘김이대 입문’이라고 쓴 화살을 날리고, 혹 일이 잘못 되었다 싶으면., ‘김이대 원문’이라는 화살을 날리게.”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재찬이란 사람은 믿을 수 있겠지요?”

  김이대가 나가고 난 다음, 홍총각이 우군칙에게 말했다.

  “그럼, 자네와 내가 서울에서 포도청 군졸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도 우리를 숨겨 주었고, 무슨 배포로 그랬는지 평안감영에서 2천 냥을 차용하도록 해주지 않았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간이 콩알만 해지지만, 그 평안감사가 바로 지금의 관찰사 이만수라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공납금 일은 몇 해가 흘러가자 그만 꿩 꾸어먹은 일이 되고 말았네. 공납금을 못 채웠다간 제 목이 잘릴까봐 그랬는지 그거까지야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싶었지. 나도 물론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지만 말이야.”

  홍총각은 분명 전 풍수사인 우군칙이 도술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평안감영에 찾아가 2천 냥을 받아올 수 있었다는 말인가. 

  “화약이 터지면 공격을 개시한다.”

  순무사 이요헌은 3진으로 나누어진 군졸들에게 말했다.

  “잘 해낼까요?”

  절도사 이해우가 말했다.

  자시가 가까워진 시각에 이요헌은 순무중군 박기풍과 서른 명의 관군을 성문 앞쪽 북문을 뺀 나머지 세 곳, 그러니까 정주성의 동문과 서문, 그리고 뒤쪽 남문에 각각 열 명씩 보내 돌로 쌓은 성 아래 화약을 놓고 오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화약만 폭발한다면야 그까짓 돌 성쯤이야 뚫리겠지요.”

  관찰사 이만수가 순무사의 기분을 맞추며 말했다.

  쾅!

  쾅!

  두 곳에서 귀를 찢는 폭발 소리과 함게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돌격하라!”

  순무사 이요헌과 관군 2천여 명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와-!”

  “와-!”

  불꽃이 일고 있는 곳은 정주성의 서문과 남문 쪽이었다. 아무래도 나머지 한 곳은 화약이 터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3진으로 나누어 조총을 쏘며 돌진했지만 성벽 무너진 곳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뿔싸!

  그러는 사이에 성곽 위에서 수많은 화살과 돌이 쏟아지듯 날아들고 있었다.

  “윽-!”

  “악!”

  관군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순무사 이요헌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순무사 어른. 성벽이 뚫리지 않았습니다!”

  병마절도사 이해우가 외쳤다.

  “실패다. 후퇴하라. 관군은 후퇴하라!”

  이요헌이 쓰러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퇴각을 명했다.

  정신없이 이리로 저리로 도망치는 관군들에게 이번에는 천자총통의 대장군전이 날아들었다. 얼키설키 섞인 2천도 넘는 관군들이 쇠막대기와 같은 대장군전에 맞아 퍽퍽 소리를 내며 꺼꾸러지고 있었다.

  등 뒤 정주성에서 기세가 오른 농민군의 귀를 울리는 함성을 들으며 순무사 이요헌은 쓰라린 패배를 맛보고 있었다.

  날이 밝았다.

  정주성에서는 연기 하나 피어오르지 않았지만, 성 바로 앞 들판에는 수백 도 넘는 관군 시체가 나뒹굴어져 있었다.

  “왜 한 곳의 화약은 터지지 않았나?”

  순무사 이효헌은 순무중군 박기풍에게 물었다.

  “화약이 비에 젖은 듯 눅진하였사옵니다.”

  얼굴에 상처를 입은 박기풍이 말했다. 그는 반란이 일어나자, 순무중군으로 파견되어 주로 청천강 북쪽의 태천과 운산에서 반란군을 물리치다가, 이번에 이요헌과 합세한 무관이었다.

  “그래서 화약이 젖어 폭발이 잘 안 되었다? 병마절도사!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

  그건 분명 군관 박정이 한성에서 갖고 온 화약이었고, 비나 눈에 젖지 않도록 잘 보관하라고 절도사 이해우가 그렇게 타일렀건만, 그 박정은 이미 안주성에서 여진족 마적 정시에게 칼을 맞고 죽었는데 어찌하겠는가.

  “모든 게 제 탓입니다.”

  “순무중군. 이번엔 새로 가져온 화약으로 한 번 더 써봅시다.”

  다급해진 양서순무사 이요헌이 박기풍에게 말했다.

  “한성에서 새로 가지고 온 화약은 괜찮겠지?”

  “그야 물론입죠. 그러나 네 수레 밖에는 안 됩니다요.”

  이만수가 말했다.

  “두 수레면 충분하오. 비에 젖지만 않았다면.”

  순무중군 박기풍의 위엄에 이만수가 눌린 듯했다.

  “정주성은 고려 때 쌓은 성이지만, 고구려 성처럼 한 단씩 들여쌓기를 해서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도총 이희저가 말했다.

  “하하하-. 바위와 같은 돌을 한 단씩 안으로 들여쌓았단 말씀이죠. 그러니 무너질 리가 있나요. 하하하-.”

  선봉장 홍총각이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같은 선봉장인 이제초도 따라서 크게 웃었다.

  “관군은 곧 다시 온다. 관군이 정주성을 포위하지는 않았으니 백성들이 더 몰려올 게야. 조정이나 관군이나 그걸 두려워하는 게지. 관군들이 무자비하게 살인과 약탈을 일삼고, 농민군과 관계가 있는 자들은 모조리 잡아가두니 민심이 돌아서고 있어. 우리가 이 정주성 전투에서만 이긴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게야. 평양, 곽천, 선천, 태천, 의주 쪽으로 밤에 사람을 내보내게. 특히 송상(개성상인)들은 아직 우리에게 등을 돌린 게 아니니 기회를 엿볼 거야. 그들도 돈만 잡고 있진 않을 테니까. 조정과 뇌물을 주고받는 거상들 때문에 관직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격문도 더 뿌리고, 탐관오리들이 사는 집에는 불을 놓도록 하게. 관군들의 살육이 그치지 않으니, 민심이 우리에게 한번만 돌아선다면, 관군들도 사기가 떨어질 테고, 그러면, 백성들을 위한 세상이 올 텐데!”

  대원수 홍경래가 회한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홍경래의 말에 홍총각과 우군칙이 뜨끔했다. 대원수 홍경래는 승리를 믿고 있었다.

  “사상자는 없나?”

  홍경래가 모사 우군칙에게 물었다.

  “예. 다친 자 몇몇을 빼고는 없습니다.”

  우군칙이 대답했다.

  “부원수와 모사는 곧 화살과 돌을 다시 모아두게. 그리고 군사들은 낮에는 성 위를 뛰어다니도록 하고, 아이들을 시켜 북을 치도록 하게. 물을 끓여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환하게 지피게! 선봉장들은 솥을 성곽 위에 더 갖다놓고 우물물을 길어두게. 고구려 식으로 축조한 성이라면 끓는 물, 찬 물 가리지 않고 고구려 무기로 써야지.”

  “하하하.”

  홍경래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딘가 여유가 있었다. 그 바람에 모두가 한바탕 웃고 말았다.

  홍경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도총. 식량과 무기는 얼마나 남았나?”

하고 물었다.

  “앞으로 한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만.”

  “음-. 한 달이라. 한 달-. 그 안에는 이겨야 할 텐데-.”

  농민군이 정주성에 들어온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약간의 보리와 조, 피, 강냉이, 감자와 가축이 남아 있었지만 앞으로 한 달이 지나면 식량을 장담할 수 없었다. 무기도 마찬가지였다. 화살도 모자라고, 천자총통에 쓸 화약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우물이 마르지 않아 농민군과 식솔들이 마시고 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땔감으로 쓸 장작은 희나리가 많아 제발 덜 추워지기만 바랄 뿐이었다.

  “관군들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니 오늘 밤에도 모두 경계를 철저히 하시오!”

  “예!”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모두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로 돌아갔다.

  “1차 공격 때 화약을 터뜨린 지점에 다시 화약을 놓게!”

  순무사 이요헌이 순무중군 박기풍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성벽을 무너뜨려야 하네. 조정에서 난리야. 이 정주성만 함락시키면 다른 민란도 잦아들 텐데, 민심이 날이 갈수록 요동치고 있으니-.”

  “이번에 화약이 터지면 반드시 성이 무너질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박기풍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순무중군 박기풍과 화약을 만질 줄 아는 관군들이 달이 없는 그믐밤을 틈 타 다시 정주성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성곽 위에는 농민군들이 날이 추워 그런지 전에 없던 불을 지피고 있는 듯 훤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성벽 아래는 오히려 더 어두워 화약을 놓기에는 오히려 들킬 염려가 적었다.

  “빨리 화약을 갖다놓아라. 한 상자씩 두 겹으로 성에 바짝 붙여두고 상자 위로 심지를 박아라.”

    그래서 네 상자씩 성벽 양쪽에 이번에는 비에 젖지 않은 제대로 된 화약이 설치되었다.

  둥근 쇠판을 검은 천으로 싸서 감추었던 불씨를 꺼내 드디어 박기풍이 화약심지에 불을 붙였다.

  “모두 어서 저 바위 뒤로 물러나 엎드려라!”

  지지직-.

  관군이 뛰어 달아나자마자 화약심지가 불꽃을 내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성 위에서,

  “관군이다! 관군이다!”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바로 그 순간,

  콰, 쾅!

하며 화약이 성벽 양 옆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 번 보다 몇 배나 큰 불꽃이 깜깜한 밤하늘로 피어올랐다.

  “성공이다. 성공이야!”

  관군 진영에서 지켜보고 있던 순무사 이요헌이 소리쳤다.

  “전원 돌격 준비하라. 순무중군이 돌아오면 즉각 공격한다!”

  그때 말을 타고 순무중군과 화약을 놓았던 관군들이 헐레벌떡거리며 모두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찌 됐나. 성은 무너졌겠지?”

  “-.”

  “이보게, 순무중군!”

  “순무사 어른. 면목 없습니다. 성이, 성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그럼 동문 쪽은 어떻게 됐나?”

이요헌은 성 반대쪽에 화약을 놓았던 관군의 멱살을 잡으며 다그쳤다.

  “실팹니다.”

  “뭐라고!”

  순무사 이요헌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성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가?”

  적의 두 번째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뒤, 대원수 홍경래는 도총 이희저, 모사 우군칙과 같이 성곽을 돌아보며 부원수 김사용과 선봉장 이제초에게 말했다. 차가운 북풍이 다시 휘몰아치고 있었다.

  “양 쪽 성벽에 손이 들어갈 정도의 금이 가서 돌과 흙으로 메우고 있습니다만, 돌이 좀 모자랍니다.”

  이제초가 말했다.

  “정 돌이 모자라면 나무라도 잘라 메워라. 성 안쪽에 흙과 나무를 집어넣고 다시 흙을 쌓아 올려라.”

  “예.”

  이제초와 군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대원수 홍경래는 다시 반대쪽 성벽으로 걸어갔다.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북풍에 보초를 서고 있는 농민군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고 뛰어라. 가만히 있으면 동상에 걸린다.”

  홍경래가 한 농민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 자네는 박천 송림리에서 적을 유인하던 윤언섭이 아닌가?”

  그 전에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해우를 감시하던 윤언섭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찬 바람과 눈에 이미 얼어 터져 다 얽어 있었다. 매서운 한파에 거의 모든 농민군들이 손과 발, 심지어 얼굴까지 심한 동사에 걸려 있었다.

  “자꾸 몸을 움직여 스스로 기운을 내도록 하게. 이제 봄도 멀지 않았으니.”

  2월 중순이었지만 차가운 북풍은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솥에 불을 더 지피고 끓인 물을 마시도록 해라.”

  “고맙습니다요.”

  윤언섭이 대원수 홍경래에게 절을 꾸벅했다.

  “그런데 통 김이대가 보이지 않는데?”

  “-.”

  우군칙이 꿈질했다.

  “음. 괜찮네. 내 선봉장에게 물어보지. 자, 수고하게.”

  홍경래가 다시 윤언섭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이 싸움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농민군이고 관군이고 따지고 보면 다 같은 백성들이 아닌가? 백성들이 굶지 않고 잘 살수만 있다면 민란이 왜 일어나겠는가? 이 모든 것이 백성을 위하지 못하고 제 잇속만 챙기고자 하는 조정 대신들의 권력 다툼 때문이요, 관리들의 욕심 탓이다. 하루빨리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선봉장 홍총각이 있는 성벽 쪽에서도 수십 명의 농민군이 금이 간 곳을 돌로 메우고 있었다.

  “돌이 부족하면 성 안쪽을 흙과 나무로 메우고 다시 흙을 쌓아 올리도록 하게!”

  홍경래가 홍총각 뒤에서 말했다.

  홍총각이 깜짝 놀라면서도,

  “예. 아직 천년은 더 버티겠습니다요.”

하고 대답했다.

  “하하.”

  홍경래는 그 와중에도 잠시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도총 이희저와 모사 우군칙에게,

  “불을 더 지피고 물을 끓이도록 하게. 횃불도 더 밝히고.”

하고 말했다.

  ‘이러다간 얼마 안 있어 나무마저 다 없어지겠군.’

  이희저는 얼마 남지 않은 군량미를 걱정하고 있었다.

  ‘화살, 화약, 옷, 약도 다 바닥인데.’

  이희저는 한숨을 쉬며 빨리 날이라도 좀 풀렸으면 싶었지만 이제 눈보라마저 몰아치고 있었다.

  “요즘 김이대가 통 보이지가 않는구먼. 선봉장이 모르나?”

  홍경래가 홍총각에게 물었다.

  홍총각은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모른 척하고,

  “김이대요? 어디 잘 있겠죠, 뭐.”

하고 말하면서 성벽을 열심히 성벽 안으로 흙을 메워 넣고 있었다.

  하기야 농민군 1천 5백, 그 식솔에다 밤이면 정주성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까지 성안에는 3천에 가까운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화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적이다!”

  모사 우군칙이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 고개를 숙이며 성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런 적의 공격도 없었다.

  홍경래가 홍총각에게 화살을 턱으로 화살을 가리키며 주워오라고 말했다.

  홍총각이 화살을 집었다.

  그런데 화살을 집은 순간 홍총각의 얼굴이 묘하게 찌푸려졌다.

  “빨리 가져오지 않고 뭐하나?”

  도총 이희저가 홍총각에게 재촉했다.

  홍경래는 선봉장 홍총각이 가져온 화살을 얼른 받아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화살에는 편지가 하나 꽂혀 있었다.

   김이대 입문.

  “이봐, 성봉장! 이게 뭔가?”

  대원수 홍경래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홍총각에게 물었다.

  “아이고, 지금, 성문 밖에 김이대가 와 있습니다요.”

  홍총각은 이거 큰일 나겠다고 싶어 자초지종을 얼른 이야기했다.

  “뭐? 뭐라고? 알았다. 우선 적들을 살피고 성문을 빨리 열어주어라. 적이 뒤따라올지 모른다.”

  홍총각은 그럴 때는, 김이대 원문, 이라고 말이 튀어나오려 했으나,

  “옛!”

하고 대답하며 군사들과 성문 쪽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삐익,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김이대와 홍총각이 다시 뛰어 홍경래 앞으로 왔다. 그리고 홍경래는 아내와 두 아들이 무사히 서울 김재찬의 집에 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김이대는 사선을 넘어 온 것이었다.

  홍경래는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래, 수고했다. 다른 일은 없었느냐? 모사 김창시의 소식은 못 들었느냐?”

  이번에는 김이대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보게, 대원수께서 묻지 않나?”

  도총 이희저가 말했다.

  “북진군 김창시 모사와 최이륜의 목이 숭례문에 걸려 있었습니다.”

  김이대는 그 말을 하며 조금 비틀거렸다.

  “뭐라고? 모사와 최이륜이.”

  우군칙과 홍총각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홍경래와 이희저는 침통한 모습으로 말이 없었다.

  “효수 된 지 한달도 더 지난-.”

  “됐다. 그만해라.”

  홍경래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다하다 죽은 것이다. 비굴하게 죽은 것이 아니다. 다만-.”

  홍경래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정면 돌파.

  양서순무사 이요헌은 새로 평안 관찰사를 맡게 된 정만석과, 병마절도사와 순무중군을 겸하게 된 박기풍에게 3차 정주성 공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안감사 이만수와 병마절도사 이해우는 관군이 반란군을 단번에 쳐부수지 못하자 안달이 난 이조판서 박종경과 다른 대신들에 의해 결국 파직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요. 이번에도 정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나나 당신들도 오래가지 않아 물러나야 할 것이오.”

  이요헌은 스스로 물러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일이 이렇데 된 바에야,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싶었다.   

우선 정주성의 북문과 동문, 서문을 홍이포와 자모포로 사격하고, 그 다음 성 높이만큼 나무를 엮고 겉은 소가죽을 덮어 적의 화공과 화살을 막을 수 있는 사다리(윤제)를 만들어 성 바로 앞까지 가서 조총으로 사격을 하며 성으로 들어가돌고 한다는 것이 3차 성주성 공략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가죽에 불이 붙지 않을까요?”

  새로 온 평안감사 정만석이 말했다.

  “물을 뿌리면 괜찮을 걸세.”

  이요헌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관군의 약탈이 도를 넘어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 있다는데 사실이요?”

  “사실입니다.”

  정만석이 뜻밖에 사실을 털어놓았다.

  “살육을 넘어 도륙에 가깝습니다. 정주성을 공략하지 못하니 관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군영을 벗어나기만 하면 소, 돼지, 닭을 빼앗고, 주지 않으면 죽여서라고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반락군은 돈을 주고 가축을 사니, 백성들이 낮에는 관군의 숫자와 위치, 무기 등을 알아놓았다가 밤에는 정주성에 첩보를 넘겨주고 있다고 합니다. 날이 갈수록 민심은 돌아서고, 조선 곳곳에 민란이 일고 있습니다.”

  “병마절도사. 그런 관군들은 모조리 곤장으로 다스리시오!”

  순무사 이요헌 소리를 벌컥 질렀다. 그러더니,

  “다, 내 탓이다. 내가 부하들을 잘 이끌지 못하고, 반군들을 하루빨리 치지 못했으니-.”

  이때 순무사 이요헌의 입에서 반란군 대신에 처음으로 반군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이 전쟁을 관군과 역적 무리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반군.

  그것은 나라를 믿지 못하고, 조정과 대신들, 탐관오리들을 믿지 못해 피폐한 백성들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일으킨 군이라는 말이었다.

  “병사들이 군관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마절도사 박기풍이 말했다.

  “군영 밖에서는 군관들이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농민들을 죽이고 금품을 빼앗아 그대로 도망치는 자도 수십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니 순무중군으로서 그걸 말이라고 하오?”

  이요헌이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잘못 하다가는 관군들마저 반란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만약에 관군들이 반란군에 합세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병마절도사 겸 순무중군 박기풍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관찰사 정만석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벌써 두 달째, 성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사기는 전혀 죽지 않고, 오히려 낮에는 북을 치고 성곽 위를 큰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니고, 밤에는 불을 밝히고, 물을 끓이고 나물 삶는 냄새와 연기를 피우니, 관군들의 사기가 날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음-. 이대로 가다간 관군들이 언제 반군에 합세할지 모른다? 만약 관군이 반군과 힘을 합친다면 하루아침에-.”

  양서순무사 이요헌, 평안도 관찰사, 병마절도사 겸 순무중군 박기풍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라도 들어서인지 굳어져버린 모습으로 얼마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관군은 점점 모여들고, 우리는 점점 식량이 떨어져 가고.”

  홍경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기습을 해서 이 정주성을 벗어나야겠다. 그렇지 않고는 농민군은 몰살을 당할지도 모른다. 왜 진작 유격전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주성을 에워싼 관군만 벌써 6천이 넘고, 흩어진 농민군을 토벌하고 있는 함종부사 윤욱렬이 1천의 관군을 데리고 오고 있다고 합니다. 한성부에 속속 모여들고 있는 순무영 군사마저 보낸다면 관군은 1만이 넘을지도 모릅니다.”

  부원수 김사용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뭐라고? 1만?”

  홍경래는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얼굴을 찌푸리며,

  “흩어져 싸워야겠다. 우선 박천, 태천, 곽산, 운산, 선천, 철산, 용천에 각 2백 명씩 나누어 흩어져 거기서 새로 백성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렇게 1천이 되면 다시 영변, 안주, 용강으로 내려가 백성들과 힘을 모우는 게지. 평양까지만 내려갈 수 있다면 서울까지도 어렵지 않을  텐데. 열흘 뒤, 적진을 기습하고 빠져나가면 어떻겠나?” 

하고 말했다.

  “열흘 만에 다 준비해서 나갈 수 있겠습니까? 군사와 식솔이 3천 명이나 되는데. 또 만약에-.”

  그렇게 나가다가 전멸을 당하면-.

  홍경래는 김사용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홍경래도 두려웠다. 몹시 두여웠다. 그러나 3천 농민군의 대원수가 아닌가! 홍경래는 두려움을 참으며 잠시 생각해보았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3천 농민군의 목숨이 나에게 달렸다. 그래, 열흘 후, 이 정주성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어느새 두려움도 사라져버렸다. 희한한 일이었다. 잠시만 참고 생각하면 거의 모든 것은 견디어낼 수가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열흘이다! 열흘 뒤 이 성을 빠져나간다. 부원수는 지금 도총과 모사, 선봉장들을 불러오게!”

  관군들은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몰랐다. 관군의 총지휘관인 순무사 이요헌이 관군들이 백성들을 잡아 죽이면서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농민군을 칠 것은 뻔했다.

  “내일 새벽 3차 공격을 한다!”

  이요헌은 순무중군과 관찰사에게 명령했다.

  “새벽에 기습한다?”

  관찰사 정만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새벽녘에 기습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새벽. 가장 나약해지고 방심할 때 적을 친다는 것이었다.

  “사다리(윤제)는 몇 개나 만들었나?”

  이요헌이 박기풍에게 물었다.

  “사다리 다섯 개와 자모포, 홍이포에 쓸 화약도 다 준비되었습니다.”

  순무중군이 말했다.

   “새로 조총이 올 때까지 못 쓰게 된 조총 사수들은 불화살을 쓰도록 했습니다.”

  “적도 화공으로 나올 거야. 사다리가 불타지 말아야 하는데.”

  4월에 들어서고는 밤바람도 그리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난히 조용한데?”

  농민군 김이대가 윤언섭에게 말했다.

  “잠에 장사 있나? 저놈 놈들도 자야지. 벌써 겨울 몇 달째 관군 놈들도 한데서 저러니 할 짓 아닐 게야. 우리야 그래도 성 안에 있으니 그마나 좀 낫지.”

  “아, 참, 우리도 열흘 뒤에는 성을 나간다며?”

  “쉿-.”

  김이대가 윤언섭의 말을 막았다.

  “누가 듣는다고.”

  새벽녘이 다가오면서 몸이 으스스해지는지 윤언섭이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가마솥 밑에서 버글버글 타오르던 장작도 사그라지고 밤을 밝히던 횃불은 하나 둘씩 꺼져가고 있었다.

  “왜 평양이나 서울에 염탐하러 자네를 보내지 않았을까?”

  “나야 평안도 일대나 한성 주막에 하도 얼굴이 알려져서 말이야. 첩자란 얼굴에 티가 나면 안 되는 법이지.”

  김이대가 그래도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왜? 자네가 성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그러는 게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영변에 있는 식구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아-.”

  윤언섭은 괴로운지 한동안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최이륜도 죽었지.”

  “관군은 농민군을 잡아들이면 모조리 목을 베고, 지나가는 백성들이 쳐다보도록 의금부와 숭례문에 걸어두었더군. 아-. 김창시 어른도-. 아-.”

  김이대는 홍경래의 식구들을 무사히 김재찬의 집에 맡기고 숭례문을 지나다 바라본 기억이 다시 나는지 몹시 괴로워했다.

  “죽든지 살든지 우리는 정주성을 빠져나가야 한다. 서울에서는 어마어마한 관군과 순무영 군사들이 곧 정주로 향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이제 한 열흘만 지나면-.”

  윤언섭이 말을 잇지 못했다.

  “쉿-.”

  김이대가 다시 윤언섭에게 말조심하라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었다. 사실 이 정주성 안에도 몇 명이나 관군 첩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아직 밤이면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드나들었다. 더러는 관군의 동태에 관한 첩보와 군량미를 가져오고 더러는 다른 곳을 염탐하거나 격문을 붙이러 나갔기 때문이었다.

  새벽이 왔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성밖은 어두컴컴했다.

  “그런데, 이 보게. 저게 뭐야?”

  “뭐 말인가?

  이번에는 김이대가 깜박 졸다 눈을 뜨며 말했다.

  “뭐, 뭐 말이야?”

  “아니. 저거, 저 움직이는 거. 저 봐. 소리도 들리잖아?”

  윤언섭의 말에 김이대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니, 저, 저건 무슨 사다리 같은데, 그래! 분명 관군이다! 선봉장과 모사께 알려라! 어서!”

  김이대의 말에 윤언섭이 몸을 낮추며 선봉장 홍총각이 있는 북문 쪽으로 뛰어갔다. 

  “저건 성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사다리다! 윤언섭 자네는 빨리 대원수께 아뢰게!”

  아직 어둠 속이지만 분명 대단한 병력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홍총각은 느낄 수가 있었다. 숨을 죽이고 있는 농민군이 한시라도 빨리 적을 공격을 하는 길만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선봉장 홍총각은,

  “공격하라! 불화살을 쏘아라!”

하고 명령했다.

  농민군 군사들이 불이 꺼져가고 있는 가마솥 장작으로 화살에 불을 붙이더니 일제히 다가오는 사다리를 향해 불화살을 쏘았다.

  “쉭-쉭-쉭-.”

  수백 개의 불화살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 사다리에 떨어지기도 하고, 땅바다가에 떨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불이 잘 붙지 않던 것이 불화살 수십 개가 한꺼번에  무언가를 덮은 사다리 위에 얹히자 드디어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때 대원수 홍경래와 부원수 김사용이,

  “천자총통을 쏴라! 조총과 화살을 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들도 자모포와 홍이포을 쏘아댔고, 조총 유탄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쏴라! 사격하라!”

  선봉장 홍총각도 조총을 쏘며 외쳤다. 그때, 성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다리 속에서 관군들이 사격을 하며 성곽 위로 넘어 들어오려고 했다.

  “적이 사다리 속에 있다. 쇠도리깨를 가져오너라!”

하고 홍총각이 말하자, 옆에 있던 김이대가 쇠도리깨를 건네주었다.

  “에잇, 이 놈들!”

하며 홍총각이 쇠도리깨를 휘두르자 사다리 속에서 막 나오려던 관군들이 쇠도리깨에 맞아 성 아래로 떨어지고, 사다리의 겉가죽이 쇠도리깨에 걸려 성 안으로 떨어졌다.

  “뭐야. 이거 소가죽이네.”

  그 와중에도 홍총각이 재미있다는 투로 말했다.

  “관군들이 바로 성 아래에 있다. 뜨거운 물을 붓고, 돌을 던져라! 사다리를 타고 적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서문 쪽에도 불화살을 쏴라! 몸을 숙여라!”

  관군의 다섯 개의 사다리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지만, 날아오는 포탄과 유탄에 농민군들도 무수히 쓰러지고 있었다. 눈에 유탄을 맞아 비명을 지르는 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자들이 성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정주성과 그 주위 벌판이 불바다를 이루고 있는 동안에 새벽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죽은 자 4백여 명, 다친 자는 천여 명이 넘습니다.”

  순무중군 박기풍이 순무사 이요헌에게 말했다.

  “으-윽-.”

  이요헌은 3차 공격 실패에 치를 떨었다.

  “4차 공격시 필요한 화약은 묻었겠지?”

  이요헌의 눈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예. 남문 뺀 북문과 동문, 서문 아래에 각각 2백 근씩 6백 근의 화약을 묻었습니다. 다만 그리 깊이 묻지 못한데다가 적들이 물을 부어서 화약이 터질지는-.”

  “뭐야! 6백근의 화약이 물에 젖어? 기다려라! 화약이 마를 때까지! 불을 붙여야 한다! 으-윽.”

  다시 한번 이요헌은 진저리를 쳤다.

  “저건 또 뭐야?”

  정주성 위에서 아래를 감시하던 이제초가 홍총각에게 말했다.

  “저 관군 시체 옆에 상자 같은 것 말야?”

  두 선봉장이 농민군 몇몇과 아래로 내려가 성문을 조금 열고는 얼른 땅을 파고 그 상자 몇 개를 힘들게 날라 들여왔다.

  “아니 이거 관군의 화약이네. 백 근은 되겠는걸. 그런데, 이거, 하하하, 우리가 쏟아 부은 물에 젖어 쓸모도 없게 되었잖아. 하하하!”

  이제초와 홍총각이 호탕하게 웃자, 농민군들도 따라서 같이 웃었다.

  “동문과 서문 쪽으로 가보세.”

  홍총각은 김이대, 윤언섭과 같이 성 안을 걸어 동문 쪽으로 가고, 이제초는 농민군 양치제와 같이 서문으로 갔다.

  그러나 화약은 모두 물에 젖어 쓸모가 없었다.

  “어디 양지 바른 바위 가운데 놔두어 보아라!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

  두 선봉장의 보고를 받고 대원수 홍경래가 말했다.

  “모사. 우리는 피해가 얼마나 되나?”

  “예.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 했습니다만, 전사 백여 명, 부상 2백여 명 정도입니다. 포탄과 유탄에 맞은 자가 많아서-.”  

  “음-. 우리는 조총과 천자총통에 쓸 아직 화약이 있는가?”

  “거의 바닥입니다.”

  모사 우군칙이 그렇게 대답하자 홍경래는 물에 젖은 화약 상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조판서 박종경.

  그는 겉으로 보면 참 인품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을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찌 그럴까 싶게 남을 짓밟고 올라선 자리가 바로 지금의 이조판서였다. 그는 원래 순조의 외숙으로 정순황후가 나이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자 부수찬에 기용되어 홍문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가 된 자였는데,  백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와 뇌물만 밝히고, 자신의 권좌와 부를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였다. 홍경래의 농민군도 조정 대신들 가운데 제일 먼저 척결해야 할 자로 이조판서 박종경을 꼽고 있었다.

  ‘석 달째 정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면, 이쯤해서 누구 하나 제물로 삼아야 나한테 불똥이 안 튀지. 홍문관을 구슬려보아야겠군.’

  “뭐라? 홍문관에서 순무중군 박기풍을 탄핵하려 한다?”

  이조판서 박종경은 모르는 척하며 다른 대신들에게 사실 1만이나 되는 관군으로 네 차례나 농민군을 공격하고도 정주성 하나 함락시키지 못했다면, 순무사 이요헌도 죄를 물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지만, 일이 너무 커지면 백성들이 오히려 관군을 원망하는 쪽으로 기울 수도 있고, 그랬다간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울며 겨자 먹기로 박기풍을 탄핵하고, 그 대신에 새로 순무중군에 평안도 병마절도사와 좌포도대장을 지낸 적이 있는 유효원이라는 장수를 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효원이라는 자는 좌포도대장으로 있을 때, 군관 박정을 비롯한 군졸들이 군기가 얼마나 문란하였던지 이미 파직을 당한 자였다. 그런 자가 이요헌 다음으로 1만 관군의 순무중군이 되었다는 것은 한때 홍문관제학으로 있었던 이조판서 박종경이 홍문관으로 하여금 박기풍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유효원을 앉히도록 미리 계산을 한 것이었다. 

  ‘후유, 이제 됐다. 이 놈의 정주성 농민군만 잡으면 민란도 끝장이 날 테지.’

  사실 이조판서 박종경은 홍경래의 농민군이 평안도를 휩쓸면서부터,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게다가 농민군이 이조판서 박종경을 제일 먼저 처단하겠다는 격문이 나돌면서는 오줌도 쪼그라들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전국에 작은 민란이 끊이지 않자, 1만 명의 관군과 순무군을 정주에 보내 하루라도 빨리 반란군을 진압하려는 것이었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조정 대신들과 관리들 탓이 아니라 바로 반란을 일으킨 농민군이 때문이니 그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유효원.

  순무중군으로 그가 그 다음 날로 새로 왔다.

  “정주성을 날려버릴 화약 천근도 같이 가져 왔습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그는 순무사 이요헌에게 절도 옳게 하지 않고,

  “여기 남은 화약은 얼마나 됩니까?”

하고 말했다.

  이효헌은 유호원이 건방지게 구는 꼴이 몹시 못 마땅했으나,

  “한 8백 근은 되네.”

하고 말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하기야 네 번이나 정주성을 공략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으니 그리 큰 소리를 칠 수도 없었다.

  순무중군 유효원이 다시,

  “화약이 천 8백 근이라-. 목련과 벚꽃은 지고 개나리, 진달래 울긋불긋한 이 계절에 누걸래치 같은 농민군과 싸우고만 있으니-.”

하고 말하며 혀를 껄걸 찼다.

  ‘한심하다, 이 말이지.’

  순무사 이요헌은 이 건방진 몸에게 한소리 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럴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요헌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앞으로 닷새만 지나면, 열아흐레(1812년 4월 19일) 날에는-.”

  순무중군 이효헌이 느닷없이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뭔가 말투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다시 참으며 순무사 이요헌이 말했다.

  “정주성은 그리 쉽게 무너지는 성이 아니네.”

  “한꺼번에 천 8백 근을 터뜨리는데도 말이오!”

  “자네, 그 말부터 당장 고치지 못하겠는가!”

  드디어 순무사 이효헌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병졸들 보다 자네부터 군기 문란으로 치도곤을 쳐야겠군!”

  그 순간 순무중군 유효원은 뜨끔하면서도 누가 볼까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하하. 순무사 어른에게는 못 당하겠습니다.”

유효원은 얼른 순무사를 무마시키려고 그렇게 말했다.

  “이 보게. 순무중군. 지금 웃음이 나오는가! 자네 서울에서 포도대장이나 하고 있다가 갓 와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는 말일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야!”

  순무사 이요헌의 호통에 순무중군 유효원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두고 보자. 내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마.’

하고 이를 갈았다. 그 바람에 그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졸장부나 간신배의 못된 짓거리는 언제나 그 모양으로,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얼굴에 다 나타나는 법이었다.

  “한꺼번에 한 곳을 폭파한다, 이 말이지-.”

  순무사 이요헌은 그런 유효원을 못 본 척하고, 아니 다음에는 곤장으로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다.

  “예.”

  순무중군 유효유도 냉정을 되찾으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지난 번 화약을 터뜨린 곳이 어딥니까?”

  “동문과 서문 양쪽이네지만, 서쪽 성벽과 북문 사이가 금이 가고 깨졌으니 거기가 좋을 걸세. 그런데 어떻게 접근한다는 말인가? 적의 천자총통과 조총, 불화살이 만만치 않네. 게다가 큰 가마솥에서 뜨거운 물, 찬 물 안 가리고 폭포처럼 퍼부으니-.”

  “성벽 밑까지 굴을 파고 들어가 묻어야지요.”

  “뭐라고? 굴을 파고 화약을 묻는다?”

  순무사 이요헌도 유효원의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 그것도 천 8백 근을 한꺼번에-.”

  순무중군 유효원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씩 한번 둘러보았다. 

  “누룩가루를 빼고는 이제 군량미가 거의 바닥입니다.”

  도총 이희저가 대원수 홍경래에게 말했다.

  “꽃 같은 4월은 깊어 가는데.”

  이희저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홍경래가 잠시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말은 몇 마리나 있지?”

  “예?”

  “말도 소고기나 개고기처럼 먹으면 되지.”

  “예?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한 열흘은 버틸 수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도총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오늘부터 나한테는 물에 탄 누룩가루만 가져오게.”

  홍경래는 농민군이 봉기한 그날부터 늘 군졸들과 똑같은 시각에 똑같은 밥만 먹었다. 옷도 대원수의 옷이라 하기엔 너무나 초라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평민 사상. 언젠가 초인이 나타나 이 평민들을 위해 평민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초인 사상. 그게 홍경래가 이 거사를 일으킨 이유였다.

  1812년 4월 열아흐레 새벽.

  날이 흐린지 해는 보이지 않고 주위는 아직 어두웠다.

  홍경래는 정주성 밖 벌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4월이라지만 아침은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었고, 멀리 적 진영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관군 군영 앞 들판 땅이 조금 불룩불룩 솟아 정주성 쪽으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가마니 위로 흙을 덮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위로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올랐다.

  ‘땅바닥이 차다지만 4월인데 땅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굴?

  ‘이 성까지 굴을 판다?’

  “모사와 선봉장을 불러오너라!”

  홍경래의 호통에 창을 기둥 삼아 졸고 있던 농민군 한 둘이 버쩍 정신이 드는지,

  “예!”

하고는 후다닥 뛰어갔다.

  “보게. 저기 땅이 솟은 곳이 서문과 북문 쪽으로 이어져 있지?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는 곳 말이야.”

하고 홍경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명 뭔가 이상했다. 유독 거기만 풀이 자라나 있지 않았고, 새로 흙을 퍼내고 다졌는지, 다른 곳과 달라보였다.

  “서문과 북문 사이 성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선봉장 이제초가 말했다.

  “홍총각과 그리고 가서 성벽을 살펴보게. 성 아래로 굴을 판 게 틀림없어.”

  대원수 홍경래가 말했다.

  이제초와 홍총각이 북문 쪽으로 뛰어갔다.

  “굴을 파서 관군들을 성 안으로 들여보내려는 게 아닐까요?”

  모사 우군칙이 말했다.

  “적 진영 앞에 흙이 쌓이기 시작한 것은 며칠 되었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하는가? 

  “별 거 아닌 거 같아-.”

  “이 사람아, 혼자서 지레 짐작하지 말고 보고를 해야지!”

  홍경래가 불끈했다.

  “일전에 관군이 화약을 터뜨린 곳이 서문과 동문 쪽이지-. 그리고 서문 쪽 성벽과 북문 사이가 더 금이 가고 깨진 곳이 많다고 했지. 그래 바로 저기!”

  홍경래가 잠시 생각에 빠지는가 싶더니,

  “화약이다! 성 아래까지 굴을 파고 와 성벽 바로 밑에서 화약을 터뜨리려고 한다!”

하고 소리쳤다.

  성 아래서 사방팔방으로 터지는 화약 보다, 성벽 바로 아래 굴을 파고 화약을 한꺼번에 터뜨린다면 성벽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모사! 빨리 도총과 전 군사들에게 알려라! 뭔가 큰 일이 터질 것 같다.”

  홍경래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북문 쪽으로 뛰어갔다.

  “바로 이 아랩니다!”

  홍총각이 성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저거 흙에 덮인 가마니 아니가?”

  이제초가 말했다.

  “빨리 아래로 내려가 저 성 밑을 파보아라! 분명 성을 무너뜨릴 화약을 묻었을 게다! 어서! 어서 빨리!”

  홍경래가 두 선봉장을 다그쳤다.

  그때 관군 진영에서 새벽에 보았던 흰 연기가 몽실몽실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성벽 아래 가마니에서 연기가 나면서 불이 붙었다. 

  “피하라! 화약이 터진다! 어서! 성벽이 무너진다!”

  홍경래와 두 선봉장, 그리고 성곽 위에 있던 농민군들이 서둘러 성 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쾅-쾅!

  귀를 찢는 폭발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연기가 솟구치면서 순식간에 북문 쪽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아- 악-!‘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농민군들의 비명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돌격하라! 성이 무너졌다. 돌격하라!”

  순무사 이요헌이 1만 관군에게 정주성 총공격을 명령했다.

  “와- 와!”

  관군들이 조총을 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무중군 유효원도 질세라,

  “무너진 곳은 북문 쪽 성벽이다! 나를 따르라!”

하고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하기야 천 8백 근의 화약을 한꺼번에 굴을 파고 터뜨려 성벽을 무너뜨린 것은 누가 뭐래도 유효원의 공이었다.

  그러나 성질이 장수다워야지.

  ‘놈들을 모조리 죽인 다음에 순무사 네 놈도 어디 두고 보자!’

  유효원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화약 천 8백 근의 위력은 대단했다. 서문과 북문 사이의 성벽은 흔적도 없이 내려앉았고, 불바다가 된 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린 아이들이 울고불고, 부녀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명을 질렀고, 이미 성벽에 깔려 죽은 농민군들도 많았다.

  농민군과 그 식솔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관군들이 조총을 쏘며 칼과 창을 휘두르며 성 안으로 튀어들어 왔다.

  “야-앗!”

  이미 관군들의 기세가 농민군을 제압하고 있었다.

   관군들은 닥치는 대로 총을 쏘고, 칼로 찌르며 쇠도리깨를 휘둘렀다.

  새까맣게 불에 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농민군들의 시체 옆에 떨어진 팔다리와 목이 같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고 여자고 농민군은 모조리 죽여라!”

  순무중군 유효원은 말을 탄 채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는 관군의 장수가 아니라 미친 살인마에 가까웠다.

  “도총. 어서 남문으로 빠져 나갑시다! 관군이 이리도 들이닥칠 게요.”

  모사 우군칙이 이희저에게 말했다. 그는 도총을 부르러 왔다가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대원수를 도와야지. 우리만 어떻게-.”

  김창시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 훗날을 기약합시다! 이미, 농민군들은-. 어서 서두르시오, 도총!”

  그리하여 도총 김창시와 모사 우군칙은 일단 성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반면에 북문 쪽에 있던 대원수 홍경래와 선봉장 홍총각, 이제초는 모두  무너지는 성벽에 다치고 말았다.

  그러나 대원수 홍경래가,

  “괜찮나! 홍총각! 이제초! 일어나 싸워라! 마지막까지.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하고 부르짖자, 홍총각과 이제초가 쇠도리깨와 칼을 잡고 일어섰다.

  “야-앗!”

  거구의 홍총각이 차력술이라도 펴듯 있는 힘을 다해 쇠도리깨를 휘둘렀다. 그 바람에 관군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제초도 칼을 잡고 대원수와 같이 관군들과 맞붙어 싸웠다. 조총의 유탄들이 홍경래와 이제초의 팔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윽.”

  그 순간에 누군가 방패로 홍경래와 이제초를 막으며,

  “대원수 괜찮습니까. 힘내십시오! 남문 쪽은 뚫리어 있습니다.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하고 말했다. 부원수 김사용이었다.

  “선봉장! 남문 쪽으로 길을 터라!”

  김사용이 홍총각에게 외쳤다.

  “옛! 이 놈들. 덤벼라, 에잇!”

  홍총각은 한 손에는 칼을, 또 한 손에는 쇠도리깨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른 농민군도 거의 모두 쓰러지고 있었다.

  탕-!

  바로 그때, 한 발의 유탄이 방패를 들고 진작 자신은 막지 못했던 김사용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대번에 피가 옷 밖으로 펑펑 솟아나왔다.

  “이봐! 김사용 정신차렷!”

  홍경래가 방패를 걷어치우고 김사용을 쓸어안았다.

  그러나 부원수 김사용은,

  “대원수님.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하고 말을 하고는 숨을 헐떡거렸다.

  이미 눈동자도 풀려 있었다.

  홍경래는, 눈도 못 깜고 숨을 거둔, 부원수 김사용의 눈을 감겨 주었다.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홍경래와 이제초, 홍총각이 관군을 향해 돌진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들의 성난 칼 앞에 관군의 조총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얼마나 사로잡았나?”

  양서순무사 이요헌이 순무중군 유효원과 평안도 관찰사 정만석에게 물었다. 수천 명의 관군과 농민군이 서로 죽고 죽인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이요헌도 지쳐 있었다.

  “달아난 수십 명을 빼고 모두 2천 5백이 넘습니다.”

  나중에 평안감사 정만석이 순조에게 보고한 사로잡힌 농민군의 숫자는 2983명이며 그 중에 여자들과 열 살 아래 남자 아이들이 1066명, 농민군이 1917명이었다.

  “이 아이는 열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순무사 이요헌이 한 어린 아이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열 살이 넘은 사내놈들은 다 역적으로 쳤지요.”

  순무중군 유효원의 얼굴에는 아직도 살기가 남아 있었다.

  “이 놈들도 다 칼과 돌을 든 놈들입니다.”

  “이제 열 살이 아닌가.”

  이요헌이 말했다.

  “그럼 칼을 든 놈들만 제가 따로 가려내지요.”

  유효원의 얼굴은 아직도 피가 튄 그대로였다.

  “하여튼 이들을 함께 놔두면 위험하니, 농민군들은 남문으로 데려가 손발을 묶어놓겠습니다-.”

  “음? 그러게-.”

  순무사로서도 정주성을 함락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유호원이 농민군의 손을 묶어 데려가겠다는데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순무중군의 얼굴에는 아까부터 묘한 기운이 돌았다. 

  “여기서 흩어지자.”

  어깨에 부상을 입은 홍경래는 잡목이 늘어선 산비탈에서 홍총각과 이제초에게 말했다. 그들도 얼굴과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같이 가면 너희들만 뒤처질 뿐이다. 흩어져 이 정주성을 빠져 나가라! 어서!”

  홍총각의 얼굴에는 피가 눌어붙어 눈만 반짝거렸다.

  “언젠가 백성들은, 다시 일어선다!”

  홍경래가 두 선봉장의 손을 잡고 말했다.

  탕. 탕. 탕. 타-탕, 타탕탕!

  그때 남문 쪽에서 콩 볶는 듯한 요란한 총소리가 났다.

  탕탕탕, 타-탕-!

  뭔가 불길한 소리였다. 한발 한발의 총소리가 이상하게 홍경래의 가슴을 후벼 팠다. 

  홍경래가 턱으로 총소리가 난 반대쪽을 가리키며 두 선봉장에게 어서 가라고 소리쳤다.

  남문 쪽에서 총소리가 다시 들렸다.

  홍총각과 이제초는 북문과 동문 쪽으로, 홍경래는 남문 쪽으로 뛰어갔다.

  “아, 이럴 수가!”

  총소리에 놀라 남문으로 달려온 순무사 이요헌의 눈앞에는 이제 열 살이 갓 넘은 듯한 소년에서 노인까지 2천 명(평안감사 정만석이 순조에게 올린 보고에는 순무중군 유효원이 즉결 처형한  농민군이 1917명)이 넘는 농민군의 시체가 지푸라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짐승을 도살하듯이 그들은 손발이 묶인 채 목이 잘리어 나뒹굴었고, 가슴에 난 총구멍에서는 아직 뜨거운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가 있는가!

  남문 바로 앞에서 유효원이 웃고 있었다.

  “야-아!”

  이요헌은 단숨에 유효원에게 달려갔다.

  “네 이 놈! 내가 너를 이렇게 죽여주마!”

  순무사 이요헌은 칼을 빼들어 순무중군 유효원을 목을 내리쳤다.

  “야-앗!”

  그러나 칼끝이 유효원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유효원이 바지가랑이 사이로 오줌을 질질 쌌다.

  “순무사 어른!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순무중군 유효원이 제 오줌 위에 엎드려 빌고 있었다.

  그때 평안감사 정만석이 소리쳤다.

  “저길 보십시오!”

  쓰러진 농민군 시체 사이로, 홍경래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농민군 대원수 홍경래가 농민군의 시체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대번에 관군들이 3진으로 앉거나 서서 조총을 홍경래에게로 향했다.

  “멈춰라!”

  순무사 이요헌이 말했다.

  “네가 적장 홍경래냐?”

  홍경래는 얼이 빠진 눈으로 적장 이요헌과 유효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놈을 잡아라!”

  평안 관찰사 정만석이 소리치자 관군들이 움직였다.

  “관둬라!”

  이요헌은 칼을 들고 다가오는 홍경래를 막지 않았다.

  “칼을 버려라!”

  이요헌이 말했다.

  “칼을 버리면 살려-.”

  “하하하-. 그래서 산 백성들을 도륙했나! 하하하!”

  순간, 홍경래가 칼을 번쩍 높이 치켜들고, 순무사 이요헌과 순무중군 유효원에게 달려들었다.

  “야-앗!”

  탕- 탕- 탕- 탕!

  관군들은 일제히 농민군 대원수 홍경래에게 총을 쏘았다.

  홍경래가 앞으로 꺼꾸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다시 숨을 한번 크게 쉬더니, 칼을 집고 일어서려 했다.

  그때 다시 관군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만! 그만! 사격을 멈춰라!”

  이요헌이 외쳤다.

  홍경래는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관군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침 해가 산 위로 두 뼘이나 솟아 있었다.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도총 이희저는 희천에서 민병 함의형에게 살해되고, 우군칙, 홍총각, 이제초, 김이대, 윤언섭 등은 사로잡혀, 서울로 끌려가 1812년 4월 23일 목이 베이고, 그 목은 조선 팔도 성문에 매달렸다.

  순무사 이요헌과 관군들은 1812년 5월 6일 숭례문으로 들어왔고, 순무중군 유효원은 파직을 당하고 이듬해 1813년 죽었다.

  그리고 홍경래는, 언젠가 푸른 용이 되어 청룡사에서 두 아들과 다시 만나자고 했듯이 백성들 사이에 홍경래가 죽지 않고 정주성을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썩어빠진 조선 중세사회에 저항하는 혼으로 남게 된다.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 끝 -

                                          2006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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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래

             지 은 이 :  김영관(소설가)

             펴낸 날  :  2007년 2월 1일

           (c) 김영관.  kimyoung@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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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의 저작권과 판권은 소설가 김영관에게 있습니다.

.........너무나 초라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평민 사상. 언젠가 초인이 나타나 이 평민들을 위해 평민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초인 사상. 그게 홍경래가 이 거사를 일으킨 이유였다.....

...... 홍경래는, 눈도 못 깜고 숨을 거둔, 부원수 김사용의 눈을 감겨 주었다.

     “백성 만세! 농민군 만세!”

  홍경래와 이제초, 홍총각이 관군을 향해 돌진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들의 성난 칼 앞에 관군의 조총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c)김영관. 2007년                                      값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