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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24

누가 먼저 그랬나?

김 영 관 (소설가)

도시는 그늘에 잠겨 있었다.

그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지, 누굴 위해서 쓴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는 성이 나더라도, 마침내는 내가 먼저 참아야지.’

그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누구를 잘 안다는 것은 아주 어려워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도시는 비에 잠겨 있었다.

사나흘째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산이 무너지고 강이 넘쳤다.

길이 꽉 막혀 한 시간이면 올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렸다면 누가 이기적인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몰라도 된다.

그가 빗속을 뚫고 서울로 들어왔다고 해서 다음날 비가 그친 것도 아니었으며, 허리가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치자면 비도 그치고, 허리도 나았어야 하지만, 그건 고흐가 해바라기를 마음대로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읽는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하는 말과 짓은 아주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그걸 그를 빼고 누가 믿겠는가!

예를 들어 그가 운전을 하다 오른손을 잠깐 들었는데, 그때 옆에 서 있던 차 안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면 누가 먼저 반갑게 맞아준 것인가?

누가 먼저 손을 들었냐고?

그게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인가.

굳이 따지자면 어찌 되었건 그가 아닌가?

그가 이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 때문이었다.

그가 이기적이라든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가씨, 아저씨라든가 하는 말은 그가 대학에서 가르칠 때 한두 번만 말하면 금방 퍼져나가더라는 것이다. 몰라, 배가 부른 사람은 아기를 밴 사람들만 보이고, 배가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국이 잘 보이는 것과 같은지도 모르지.

그는 한꺼번에 두 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그게 잘 되면 멋진 것이고, 못 되면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것이니 그뿐이지 않는가?

그런 일뿐만이 아니라, 그가 컴퓨터와 문을 고치는데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또 그것 말고도 삶에는 잔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 지치고, 비로소 혼자 남았을 때 반드시 글이 잘 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은 언제나 떠오르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힘이라는 게 남아 있어야 이야기가 마음대로 이리 튀고 저리 튀어도 재미가 나는 것이다. 누가 먼저 무엇을 한 일이 그렇게 뜻이 있는 일일까? 먼저 그렇다고 해두자. 그도 누구보다도 먼저 달리 생각하고,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말, 누가 먼저 그랬나 하는 것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일까?

그게 좀 예술적이라면 말은 달라지지만, 아니 그만 그렇게 생각하지 다른 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맨 처음 높은 산에 올랐다거나, 가장 추운 곳에 갔다거나, 가장 빨리 달렸다거나, 가장 많이 이겼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가 오로지 예술적인 것만 값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게 아닐까?

여기서 그가 생긴 모습이나 이야기하고 지나가야겠다.

키는 작다고 해야 맞고, 살은 쪘지만 어딘가 탄탄해 보인다고 해야 맞고, 머리카락은 진짜 굽실거리고, 얼굴은 잘 생겼지만 눈매는 날카롭고 해야 맞다. 그가 무얼 하는지는 여러분도 넘겨잡았겠지만, 잘 팔리지 않지만 언젠가는 무척 잘 나가리라고 믿는 소설가며, 나이는 올해 쉰하나다.

이쯤하면 여러분도 그가 재미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야기 쓰는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 알 만할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그의 이야기가 재미없기 때문이며, 그것도 아니라면 예의 그 삶의 자질구레한 일 탓에 그가 힘이 빠져 몹시 지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의 그 자질구레한 일들이란, 바로 낡은 문과 컴퓨터와 보일러는 고치는 일이었으며, 거기에 세금을 내러 간다든가, 술을 사러 간다든가, 학교에 무얼 가르치러 간다든가, 식구를 태우고 어디 놀러 간다든가, 냉장고에 물을 넣어 얼음을 얼려둔다거나, 요즘 들어 부쩍 쌓아두게 된 빨래를 한다거나, 그것도 그가 바빠서 그렇게 된 것이지만, 또 읽지 못하고 쌓아둔 신문을 꺼내본다거나 하는 일 따위였다.

그런데 그게 장마가 지면서 더해졌고, 비가 그다음에도 100년에 한 번 온다는 엄청나게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무슨 탓을 잘한다는 것은, 이쯤해서 이제 여러분도 헤아렸겠지만, 하여튼 그는 바빴다.

전에는 그가 어디를 가도 먼 길을 일부러 돌아서갔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으며, 며칠 전에 하도 비가 많이 와서 일부러 한강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간 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술에 취해 무슨 타령을 늘어놓거나 혼자 훌쩍거리며 우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 더 잘되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이야기꾼한테는 오히려 눈물을 줄줄 흘릴 일이 많아야 글이 잘되는 것이다. 그래야 뭘 느끼는 게 있고, 가슴 뭉클한 것이 있지, 이거는 삶은 두부에 풋고추 찍어 놓은 듯 민숭민숭하고, 또 너무 말짱하면 도무지 이야기를 써도 재미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친 삶이랄까, 재미있는 삶이랄까, 뭔가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잔잔히 바라보는 삶이랄까, 그런 게 아니면 그는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까불기만 하는 그런 젊은이들과 다른, 점잖게 무얼 가만히 지켜본다고나 할까, 그 나이에도 거친 장맛비를 일부러 몸소 다 맞고 다닌다고나 할까, 그런 것 말이다.

또 밖은 비가 내리고, 그는 헛배가 불렀다.

‘이건 안 먹어야 될 때 먹은 탓이야.’

그는 간밤에 먹은 막걸리와 소시지와 깐 마늘을 떠올렸다.

‘정말 얼마나 처먹었기에 그렇게 움직였는데도 헛배가 부르단 말이야.’

그는 이제 짜증이 났다.

그래도 그럴 때는 아무 것도 먹지 말아야 된다는 걸, 슬기로운 여러분은 다 알겠지만, 그는 막걸리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먹었다.

장마가 끝나면 매미가 울었고, 매미가 울면 8월이고, 고추잠자리가 날면 가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8월의 첫머리, 매미는 해만 뜨면 새벽부터 울어댔다. 그러면, 매매 가운데 누가 먼저 울어댔나, 하는 것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일까?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짝짓기를 할 수가 있게 되었고, 알을 품게 되었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그 짝짓기를 누가 먼저 했나, 안 했나, 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것도 괜히 하다보면 지치고, 또 안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때가 자주 있어야 하느냐, 일부러 마련해야 하느냐고 누가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면 자주 마련된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또 누가,

“몸만 튼튼하고 마음이 안 튼튼한 사람은 어떤가?”

라고 묻는다거나,

“몸은 안 튼튼한데, 마음은 튼튼한 사람은 어떤가?”

라고 물었다고 치면 그는,

“그건 어느 쪽이든 뭘 잘 모르거나, 제대로 된 게 아니다.”

라고 또 말할 것이다.

“너무 잘난 척하는군.”

이제 여러분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렇다. 그에게 모자라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일부러 거드름을 피운다거나 함부로 남을 업신여기지는 않는다.

“그게 바로 거드름을 부리고 있는 꼴이 아닐까?”

그보다는 정말 여러분이 똑똑한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못 봐주겠군.”

여러분은 이제 그를 만나보기도 싫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그가 바라고 있는 것이라면, 왜 그 혼자 있어야 글이 잘 쓰인다는 그의 말대로,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오늘도 하루 내내 빈둥거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그런 건 아니지만, 글을 쓰다 말다 먹기만 하고, 게다가 막걸리까지 몇 잔 아니 걸쳤으니 배가 불러 터져 낮잠도 자고 해서 그런지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나절이 지나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던지 그는 부리나케 컴퓨터 앞으로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서둘러 썼다.

그건 뭐랄까, 똑똑한 사람이 할일 없이 낮잠을 자버린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나 할까,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하루를 빈둥거리며 놀고먹은 것 같아서 잘난 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디가 좀 모자라는 사람 아냐?”

라는, 여러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그걸,

“그래, 좀 어딘가 달라야 다른 글을 쓰지, 그런 거야.”

하고, 또 스스로 야무지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이제 고개를 좀 숙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보자.

그가 낮잠이 들었다가 아내보다 먼저 깨어나,

“이런, 하루 내내 잠만 자고! 이제 그만 자고, 제발 좀 일어나 일 좀 해!”

하고 말했다면, 그는 아내 앞에서 건방진 게 아닐까, 저보다 남을 잘 업신여긴다는 그 말 하고는.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그는 조금만 무슨 일이 있거나, 더군다나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스스로를 내세우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는 뭐가 그렇게 잘났는가? 글 좀 쓴다고? 그만큼 쓰는 사람은 많다. 얼굴도 잘생기고 머리에 든 것도 있다고? 그런 사람 가운데도 스스로를 낮추는 이도 많다. 그럼 뭐가 그리 못났는가? 키도 볼품없다. 성깔도 보기보다 깐깐하고 지랄 같다. 따지고 보면 좀스럽고 보잘것없는 놈이다.

“난 우쭐대고 잘난 척은 하지만, 거드름을 피우거나 거들먹거리지는 않아.”

그가 핑계를 댔다.

여러분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고 쳐도 하여튼, 그는 좀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여기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는 잘 해나갈 것이다.

도시는 벌써 한 달째 비에 잠겨 있었다.

싹쓸바람도 두 개나 지나갔다.

그런 말이 있지, 지난날의 삶이 보고 싶다면 지금의 모습을 보면 되고, 먼 뒷날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바로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된다고.

그렇다면 지금 그의 모습은 어떤가? 봐줄 만한가, 그렇지도 않은가?

그는 처음에 이기적인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누구를 위해서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다음이라고 했다. 그것은 모든 걸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말이다.

“튀어나오지 않으면 다 살만 하다고? 그게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이라도? 그렇다면 모두 그저 고만하게 살고 있으라는 말이군,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그는 몸속에서 끓어올라 썼던 이야기를 스스로 뛰어난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사람을 살게 하는 글이지.”

“당신이나 똑바로 하시오!”

여러분은 이제 호되게 그를 나무랄 것이다.

“그건 비아냥이지. 비아냥은 위로 하는 게지, 아래도 하는 게 아냐. 난 아랫사람을 위해 글을 썼거든, 하하하.”

그가 왜 웃는다는 말인가?

잘나서? 잘난 척을 해서? 젠 척을 하기 때문에? 우쭐거리면서 못난 걸 감추려고? 그건 여러분이 알라서 생각하기 바란다. 내가 여기에 끼어들어 이러니저러니 말을 하면 여러분은,

“저것도 한패군.”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우쭐거리지 않도록 이야기를 썼으며, 그는 그걸 가만히 들어주었다.

비는 오고 해는 짧아지고, 햇빛은 좀처럼 나지 않아 그런지 매미들은 새벽부터 더 다급하게 울어댔다. 그는 벌써 며칠째 그 다급한 매미들보다 더 우울하게 처져 있었다. 이런 그의 얼굴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보는 사람이 더 가슴이 내려앉는다고나 해야 할까, 늘 이런 얼굴을 무심하게 보아온 그의 아내만,

“얼굴 좀 펴라.”

하고 말해줄 뿐이었다.

누가 먼저 그랬나,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인가?

내세우기 좋아하는 그가 처음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그게 진짜 처음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게 재미는 있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어려운 아랫사람들 위해 이야기를 쓴다는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아랫사람, 아랫사람, 하는 걸 보면, 자네도 윗사람이라는 말이 아닌가?”

여러분은 또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좋다, 그러면 그가 어려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 위해 글 좀 썼다는 게 뭐 그리 나쁜 일인가. 그들을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윗사람들이다.
자, 이제, 이 이야기를 끝마칠 때도 되었다.

나는 그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내가 이 이야기에 나선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도 당신은 끝끝내 그를 감싸고만 있네.”

하고 여러분이 이야기한다면 난 더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내가 나서서 그를 좀 편들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편들겠는가?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일부러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의 일은 혼자 글을 짓는 일이니까, 누굴 만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 끝 - 201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