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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
화두
김 영 관 (소설가)
모기 때문에 못 잤을까?
모기도 많기는 많았다.
이른 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깼기 때문일까?
그는 좀처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가 잠이 든 것은 난 어디서 왔는가, 라는 화두를 끈질기게, 억지로 물고 늘어지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모기 때문에 또 한두 번 깼다가는, 마침내 잠이 들고 만 것이었다.
어젯밤 그렇게 많게만 느껴졌던 모기는 어디서 왔을까?
그건 그가 어설프게 달아놓은 방충망 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왔을까?
아버지, 어머니의 몸에서?
그럼 그 앞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원숭이, 악어, 도마뱀, 개구리, 물고기, 아메바, 진흙?
그럼 그 흙은 어디서 왔는가?
지구, 달, 별.
그럼 그 우주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 땅, 해서 갑자기 하늘과 별이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그게 엄청나게 무거워서 빛마저 빨아들인다는 그 검은 덩어리 블랙홀이라는 것이라고?
그럼, 그 검은 덩어리가 어느 날 갑자기 땅, 해서 아무 것도 없는데 생겨났다는 말인가?
그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도 또 생각하다, 마침내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날 낮, 그가 바르던 석고와 비슷한 아주 빨리 말라붙는 시멘트 물이 아래층 방충망에 좀 떨어졌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모른체한다. 왜냐하면 그라면, 아이고, 보기는 싫지만 그 까짓것 금방 마르겠지, 위층에 이야기해봐야 짜증만 더 날 테니 내가 참지, 하고 생각했을 텐데 아래층 사람은 깐깐하게 나올지도 모르니까.
둘째, 예, 제가 그랬습니다. 볼 낯이 없습니다, 하고 먼저 말하고 기다려본다.
셋째, 얼굴부터 붉히고, 팔짱을 끼고 어깨를 좍 편다.
넷째, 묵언 수행중이라는 티를 낸다.
다섯째, 가서 닦아준다.
그날 밤은 훨씬 더 잠을 덜 설쳤다.
아니, 차라리 그에게는 오랜만에 잘 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건 또 왜 그랬을까?
다음 날 이런 걸 하나하나 쩨쩨하게 살피는 것도 그가 할 일 없는 글쟁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는 어제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잤으며, 동의보감에 가을과 겨울에는 서쪽으로, 봄에는 동쪽으로, 여름에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생각으로 동쪽인 것 같은데, 머리를 두라고 쓰여 있다고 해서 그도 그렇게 해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는 좀 잘 잤다. 무슨, 무슨 꿈도 꾸고, 그런 건 모두 못마땅했던 것들을 다 풀어준다고 하는데, 얇은 이불 두 개를 덮어서 그런지 따뜻했고, 다른 날 같으면 귀찮아서 이불 하나만 덮고 자다가 늘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술은 이른 저녁에 먹어두어서 취하지 않았고, 방바닥에 불을 때지 않아 갑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잤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래층 방충망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물기는 마른 것 같은데 부옇게 뭔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제기랄!”
이제 며칠을 잘 넘겨야 한다.
그는 왜 늘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살았을까?
삶이 본디 그래서?
그가 본디 그래서?
하여튼 그저께 밤은 괴로웠다.
하기야 옛날에는 더 괴로웠지, 잠꼬대로 고래고래 큰소리를 지르곤 했으니까. 그때는 술 탓에 대가리나 염통이 안 좋았을 것이다. 지금 그것보다 나아졌으면 좋아졌다고 봐야지.
아래층에 사는 사람은 저녁이 되면 돌아온다.
그때까지 견디어봐야지.
괜찮을 거야.
‘그래 맞아, 비가 오면 저절로 씻길 거야.’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그런데 하늘은 이럴 때는 꼭 너무나 말짱했다.
그리고 그가 공을 들이며 할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뉴스에서 본 날씨는 며칠이나 더 있어야 비가 오겠단다, 빌어먹을!
그는 또, 어두워지면 이야기를 안 쓴다.
왜?
불을 켜놓으면 이야기가 잘 안 쓰이고, 전기 값도 아깝고, 해도 저물어가니 쉴 때도 되었고, 하여튼 그가 그런 지는 한 10년도 더 되었다.
그런데 늦가을 3시부터 슬슬 어두워진다면 그의 방은 남쪽이나 서쪽이 아니라 동쪽을 마주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래도 글은 써야 하고, 불 켜놓으면 글이 안 된다는 것은 또 무슨 청승인지 하여튼 야릇한 버릇은 제멋대로 들 대로 들어서 이제 쉰이 넘은 그는 거의 고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화두를 붙들고 있으면 잠은 잘 온다.’
어젯밤 그는 겨우 그거 하나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저께 밤은 뭔가 달랐다.
그날따라 모기도 두드러지게 많았고, 잠은 더럽게 안 왔으며, 화두는 풀지 못했고, 하기야 그거 풀면 그도 좀 깨달은 사람이 되겠지만, 아내는 바로 옆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었고, 쓸데없이 너무 오래 불을 때는 바람에 방바닥이 뜨겁고 왠지 갑갑했다.
‘너무 많이 처먹은 술 탓도 있지.’
어젯밤에도 화두는 풀지 못했다.
아래층 사람은 들어왔겠지만 아무 말이 없고, 방충망은 물은 말랐지만 부옜다. 그래도 앞으로 며칠은 더 지나야 그는 마음을 놓을 것 같았다.
언젠가 소설 <만다라>에서 읽었던 화두.
병을 깨지 않고도 병 속에 든 새를 어떻게 꺼낼 수 있는가?
몰라.
그는 그 화두도 풀지 못했다.
그렇게 빨리 풀리는 게 아니라고?
바빠서 늘 그것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가 그거 풀려고 한 지도 1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그거 하나 옳게 풀지 못한 놈이 엉뚱한 화두는 무슨!
그럼, 그는 늘 잘 못 먹는가?
밥 먹을 때마다 막걸리까지 잘만 처먹는다.
돈도 조금은 번다. 또 누가 말하지 않았는가, 돈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가는 게 슬기로운 것이라고. 그래, 돈만으로 삶이 다 된다면 그가 왜 글을 쓰고 있겠는가. 여기서 한번 물어보자, 여러분의 그가 쓰고 있는 이 이야기가 재미없는가?
아니라고? 그러면 그럴 테지.
그런데 그놈들은 왜 그가 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 하지 않을까?
“그건 말이죠, 이름이 너무 안 알려져서 말이에요.”
그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누구는 뭐 처음부터 이름이 났겠습니까? 이름이야, 책이 많이 팔리면 생기는 것이지요.”
하고 그가 말하면, 그들은 그 다음부터는 아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날도 저녁이 왔지만 하늘은 아직 푸르렀다.
도대체 병 속에 새는 누가 넣었단 말인가!
설마하니 병아리 새끼 때부터 집어넣어서 기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모이야 줄 수 있었겠지만, 병 속에 차는 똥은 어떻게 하고? 뭐라고? 작대기에 헝겊을 씌워 닦아낸다고? 이런 미친놈, 거기야 병아리 마당이야? 그렇다면 쓰러진 오목한 병 속에 단물이나 모이가 있어서 병아리 새끼가 기어들어갔다는 말인데, 거기서 다시 기어 나오지도 못하고 살게 되었다고? 그게 그 안에서 크면 얼마나 클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더 크기 전에 그물로 된 줄 같은 것을 넣어서 확 잡아 빼야 하지 않을까?
이러니 그가 그 화두를 풀 수 있겠는가?
아니, 어찌 보면 그가 그 화두를 푼 건 아닐까?
뭐라고?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이야기는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어젯밤에도 그는 정말이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물음은 풀지 못했지만 말이다, 말이다, 말, 말,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뭔가 갑자기 생겨났다? 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도 이야기를 쓰다가 캄캄하게 꽉 막혔을 때 갑자기 대가리에 뭔가 떠올라 글이 쓰일 때가 있으니까! 또, 이걸로 그 화두를 풀었다고 하게? 먼저 속 편하게, 그렇다고 해두자. 그렇다면, 오늘밤 잠 안 올 때 그가 풀 수 있는 또 다른 화두는 무엇인가? 아직 모른다.
그는 어젯밤 또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물음에 매달리다 잠이 들고 말았다. 그건 그것 말고 아직 다른 화두를 그가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잠은 잘 잤나? 그건 그런대로 잘 잤다. 모기도 딱 한 마리 귓가를 윙, 하며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다리를 물리기도 했지만 몇 번 짜증스럽게 긁다가 다시 잠이 들었고, 그는 여느 때보다 좀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그는 어느 신문에서 혜공 스님이 썼다는 책에 나오는, 사람도 자연의 하나이니까 때를 기다려라, 는 글을 보았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나는 때가 된 건가, 안 된 건가? 그래, 될 때 되겠지.’
그는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 열흘 전에 그는 어디에 그가 쓴 이야기를 보내보았던 것이다.
‘이제 또 책이 하나 나올 때가 되었어, 그건.’
그나 다른 사람에게나 다 좋은 훌륭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아래층 사람은 그런대로 마음이 좋은 사람이야.’
조마조마했던 그 며칠이 지나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기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따지는 것도 귀찮거든.’
그는 하나하나 따지는 것을 몹시 귀찮아한다.
그가 기다리던 그 비도 오늘밤쯤 올 것 같았다.
‘비가 오려면 많이 와야 방충망이 씻기지. 그래, 사람도 자연의 하나니까 때를 기다려라, 기다려라!’
정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이미 그의 나이 쉰둘이다.
그가 지난해 강의를 못 하다가 올해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그렇게 책을 안 내주던 여러 곳에서, 올해는 한 군데라도 책으로 그의 이야기를 내준다면 그것도 그 때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꾸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 내주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그 다음 때를 또 기다리면 되지.
아이고, 언제까지?
쉰두 해를 기다려 왔으니 몇 해를 못 견딜까.
드디어 그날 밤, 비는 오기는 왔다.
그러나 방충망은 말짱했다.
지금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우주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돌리면 135억 년 전에는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한 점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또 그게 뭐냐는 말이다!
아이고.
그는 차라리 때를 기다리지 않는 쪽이 낫지 않을까?
마치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뭔가 갑자기 잘 생겨나듯이 말이다. 그게 그에게는 슬기로운 생각이 아닐까? 그러자 그는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해졌다.
우주에도 처음에는 헬륨과 수소 원소 딱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딱 그거 두 개뿐이었나, 이 말이지.
하나였다거나, 아니면 다른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묻지 말라고?
스스로 묻지 않으면 화두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가 왜 술을 마시냐고?
뜬금없기는.
술은 그에게 쓸쓸한 걸 그리워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그걸 그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래도 좀 줄여.
그래, 그래야지.
여러분이 그를 믿을 수 없듯이, 그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건 글쟁이의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이다.
어울리지 않고 뭔가 빗겨간다는 것은 돌연변이이며, 그것은 또 새롭고 더 나은 씨앗을 만드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 쉰둘인 글쟁이가 그런 걸 되바라졌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 게다가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면 화두를 떠올리고, 또 늘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사람이니까.
잘난 척한다고?
그럼, 여러분은 못난 척하고 있는가?
그가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를 써냈다고 해서 다시 거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그건 그에게는 지난 일이며, 더 새롭고 쓸쓸하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바로 진짜 글쟁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라고 왜 지나간 길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건 이미 여러분께 내어준 길이며, 그 길을 따르고 따르지 않고는 여러분에 달린 것이며, 또 여러분도 더 나은 새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그래,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좀 어렵거나 힘든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머리를 낮춘다면 그건 믿겠는가? 못 믿겠다고? 그럴 리가, 라고? 그것도 스스로 내세우기 위해 젠체하는 것이라고? 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는 못났기 때문에, 그게 얼굴이 아니라는 건 여러분도 이제 알 수 있을 테지만, 글을 쓴 것이었고, 오래 가슴이 아팠기 때문에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그래서 밤새 화두를 풀려고 한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혼자 방충망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밖으로 홀로 걸어 나간 것인지도 모르며, 이제는 돌연변이 씨앗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그에게는 새 길인지도 모르지.
듣기 싫다고?
그럼 여기까지는 왜 읽었는가?
할 수 없이 읽었다고?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 할일이 없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라면 그 자리에서 때려치우고 일어났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가 어리석다고?
아니지, 그는 오히려 할일이 많아서, 쓸쓸한 길을 또 혼자 걸으려는 것이 아닐까?
- 끝 - 20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