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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 창
2008/5/1
김 영 관 (소설가)
거기 버스 서는 곳에는 이봉창 의사가 활짝 웃는 사진이 있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대한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대한애국단 앞.
대한민국 13년 12월 13일
선서인 이봉창.
대한민국 13년은 1931년이고 이때 이봉창의 나이 31살 때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32년 1월 8일 이봉창는 적국의 수도 동경에서 일본 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오늘, 난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통장을 찍어보러 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5월 1일 노동절이라고 은행 문은 꽉꽉 다쳐 있었지만 자동 출납기가 있는 쪽문은 열려 있었다.
이봉창은 늘 환하게 웃고 있었다. 1931년 중국 상해에 가서 멋진 양복을 입고 있을 때도, 벽에 태극기를 걸고 선서문을 읽을 때도, 적국의 수도 동경에서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그 자리에서 그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만세, 를 부르짖고 왜놈 경시청에서 끌려갈 때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는 앞니가 덧니처럼 좀 나와 그런지 입이 크고, 부리부리한 눈 끝은 좀 올라가 솔직히 잘 생긴 얼굴이라 말하기 힘들지만,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다.
“통장에 정리할 내용이 없습니다.”
책방에서 몇 만원 들어올 돈이 있을 것 같은데, 출납기는 두 번씩이나 같은 말만 한다.
그런 나를 올 때나 갈 때나 이봉창 의사는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내가 저만치 가다가 뒤를 돌아보아도,
“허허허.”
그렇게 웃고 있었다.
학생들이 떠나고 난 그 버스 서는 곳에는 다섯 사람이 앉도록 된 나무 의자가 있다. 그는 유리벽 앞뒤에 사진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거기 가면 반드시 를 이봉창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1919년 19살 때 겪은 3·1독립운동의 감격 때문이었다. 서울 용산의 문창보통학교(지금의 효창초등학교)를 다니다 1915년 일본인 가게의 점원, 1918년 조선과 만주를 잇는 기관차 견습생으로 있다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1924년 형 이범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2년 10월 10일, 32살의 이봉창은 옳게 재판도 안 받고 일본의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죽었지만, 조선의 한 청년이 일본 왕에게 직접 폭탄을 던졌다는 사실은 힘을 잃었던 임시정부와 중국의 항일운동을 되살리게 되었다.
그런 그가 왜 거기 서 있었을까?
“힘을 내게.”
“돈이 안 들어왔는데요.”
난 빈 통장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몇 만원은 내 주머니에도 있네.”
하며 그는 돈을 꺼내려고 하였다.
“아이고, 무슨 말씀. 제가 참지요.”
난 좀 머쓱해졌다.
“벌써 여기 서 계신 지가 몇 년은 되신 것 같은데요.”
“그래도 10년은 안 되지.”
“도대체 더우나 추우나 왜 여기 서 계신 거예요?”
“자네는 날 어떻게 알았나?”
“에이, 여기서 알았죠. 어디서 알았겠어요.”
난 그렇게 말했지만 처음부터 낯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봐. 난 여기서 이렇게 마음씨 좋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
“독립이 되었으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빙그레 웃는 그를 보자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했다.
“이렇게 좋은 시절에-.”
그가 내 어깨를 어루만졌다.
“여기 학생들이 다 떠나서 좀 쓸쓸하시겠어요?”
“덜 시끄럽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는 좀 익살맞은 데가 있어 보였다.
“자네 한동안 보이지 않더군.”
“예. 이쪽으로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웠으니까요.”
“자네가 그만둔 게 아니라, 그쪽에서 그만두라 했겠지.”
“그걸 어떻게?”
“독립투사가 그걸 모르겠나.”
“하기야.”
나도 참 가만있어도 될 텐데 나서고 말았다.
“그런데 요새는 또 자주 보이더군.”
“은행 돈 때문에요.”
“누가 들으면 은행 자주 들락거리는 부자인 줄 알겠네.”
그는 확실히 익살맞은 데가 있었다.
“언제까지 여기 서 계실 건가요?”
“용산에서 나를 잊을 때까지.”
“아, 그리고 보니 여기가 바로 고향이네요?”
난 용산에서 난 용이 바로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지나가는 사람이 참 없더군.”
“용기가 없어 잘 걷지도 못하죠.”
“?”
“약은 놈, 못된 놈들은 차나 타고 다니며 나쁜 짓하려 하죠. 나약한 사람들은 방에 콕 처박혀 있으니.”
그때 버스가 오고 몇 사람이 내렸지만 그가 거기 서 있는 건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통 못 보네요. 보는데도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으니, 참.”
“너무 그러지 말게. 아무도 없으면 그들도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쓴 선서문을 읽으려 하더군.”
“수괴니, 도륙이니 어려운 한자가 많아서 어디 읽겠어요.”
“적성은 무슨 말인 줄 아나?”
“아, 네 참. 온갖 정성, 아니 갖은 정성을 다해, 이 말이겠죠.”
난 그렇게 말해놓고 얼른 집에 가서 국어사전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난 마치 강의하듯 말했다.
날이 좀 더워지고 있었다.
언덕길을 돌라오는데 등에 팔에 땀이 송송 났다.
다음 날, 난 결국 그 적성을 사전에서 찾지 않은 채 그 언덕길을 내려갔다.
역시 그가 멀리서 웃고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은 멋진 사람이었다.
“잠깐만요. 은행 갔다 올게요.”
나는 그러면서도 적성과 수괴와 도륙을 슬쩍 쳐다보며 가고 있었다.
길 양쪽에는 몇 십 년은 된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시원스럽게 보였지만 길을 오래 걸어내려 가는 사람은 없었다.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그들은 짧은 거리가 아니면 걷지 않는다. 버스 타는 곳 한두 군데도 그냥 걷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참 한심한 일이다.
“통장에 정리할 내용이 없습니다.”
빌어먹을 놈의 기계는 또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이번 달에는 책이 한 권도 안 팔린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에 섰더니 글쎄, 색안경을 낀 작고 똥똥한 외국 여자가 나를 슬쩍슬쩍 바라본다. 그런데 그 눈매가 똥똥한 내 배 쪽을 보는 게 아닌가? 난 좀 야릇해서 그 여자를 바로 바라보았더니 고개를 획 돌리고 만다.
5월로 들어서고는 햇볕이 제법 따갑다.
그가 또 저 멀리서 나를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웃고 있었다.
“좀 더우실 텐데.”
그러나 그는 땀은 흘리지 않았다.
“이 은행나무 그늘이 있잖나. 한여름에는 좀 덥지만.”
지난여름에도 그 유리 창문은 40도를 넘었을 것이다. 아니, 올 겨울 찬 바람을 그는 어떻게 견디었을까?
“꽁꽁 얼어붙은 일본 제국주의시대에도 견디었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견디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
난 가슴이 좀 아팠다.
“그래서 늘 웃고 계시는 거군요.”
“하하하-.”
그가 또 호탕하게 웃었다.
“자네 차 있나?”
“예. 경찹니다만.”
“음. 틀림없군. 그럼 난 자넨 거의 매일 보는 셈이지.”
“?”
“자네 출근을 매일 이쪽으로 하지 않나?”
“아, 네.”
그러고 보니 난 매일 이 버스 서는 곳을 지나친다. 그런데도 내가 이 길을 걸어다니 때만 그를 만났다는 것은, 매일 아침 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제가 미친놈처럼 운전을 하던가요?”
“아냐. 자네는 늘 신호를 잘 지키지.”
“안 지킬 때도 몇 번 있었습니다.”
“음, 혹시, 그때마다 자네 뒷자리에 누가 타고 있지 않았나?”
“아. 예. 제 아들이 타고 있었죠. 늦게 일어나 학교에 늦는다고.”
“자네 아들 다니는 학교가 용산에 있나?”
“예.”
“나도 용산에서 보통학교를 다녔지.”
난 그와의 인연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난 10년이 지난 지금에 그를 새삼 만나게 된 걸까?
나는 퇴근길에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얼핏 보았지만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
그가 있는 곳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 정지선이 있었기 때문에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출 때다마 관심이 있었다면 그를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무관심! 그러니까 결국 늘 관심 없이 그를 지나쳤기에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걸어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관심 없이 지나쳤기 때문에 그 죽음을 맹서한 선서문 하나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것이다.
‘난, 뭐 잘났다고 나만 생각한 것일까? 나 말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 버스 서는 곳은 단국대 후문이었고, 오른쪽으로는 한남사거리, 왼쪽으로는 옥수동 독서당길이라고 적혀 있다.
단국대는 떠났고 이제는 거기에 무슨 아파트 단지를 짓는 모양인데, 부수고 나르고 짓고, 그 많은 먼지와 소음은 누가 다 고스란히 뒤집어쓰나?
“앞으론 더 견디기 힘드실지 모릅니다.”
이번엔 그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거기서 오만 것을 다 보고 들었을 테니까.
“나도 이제 늙는 것 같아.”
“에이, 사진이 어떻게 늙어요? 맨 날 똑같으시던데.”
“자네가 언제부터 날 자세히 봤다고?”
난 부끄러웠다.
난 그런 그를 늘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지쳐가고 있었는데도 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어째 좀 이기적이지 않는가? 당돌하달까, 거만하지 않는가.
아. 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앞으론 그가 서 있는 곳을 지나칠 때마다 난 고개를 돌리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는 또 나를 부르겠지.
이봉창!
그가 누가인가!
조선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적국의 수괴에게 수류탄을 던진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렇게 해방된 조국을 보고자 되살아난 투사가 아닌가!
그런데도 난,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 끝 - 200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