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발표 소설

           경찰 돈키호테

 

                                              김  영 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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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사라진 정의가 아직 있다고 믿는 경찰 돈키호테의 새로운 전쟁에 대한 기록>



  그는 순경인데도 경찰과 싸웠다.

  요사이야 늙어 막한 나이에 그렇지도 않지만 그가 갓 경찰에 들어온 이십대에는 대공과 수사요원이나 KCIA 정보원들과 곧잘 싸웠다고 한다.

  그것도 교통과 순경이 왜 그들과 싸웠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그때는 1980년쯤으로 그야말로 무서운 독재정치의 시대였기 때문이요,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자다가도, 술 먹다가도 잡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대공과-원래 공산당 간첩들을 잡는 것이 주요 임무였지만, 데모 하는 학생들이나 노동자를 더 잡았다- 요원들이 하필 김덕팔이 사는 동네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 집에는 대학에 다니는 얌전한 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자기 아들을 끌고 가려고 하자 그 애비 되는 사람이 마침 길 가던 김덕팔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바로 우리의 김덕팔이 문제의 사건에 휩쓸리게 된 순간이었다.

  그가 엉겁결에 대공과 요원들을 막았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갈 수가 없어 그랬는지 그것까지야 알 수 없지만 하여간에 어깨 딱 벌어진 한 수사요원은,

  “ 야 임마,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이 새끼가!”

하고 김덕팔의 멱살을 잡았을 때, 그는,

  “아니 같은 경찰끼리 이럴 수 있는 겁니까?”

하고 말했다.

  그 소리에 수사요원들은 피식 웃음이 나와 그만 멱살을 놓고 말았는데, 그 순간,

  “체포 영장 보여 주세요.”

하고 김덕팔이 말했다.

  “어쭈. 이게 점점. 야, 이 놈아 우리가 누군 줄 알아? 응? 우린 대공과 수사요원이란 말이야, 아휴!”

하고 그 수사요원이 기가 차서 말했다.

  “예-. 그러세요. 저는 00경찰서 교통과 김덕팔입니다만, 그래도 영장은 있어야지요. 아참, 각자 신분증 좀 보여 주시고요. 요새 간첩 새끼들이 득실거린다는 정보도 있고 해서.”

  그런데 이 ‘간첩 새끼’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그 수사요원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들이 잡는 간첩이지만 이때의 그 ‘새끼’라는 말은 수사요원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러는 사이에 그 대학생이 튀어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나이 36세.

이제 그의 머리에도 흰 머리카락이 하나, 둘 돋아나 있다.

겉은 새까맣지만 머리카락 속을 파보면 알 수 있다.

  수사반장 김덕팔은 희미하지만 분명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지금 대공과로 간다면 어떨까?

  그러나 가고 싶지 않았다. 수사반장 일도 조금씩 힘에 버거웠지만 그는 전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 또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하늘이나 키 큰 나무들을 한번씩 쳐다보면서 마음을 고쳐 잡곤 하였다. 인간을 의외로 간단한 데가 있어서 이런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때가 많았다.

  어디를 쏘다니기만 하면 피곤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갖고 쏘다니면 기 피곤이 오히려 운동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까마득한 시절. 학교를 졸업하고 순경이 되기까지 몇 년 동안의 일이지만 하여간에 방황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끝낼 일이었다.

  요즘 사건들은 완전 범죄도 아니고 칙칙한 장마의 뒷기운처럼 개운치 못한 것들이 많다. 

   모든 모순들을 독재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 때는 이상한 집단 자살 사건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독재가 사라지자 나약해졌다?

  대서양에서 영국 어부들이 청어를 가득 잡아 항구로 돌아오면 그 청어들이 다 죽어가 값이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배에 메기를 몇 마리 풀어 두면 청어들이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에 항구에 돌아와서도 파닥파닥 살아 있다고 한다.

  요사이 이런 말을 잘못했다간 또 독재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시대는 자유시대로 들어 온 것이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이 스물이었을 때는 경찰 옷을 입고 호루라기를 물고 차들을 세운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마치 흰 장갑을 낀 자신의 손 하나에 세상의 온갖 것들이 가고 멈추는 것 같았다. 그만큼 단순한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그렇게 평온한 시절은 아니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치 시대였다.

  그렇지만 그때도 소매치기는 있었다.

  하루는 예의 그 지점에서 김덕팔이 더위와 차들과 싸우며 교통정리를 하고 막 돌아오는데 웬 녀석이 다다닥 그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한눈에도 이상한 느낌이 팍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잡아라!”

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김덕팔은 녀석의 다리를 탁 걸어버렸다.

  녀석은 대번에 돌 위에 깔딱 나뒹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김덕팔은  녀석의 한 손을 뒤로 비틀어 꺾었다. 

    “아아. 이거 왜 이래요?”

하고 녀석이 발버둥쳤다.

  그 순간에 뒤에서 따라오던 무리들이 후다닥 다가섰다.

  “어어. 경찰 아저씨. 놔 주세요. 우리끼리 장난 친 건데.”
  잘못 들었겠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 참. 내 미치겠네.’

  김덕팔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오늘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리 봐도 강력반 체질이지 이런 교통과 체질은 아니며, 한 10년 후에는 분명히 뛰어난 수사관이 되어 있을 거리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학생들의 유신반대 데모는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었다. 아직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렇게 될 경우에는 여간 교통정리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은근히 그렇게 되면 꽤 신나는 일도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 단속하랴, 날아오는 돌 피하랴, 때로는 주먹 격투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부산, 마산 쪽은 길거리로 사람들이 나와 독재 타도를 부르짖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인생이란 그렇게 외톨이도 아니며 연합적이지도 못하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기어코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김덕팔은 경찰에 들어와 첫 가을을 맞고 있었다.

  10월 26일 이른 새벽.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잡음이 섞인 라디오에서는 장송곡 같은 곡들만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찰에는 당연히 비상근무 지시가 떨어졌다.

  그런데 운전하는 사람들이 얌전해졌다. 거리 분위기가 숙연해져 있었다.

김덕팔이 맞고 있는 지역의 대학들은 휴교령이 내려져 있었다.

김덕팔은 제발 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괜히 거리만 복잡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독자 여러분도 다 알고 있듯이 그들은 거리로 나왔으며 이듬해 새로운 군사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이른바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와 전두환 독재 정권이 그것이다.

  누가 독재를 하든 없는 정부보다는 있는 정부가 낫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것은 7년이라는 긴 독재였다.

  욕심을 채운 자들과 헐벗고 굶주린 자들! 못된 놈들과 그 구분마저 헷갈리는 놈들이 또 싸우는 시대였다.

  ‘이런 세상일수록 될 수 있는 대로 강인한 지구력을 길러 두어야 한다. 그것이 곧 강하고 곧게 살아가는 길이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예술이 없어도 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스무 살의 김덕팔은 명예와 정의감, 약동하는 자연의 힘과 사물을 보는 힘을 더 기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머리 박고 훈련하고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허무만 남는다..

  그러나 경찰 김덕팔이 책읽기와 걷기를 아직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 좀 문제다. 매연과 술, 담배 속에서 야위어 갈 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지.’

  김덕팔은 마음을 고쳐먹고 전에 삐딱하게 서거나, 깨금발 짚는 것 없이, 하루하루 조금씩 두 발로 똑바로 단단히 땅을 짚고 선 채로 교통정리를 했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이란 계단은 무조건 걸어 올랐다.

  집에서 경찰서까지는 자전거로 다녔다.

  다리에 서서히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온몸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좋으려면 다리가 굵어야 된다고 했다.

  큰 키는 아니었지만 등 근육이 좍 펴지니 키도 한 2센티미터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러한 스스로에 대한 신뢰는 얼굴로 퍼져 인물도 전 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돈을 많이 벌 수 없을까? 벌 수 없었다!

  죄를 지어도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너무나 빨리 감옥을 나오곤 한다.

 

  사람들이 네덜란드처럼 자전거를 많이 탄다면 매연을 마시지 않고 교통정리를 할 수 있을 텐데.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탔다. 전에 걷거나 버스를 탈 때보다 훨씬 상쾌했다. 버스를 타도 차비를 내지 않으면 운전사가 은근히 노려보는 게 꽤 신경이 쓰였는데, 참 잘 된 일이었다. 또 만원 버스만 타면 소매치기 잡는다고 신경을 곤두세울 일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전에 한 놈을 격투 끝에 잡지 않았던가.

그래서 특별 보너스까지 받았는데, 하며 김덕팔은 예의 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술과 도덕, 삶. 셋 중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것에 식량, 물, 집, 옷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문명이 있을 것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그는 살 만하지만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죽었고. 동생들은 둘 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쪼개 고향에 좀 부치고 나면 돈은 늘 바닥났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랬듯 김덕팔도 전혀 그런 티는 내지 않았다. 명색이 경찰이라 더욱 그러했다. 남자라 울면 더더욱 안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거리의 매연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자동차 때문에 더 심해졌다고 봐야지.

  마흔다섯의 김덕팔 경비교통과장은 10층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래로 서울역이 우중충하게 보였다. 고속철이 생기면서 산뜻하게 새로 단장했지만 회색빛 거리의 매연과 스모그 현상으로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한 결코 새로워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거리는 차들로 메워져 있고 푸른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부순 자연은 사람이 복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는 자연이 사람을 부수게 될 것이다.

  나이 마흔에 경비교통과장이 되었지만 지금도 과장이다. 만년 과장인 셈이지. 그 동안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김덕팔이 경비교통과장이 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두 동생들도 다 결혼을 해서 그만그만하게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어머니는 좀 아프시지만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다.

  경찰에 들어온 지 세월이 25년 흐른 셈이다.

  그 동안 13평짜리 아파트도 마련했다. 비록 연탄 때는 아파트지만 살 만하다. 서울에 아직 그런 아파트가 있느냐고 독자들은 물을지 모르지만 김덕팔이 지금도 살고 있으니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 아파트 구조 변경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요즘 그 변경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만년 과장인지 모른다.

  그러나 경찰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듯이 세상다고 그렇게 달라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속이라는 것은 1000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사 독재가 사라졌다고 인간의 못된 마음마저 다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음을 합쳐 독재정권을 물리칠 때는 선을 향한다는 구심점이 작용할 수 있었지만, 모든 모순도 독재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사라진 지금 자신은 완전히 맨몸뚱이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 거기에 있는 선과 악을 보여 줄 때인데도 사람들은 화려한 옷으로 그것을 교묘히 가려 버리는 것이다. 악의 치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독자들도 위의 김덕팔 과장의 생각을 읽고 그가 나이가 들면서 꽤 철학적으로 바뀌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이 세월인지 모른다.

  20대의 경찰 때와 수사반장 시절의 30대와 40의 교통경비과장.

   

  “친일파 000는 물러가라!”

  오늘도 시위가 거세다.

  친일파. 그들은 이미 해방 후 반민특위가 만들어졌을 때, 처리되었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줄곧 살아 득세해 왔다면, 모든 기득권을 다 누렸다면, 그것은 분명 그것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한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의 탓이다. 선량한 사람들 탓이 아니다. 김덕팔 과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교통의 흐름을 쉽게 한다는 구실로 데모 막는 경비단나 다름없는 게 요즘 그의 일이지만, 한쪽에서 반일 시위를 하는데도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자 좋다고 많이 찾아오는 걸 보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느끼면서도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전통 문화와 그 한국 남자들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일류 보편의 싸움의 원인이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적 싸움인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김덕팔은 광화문에서 서울 역에 이르는 거리의 경비와 교통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경찰서장이 왔는데 그게 또 유명한 친일파의 아들이었다. 보나마나 앞으로 김덕팔과의 일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 놈들이 한 200년 조선 땅에서 큰 소리 치며 조선 여자들을 노예처럼 잡아갔다. 그 식구들이 다시 찾아오느라고 삼천리 길을 걸어 돈 치르고 데려 오면 동네에서는 환향녀를 화냥년으로 욕을 해댔지만 그게 어디 그 여자들 잘못인가? 힘없는 나라 탓이지.

  그런데 250년 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군 통역으로 따라다니던 천하의 매국노 송병준을 중심으로 왜놈들이 조선 백성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갈라놓고자 만든 것이 바로 1904년의 일진회인데 새로 올 서장의 아버지가 바로 그 일진회 평의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들 이름까지 백일진으로 지어버린 것이다.     

    

  김덕팔이 제일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다.

  거기다 물을 타면 물 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값도 싸고 양도 배가 되고 술독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구들도 물 막걸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자기들 사이다나 주스 마시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꼭 이틀에 한 병을 못 지킬 때도 있다.

  1.2리터면 1.2킬로그램인데 5병만 사도 6킬로그램으로 먼 길을 들고 오기엔 무겁다. 그래도 김덕팔은 이것 하나만은 철석같이 굳게 지킨다.

  그러나 베란다에 쌓인 흰색 막걸리 병은 만리장성 부럽지 않다.

  어제 야간 근무 다음날, 모처럼 쉬는 날이라 김덕팔은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갔다. 원래 식구들과 함께 와야 되지만, 아내는 아내 집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강변을 달렸다. 잠실대교 아래는 푸른 강물이 폭포처럼 장엄한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오다가 그만 막걸리를 사지 않고 집으로 온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 더운 여름날에 다시 오려면 그것도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면 보통 일이 아니다.

  포기냐, 임무 수행이냐?

  고민 끝에 걸어가서 막걸리를 다섯 통 사왔다. 흡족했다.

  왜냐하면 술이 가득하니 집안이 풍성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전화가 왔다.

“아니 김덕팔 과장. 오늘 특별 민방위 훈련하는 날이라 위에서 다 나와 본다는데 집에서 쉬기만 하면 어떡하나!”

  바로 그 친일파의 아들 경찰서장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김덕팔이 세종로 쪽에 도착하자마자 곧 민방공 사이렌이 귀 찢어지게 울렸다. 무지무지하게 더운 날이었다. 머릿속에는 아까 두고 온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지금쯤이면 냉장고 속에서 냉막걸리가 되어 있을 턴데.

  이 민방공훈련은 사람들한테 사이렌 소리 크게 울려서 각성시킨다는 것 말고는 도대체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하기야 각본대로 훈련에 참여하는 부상당한 사람들과 대피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좀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훈련을 왜 생각해 내지 못하는지 그들의 무지가 안타까웠다. 아니 그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의 머리 문제인지도 몰랐다.

  “서장님도 물 막걸리를 드십니까?”

  “그런 것은 마시지 않아요.”

  서장이 직접 시장 순찰을 나온 것이 무슨 의도인지 김덕팔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초등학교 앞에 짓는 공사 말이야.”

  웬 뜬금없는 소리인지 몰랐다.

  “거기 잘 부탁해.”

  무얼 부탁한다는 말인가?

  공사로 거리 교통이 막혀도, 공사에서 나는 먼지와 페인트 분무와 소음으로 학교 공부에 지장이 있어도, 학생들과 행인의 통행이 위험하고 불편해도 참고 가만히 있어 달라는 말인가?

  그건 안 되지.

  “요즘은 시민들은 참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거야 내가 적당히 알아서 할 테니 김 과장은 거 00건설 쪽이나 잘 도와주도록 해.”

  그쪽에서 벌써 서장에게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 초등학교는 이미 급식 문제로 한번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

  학생들의 급식되는 고기가 도저히 일반 음식점에서 못 먹을 냄새나는 오래된 고기를 써서 학생 수십 명이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었다. 신문에도 났지만 다른 큰 사건이 언론을 장식하면서 잊혀지고만 일이었다. 그때도 서장은 참 기가 막히는 재주로 수사를 지휘했다.

     그때도 분명 뇌물이 오고 갔을 게다. 김덕팔은 그렇게 추측했다. 그렇게 계속 살아남는 못된 자와 고통을 참는 사람들. 김덕팔은 서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막걸리는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김 과장.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 법이지.”

  “이놈의 막걸리 처먹는 놈이 뭐 그리 맑은 사람이겠습니까?”

  김덕팔은 술김에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그 ‘처먹는 놈’이란 말이 이상하게 서장을 견딜 수 없게 만든 모양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지만.

  서장은 화가 난 얼굴을 억지로 숨기면서 일어났다.

  “음.”

  서장은 분을 삭이지 못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더니 모자를 집어 들고는 휙 나가버렸다.

  졸장부 같은 놈.

  김덕팔은 다시 한 잔의 술을 따랐다.

  한 단체의 장이 훌륭하면, 거기가 학교이든 경찰서이든 정부이든 민간단체이든 확 바뀌는 법인데.

  김덕팔은 분을 삭이며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은 김덕팔이 취한 듯이 벌컥벌컥 술을 들이마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 김덕팔은 이미 마흔을 넘어 자신의 분을 잘 삭일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가 현명한 것이다.

  그 초등학교는 김덕팔의 아이들이 다닌 곳이었다.

 

  이미 공사가 한창이었다.

  어떻게 학교 바로 앞에 이런 대형 공사 허가가 날 수 있는지 김덕팔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뇌물 사회는 언젠가는 망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게 10년일지 100년일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 더운 여름날에 대형 레미콘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것도 엔진을 들들들 다 틀어 놓은 채! 내뿜는 열기와 매연이 정도를 넘고 있었다.

  똑똑.

  김덕팔이 운전기사 쪽 문을 두들겼다.

  녀석은 두 다리를 쭉 뻗어 핸들 위에 얹어놓고 있었다.

  “왜 그러슈?”

  녀석이 창문을 드르륵 내리며 고개를 약간 내밀었다.

  “공회전 10분이면 과태료 무는 건 아시죠.”

  그렇게 말하며 김덕팔은 이미 과태료 종이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잠깐. 이 경찰이.”

  그 순간에 김덕팔은 그를 날카롭고도 은은한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그 기운에 상대가 움찔했다.

  “아니,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공사하려면 다 시멘트 돌리고 해야지 말이야.”

  자식의 말은 아주 반말에 가까웠다. 김덕팔과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여기 바로 앞애 학교잖습니까?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선생님과 주민들 대표가 바로 고발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 과태료가 문제가 아니라 운전면허가 정지 될 텐데. 그러니 나한테 항의 말고 저 공사장 감독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해주지 않았나, 물어나 보세요.”

  김덕팔의 중후한 목소리에 이 운전사는 어느 정도 알아차렸는지,

  “에잇, 자식들. 내 참 운이 없으려니까.”

  하고 말하고는,

  “그 이왕이면 좀 싼 걸로 끊어 주쇼.”

  하고 말했다.


    김덕팔이 그 00건설 건물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연일 퍼져 나오는 페인트 분무만은 김덕팔도 참을 수 없었다. 주민들이 항의하기 전에 거리로, 식당으로, 집으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연기 같은 페인트 분무 때문에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참으로 지독한 것이었다.

  요즘 아프트도 개조를 하며 곧잘 뿌려대는 통에 김덕팔도 바로 얼마전 옆집 주민과 싸운 적이 있었다. 아이들도 한 달 내내 기침을 쏟아내어 학교에서 주의를 들을 정도였다. 페인트 속에는 얼마나 많은 납 성분이 들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젖은 안개처럼 폐 속으로 스며들면 누가 견디겠는가!

  그런데도 남이야 피해를 입건말건 자기 집만 꾸미겠다는 이기주의!

  덜 떨어진 나약한 자의 표본이다.

  진정 착하고 강한 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자이다.

  “페인트 분무 허가는 맡았습니까?”

  “공사할 때 허가 나는 것 아니오?”

  “예. 페인트 분무가 빠져나가지 않게 창문을 밀폐하고, 공사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한다는 허가죠.”

  “이 사람이?”

   뚱뚱하고 거만하게 생긴 건물주는 씩씩거리고 있었다.

  “공사 중지를 당하고 싶지 않으시겠죠?”

  김덕팔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이거, 무슨 소리야! 당신 서장도 다 아는데.”

  피우던 담배를 탁 뱉고는 검은 구둣발로 짓누르며 건물주가 말했다.

  분명 서장과 이 건물주 사이에 무슨 뇌물이 오고 간 것 같았지만 김덕팔은 모르는 척 태연하게 말했다.

  “아, 이미 서장님도 만나셨어요? 그럼 소음과 먼지, 페인트 분무 때문에 저 앞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주민들의 항의가 매일 들어오는 것도 다 아시겠군요. 주민 대표가 이미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김덕팔의 그 말은 그 주위의 분위기를 어딘가 숙연하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건물주도 할 수 없다는 듯,

  “이봐, 당장 페인트 뿌리는 것 당장 중지하고 우선 차단막부터 쳐!”

하고 화난 듯 말했다.

  김덕팔은 공사장 계단을 내려오며 활짝 개이기 시작하는 파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 건물주가 다시 서장 백일진을 만나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이러한 간신배 조직의 특징은 쑥덕공론과 대책 회의를 자주 갖는다는 것이다. 그 만큼 약해서, 열등감에 젖어서, 그 열등감을 못 이겨서, 위기감에 빠져서 그렇겠지만 반대로 그것 때문에 충신들은 당한다.

  백일진은 기회를 잡아 기필코 김덕팔의 옷을 벗기거나 아니면 먼 데로 쫓아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공사장 소음이나 먼지는 좀 괜찮습니까?”

  김덕팔은 오랜만에 그 예의 초등학교를 찾아가 교무주임 선생님을 만났다.

  “예. 많이 좋아졌습니다. 공사하는데 전혀 소리나 먼지가 안 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여름철인데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교실 창문을 열어 놓고 수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떻게 저렇게 큰 건물을 학교 앞에 짓도록 하가가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김덕팔의 생각과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에. 그게 문제죠. 뇌물 사회. 분명 부정부패인 것을 하나둘씩 정이 라고 받기 시작하면, 거기서 바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    이죠.”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물결처럼 흘러 내렸다.

  “제가 한 번 더 주의를 주겠습니다. 아 참. 요즘 급식은?”

  “네. 그거요. 요즘 문제는 없습니다. 다 여러분들이 힘써 주신 덕분 입니다.”

  운동장엔 마침 점심시간인지 학생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보였다. 어린 학생들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건강만 하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00건설과 건물주, 서장 사이에서 돈 냄새가 솔솔 났다.

‘과연 얼마나 먹었기에 서장은 그 공사에 그렇게 극진한가?’

  그러나 김덕팔 과장은 수사반장이 아닌 경비교통과장이었다.

‘그래, 관두자.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거리로 순찰을 나왔다.

  8월의 무더위는 순순히 물러가지 않았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대번에 온몸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거리는 더위에 조용했다. 인간도 기온과 날씨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시끄러운 밤이나 명절 때보다 이런 거리가 훨씬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김덕팔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이나 차라리 겨울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현명한 생각은 찬 바람이 머리를 스칠 때 두드러지는 법이다.

  더운 날씨에 그 건물 공사 현장으로 다가설수록 소음이 귀를 찢고 것 있었다. 더군다나 뭔가 숨을 탁탁 막히게 하는 것이 또 페인트를 분무하는 것 같았다.

순간,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그 소음과 페인트 때문인지 김덕팔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페인트로 자욱한 현장에는 감독이 있었다.

  “아니, 이거 또 이렇게 마구잡이로 페인트를 분무하는 겁니까?”

  김덕팔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감독을 향해 외쳤다.

  흰색 마스크를 한 현장 감독은 김덕팔을 보며 깜짝 놀라면서도 순발력 있게 고개를 까닥하더니,

  “아, 예. 이거 어제 못 칠한 부분이 조금 남아서-. 금방 끝납니다.”

하고 말했다.

  하얀  페인트 가루가 얼마나 심하게 날리는지 김덕팔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여기 안 되겠군. 공사 중지를 먹어야지.”

  김덕팔은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그를 잡으려는 현장 감독의 손을 뿌리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사장을 빠져 나왔다.

  얼마간 걸어 나와도 여전히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의 대단한 페인트 분무였다. 그는 곧장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곧장 불법 공사 현황에 관한 서류를 꾸미기 시작했다.

-00건설 공사장 소음 환경 기준치 초과. 먼지, 분진 초과로 숨 못 쉼. 페인트 분무 밀폐 도색 위반으로 역시 숨 못 쉼. 공사 중지 요망. 학교 앞이며 주택가 민원 급증-

  어딘가 국어에 문제가 좀 있는 문장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는 기안문이 인쇄되자마자 서장의 결제를 받기 위해 서장실로 곧장 들어갔다.

  -똑똑똑-.

   서장은 보통 아무 대답하지 않는다. 그게 상대를 누르기 위한 무서운 권위의 출발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김 과장이 웬 일이야?”

  서장은 아래위로 김덕팔을 훑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은 어딘가 열등감을 감추고 있는 자들의 특징이다. 뭐 마음이 착한 사람이 주의의 표시로 그런  것이라면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지만, 이게 못된 자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는 것이었다.

  김덕팔이 결재 서류를 내밀었다.

  대번에 서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자네, 정말!”

  서장이 서류를 김덕팔 앞으로 탁 내던지며 말했다. 그리고는 조금 열려 있는 문을 닫으려 일어섰다.

  ‘과연 얼마나 받았을까?’

  “거긴 그대로 내버려둬!”

  “서장님. 학생들이 기침을 쏟아냅니다!”

  김덕팔도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들이 한여름인데도 창문을 열고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가보아도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소음이며 먼지도 너무 심합니다. 아주 약게 불법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봐, 김 과장.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 못 사는 법이지”

  “저는 그렇게 맑은 물이 못 됩니다.”

  김덕팔의 이 말은 결정적으로 서장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그만 나가!”

  서장은 울긋불긋한 얼굴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결재 서류는 놔두고 가겠습니다.”

  “뭐야!”

  김덕팔이 뒤돌아서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결재 서류가 날아가 문을 탁 쳤다.

  00건설과 건물주, 서장이 한 통속임은 분명해졌다.

  학교 선생들과 주민들의 민원은 서장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고 서장은 필사적으로 그걸 막으려고 할 것이다. 선을 지키려는 의식과 정의는 살아 있는 것이다.  

  ‘고기가 뛰어 노는 물.’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초등학교 앞은 언제 봐도 위험했다.

  스쿨존이라는 표시판이 붙은 것도 바로 얼마 전이다. 그것도 어느 학부모 의 끈질긴 투고 끝에 구청에서 민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인도가 없어 아이들이 그냥 차도로 걸어 다닌다. 겨우 길가에 노란 줄을 그어 놓았지만 교차로가 있는 1차선 도로에 차들이 지그재그로 달린다. 머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곡예다. 아차, 하는 순간이면 잘못 될 수도 있다. 실제 여기서 몇 달에 한번 큰 사고가 난다.

  나쁜 놈들.

  제 아들이나 어린 생명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나?

  그게 여러 목숨을 빼앗는 일인 줄 왜 모르나!

  김덕팔은 우선 학생들이 당장 인도부터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청은 아직 예산이 확보 안 되었다고 하지만 그걸 제일 우선으로 예산을 배정했더라면 이미 인도는 설치되었을 것이다. 어린이 사고에

안전에 무책임하다 못해 관심이 없으니 세계 OECD 어린이 사고율 1위가 아닌가! 

  자기 아이들이, 이 나라를 짊어질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공무원으로서, 단체장으로서 조금만 생각한다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곳 초등학교 앞 인도는 언제부터 만듭니까?”

  “네? 거기요? 얼마 전에 과속방지턱 만들었잖아요?”

  저쪽의 구청 공무원은 더 이상 또 뭐가 문제냐는 말투였다.

   “그건 차도고 인도가 없으니 어린이들이 자꾸 차도로 가게 되잖아  요.”

  “그런 건 경찰에서 안전 지도하셔야지요.”

  “내가 매일 아침 합니다.”

  김덕팔은 거의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학생들의 등교를 도왔지만 오후 하교 때와 밤까지 전부 교통안전 지도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좀 기다리세요.”

  또 얼마나 기다리라는 말인가? 아니 되기는 되는 것인가?

   개새끼들!

  김덕팔도 경찰 공무원이었지만 이런 복지부동하는(머리 박고 눈치만 살피는) 공무원을 볼 때면 속이 터졌다. 약은 놈들! 국민의 세금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국민을 깔보는 거만한 탐관오리들!

  “이 달 말까지 기다리겠소. 그 이후엔 우리 경찰에서 이 구청이 왜 그런지, 문제가 있나 없나 알아 봐야겠소.”

  “뭐요?”

  자식이 거칠게 나왔다. 좀 덜 된, 못된 놈이다. 한마디로 김덕팔보다 졸장부다. 그런데 뭘 다툰다는 말인가.

  김덕팔은 아무 말도 없이 뒤돌아 나와 버렸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때는 빨리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기분 나쁜 생각들은 당장 시궁창에 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 웃기는 일 같지만 몇 번 훈련을 해보면 김덕팔도 금방  그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생각을 그렇게 바꾸려고 한 바로 그 순간, 김덕팔에 손에 든 무전기에 무전이 들어 왔다.

  “지금 초등학교 앞 어린이 교통사고. 즉시 현장 출동 바람. 이상.”

  김덕팔은 잠깐 하늘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기분 나쁘던 생각을 조금이라도 빨리 떨쳐버렸더라면 이런 무전은 자기에게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김덕팔은 서둘러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다행히 죽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는 학교 앞 1차선 도로가 2차선 도로와 만나는 곳으로 뛰어나오다 차에 부닥쳐 튕긴 것이다. 바로 그 사고 승용차에 싣고 병원으로 갔다니 어서 빨리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 그 차를 완전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차를 타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는 김덕팔의 심장과 폐가 가쁘게 뛰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올해 이게 벌써 몇 번째 사고인가!

  개새끼들!

  김덕팔의 가슴엔 또 아까 그 머리 박고 눈치만 살피던, 자기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이기주의자 놈들의 생각이 떠올라 불쾌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을 오래 할 김덕팔이 아니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다음 병원에서 그 아이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고자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한 동안 병원에 있어야 할 상태였다. 아이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그렇게 깊히 반성하지 않는 둣한 사고자의 태도를 보며 김덕팔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앞으로는 밤까지 학교 앞에 있더라도 어린이 교통사고는 막아야겠다.’

  김덕팔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횡단보도. 육교. 인도 설치.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그렇게 어려운 것들인가?  외환보유고 세계 4위의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밥을 굶고, 인도가 없어 차도로 다니고, 죽고, 이게 말이 되는가!

  에잇, 개새끼들! 저희들은 잘 처먹고. 도대체 얼마를 먹어야 그 욕심을, 덜 떨어진 욕심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인가? 졸장부 같은 놈들. 뭐가 진정 대장부다운지도 모르는, 착각 속에 사는 불쌍한 놈들. 어진 마음 하나 끝까지 지켜내면 그게 바로 진정한 남자인 것을-.

     

  개발 중인 전기 자동차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고 한다.

  매연도 없다. 그러면 주민들이 매연, 소음 공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만들지 않는가? 전기 자동차가 나온다고 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 정부나 자동차 회사들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랄 석유를 더 팔아먹기 위해 만들기에 게으른 것이다.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일인데도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뭔가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60년대에 달나라를 갔다 온 우주선을 만든 나라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석유를 팔기 위해 거대 석유 기업과 자동차 회사와 정부가 한 통속이 되어 결탁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 자동차라는 말만 나와도 그 차와 회사를 통째로 사버린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지구가 매연에 싸여 온난화가 되건 말건, 천식 환자가 늘어나건 말건, 바다가 기름덩어리로 오염 되건 말건, 자기 배만 돈으로 가득 채우면 만족하는 돼지들이니까!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 큰 차는 미국 다음으로 많고, 비싼 고급 휘발유가 더 잘 팔리고, 기름값이 1리터에 1500원이 아니라 3000원쯤 하면 좋겠다고, 그러면 길에 차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천천히 달리면 사고는 훨씬 줄어든다. 그래서 김덕팔은 공해도 소음도 없고 아직 속도도 느린 전기 자동차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니 그것보다 아예 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이 돈키호테 경찰은 당장에,

  “이봐, 차 순경. 내일부터 저 초등학교 위쪽과 아래 지하철역 쪽 모두 막아!”

  “넷?”

  어리둥절하여 두 눈을 위로 치켜 올린 차 순경이 말했다.

  “아니 그긴 또 왜요? 주민들 반대가 만만찮을 텐데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자네는 어제 사고 난 거 모르나! 모든 책  임은 내가 진다.”

  일은 커지고 있었다. 당장 다음 날 아침 초등학교 쪽으로 들어가려는 차들과 지하철역 위에서 초등학교를 지나 위로 올라오는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경적이 울리고 운전사들이 차에서 한둘 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아니 여길 막으면 어떡해!”

  “오늘부터 여기로 못 다닙니다.”

  차 순경은 땀을 빨빨 흘리며 말했다.

  “아니, 글쎄 왜!”

  “어제 이 학교 어린이 차사고가 나서요. 오늘부터 이쪽으로는 못 다닙니다.”

  차 순경의 말에 운전자들이 쉽게 고개를 끄덕여줄 리가 없었다.

  상황은 위쪽이 더 심했다. 거기는 큰 길이 붙어 있는 곳이라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아잇 참. 갑자기 여기를 막으면 어디로 가란 말이오?”

  “유턴해 뒤돌아서 가시면 지하철역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    다.”

  김덕팔은 모든 걸 각오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제 여기 초등학교 학생 하나가 크게 다쳤습니다.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벌써 올해만 세 번째 교통사고입니다. 작년에는 한 학생이    죽었고-.”

  김덕팔은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자신도 숙연해졌다. 그러자 비록 한순간이지만 그 주위의 분위기도 조용해지고 있었다.

  하나 둘씩 차를 돌려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 우리 좀 돌아갑시다!”

  그해 결국 그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안전하고 넓은 스쿨존 속에서 단 하나의 교통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반대했을 서장과의 마찰을 김덕팔이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추측컨대 00건설과 건물주가 돌린 뇌물 때문에 서장은 꼼 짝 못했으리라고 대충 짐작할 뿐이다.

  하여간에 김덕팔의 승리였다. 아니 어린이들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의 승리였다.
    

  그들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서울시내 곳곳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그냥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다. 100만원은커녕 한달 수입이 전혀 없거나 50만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병원은 요원한 성이다. 거대하고 높은 하얀 벽이다.

  김덕팔의 동네에서도 좁은 골목을 돌고 돌면 어김없이 그런 집들이 나타났다.

  “안녕하셨어요? 어르신.”

  “어이구. 고마워요.”

  그들은 하나같이 쌀이나 먹을 것을 들고 오는 김덕팔을 고마워했다. 구청에 잘 이야기하면 몇몇 사람은 평생 쌀을 한 포대씩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게 정확하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 문제가 있었다. 집나간 아들딸 들이 버젓이 호적에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적으로 그들이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인데 제 부모를 버리고 간 자식들이, 또는 빚에 쫓기고 있는 자들이, 또는 어디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자식들이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국공립병원은 돈이 치료를 못 받는 진정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 그들 중 몇몇 사람만이 나쁘게 속이면 뭘 얼마나 속인다는 말인가? 몇 백억, 몇 천억씩 나랏돈 공적자금 100조원을 나눠 가진 놈들도 많은데 왜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돈 더 들어가는 것 가지고 난리들인가! 한때 수사반장이었던 김덕팔이 그런 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무슨 횡령, 뇌물, 불법 거래 수사를 조그만 하려고 해도 어디선가 압력이 들어왔다.

  “그거 적당히 해두시고, 또, 지금 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로 옮길 때가 있지 않겠소?”

  “-.”

  그 때는 왜 그렇게 대항을 못했는지 김덕팔은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지금 자리가 잘리까봐?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자식과 아내와 살 길이 두려워서?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더 높은 자리가 탐나서?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위쪽이라면 무조건 두려워서?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나 보통 그렇게 하니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아-.

  김덕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김덕팔이 아니라는 것은 독자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국공립병원은 진정 가난한 자들에게 무료 치료를!

  김덕팔은 진정 그렇게 되도록 앞으로도 계속 힘을 쓸 것이다.  


  “어이구, 우리 손자 좀 살려 주소!”

  허리가 휜 할머니가 김덕팔의 손을 놓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바깥에 나다니지 못한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글쎄, 이런 편지가 군에서 왔는데.”

하고 말하며 그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손자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거기엔 ‘김상철 일병.  총기 사고. 중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할머니는 그걸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이다.

  “제가 한번 알아볼 테니 걱정 마세요.”

  “아이구. 고맙소. 정말 고맙소.”

  할머니는 아들벌인 김덕팔에게 수도 없이 절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김덕팔은 그 종이 쓰인 대로 부대를 찾아 전화를 했다.

    “김상철 일병 병세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마침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그 부대를 찾아 갔다.

  “그냥 총기 사고예요. 자기가 총을 잘못 만져 방아쇠를 당긴 모양이에요.”

   자기에게 총을 당긴 총기 사고라니? 뭔가 이상했다. 앞두기 맞지 않았다. 김덕팔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수사 기록을 보여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완강히 거절했다.

  김덕팔이 여러 정부 기관의 신문고를 두드린 끝에 언론에도 보도가 되면서 사실은 점점 드러났다. 총기 자살이었다. 도대체 왜?

  김상철 일병은 군기라는 이름으로 선임병들의 공포 분위기와 폭력을 견디어 내지 못한 것이었다. 아직 내무반 구타는 존재했던 것이다. 할머니 밑에서 착하게만 자랐던 김상철 일병은 2년간의 군 생활이 끝난 후 일상인으로 돌아올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그에게 그런 인격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기계의 소모품처럼 그를 부리려고 했고, 순진한 그의 모든 희망을 부정하며 속이며 빼앗아 간 것이다. 김상철 일병은 직업 군인이 아니다. 그는 단지 2년간의 국방 의무를 치르기 위해, 납세의 의무처럼, 의무 교육 기간인 6+3년의 학교처럼 2년간 군대에 들어 온 것이다. 그는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의무를 다하지 않고 돈을 탈세하는, 돈으로 병역을 빼돌리는 자들과는 다른 것이다.

  무식한, 무자비한 공포 분위기의 조성!

  왜 그들은 장교와 동등한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노예란 말인가! 훈련 때가 아닌 내무반에서도 왜 그들은 끔찍한 긴장 속에서 눈치를 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고, 간식을 먹어야 하는가? 그들이 사람이 아니고 어디서 데려온 노예란 말인가!

  이건 군대의 무자비한 침묵 속의 폭력이며 뻔히 알고도 고칠 줄 모르는 범법 행위인 것이다!

  김덕팔은 하루에 몇 번이나 낮이고 밤이고 슬쩍슬쩍 경찰 내무반을 돌며 분위기를 살폈고,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시민을 지킨다는 경찰의 명예를 그들과 직접 이야기하고 했다.


  군대를 가지 않겠다고 국적을 포기하는 잘 사는 자들과 불의와 뇌물과 일제 피해자들이 전혀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나라를 믿지 못해 국적을 포기하는 못 사는 사람들! 친일을 하면 3대가 잘 살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해지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한국과 터키가 3,4위전을 치르는 날에, 서해에서는 북한과 해상 교전이 일어나 6명이 죽었고, 그날 동해에서는 금강산 유람선이 떠났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찰 경비교통과장인 김덕팔도 혼돈스러웠다.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국 국적을 찾지 못했다. 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러시아, 중국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망명한 사람에게 호적이 남아 있겠는가! 그의 아들은 사생아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의 땅도 못 찾고 있다. 친일파 송병준을 비롯한 그 자손들은 왜놈들이 제 멋대로 나누어준 제 아버지 땅을 재판에 승소해  속속 찾아 가고 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왜 그런 재판이 나올까? 재판관들과 법원과 일제의 잔재는 관련이 많을 것이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과감하게 자신의 친일 잔재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졸장부들. 착하고 가난한 자들을 심판할 수 없는 자들이라면 그 재판은 우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돈과 증거 앞에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김덕팔은 수없이 보아 왔다. 정의롭고 착하니까 가난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서장의 아버지도 나중에는 친일파 경찰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서장도, 구청도, 시청도, 나라도 그 모양인지 모른다. 페인트 분무와 공사 소음에 주민들과 학생들이 시달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뇌물을 챙기는 자들.

  정의와 선을 끝까지 지키려면 강인해져야 한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야 불의와 악에 맞서 자신과 식구들을 지켜낼 수 있으니까. 불의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호시탐탐 사람들을 노리고 모의하고 치밀하게 습격한다. 그렇게 간단한 놈들이 아니다.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는 놈들이다. 그러니까 항상 주의하며 경계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그들의 비수가 날아들지 모르는 것이다. 항상 준비 태세를 갖추어라. 소크라테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적은 있어야 한다. 친구는 충고를 적은 경고를 해 준다고. 오죽 적들이 많으면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하였겠는가!

  적들은 사방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바로 네 앞에, 네 뒤에, 네 옆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김덕팔은 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로운지도 몰랐지만 그건 이제 이미 벗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외롭지 않으면, 고독하지 않으면 외로웠다. 푸르고 시린 하늘을 봐도 외로웠고, 먹구름이 몰려와도 외로웠다. 꽃바람이 불어도 가을바람이 불어와도 외로웠고, 하늘에서 흰눈이 펑펑 쏟아져 내려도 외로웠다. 이미 본능적 고독과 외로움은 버릇이 된 것이다. 그걸 떨쳐 내려고 김덕팔은 노력했다. 이제 그의 나이 마흔 여섯이니까.

  끝까지 어질게 살려면 강해야 한다!


  요즘 청소년 가운데 얼마나 발랑 까진 놈들이 많은가? 그런데 대학생들은 그렇지 않은가? 점잖지 못한 어른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경우의 수는 똑같은 것이다. 다만 공손이라는 우리의 문화는 남아 있다.

  김덕팔의 아이들도 전에 이야기했던 그 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00중학교에 다닌다. 그들이 결코 공손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발랑 까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교육이다. 집안 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

  공부 시간에 떠들고, 자고, 선생님이 주의를 주면 대는 학생들은 분명 교육이 필요하다. 그걸 그냥 놔두면 그 학생이 점차 불행해 지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따끔하게 야단을 치든, 매를 들든, 내쫓든 해야 한다. 그 학생이 반항하더라도 더 매섭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나쁜 학생이나 선생님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덕팔도 아이들에게 분리수거를 시키지만 아이들은 버리기 쉬운 종이만 들고 가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이나 음식물, 쓰레기봉투 버리는 일은 어느 사이엔가 김덕팔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물론 어쩌다가 큰 놈이 그래도 재활용품을 버리는 일이 있어도 그건 아주 드물어졌고, 간혹 김덕팔이 부부 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나태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크게 질러야 그들은 겨우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을 집어 들었다.

  그의 아내는 음식과 설거지 담당이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아예 쓰레기 분리수거와는 무관하다.  그것도 이상하게 굳어진 제도이지만 돈 잘 못 버는 김덕팔로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도저히 큰소리를 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청소년 교육이야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갔지만 하여간에 그런 것도 집안 교육에는 중요한 것이다.

  다음은 사회 교육 이야기.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니기만 하면 되나?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위험한 짓을 하거나, 아주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그다지 옳다고 볼 수 없다. 김덕팔은 경찰이라 그런지 늘 그런 청소년을 볼 때면 타이른다. 그러면 그들도 한두 마디 변명을 하다가도 알아듣겠다는 시늉을 한다. 표현이 서툴러 그렇지 그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신을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 그런 청소년과 부모들에게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스티븐슨의 ‘젊은이여, 인생을 이야기하자’라는 책을 권한다.

  아니 여기서 다시 이야기로 빨리 돌아가야겠다.

  “오늘 저 아저씨 나한테 뭐라고 하면 한판 붙을 테야.”

하고 앞에서 걸어오는 몇몇 청소년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분명 들렸다.

  그러나 이럴 때 김덕팔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 옆을 지나갔다. 그 순간 김덕팔 바로 옆에서 그들이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그는 모른 척 지나갔다. 청소년 시절에, 젊은 시절에 누구에게나 있는 혈기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지나간 청소년들이 머쓱할 정도였다.

  또 한번은 김덕팔이 사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 청소년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그렇게 단정한 모습은 아니었다. 김덕팔은 인도 한쪽으로 바짝 붙어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청소년의 행동이 좀 이상했다. 김덕팔과 거의 마주치는 방향으로 슬쩍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부닥치기 직전 얼른 김덕팔이 눈치 채고 인도 아래쪽 아스팔트에 내려섰다. 그런데 이 칭소년도 내려서며 김덕팔 바로 앞으로 딱 마주치는 게 아닌가? 일부러 그런 것이 분명했다. 이럴 대는 한마디 하는 것이 그 청소년에게 좋은 것이다.

  “너 왜 그래? 내가 일부러 피해 주는데, 저기 넓은 인도 놔두고 왜 이리로 와?”

하고 말했다.  

  그 말에 좀 당황한 청소년은 우물쭈물하다 그냥 돌아섰다. 그러니까 보통 어른들이 그럴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재미로 이 청소년은 느껴 온 것이다. 마치 그렇게 해야 자기 자신을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잘못 된 어떤 열등감에서 나온 행동이란 것을 김덕팔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사는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또 이런 사회에서나 그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교육하는 부모나 선생님이나 어른들도 함께 사회성을 기르는 방법을 배워 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8월의 여름밤은 무덥다.

  김덕팔은 여태껏 에어컨을 집에 사용한 적이 없다. 자동차의 에어컨도 웬만하면 켜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창문을 늘 열어둔다.

  그런데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그 무더운 밤이면 열어둔 창문으로 따다다, 일부러 굉음을 내면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그들은 지옥에 가면 바로 귀 옆에 천날 만날 그 오토바이 소리를 듣는 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 역시 그 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남을 괴롭히면 결국 자기 자신도 괴롭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들을 단속해 보면,

  “죄송합니다. 헬멧, 잠깐 나왔다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요.”

하고 김덕팔이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해댔다. 헬멧 미착용, 소음 기준치 초과였다.

  “이봐, 일부러 그렇게 크게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시끄럽지  않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데요.”

  그들은 하나 같이 그런 소리를 했다.

  “신호등에서 다시 출발할 때 천천히 엑스레이더를 밟아야지. 세게 밟아서 그렇잖아.”

하고 말하면 대게는,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요즘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주택가 안에서는 살살 다녀야 한다. 천천히 달리면 사고도 소리도 나지 않는다. 언젠가 김덕팔이 일본에 갔을 때, ‘천천히 달리자’라는 글자가 도로 곳곳에 쓰인 것을 보고, (그래, 바로 저거야, 달리기는 달리는데 천천히 달린다? 그래, 그러면 사고도 잘 나지 않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네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경찰을 향해, “바카(바보)!”하고 소리치며 달아나는 놈들도 있었다. 또 김덕팔이 며칠 골목안 작은 여관에서 묵는데도 새벽에 , 따다다, 소리를 내며 골목을 도는 폭주족이 있었다. 최근에는 그들이 다니는 길목을 다 막고 그물로 그들을 단속하고 있다고 했다.

  김덕팔이 누구인가? 교통경비과장 아닌가!

  김덕팔이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만에 김덕팔 지역구내에서 폭주족과 소음 오토바이는 사라졌다. 과잉단속이니 말이 많다고 경찰서장 백일진이 그만 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경찰서 게시판에는 소음, 매연 잘 단속해서 고맙다는 구민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순찰하는 일도 김덕팔의 일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대게 가난하고 많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병원에 갈 돈은 없었다. 그러나 김덕팔은 그들을 경찰차에 실어 보건소에 곧잘 데려다 주었다. 서장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민중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 원래 경찰의 임무 아닌가? 게다가 낮에는 경찰차가 한가한 편이었다.

  김덕팔은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한 할머니가 종이와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이른바 극빈자 보호 조치로 오늘 이 할머니는 거리  청소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 할머니 옆에는 다른 할머니와 또 다른 할머니들과 그리고 몇몇 할아버지들이 버려진 휴지와 쓰레기들을 줍고 또 모우고 있다. 따가운 여름 햇살을 피하기 위해 머리와 귀를 하얀 수건으로 덥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은 보통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다. 마치 세상일들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하루 벌어서 들어오는 돈, 이른바 일당 20000원.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살기 위해서 꼭 벌어야 할 돈이었다.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는 되어야 끝나는 중노동이었다.

  이 할머니는 근처 움막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도 식구들이 있었건만 모두 이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이 모두 결혼해서 버젓이 살아 있건만 어느 쪽에서도 찾아가지도 찾아오지도 않는다. 벌써 7년째, 서로  아무 소식 없이 지낸다. 그것이 아들과 딸들에게는 좋은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내쫓은 것이다. 집은커녕 생활비마저 주지 않으니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버린 것이다. 

  그러나 김덕팔은 이 할머니가 한번도 자식 원망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원망스럽게도 한번도 할머니는 자식을 욕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뭔가 가슴이 콱 막혀 와 도저히 그냥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식구도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창조적으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작업 공간, 도서관, 한기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집, 텃밭-.


  엄마 아빠 없이 끼니를 굶는 아이들.

  이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에게 김덕팔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엄마가 있어도,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또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오늘밤도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비를 피하기만 하면 다행인 집에서 살기 때문에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굶은 아이들의 몸무게는, 동생이 14킬로그램, 초등학교 2학년이고, 형은 18킬로그램, 초등학교 5학년. 둘이 합친 몸무게가 보통 초등학교 3, 4학년 무게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서울 하늘에 뜨는 별보다 훨씬 많다.

  이게 2000년대의 한국 현실이다. 한쪽에서는 흥청망청 음식을 버리면서도, 수 십 억씩 사기를 치며 국민의 돈을 낭비하면서도 우리 곁에는 피와 부모의 살내음을 그리워하며 굵은 눈물방울을 못내 뚝뚝 떨구고야 마는 어린 아이가 있다.     

  아이는 아이다. 천진한 얼굴과 생각의 초등학교 2학년짜리에게 언제까지 우리는 동심을 잃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덕팔은 그 아이의 눈물을 보았다. 할머니 하나  믿고 사는 그 아이는 제발 할머니 죽지 말라고, 할머니 없으면 이제 난 누구하고 어떻게 살라고-. 할머니가 죽고 난 다음 세상에 홀로 던져질 두려움을 그 아이는 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참다 참은 굵은 눈물방울을, 그 2학년짜리가 뚝뚝 흘린 것이다. 김덕팔은 그 눈물을 기억하리라 마음먹었다.

  "저녁은?"

  "라면요."

  방바닥에는 라면 봉지와 이불과 빨지 않은 옷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때까지도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불안해하는, 막연히 두려워하는 얼굴.

  그렇지만 김덕팔도 시간이 가고 일에 지치면 아이들의 일을 잊곤 했다.

  그 아이의 눈물만은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벌써 며칠 사이에 몇 번이나 잊었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 아이는 요즘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제 초등학교 2학년짜리에게 가혹한 인생이 아닌가.

  아이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간 다음, 친할머니가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아이의 형은 아프다. 전신의 근육이 굳어지는 병명도 모르는 병, 아이의  형은 언제 움직이지 못할지 알 수 없다. 요즘은 학교도 자주 쉬고 같이 집으로 돌아올 때도 형은 몇 번이나 앉았다 자고 한다. 그 아이는 조금이라도 빨리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은데-. 그래서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 세 식구가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데-.

  학교 급식은 왠지 눈치가 자꾸 보여 겁이 난다. 친구들과  같이 먹기는 하지만 그건 분명히 남은 밥을 주는 것임을 안다. 반찬도 남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그러나 밥과 반찬은 언제나 많이 남아 아줌마들이 많이 싸가지고 가곤 하는 것도 안다. 그 밥을 저녁으로 좀 더 주면 좋을 텐데, 그것마저도 자주 말을 못했다. 정말 배가 고픈 날이 계속되면 그렇게 말을 했지만.

  아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삼킬 줄  알게 되었다.  울어봐야  소용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도 아빠도 없다. 집나간 엄마가 그립지만 그리워하면 안 된다는 것도 어렴풋이 자꾸만 알게 된 것이다.  자기를 버린 엄마. 술만  먹다 자동차에 치어 죽은 아빠는 아직 무섭다.

그들에게는 오직 할머니만 있을 뿐이다.  할머니 제발 죽지마.

이 아이에게 동정을 베풀기에는 사실 김덕팔도 힘이 모자랐다.

  조금씩 도우며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제 힘이 빠졌다. 사악한 세상에 김덕팔도 지쳤다.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를 테지, 세상이 얼마나 사악한 줄을.

  악의 무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 많단다. 악이  아니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놈들은 자기 자신이 위선적이라는 것을 도저히 알지 못하니까. 아니 알아도 안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아이야, 네가 지쳐 쓰러지면 나도 어떡할 수가 없단다.

  나를 욕해라, 그리고 믿지 마라.

  약고 더럽고 치사한 놈들은 바로 주위에 있다. 몰인정한 놈들, 덜 떨어진 놈들, 못된 열성의 인자를 갖춘 놈들은 바로 악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가난한 아이들 근처에도 이런 놈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죄악이다.

  김덕팔의 생각이 대체 이 아이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그는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것, 그리고 밥을 굶는 다는 것, 할머니마저 아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두려움,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

  아이는 엄마를 그리며 학교에 간다. 돌아올 때도 아이는 혼자 타박타박 걸으며 온다. 가끔 부럽다, 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가는 아이들이.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있고 형이 곧 올 테니까  좋다. 숙제하고 밖에 나가 놀 때가 제일 좋다. 이 동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있어도 다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축구도 하고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도 할 수 있다. 배고프면 라면을 혼자 끓여 먹을 수 있으니까. 아직 몇 개 더 남아 있는 것을 어제 분명히 봐두었다. 아, 그 라면 맛이란 정말 좋다, 이번 추석이 오면 또 어디선가 라면을 한 상자나 갖다 줄 것이다,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아무 착한 일도 안 했는데 설이나 추석 때면 한 번은 라면을 준다,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 라면이 떨어질 때 그때는 또 점심을 굶어야 한다.

  돈과 아이.

  수 십 만 원짜리 식사와 라면 한 봉지.

  가난과 돼지 같은 부자.

  그저 가끔 토요일 텔레비전 사랑의 리퀘스트에 전화하면 되는가?

  떵떵거리다 죽어가는 은행, 기업 살린다고 백성의 돈 100조원을 쏟아 부어?

  그 돈이면 몇 십년간 이 아이들 전부 배부르게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고 재울 수 있다!

  정의는 살아 있다는 것!!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것!!


  자기에게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 점에서 김덕팔은 운이 좋은 것이다.

  김덕팔이 보기에 대게의 실업자나 청소년이나 불행한 사람들은 적재적소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불만이 커지고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떠나게 되고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골목 청소를 하는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은 그날 일당을 받으며 그래도 보람 있게 일을 했다. 그런데 청소년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고, 있어도 자기 친구들 보기 부끄럽다면 하지 않았다. 그려면 미술관, 관공서, 운동경기장 시설 설치, 준비요원으로 쓴다면 훨씬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고리타분한 관리들은 그런 머리를 쓸 줄 몰랐다. 판에 박힌 것이다. 안일무사만 바라고 자기 자리만 지키는 복지부동!

  모든 사람들이 적재적소에서 일을 할 때는 범죄나 교통사고도 훨씬 줄어드는 법이다. 희망찬 거리가 될 것이다.

  하루는 김덕팔이 서장에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경찰지구대 2층을 청소년 공부방, 혹은 어르신 쉼터로 빨리 실시하자고 했을 때, 서장은,

  “몇몇 지구대에서 하고 있잖아! 자네 일이나 잘 해!”

하고 말했다.

  그럼, ‘서장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억지로 꾹 참았다. 

  청소년, 대학생,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몇 경찰지구대 2층 공부방으로 몰려  들었다. 멀리서 공부를 하다 기지개를 켜는 학생들을 바라볼 때면 김덕팔은 참 기분이 좋았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경찰의 역할을 그야말로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덕팔은 가끔 그곳에 들러 커피나 녹차를 주며 격려했다. 그런 곳에 근무하는 경찰에게도 이상하게 생기가 돌았다. 은근히 좋은 일을 하며 정의를 지키는 그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만 더 노력을 하면 될 것을, 한 부서의 제일 윗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조금만 바뀌면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 될 수 있다.

  공해와 소음도 줄고, 깨끗한 거리엔 푸른 나무들이 늘어가며, 시냇물까지 흐르게 되고, 곤충과 새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마을! 그 속에 사난 사람들은 생기가 돌고 서로에게 은은한 미소를 던지곤 한다.


  가난해서, 부자라서, 헤어지는 이유도 갖가지였다.

  식구들은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헤어지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해 서로를 지켜내어야 한다는 것이 김덕팔의 생각이었다. 어릴 때의 이혼 가정은 아이들에게 치명타다. 너무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교육적으로 물질적으로 나라가 족지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깨우치고 아이들을 위해 이혼하지 않고 잘 살도록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김덕팔도 무슨 강연회 같은 것을 믿지 않았지만 각 동네에서 여는 강연회에서 훌륭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여류 언론인 출신의 ‘모진 사회 속의 가정 지키기’라는 강연은 참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참석자 모두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모두 얼마 동안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깨지기 쉬운 유리잔을 손바닥에 얹어놓듯 가정을 지켜왔다는 것.

  그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 모두 숙연히 듣고 있었다. 비록 책을 통해 깨우치지 않더라도 자연과 교육을 통해 폭력으로부터도 가정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 공부방 하나만 있으면 모두 그리로 모여 공부도 하고 어울려 놀기도 하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이지만 때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게 과연 어려운 일인가?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방 하나 더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이야기하면,

  “그 근처 하나 있잖아요. 뭐 우리도 예산이 남아도는 줄 아세요?”

  그 근처가 아니라 다른 동에 하나 더 있기는 있지. 그리고 그 예산이 어떻게 너희 것이냐? 백성이 낸 세금이지. 이 탐관오리 같은 놈들. 백성의 피와 땀과 눈물이다, 그것은!

  부자들의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이상하게 정에 지쳐 있었다. 전혀 부족할 것이 없는데도 그들은 돈을 물건을 훔치고, 어린 학생들 돈을 빼앗고 때렸다. 경찰서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어느 정도 먹기만 할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인생과 교육과 자연이 그들 앞에 펼쳐져야 하는 것이다. 그게 정상적으로 크지 못할 경우, 비틀린 어린 식물처럼 자라게 마련인 것이다. 장애물을 스스로 비켜가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을지문덕은 한 번 더 장군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래서 수나라 대군을 살수에서 물리쳤는지도 모른다. 허심탄회!

  과연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권력과 부를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정의를 지킨다고 하지만 결국 오랫동안 자리에 남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게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돈 100만원을 위해서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김덕팔도 수사반장 시절까지 한달 100만원 남짓한 돈을 받고 생활했다. 그래서 부정부패한 공무원이 많이 생긴다는 것은 그들의 핑계다. 을지문덕, 이순신, 돈키호테, 김덕팔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도 정의를 지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을지문덕은 최고의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두 번째 장군의 자리를 사양했으며, 이순신은 3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한낱 병졸도 되지 않는 굴종을 무릅쓰고 백의종군으로 나라를 지켰다. 스페인의 돈키호테는 모두가 정의가 없다고 믿을 때도 혼자서 말을 타고 정의를 찾아 떠났다.

  김덕팔. 그에 대한 생각은 독자에게 남겨 두기로 한다. 과연 현대에도 김덕팔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의로운지, 아니면 현대에는 그런 것은 없는지, 김덕팔과 같은 사람이 있기는 있는지, 앞으로 이 모든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


  끝까지 착하려면 강인해야 한다!

  김덕팔은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나약하면서 착한 것은 위선이다. 그것은 곧 악과 비굴로 떨어질 것이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말이다.

  버티기 위해서 김덕팔도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산에도 오르고, 30킬로미터의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길은 늘 걸어 올랐고, 그럴 때마다 큰 나무들은 그를 지켜 주었다.

  경찰서에서는 서장이 보기 싫어 걸었고, 일에 힘이 들어 또 걸었다. 거리를 순찰할 때는 안전이라는 사명감에서 힘차게 걸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지친 발걸음에도 석양과 바람을 안고 걸었다.

  그러는 사이에 몸과 마음은, 인생은 스스로 단련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이 20년이 흘렀다. 계속 더 걸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강인하지 않으면 제 자신도 나라도 지킬 수 없다. 양심과 아름다운 나라는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놈들에게 또 나라를 넘겨주어야 한다. 35년의 피를 받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 그 피를 빨아간 왜놈들! 그들이 저렇게 행동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언제가 다시 호전적으로 침략주의 전쟁을 꼭 하겠다는 말인 것이다. 간단한데 그걸 모르는,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도? 독도라? 독도를 지킨 33인의 수비대?

  그때 갑자기 김덕팔의 머리에서 독도 경비단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하여간에 난데없이 독도가 김덕팔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것이 훗날 김덕팔과 나라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거기로? 거기로 떠날까? 그냥 떠나는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 떠나니까.

  독도 경비단이라-.


  “김 과장. 독도 경비단장으로 가지 않겠소?”

  김덕팔을 제거하기 위한 좌천이었다.

  서장의 가냘픈 눈매가 안경 너머에서 또 빛나기 시작했다.

  간신들의 눈은 부리부리하거나 정의로운 빛이 없었다. 뭔가 음산한 저의가 깔려 있는 눈빛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보다 뛰어난 인물에게 어떻게 이겨 볼까를 생각한다. 덜 떨어진 열등감이다. 온통 열등감으로 가득 찬, 도대체 사랑이라고는 받아 보지 못한, 자연이라고는 느껴 보지 못한 불쌍한 놈들이다.

  “갑자기?”

  독도로 가고 싶다던 생각이 이렇게 맞아 떨어질 줄은 몰랐다. 가슴이 갑자기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아니, 가죠.”

  김덕팔은 그렇게 말했다.

  서장이 웃고 있었다.

  웃거나 말거나 김덕팔은 결심을 굳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독도 경비단장 김덕팔, 임명을 받았다.

  독도.

  독도라-.

  일본이 다시 독도를 제 땅이라고 우기는 작업이 한창 때였다.

  김덕팔의 단순한 생각에는 독도와 대마도를 맞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거야 이쪽의 생각이고, 또 동해를 지키기기 위해서는 대마도보다 독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감히 바꿀 수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제는 그가 독도 경비단장이 아닌가! 그 50년 전 바로 민간인들이 지켜낸 의용(의협과 용맹)독도수비대가 아닌가! 그들 33인이 없었다면 독도는 벌써 왜놈들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박격포 하나와 기관총과 소총으로 쳐 들어오는 왜놈들의 순시선을 포격했고, 왜놈들이 국제적 전쟁이 생길까봐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그래서 1950년대, 1960년대의 독도를 무사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왜놈들은 의외의 것에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그게 바로 도둑 제 잘 저린 것이고, 솔바람 소리에도 놀라는 것이다.

  인간사나 세상사나 독도수비대처럼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직이며 진리이며 행복이다. 심플이즈더베스트딩이라는 아르키메데스의 말도 있지.


  김덕팔은 순시선을 타고 독도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괭이 갈매기들조차 날지를 못하고 배에 모을 웅크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과연 배가 무사히 접안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접안하지 못하면 고무보트로 갈아타거나, 만약의 경우에는 되돌아 갈 수도 있었다. 

  20명 정도의 독도경비단은 배를 기어코 접안시키기 위해 비좁고 위험한 간이 부두위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새로 오는 경비단장에게 처음부터 잘못 보였다가는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 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풍이 불어 뱃머리가 바닷물 속으로 곤두박질치다간 다시 솟아오르곤 했다. 3, 4미터의 높은 파도였지만 김덕팔은 고무보트를 준비시켰다.

  고무보트에서 떨어지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고무보트에 둘러쳐진 끈을 두 손으로 잡고 등을 기대고 다리를 삼각형으로 벌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두 명의 대원이 같이 타고 있었지만 다른 보급품은 파도가 잔잔한 날 다시 실어 나르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무보트가 가라앉을 듯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김덕팔의 눈에도 삼형제봉과 촛대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삼형제봉의 바위 구멍이 바닷물을 삼킬 듯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촛대바위도 가냘프게 간들거리고 있어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이 콘크리트 임시 부두에 보트가 와 닿았다. 비옷을 입었지만 온몸은 푹 젖어 있었다.

  독도 경비단원들이 경례를 했다.

  바람이 좀 멎었는지 하늘에는 괭이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김덕팔은 당장 독도의 동도와 서도 순찰부터 나섰다. 지형을 미리 익혀 두기 위해서였다. 멀리 가뭇가뭇 물개바위가 보였지만 물개는 보이지 않았다. 저 물개조차도 왜놈들이 다 잡아 갔으니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김덕팔은 다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앞에서 내무반장이 길을 안내해주었지만 300미터 정도의 산길은 가팔랐다. 군화 밖으로 삐져나온 내무반장의 바지와 군화 끈이 아까부터 몹시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수직에 가깝게 솟은 바위는 박아 놓은 줄을 잡고 겨우 오를 수 있었다. 바닷바람에 풀들이 몸서리를 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대장님, 오늘 밤 돔 몇 마리 잡아 회식할까요?”

  의외였다. 김덕팔은 그 돔이 물고기인 것 같기는 했지만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몰랐고, 아니 그것 보다 오늘 밤, 회식, 자리 마련, 이런 것들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내무반장이 축하 회식 자리를 대원들과 나를 위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무반장의 옷매무새와 말투, 대원들의 경계 태세였다. 바로 몇 달 전에 우리 순시선 서너 척과 일본 순시선 서너 척이 우리 어선을 서로 데리고 가려고 맞붙지 않았는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태평했다. 어제 첫 대면에서도 뭔가 그들에게 독도를 지킨다는 경계 의식 같은 것을 잘 느낄 수가 없었다.

  “회식은 부식과 보급품이 오는 내일로 한다. 오늘 저녁에는 모두 집합하도록!”

     

  대원들의 의식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왜 독도를 지키는지, 왜 독도 달 밝은 밤에도 지켜야 하는지, 이순신도 김덕팔도 고통과 의무 속에서 비록 자신이 보잘 것 없이 미천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때마다 화살을 쏘며 자신을 가다듬었고, 김덕팔도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반성 속에서 때로는 좌절하며 고개 숙이고 가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지만, 바로 한 발 앞에 대자연이 꾸역꾸역 숨 쉬고 있었다.

  그때 한줄기 바람이나 비라도 뿌려주면 훨씬 나아질 것 같았지만 때로는 대자연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게 자연의 모습이라면 삶 또한 마찬가지다. 짜증을 내기도 하고, 세상에 살쾡이처럼 못된 놈도 많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잔악한 놈이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저 참고 견디다 보면 인생에 시원한 비바람과 빗줄기가 때려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 사람을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대원이나 김덕팔이나 다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히 임무를 마칠 수가 있는 것이다.  

  정리정돈, 청소철저, 화재주의, 사고조심, 보안, 경계철저, 그리고 무사귀환이 바로 마지막 의무라고 김덕팔은 대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독도.

  올해 들어 부쩍 관광객이 늘었다. 그것도 왜놈들이 독도를 제 땅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우리나라 관광객이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실제 주민이 살도록 3층짜리 연립주택을 짓고 있다. 그러면 우리 독도 경비단은 경찰 지구대 역할도 해야 할 것이고, 대원들도 더 늘어 날 것이다. 일본 놈들은 혼슈우에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최남단 열도에서 또 몇 백 해리를 더 나아가 바다 밑에 가라앉은 섬에 수십 톤의 콘크리트를 부어 인공 섬을 만들고는 거기로부터 또 200해리를 자기네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만들어 외국 배 특히 중국, 북한, 한국의 접근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장악하면 세계를 장악한다는 일본 해군의 위력은 대양 해군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미국과 함께 1990년대 걸프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 해군은 아직 인도양 앞바다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시에 순찰하는 작전을 벌리고 있다. 거대한 세계 바다를 이미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여차하는 순간에는 바로 1940년대 미드웨이 해전처럼 태평양에 세계에서 제일 큰 항공모함들을 띄워놓고 미국과도 싸울 수 있는 것이다. 1940년대 항공모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연안 해군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2002년 북한 해군과의 서해 교전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동해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을 보도 마찬가지다. 연안을 지키기 위해 대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한 인력이나 장비가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왜놈들은 큐우슈우에서 대마도를 거쳐 부산까지 해저터널을 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 기차가 다니게 되면 여차 하는 순간에 병력이나 장비, 사람들을 대륙으로 쉽게 옮길 수가 있게 된다.

  언젠가 김덕팔은 혼슈우에서 큐우슈우로 기차를 타고 들어갈 때 해저터널을 통과한 적이 있다.  해저터널을 기차로 통과한다?  유리 파이프 속으로 지나는 기차는 공짜로 거대한 수족관을 구경하는 셈이다. 돌고래와 상어가 지나가고 온갖 고기들이 춤을 추며, 산호들은 일렁거렸다? 천만에 말씀. 지하로 들어갔다가 한참 만에 나오는 전철을 생각해 보라. 그러니까 바깥 혼슈우 육지에서부너 미리 땅속으로 들어가 그리 깊지 않는 바다이기 때문에 바다 밑바닥 땅속을 지나 다시 큐우슈우의 땅위로 나오는 것이다.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간단한데 참 소설로 이래서 안 읽히는 문제점이 있나 보다, 아니 그것보다 진실된 예술이 아닌 엉터리 거짓 소설이 많아서이겠지. 이 소설 경찰 돈키호테도 그런가? 아닌가?

  독자는 어떠한가? 부산과 일본 큐우슈우 사이의 해저터널을 뚫기를 바라는가? 아닌가?

  김덕팔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겠지.

  그는 반대다, 무조건 반대다.

  위험하고 나쁘고 질 덜어지는 놈들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아니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혹 아는 사이라면 인사 이상은 절대 하지 말라. 절대 그 다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꾸 만나게 되어 두번 세번 못된 행동이나 몸짓을 하거든 그 자리에서 확실히 밟아버려라! 그게 네가 살 길이다. 인새이랑 고속도로 진입로와 같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 사람 이름이나 나온 책 정도는 외워두어야 예의이거늘-. 말하자면 진입로에 들어설 때는 뒤에 달려오는 차들을 유심히 살피며 조심해야 하지만 일단 본 궤도로 들어서면 가속기를 힘껏 밟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자기들을 아시아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은 19세기 말 후쿠자와유키치의 탈아론에 기초한 것이지만 그는 분명 한국과 중국 같은 나쁜 친구를 가까이 하지 말고 서양 제국주의 문화를 빨리 받아 들일 것을 주장한 것이다.

  어떻게 한국이 나쁜 친구인가? 첫째, 우리는 일본과 친구도 아니며, 야수의 얼굴로 야욕을 가진 것은 일본 놈이었다. 그것은 삼국시대 때부터 해적질을 일삼던 왜놈들이나 임진왜란의 왜적들을 보면 안 봐도 누가 나쁜 놈인지 알 수 있다. 오죽 신라를 괴롭혔으면 광개토태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출동해 가야 땅까지 가서 물리쳤을까.

  오죽 왜놈들이 광개토태왕이 무서웠으면 만주 벌판에 일본군 장교를 보내 광개토태왕 비문을 삭제, 조작했겠는가!

  일본은 지금 꿈의 군함이라 불리는 5척의 이지스함, 조기경보정찰기, 25만명 전원 하사관급 이상 직업 군인으로 구성된 자위대 병력을 소유하고 있다. 자체 개발, 자체 발사로 쏘아 올린 군 작전 정찰 위성 3개가 한반도 상공 위를 오늘도 하루에 두 번씨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손바닥 보듯, 우리 전투기와 해군의 위치를 항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차 하는 순간에 정확히도 날아와 꽂히는 것이다. 1990년대 걸프전, 2001년 이라크전 때 일본은 같이 참전해 다 배워 둔 것이다. 마치 1850년대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함대가 일본의 시모다 항구로 오자 사랑하고 흠모해 마지않은 끝에 동상까지 만들어 놓았듯이. 시모다는 동경에서 약 3시간 떨어진 곳으로 언제가 김덕팔이 구경을 갔던 곳이다. 그 탄환열차라는 신칸센을 타고 아타미 역에서 내려 버스로 2시간을 가지 않았던가. 가다가 이토오라는 휴게소에서 오줌도 누웠지.

  신칸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흰 고양이나 까만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부르짖으며 중국 경제를 일으킨 등소평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수상과 나란히 신칸센을 탔다. 그리고 왜놈 수상이,

  “신칸센 참 빠르죠?”

하고 물었다.

  그러자 김덕팔보다 키가 작은 등소평이,

  “이 작은 나라에서 어디 그리 빨리 갈 데 있다고-.”

라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역사 왜곡은 중국이 더 심해요.”

  언젠가 김덕팔이 아는 한 사람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지?”

  그때까지만 해도 김덕팔은 역사를 잘 몰랐다.

  한 마디로 고구려 땅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 욕심이 얼마나 큰지 압록강 이북의 땅은 물론이요, 그 이남도 자기 역사라고 몰아세운다. 고구려가 자기들 복속국이었고 조공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인데, 그 당시나 지금이나 외교 사절은 큰 선물 하나쯤은 마련해 가는 것을 왜 모를까?

  중국 수나라는 괜히 고구려에 침략해 들어왔다가 살수에서 을지문덕에게 100만 대군을 잃고, 당나라는 연개소문과 안시성 전투의 양만춘에게 30만 대군을 잃고는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밀고 오는 고구려군에게 당 태종은 혼쭐이 나지 않았던가!

그런 막강한 고구려군의 역사쯤은 알 텐데도 우기는 것을 보면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중화주의 사상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를 가진 중국이 올해 러시아와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산뚱반도 앞에서 1만 명의 육해공군이 합동 군사 작전을 펼쳤다. 미국과 일본과 한국을 경계하기 위해서.

  중군은 최근 압록강 국경수비대를 경찰에서 전원 군 병력으로 바꾸었다. 북한의 정변으로 수백 만 명의 탈북자가 넘어올 때, 경찰로는 못 막으니까 군 병력으로 총을 쏴서라도 막겠다는 것, 그리고 북한 땅으로 1950년 한국전쟁 때처럼 또 들어오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니 자기네들 왜곡된 역사로 칠 것 같으면 다 자기 나라 사람인데 그럴 수 있나?

  김덕팔은 정말 이럴 때는 가수 김추자의 그럴 수가 있나요, 가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순수함만으로는 역사를 이끌 수 없는 법!

  다시 1636년 병자호란, 1894년 청일전쟁 때처럼 들어온다고?

  왜놈들도 깝짝깝짝 우경화로 가더니, 자위대를 외국에 파견할 수 있다는 유사법제를 만들어 놓고, 미군을 따라 한반도에도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다.

  김덕팔은 한국 동남서해안에 미사일을 좍 깔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체 개발한 미사일이라면 더욱 좋고. 그리고 독도에다가도. 김덕팔은 과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독도에 미사일이라-.


  우리는 호전적인 민족이 아니다. 삼국 제일 뒤처진 신라가 있었고, 문화의 나라 백제와 가야가 있었으며, 싸움 하나만을 기가 차게 잘하는 고구려가 있었다. 그것도 남이 침략해 들어올 때만 물리치고 화나면 쫓아가 몽고까지 영토를 넓힌 광개토태왕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전쟁을 못해 안달이다. 사무라이를 보라! 태평양 전쟁 때 산 사람을 생체 실험한 일본군 731세균전 부대의 잔인한 만행을 보라! 남경대학살, 우리나라 제암리 학살. 유관순의 팔다리와 가슴을 잘라내 죽인 잔인한 왜놈 경찰들!

  아-!

  미국의 대 이라크전은 명분 없는 싸움이다.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와 화학 무기를 부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런 것은 결국 그들도 찾지 못했다. 그것보다 이라크의 석유가 탐났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 부대통령 모두 다 석유 재벌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라크를 철수하지 않아 미군 3000명이 죽었다.

  병력이 모자라 미국 본토에서 제대한 예비군에게 소집 명령을 내려 이라크로 보낸다. 우체국 일을 하면서 결혼해 아이들과 잘 살고 있던 우체부가 하루아침에 이라크로 총을 들고 가 죽는 현실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하리케인이 휩쓸고 가 수해를 입은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약탈로 상점들이 털린다. 이게 평화의 나라인가?

  우리나라에서 수해를 입은 곳에 언제 약탈이 일어났나? 돈이나 옷가지, 식량들을 모아 수재민을 도와 왔다. 미안하다고 그쪽으로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이게 평화가 아닌가!

  우리는 호전적인 민족이 아니다.

  19세기 전후의 제국주의적 나라들은 전부 호전적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러시아, 일본, 중국, 등등.

  그들이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한 짓을 보라! 아프리카와 남미는 아직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아와 질병과 내전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아프리카에 나간 유엔군도 자국의 이익이 없으면 수십 만 명이 죽건 말건 벨기에군처럼 바로 철수해버린다. 

  우익 보수의 다국적 기업과 석유, 경제사업에 위배되면 미국은 자기 나라의 대통령까지 사살해버린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을 사살해 죽인 것도 백인 우월주의가 밑바탕인 것이다. 미국은 그들이 노예로 데려와 부려먹은 죄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호전주의적 발상의 다른 나라, 일본, 중국, 러시아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봐서는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기질과 역사는 속이지 못하는 법! 

  미국은 1만 명이나 죽은 2005년 뉴올리언스 하리케인도 흑인들이 70%나 사는 도시이기에 방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라크 전쟁에는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어도 도시를 살릴 수십 억 달러의 둑은 고치지 않았으며, 죽어가는 그들을 빨리 구해내지도 않았다. 뉴스에서도 바로 그들이 가난한 흑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과연 세계 제일의 국가인가? 호전적 나라들도 미국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이민족과 종교와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인간의 본연의 질투와 증오. 자기가 살아갈 공간을 미리 차지해 두려는 동물적 야욕.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동물이 아니다. 가엾은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닌가?

  약한 사람을 짓밟지 않으려는 사람, 진정 용감한 자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가!

 

  얼마 전에 우리 해양 경찰과 충돌했던 바로 그 일본 순시선이었다. 녀석들이 벌써 며칠 전부터 깔죽깔죽 20해리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들어오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것도 한두 척이 아니라 서너 척이 번갈아 가며 넘나들었다. 김덕팔은 망원경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 녀석들이 치밀한 것보다 우리가 더 치밀해야 한다. 그것은 해전 30전 30승의 불멸의 이순신 이래 김덕팔이 지켜온 내면이었다.

  “S.O.S-. S.O.S-. 왜놈들이 우리 배로 뛰어든다!”

  독도경비단 정상 레이더에 우리 어선의 무전이 잡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김덕팔도 모르게 우리 어선 한 척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아주 조금 넘은 것 같았다.   

  ‘젠장. 일났군.’

  김덕팔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무전기를 들었다.

“해경 순시선 즉시 출동하세요. 무전 들었습니까? 일본 순시선 4척이니 우린 5척 출동바랍니다!”

  “비상! 비상!”

  독도 경비단에도 비상벨이 울렸다. 30명 전원 전투 위치로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 김덕팔은 신형 60미리 기관포가 배치된 산꼭대기 바위 쪽으로 올라갔다. 벌써 재빠른 대원 하나가 올라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상 없나?”

  “옛-!”

  그들 두 대원의 대답은 하늘을 찔렀다. 한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어디서 그런 사기가 생겼는지 김덕팔은 그저 이게 다 영웅 이순신의 불멸의 힘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김덕팔 독도경비단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옆에는 한 대원이 다친 대원을 치료하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 것 같아 어서 김덕팔은 그를 의무실로 옮기고 구조 헬리콥터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적 일본 순시선 2척이 독도 중간수역 바로 안으로 들어와 그들은 우리 해양 순시선이 끌고 간 어선을 향해 사격을 한 것이었다.

  “개새끼들! 그래, 어선이 선 좀 넘었다고, 또 우리 순시선이 힘이 세서 우리 쪽으로 끌고 왔다고 민간 어선에 사격을 해!”

  이미 우리 어선의 선장은 일본 순시선의 기관포에 맞아 죽었다는 무전을 받고 김덕팔 독도경비단장도 독도 꼭대기에서 일본 순시선을 향해 사격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상부의 명령이 없었지만, 독도경비단장의 비상 방어였다. 상부의 명령은 기다려라, 기다려라, 말밖에는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간인이 죽었다. 그리고 벌써 몇 달째 우리 어선을 그들은 나포해 가고, 무릎을 꿇린 채 곤봉으로 비무장 우리 대한민국 국민을 때리기 일쑤였다.

  선장이 죽었다. 그 오징어잡이 배 무궁호의 선장은 김덕팔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시커멓게 그을린 고생한 얼굴의 선장은 때때로 이 곳 독도에 들러 갓 잡은 오징어와 다른 생선들을 대원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건네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

  김덕팔의 기관포가 다시 불을 뿜었다. 다다다다-. 이 개새끼들, 오늘 누가 격침되나 한번 보자! 하늘에는 어느새 몇 대의 전투기가 쐐액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 전투기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겨우 헬리콥터 한 두 대가 날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 왜 우리 전투기는 안 나타나나 거야.’

하고 김덕팔이 생각하는 순간 울릉도 방향에서 전투기 2대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우리 쪽 전투기였다. 아니 3대, 4대였다.

  “야!”

  김덕팔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2대의 적기가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다. 아군기가 그 뒤를 따랐다.

  3000급 일본 최대 순시선이 우리 어선을 향해 계속 기관포를 쏘며 따라오고 있었지만 우리 순시선들은 답답하게도 일이 더 커질까봐 맞대응을 하지 못하고 어선만 끌고 전속력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일본 순시선도 자기 경제적 배타수역에 들어왔다 도망가는 배는 끝까지 추격할 수 있다는 국제법을 명분으로 들어왔다가 힘 좋은 1000톤급 우리 순시선 4척에게 밀리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느새 일본 최대 순시선을 끌고 와서도 분이 안 차 민간 어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김덕팔의 기관포가 불을 토하는 가운데 부하 대원들은 60미리 탄약박스를 계속 채워 넣었다.

  “대장님. 반드시 격추시키세요!”

    3000톤급이라 맞추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이제 녀석들이 우리 경비단을 향해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순시선은 도대체 뭐 하는지.

  “대장님. 즉각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입니다.”

  “누가?”

  드디어 3000톤급 일본 순시선의 앞쪽 조타실 부근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을 때였다.

  “경찰청장의 긴급명령입니다.”

  녀석들의 순시선이 꼬리를 틀며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도망이었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일본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우리 순시선들도 여유를 찾았는지 2척은 어선을 끌고 나머지 2척은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적선이 완전히 사라졌다.


  태평양을 대게 한 가운데로 가르면 나오는 섬이 미드웨이 섬이다. 산호초로 이루어진 섬이지만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활주로가 있다. 그래서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중간 이착륙지로서 2차 대전 중 미국과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섬이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부를 공격한 것은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꼴이었다. 미국은 중국처럼 종이호랑이가 아니었다는 것쯤 미국에 살며 스파이질을 일삼던 일본인에게 이미 다 들었을 텐데도 호전적인이고 호흡이 짧은 그들의 성격이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 해군의 순시선도 일본보다 큰 것이 많지만 일본은 3000톤급의 순시선을 가지고 있고, 약 5만의 해상 자위대는 꿈의 군함이라고 불리는 이지스함을 4척이나 갖고 있어, 일본 앞 바다에 북한의 간첩선이 나타났을 때 괴선박이라며 일본 해경이 거센 파도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관포로 격침시키는데 정보를 준 것이다.

  게다가 큐우슈우 카고시마 남단 우주항공기지에서 쏘아올린 정찰위성 2개는 기관포를 잡은 김덕팔의 얼굴을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로켓포로 우리 독도경비단의 60미리 기관포를 부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 일어나 일본 본토도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라고 김덕팔은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정보를 받아야 한다. 비록 독도에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지만, 하늘의 정찰위성과 조기경보기에서 바다의 이지스함에서 땅의 최신 레이더에서 적위 움직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에 일본이 겉으로 거세게 항의 하고 있지만 왜놈들이 먼저 우리 민간 어선의 선장을 쏴 죽였기 때문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하무인격으로 저렇게 떠들고 있으니, 다음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는 김덕팔도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덕팔이 오랜만에 울릉도 도동항으로 전투 중 다친 독도 경비단원을 문병왔을 때 좋은 소식을 들었다. 바로 해군의 경항공모함 진수식이었다. 비록 전투함이라기보다는 수송선으로서의 역할이 크고, 전투기 대신 헬리콥터가 이착륙하는 경항공모함이지만 우리가 만든 축구장 크기의 군함을 가지게 된 해군이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이때 김덕팔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독도에도 로켓포를 설치한다면 기관포와 더불어 위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로켓포라-.  


  이번 독도해전으로 김덕팔은 깨달은 것이 많았다.

  그건 신형 60미리 기관포 하나와 소총 몇 자루로는 독도를 지킬 수 없다는 것. 적어도 로켓포 몇 개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도해전의 여론이 들끓으며 당장 경찰청으로 들어오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때는 바로 이때다 싶었다.

  “뭐라고 로켓포요?”

  담당 국장은 펄펄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일본 경찰의 총에 우리 어부 하나가 죽었습니다. 지금이 왜정 시    댑니까?”

  분노가 치밀었지만 참아야 한다.

  “글쎄, 그것보다 지금 외교 문제도 있고, 보통 일이 아니에요. 하여  튼 안 되는 일이니 다시는 그런 이야기 꺼내지 마세요.”

  전부 쉬쉬하며 말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김덕팔을 돕고 있는 것은 반일 여론이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다녀갔고 김덕팔도 한, 두 번 인터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김덕팔은 독도에 최신 병기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면 강해야 한다, 마음도 몸도.

  ‘독도경비단장 일본 순시선을 물리치다.’

  다음 날 어느 일간지 사회면에 김덕팔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

  ‘부상 당한 대원 대신 혼자 기관포로 일본 순시선을 명중시키다.’

  ‘무기 절대 열세. 독도 미사일 설치 거론.’

  김덕팔은 분명 로켓포라 했는데 그게 어느새 미사일로 바뀌어 있었다. 웃음을 참지 못할 일이었지만 로켓포도 어려운데 미사일이라니 일이 더 꼬이는 게 아닌가, 인터뷰는 하지 말 것을,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러나 정말 독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삼면이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면 적들은 우리를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이다, 김덕팔은 뭔가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는 동안에 국방부가 ‘국방개혁2020’을 발표했다. 21세기 현대전에 맞게 직업 군인 중심으로 군 체질을 뜯어 고쳐 병력은 줄어도 전투력은 두 배 강화한다는 게 목표다.

  육군은 군단 작전의 폭을 30킬로미터에서 100킬로미터로 늘리고, 차세대 무인정찰기,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 한국형 공격헬기, 케이-9 자주포를 집중 배치한다.

  해군은 잠수함 사령부를 창설해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 작전 범위를 넓히고 지대지 미사일을 싣고 적 해안에 은밀히 침투한다는 것이다. 독도의 자연 환경을 해치지 않고 삼면에 미사일을 설치할 수 있는 방법, 김덕팔은 이게 바로 그거구나 싶었다.

  게다가 공군은 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를 도입하고, 김덕팔이 그렇게도 부르짖던 정찰위성을 쏘아 올린다니 한반도 전역을 물론, 제주도에서 필리핀까지 해상, 공중 수송로를 확보하고 적의 동태 등 전장 상황을 실시간 탐지, 공격하는 네트워크 중심의 전쟁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김덕팔의 생각과 잘도 맞아 떨어졌는지 2020이면 앞으로 10년도 더 남았지만 김덕팔은 자다가도 흐뭇하게 웃었다.


  남북한의 자유 왕래는 곧 통일이다, 김덕팔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지만 천하도 자연도 사람도 의의로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한 왕래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임진강 판문점 검문소만 통과하면 그 다음부터는 정해진 날짜까지 마음대로 북한을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서 베를린에서 동 베를린으로 넘어갈 때 자유의 다리와 같은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듯 말이다.

  그게 꿈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럼 우선 편지 왕래만이라도 자유롭게 하자.

  그로부터 몇 년 뒤.

  남북한 제한 왕래마저 어렵던 것이 불과 몇 해 전인데, 배와 비행기의 운항이 자유롭게 되고 나서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누구나 통행증만 있으면 자동차로 임진강을 건너 판문점을 검문소를 지나 북한 땅 어디라도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남북한이 완전히 통일이 된 것도 아니지만, 북한 사람들 누구나 남한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고 공산당 간부나 사업하는 사람들만 주로 자동차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놀라운 변화였다.

  김덕팔도 한강을 따라 자유로로 50분을 달리자 판문점, 개성이라는 길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김덕팔이 독도 경비단장으로 가고 난 다음 첫 휴가를 북한 구경으로 정한 것도 그가 우긴 것이지만, 큰 딸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하필 북한이냐는 것이었는데, 차가 판문점 검문소로 들어서자 얼굴이 새까만 북한 경비병 둘이,

  “통행증 좀 봅시다래.”

하고 억센 북한 사투리로 말했을 때는 긴장감이 극도에 다다랐다.

  “금강산으로 여행 갑니다.”

  김덕팔은 의뢰로 짧게 말했지만 이럴 때 하필 아무래도 경찰보다 군이 한 수 위라는 느낌이 왜 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역시 아들인지 긴장하면서도 이 장면을 자못 흥미진진하게 여기는 듯도 했다. 아내는 반반이었다.

  “됐시우. 좋은 여행 되시라우요.”

  키가 작달막한 북한 경비병이 하나가 차 안을 넌지시 들여다보며‘통과’라는 도장이 콱 찍힌 통행증을 건네주었다.

    독도나 북한이 아니라 제주도나 하와이로 가고 싶었던 큰 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하여튼 이렇게 해서 김덕팔 식구는 1년만의 첫 휴가를 북한에서 보내게 되었다.

 

  독도에는 새로운 우리나나라가 독자 개발한 무기인 신궁이 배치되었다. 미사일이라기보다는 김덕팔이 원했던 로켓포에 가까운 명중률 98%의 신형 무기였다. 미국이나 러시아 것보다 명중률이 뛰어났다. 이동하면서 사람이 로켓처럼 쏠 수 있는 무기였다. 독도에 미사일이 완전 배치되기 전까지는 잠수함에서 쏘는 미사일과 신궁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왜놈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야금야금 준비하는 것은 그들의 생존 습성이다. 언제 어디든지 미국이 가는 곳이면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는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더니 승부수를 던진 일본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훨씬 초과했다. 어지간한 법은 만들어 통과시킬 수가 있다.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늘 여당 편이 되어 주던 공명당까지 개헌에 합세할 경우 3분의 2선을 넘어서 평화헌법의 개헌이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 왕의 연호 평성, 즉 아시아의 평화를 자기들 손으로 다시 한번 이룩하겠단 것인데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일 위험하다. 그리고 또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때 독도 경비단장 김덕팔은 독도와 한산도를 그리고 자신과 이순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철저한 준비만이 적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먼저 적을 공격하지 않았다. 김덕팔도 적선이 먼저 우리 어선에게 감히 사격을 했을 때 응사했다.

  그러나 그때 김덕팔의 기관포에 맞았지만 격침되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갔던 일본 순시선 야마토의 함장 야마토는 보복의 날을 기다리며 이를 갈고 있었다. 생리적으로 결코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왜놈들이 아닌가. 패배를 받아들이기보다 배를 갈라 죽는 놈들이 바로 왜놈들이다. 뻔히 진 싸움에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국민을 속여 일본왕을 위해 자살하게 만든 사이판 섬은 뛰어내리는 일인들의 자살 절벽으로 바뀌었다.

  과연 그런 그들이 굴복할까?

  굴복시키려면 그들보다 더 강해야 한다. 문화적 우위라는 말은 야만인 앞에서 통하지 않는 말이다.


  왜놈들은 그날 이후 한번도 독도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리진 것도 아니었다. 왜놈 순시선은 공동경제수역을 맴돌고 있었다. 1997년 1998년 경제 위기로 국제금융기금을 지원을 받으면서 돈이 궁하게 된 정부가  왜놈 돈을 빌리기 위해 서둘러 졸속으로 맺은 게 독도가 한일공동 경제수역으로 들어가게 된 까닭이다. 그 때문에 어부는 어장을 잃고 한국은 다시 영토를 걱정하게 되었다.

  김덕팔 독도 경비단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순철했다. 일본은 중국과 영토 분쟁이 있다. 어떻게 해서 한국을 가운데 두고 떨어진 두 나라에게 영토 분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김덕팔은 처음에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화산섬 일본 열도의 남쪽 끝 오키나와가 중국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끝 센카쿠 열도의 제일 큰 섬 우오츠리시마가 바로 중국에서 부르는 조어도인 것이다. 중국도 어떤 면에서는 한국처럼 단순하기 때문에 아니 일본처럼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섬으로 점점이 이루어진 곳을 그냥 제일 큰 섬인 조어도라 통째 부르고 마는 것이다. 만약 조어도가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그 바로 옆 작은  섬들은 일본 것이라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지리적 군사적으로 요충지일 뿐만이 아니라 거기엔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덕팔은 독도도 동도와 서도로, 아니 독도 열도의 제1섬 동도 제2섬 서도로 새로 정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독도라고 부르되 우리도 왜놈처럼 철저하게 지리적 법적으로 그렇게 만들 필요가 있다. 교활한 상대는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를 참지 못하니 교활한 왜놈보다 우리는 한 수 위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법. 이게 바로 독도 경비단장 김덕팔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제일 배 아픈 놈은 일본, 그 다음은 중국, 미국, 러시아일 것이다. 그 이유는 독자 여러분도 다 아시리라.

  남북한이 합치면 결코 작은 땅이 아니다. 지금도 네덜란드, 스위스, 불가리아보다도 크고 합치면 루마니아, 헝가리보다도 큰 나라가 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러시아와 중국과 태평양 바다 사이에 있어 지도상에서 작아 보일 뿐이지 한국은 나라로서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우리보다 1.7배가 큰 일본은 프랑스나 독일과 크기가 비슷하니 우리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큰 것이다.

  북한 중앙노동당 비서가 우리나라 현충원을 참배하고 돌아갔다. 남북한 자유 왕래에 이어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으로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김덕팔은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의 불만은 정치적 불안과 빈곤이었다. 그것은 북한 민중뿐만이 아니라 공산당 간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김일성이 죽고 난 다음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약 2만 5000천명이 숙청당했다. 바로 김정일이 세습 권력을 잡는 가운데 일어난 싸움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번에는 그 김정일의 후계자가 장남 김정남이 아니라 차남 김정철로 정해졌다고 일본에서 보도했다. 3대가 세습하는 나라가 현대 사회에 있었는가? 없다. 그럼 북한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3대가 오기 전에 숙청당하고 숙청시킨 자들이 언제 다시 숙청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이 쌓여만 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진정한 민중을 위하지 않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오래 간다면 그 나라가 불행해질 뿐이다.

  남한과 손을 잡고 북한 당국은 과감하고 용감하게 권력과 부와 명에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북한 민중들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남북한의 이 자유 왕래도 꿈이 아닌가?

  그런데도 통일 비용이 100조원이니 1000조원이니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민족의 통일을 돈으로 이야기하겠는가? 동서독으로 갈라졌던 독일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세계 제1의 수출 흑자의 나라가 되었다. 물론 9%에 이르는 실업률과 동서독의 빈부 차이의 불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전쟁은 막아야 한다. 사람들이 목이 잘리고 허리 밑이 흔적도 없이 잘려 나가는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전쟁이 인류의 보편적 습성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제국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바로 전쟁광 히틀러가 그렇지 않은가! 그의 콧수염은 여자들 앞에서 발끝을 살짝살짝 드는 그의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해서라도 남성을 과시하려는 열등감이 바로 잔악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열등감이라는 게 없다. 단순한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지면 물러난다. 그냥 그것뿐이다.

  남성답다는 것은 조용하면서도 용감하고 다정하면서도 과묵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친절한 것이다. 이 양면성의 적절한 조화가 없는 자 진정한 남성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빠른 자 40세  느린 자 45세가 되고서부터다. 굳이 김덕팔의 나이가 46세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건 밖에선 용감하면서도 안에선 우유부단한, 그리고 젊어서는 그 반대였던 김덕팔의 생각이다. 한 마디로 그런 김덕팔은 키운 것은 자연과 고뇌와 외로움과 현자들의 생각이었다.

  자 통일 비용과 남성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있지. 있다.

  이게 바로 김덕팔의 화술이었고 지도력이었으며 남성다움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그는 독도 경비단장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그가 마흔이 넘고부터는 언제 어디서나 그랬다. 생계를 위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남은 인생이 아까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려고? 그런지도 모른다. 몸을 더 움직이려고? 그런지도 모른다. 조국과 정의에 대한 생각? 그런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다 좋은 것이 아닌가.

  통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저공비행을 하는 적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신궁이 독도에 들어오면서 전투력이 크게 나아지고 있었다. 우선 잠수함 미사일이 독도 앞 바다에 배치될 것이라는 소식에 독도경비단의 사기가 올랐다. 거기에 뭔가 정의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김덕팔 대장의 모습을 대원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건 젊은이들에게 뭔가 신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직 전투력의 완전한 회복이라 하기에는 일렀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투력이 한국 해군보다 4배나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함정은 120척, 우리 함정은 약 200척이지만 무기와 전투력이 훨씬 떨어진다. 그들은 꿈의 군함이라고 불리는 이지스함을 4척이나 갖고 있다. 또 일본 항공자위대 조기경보기와 자체 발사한 정찰위성에서 한반도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다. 게다가 구축한, 수송함, 잠수함 등의 2차 대전 미국과 싸운 전투 경험과 1990년 이후 걸프만에서의 항해, 수송, 기동력, 탐색, 지휘통제 공격 등 전투력 계산 능력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일본 해경의 순시선만하더라도 몇 년 전 그들이 앞바다에 나타난 괴선박-그들은 그 선박에서 북한 과자 봉지가 나온 것을 들어 북한 간첩선일고 주장했다-을 격침시킬 때 그들의 기관포는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배 위에서 한 치도 움직임 없이 괴선박을 향해 정확하게 조준 사격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정찰위성이 그 괴선박이 북한을 출발했을 때부터 위치를 쫒고 있었을 것이다. 무서운 놈들이다.

  앞으로 우리가 정찰위성을 쏘아 올리려면 1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현대전에서는 그걸 더 앞당기지 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로켓포와 신궁을 갖추긴 했지만 김덕팔은 불안했다. 이순신은 적선  의 약점을 완전히 분석하고 거북선을 만든 것이다. 적선 아타케는 양 옆면이 쇠못으로 박아 붙인 것이기 때문에 약해 함포를 달 수 없었으며, 해적선에서 출발한 노략질 배이므로 다른 배에 붙여 칼을 들고 타넘어 들어와야 했기에 거북선은 윗면에 쇠창을 달아 적이 못 타오르도록 했으며, 양옆에 천자총통 20문과 정면에 하나를 달아 함포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실제 이순신 부하들의 피해는 적들의 백분의 일도 안 되었다.

  전투력의 회복-.

  독도 섬을 지키는 독도경비단은 해군이 아니라 육군과 닮았다. 그렇다면-.

  적을 먼저 탐지해 우리 공군에게 알릴 수 있는 레이더망을 두 배로? 우선 적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아니라 일본 해경 순시선이므로-.

  레이더로 적선을 먼저 탐지해 신궁과 로켓포로 정확히 조준 사격한다-. 그러려면 훈련이 필요했다. 실제와 같은 고된 훈련-.

  반파당한 채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도망갔던 일본 해경 순시선 함장 야마토는 어떻게 해서라도 보복을 하려 할 것이다. 


  국방부의 2020계획은 2010년에 완성되었다.

  600조원이라는 돈이 들어갔지만 자체 발사한 정찰위성과 이지스함, 신형 국산 전투기, 조기경보기, 장거리 미사일, 항공모함 등을 갖추면서 서서히 아시아의 군사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김덕팔은 여전히 독도 경비단장이었다. 서울 쪽으로 영전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뭔가 더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떠날 때는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식구들도 이해를 했다. 이제 아이들도 어엿한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열심히 살며 정의를 위해 노력한 만큼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중국이 동중국해 가스전을 먼저 개발하면서 일본과의 영토 및 에너지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필 그 가스전이 양국 영토 분쟁의 상징인 조어도 바로 위쪽 수역이었다. 일본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며 실질적 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제도 윗부분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 유전 파이프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동해를 지난 바로 일본으로 들어가는 선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먼저 러시아 유전 사업에 뛰어 들고도 일본의 돈과 외교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그 원유 공급 파이프는 독도에서도 멀지 않는 동해를 지난 일본으로 들어가고 있어 독도 경비단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우리로서는 러시아, 중국, 서해를 거쳐 한국으로 연결되기를 바랐지만 이미 일본의 정보와 돈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새로운 중일전쟁이 터진다면 또 그 피해는 한국이 입게 될 것이다. 1884년-1885년 청일전쟁의 무대가 조선이었듯이. 그때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 받았고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요구했지만 일본의 세력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인 삼국간섭으로 결국 일본은 요동반도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으로 만주를 점령, 그들의 꼭두각시 만주국을 세우고, 다시 1937년 중일전쟁 승리로 남경대학살을 벌인다.

  그 전에 중국은 기필코 북한 사태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수, 당 300만 대군이 고구려에게 당한 치욕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 밑을 겨누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꺼림칙한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분쟁은 쿠릴열도 4개 섬, 일본 쪽에서 말하는 북방 4개 섬이다. 지금은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지만 태평양전쟁 전까지는 사할린과 더불어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지진과 태풍, 1억 2천만의 인구의 일본은 대륙을 탐낸다. 그 발판이 한반도다.

  그래서 싸운 게 1904년-1905년의 러일전쟁이고 인천, 중국 뤼순에서 승리하고 세계 최강 러시아 발틱 함대를 대한해협에서 격파함으로써 일본 제국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발틱 함대가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석탄, 물자 공급도 제대로 못 받은 채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지구의 3분의 2를 돌아오는 바람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일본은 그동안 러시아 함대를 그림으로 하나하나 그려가며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 땅 포츠머스에서 러일 강화조약이 맺어지고 그걸 중재하며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 좋아한 것이 미국이고 루즈벨트 미대통령은 그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했다. 한국의 운명은 안중에 없는 것이 그들이었다.


  김덕팔에게 당했던 일본 해경 순시선의 함장 야마토는 독도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전 대원들에게 훈시를 하고 있었다.

  “타케시마는 우리의 영토다. 독도에 있는 쵸센징들은 다 없애버려도    좋다!”

  야마토는 언뜻 보기에는 눈이 크고 귀공자처럼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쁜 눈빛과 미소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잔인한 사무라이를 강자라 할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잔인한 사나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 걸 사내답다고 부를 수 있는가? 관대한 마음과 정의에 대한 용기, 노약자들 앞에서의 수줍음. 뭐 그런 것들은 진정 남성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요즘 한류가 유행하는 것도 일본 남자보다는 한국 남성이 낫다는 것을 일본 여성들은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김덕팔이 보기에 동물적 육감은 일본이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야마토의 섬뜩한 미소는 이리의 미소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동물적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약한 나라를 짓밞고 일어서려는 근본적인 열등감이 제국주주의자들에게는 있었다.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히데키.

  그들의 공통점은 내면의 남성다움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결코 남자다운 얼굴이 아니라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점.

그래서 군복에 군장을 가득 달고 히틀러와 도조히데키는 콧수염을 길렀다. 그 수염만이 자신의 남성다움을 여자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둘째 여성 편력이 심했다는 점. 여자들 앞에서의 히틀러 모습은 앞에서 이야기했고, 무솔리니는 몇 명의 여자들을 갈아 치웠다. 그들에게 가난한 시절 거친 음식을 함께 먹은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는 한국의 협객 홍길동, 의적 임꺽정, 김좌진 장군, 김두한 같은 멋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여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열등감의 회복만이 있을 뿐이고 거기에서 잔인함이 나오는 것이다. 왜? 모든 여자는 어머니이며 아내이기 때문이다. 다산의 풍만함과 풍성함, 넉넉한 마음은 모두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딘가 모르게 우러러 나오는 부드러움과 억셈, 지혜롭고 어질며 거친 남자는 전 세계를 사랑한다.

  그 점에서 야마토는 정반대였다.

  그러니까 잔인할 수밖에.


  저공비행하는 적기를 격추시키기 위한 병기 신궁이 위력을 보일 때가 온 것이다. 동이 틀려면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일본 순시선 한 척이 유유히 독도 앞바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야마토가 김덕팔에게 복수하기 위해 시도한 무모한 도발인지 일본 정보국의 각본대로 독도에 시비를 걸어 올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지만 독도 문제에 제기하면 할수록 일본은 국제 사회에서 이상하게 지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야마토의 뒤에 과연 일본 정부가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워낙 약고 치밀한 놈들이니 끝까지 감시해야 한다.  

  신궁은 어둠 속에서도 일본 순시선의 뱃머리를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독도 경비단원 둘이 어깨에 신궁을 하나씩 메고 각각 독도의 동도와 서도 꼭대기에서 김덕팔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동이 트기 전에 공격할 것이다. 마치 테러범처럼.’

  김덕팔 대장은 야마토가 우리 해경 순시선보다 독도의 기관포 진지를 목표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시아의 평화라는 전체적인 구도를 생각하기 보다는 사무라이의 복수가 몸에 밴 게 왜놈들이다.

  김덕팔의 독도 경비단은 기관포 진지에는 허수아비들을 세우고 그 대신 새로 들여온 로켓포와 신궁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때,

  “따따다.”

하며 칠흑 같은 바다 한가운데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곧 우리 기관포 진지 쪽에서도 불꽃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허수아비들이 정통으로 맞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순간 적의 순시선도 위치가 드러난 것이다. 신궁의 야간투시경 속으로 적 순시선이 한가운데로 조준되었다.

  “발사!”

  김덕팔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신궁은 불을 뿜으면 미사일처럼 검은 바다로 날아갔다.

  야마토가 적외선 망원경으로 불타는 허수아비를 사람으로 착각하고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눈 앞에는 커다란 불덩이가 쉭 스쳐지나가는 듯하더니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그의 순시선은 불바다가 되어버렸다. 야마토와 그의 부하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며 왜놈 순시선은 서서히 검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왜놈 사무라이 야마토의 최후였다. 신궁의 위력은 그렇게 대단했다.

  김덕팔의 독도 해전 두 번째 승리였다.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쳐들어 올 듯 떠들었지만 내심 일본이 겁내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이었다. 몇 년 전 북한이 인공위성 쏘아올린 것이라고 거짓말 한 대포동 미사일이 동해를 건너고 일본 열도 위를 날아 바로 자기네 앞바다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10개 이상의 원자폭탄을 갖고 있으며, 한국의 군대도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본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고 미국이 이러한 사태를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 일본, 러시아 어느 쪽이 미리 짜고 일으키는 전쟁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하여간에 독도 해전에 순시선 한 척을 잃고 일본 경찰들이 죽었지만 그건 순전히 혼자 날뛴 일본의 인과응보였으며 야마토의 자업자득이었다. 한국의 독도 경비단이 먼저 발포했다고 우겨보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녹화하고 녹음한 독도 경비단의 증거 자료 앞에 일본 정부도 더 이상 대응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들끓는 일본 국내 여론으로 현 내각이 총 사퇴에 몰리게 되었다. 또다시 패권주의적 사고로 돌아가 정치 후진국으로 계속 남느냐, 아니면 자유와 평화를 향한 공동의 목표로 나아가느냐는 일본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만약 일본이 다시 쳐들어온다면 이 나라가 친일파들이 또다시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잘도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니 일본으로서 길 몰라 헤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정 때 친일파와 후손들이 국민들에게 헌납해도 용서받지 못할 친일파의 땅 버젓이 찾아가며 -그때만은 왜 그렇게 자유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개인의 사유 재산임이 명백한 데- 라는 말을 잘들 사용하는지, 하여간에 약은 놈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어디 그 친일파뿐이랴! 최근 몇 십년간 일본에서 유학하고 간 사람들 중 반은 친일파라 보면 맞다. 그건 김덕팔이 일본 연수 때 충분히 듣고 보아 경험한 것이다. 그들은 1980년대 그 당시에도 일본인이 기라고 하면 기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일본에서 학위를 빨리 따는 길이라는 둥, 김덕팔이 춘분, 추분 때 일본의 국립대학 정문 위에 참으로 크고 긴 일장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밑을 지나가기가 뭐해서 뒷문으로 돌아 왔다고 했을 때, 친일파 놈들은 하나같이,

  “뭘 그리 깐깐하게 굴어. 그게 뭐 대수롭다고.”

하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 100년간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주의 나라로  커 왔기 때문에 요사이의 미국과 비슷한 자존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존심이지만 최근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 동포난 북한 사람들 앞에서 좀 살 산다고 뻐기는 추태와 닮았다고 할까.

  하여간에 최근 급속히 발달한 중국이 고압적인 자세로 일본에 대해 내두르는 말과 행도이 일본의 자존심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건드리고 있다고 보면 맞다. 우리는 마음이 좋기 때문에 견디지만 마음이 못된 일본은 중국의 그런 태도에 이를 갈고 있는 것이다. 또 최근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에 중국이 먼저 생산을 시작했다. 거기는 몇 번이나 말했듯이 중일 양국의 영토 분쟁 지역이며 서로가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다르게 맞물려 있는 곳이다.

    사실 동중국해 가스전은 중국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지만 약은 일본은 지하 광맥이 일본 쪽으로도 걸쳐 있다며 석유와 가스와 금속 광물 자원 개발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기야 해저에 광맥이 뻗쳐 있기야 있겠지만 바다를 장악해야 패권을 찾는다는 일본의 영토와 에너지 욕심은 끝이 없는 일본이 동중국해 가스전에서 석유나 가스 시굴을 시도한다면 중국은 함정을 출동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일본은 복수의 칼을 갈며 벼르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미래 200년간 쓸 수 있는 청정에너지 자원 메탄하이드레이트가 해저에 엄청나게 매장된 독도를 일본이 쉽게 포기하겠는가? 그래서 녀석들은 우리가 독도 우표 하나 발행한다고 해도 몸부림을 치며 동물적 신경질을 느끼는 것이다. 영토와 자원, 사무라이적인 자존심에 대해선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적 감각의 신경질을 일본은 갖고 있다.

  즉 이름이 더럽혀 지면 꽥, 하고 배를 갈라 죽고 마는 것이 일본이다. 우리 같으면 쪽 팔려 하면서도 두꺼운 얼굴로 참고 말 일을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무라이의 자식이 배가 고파 시장에서 음식을 하나 훔쳐 먹었는데, 자기 아이가 도둑으로 몰리자 그 배를 갈라 증명해 보였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훔쳐 먹었건 안 먹었건 그 아이는 죽은 것이다. 차라리 그 음식 값을 물어 주든지, 도둑으로 몰려 벌을 받든지 하면 되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무라이의 칼로 자기 자식 배를 간다는 그 결벽증을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이해하지 않는 편이 속 편할지도 모른다.

  1945년 맥아더는 말하지 않았는가!

  일본의 정신 연령은 12살짜리 아의 그것을 못 벗어났다고!

  하여간에 새로운 중일전쟁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1980년대 40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던 중공군이 지금은 200만으로 줄었지만 그것은 인해전술 대신 최첨단무기로 정예화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을 천여 기 가지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2005년에 중국이 자체 건조한 항공모함은 이미 인도양과 태평양을 누비고 있었고, 독일에서 구입한 첨단 엔진을 단 잠수함이 그 바다 밑을 훑고 있었고 40억 달러를 들인 러시아제 최신형 수호이 전투기, 장거리 폭격기, 장거리 수송기, 공중급유기 등이 그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미국은 이제 자체 힘만으로는 아시아에서 세력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제일 믿을 수 있었던 것이 일본이었지만 2005년 재일미군재편성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미국 국방부 장관이 오키나와 미공군기지 이전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필 같은 해, 한국이 러시아와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함께 만들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그동안 호크 미사일을 한국에 팔아 온 미 군수산업체에서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미국은 군수산업에서 막대한 수입을 얻어 왔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대만과 한국은 대공산기지의 전초기지였고 무기 소비국이었던 것이다.  

  한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은 2007년까지 40대의 차세대 전투기 에프-15케이를 미국에서 사들였기 때문에 동북아 최강의 공군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작전반경 1800킬로미터, 마하2.3의 속도로 적외선을 감지하며, 300킬로미터 밖에서 3미터의 목표물의 맞출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갖춘 최신예 전투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 대당 가격이 1억 달러였기 때문에 미국 군수산업체로서도 만만한 돈이 아니었다. 상업성을 빼놓고는 미국을 이야기할 수 없다. 


  수나라 100만 대군이 을지문덕 장군에게 박살난 뒤 조용하던 중국에 당나라가 들어서면서 다시 중원에서 고구려와 한판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고구려도 영양왕과 영류왕 때 몇 만명의 수나라 포로를 돌려 보내 주었지만 당태종은 이세적을 보내 요동의 고구려를 먼저 쳤다. 요동성과 백암성은 적의 투석기의 위력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신성을 지키고 있던 연개소문은 이를 갈며 당태종을 물리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 3국 가운데서 싸움 하나는 기가 차게 잘 하는 것이 광개토태왕 이래의 고구려가 아니었던가!

  당태종이 직접 대장으로 나서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고구려에게는 또 다른 위대한 장군 양만춘이 있었다. 안시성을 공격하기 위해 50만 명이 60일 동안 흙으로 산을 쌓아 가며 성을 공격했지만 식량은 떨어지고 살을 에는 요동의 날씨에 당태종은 결국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패잔병 모습으로 철군하는 당나라 군대의 뒤를 연개소문이 추적하고 있었다. 눈보라 치는 요동의 늪지대를 통과하는 당태종 이세민과 군사들은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들이 먼저 일으킨 것이었고 우리 백성들을 무참히 죽인 적이었다.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이었다.

부하들조차 거의 다 잃어버린 당태종은 얼마나 허겁지겁 도망을 갔는지 중국의 남쪽 산뚱반도 밑의 강소성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끈질긴 사람은 연개소문이었다.

  연개소문의 군대의 말발굽 소리가 귓전에 들리자 당태종 이세민은 민가 근처의 오래된 우물 속에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 숨었다. 낡은 두레박줄이 끊어지면 우물 속에서 죽을지도 몰랐지만 밖으로 나왔다간 연개소문의 칼에 곧바로 바로 죽음이었다.

  다행히 그때 도망갔던 거미가 나타나 우물에 거미줄을 마저 치기 시작했고 그게 몇 시간이었는지 당태종 이세민을 잡기 위해 연개소문의 부하가 우물을 살펴보면서도 그냥 지나치고 만 것이다.

  다행히 연개소문이 지나가고 요행으로 살아남은 당태종은 그 거미가 살던 우물에 황금빛 영롱한 거대한 몽롱탑을 세워 오늘날까지 중국 강소성 유적으로 남아 있다. 김덕팔이 10년 전에 경찰 동료들과 몽롱탑에 갔을 때 강소성에 사는 사람들 치고 그 당태종과 연개소문과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김덕팔은 득도한 것이다.

  ‘고구려! 바로 우리의 고구려가 아닌가! 그래, 동북아 강국 고구려처럼-.’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15세기 이전까지는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처럼 땅을 넓혀가는 세력 전쟁이었으나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1,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바다를 장악한 자가 세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항공모함과 전투기, 정찰위성이 첨단화 되면서 하늘로 바뀌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침공한 이른바 걸프 전쟁 이후 제공권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소련의 몰락과 동시에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등장이기도 했다.

  22세기에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자가 세계를 장악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김덕팔이 살아 있는 지금은 아직 21세기였다.

  독도의 하늘 위를 에프-15가 날아다니자 일본은 에프-22의 구입을 서두르고 있었다. 제공권-.

  한국도 에프-22를 배치하기 위해 미국과 교섭하면서 자체 개발에 성공한 차세대 전투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직 실전 배치된 것은 아니지만 성능은 에프-22보다 뛰어난, 앞으로 한국 영공을 지킬 주력 기종이었다.

  꿈의 군함 이지스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체 건조하기 시작한 국산 항공모함이 독도 앞바다를 지켜주기를 김덕팔은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 이미 독도 바다 밑을 항해하고 있는 미사일을 갖춘 잠수함과 더불어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제 김덕팔도 독도를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독도에는 키 작은 하얀 국화와 보라색 국화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피는 해국이었다.


  독도에서의 눈부신 전승으로 영웅이 된 김덕팔은 서울의 한 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

  전에 김덕팔과 부딪쳤던 친일파의 아들 경찰서장 백일진은 한 기업의 임원자리로 옮겨가 있었다. 경찰서장에서 물러나자마자 녀석은 용케도 회사 임원 자리까지 꿰어 차고 있었다. 가끔 경찰 모임에서 그를 만나기도 했지만 가볍게 인사만 할 뿐 절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만나기 싫은 놈은 만나지 않는 게 제일 좋고, 그럴 수 없이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절대 말하지 않은 게 좋다. 말을 하면 안 좋은 일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도 놈이 계속 무시하거든 확실히 밟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김덕팔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사람들은 낮과 밤의 기온차라든가, 햇볕에 잘 적응하지 못해 환절기 특유의 우울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특히 비가 오는 금요일 아침이면 오고 가는 사람들의 증세가 김덕팔의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길 위에서 서로 피해 가야 정상인데 괜히 마주 오는 사람 앞으로 거의 대각선으로 꺾어서 돌진해 오는 놈이라든지, 전철 넓은 자리 다 놔두고 괜히 사람 뒤에 바짝 붙어 서성이는 놈이라든지, 늙은 사람들이 좀 덜 했지만, 늙으나 젊으나 김덕팔이 보기에는 정신병자들이 급증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자살 사건 수사가 부쩍 늘었다. OECD 선진 30개국 가운데서 한국이 자살율 1위, 2위가 핀란드, 3위가 일본, 4위가 헝가리니 두 말할 나위조차 없는 사회 현상이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왜 컴컴한 여관방을 찾아가 집단 자살한다는 말인가? 다시 뭍으로 올라온 김덕팔이 보기에 사회는 병리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독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었다.

  폭풍이 몰아치고 거센 바람이 부는 곳에는 자살이 없다. 자살은 보통 햇빛이 쨍쨍 며칠간 내리 쬔 다음 날 잘 일어난다. 마치 요트 하나로 태평양을 횡단한 사람에게 언제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느냐는 물음에 비바람이 몰아쳐 돛대가 부서질 듯한 날이 아니라 햇빛이 내리비치는 맑은 날이 계속될 때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영국 어부들이 대서양으로 나가 청어를 가득 잡아 항구로 돌아오면 청어들이 전부 생기를 잃어 늘어져 있기 때문에 값이 얼마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잡은 청어들 속에 메기 몇 마리를 풀어 놓으면 고기들이 항구로 돌아올 때까지 살려고 파득거리기 때문에 싱싱한 채로 유지된다고 한다.

  한국의 병폐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김덕팔도 때로는 번뇌를 잊기 위해 원효가 가르쳐준 대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라는 11자만 주문처럼 중얼거리곤 했지만, 자살에 관한 성경의 한 이야기를 듣고는 탄복했다.

  어느 농장의 주인이 돼지들을 정성껏 씻어주고 먹이를 주며 길러주었는데 그 가운데 한 돼지가 살기가 좀 힘들다고 목을 메달아 자살 했다면, 주인은 그 돼지를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은망덕한 발랑 까진 돼지 새끼라고 욕을 할 것이다.

  김덕팔이 자리 잡고 있는 경찰서 지역에서도 자살과 교통 관련 사고가 제일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김덕팔은 경찰 교육 때나, 학교 강연회 때마다 예의 이야기들을 했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때 김덕팔은 자살 방지를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살기 좋은 푸른 환경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에 역행하는 자살을 할 확률이나 교통사고도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이스라엘은 200여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핵 보유 사실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건 인도나 파키스탄도 거의 마찬가지다. 세 나라 모두 국제핵확산금지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만은 핵무기가 있다고 공언했다. 현재 약 10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미국은 파악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2002년 폐막 하루를 남겨두고 700만 붉은 악마 응원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한국과 터키 3, 4위전이 있던 날 북한은 서해를 넘어와 한국 해군과 교전을 벌여 한국 해군이 10명을 죽게 했는가?

  그때 김덕팔이 독도로 가기 전 동해에서는 금강선 유람선이 가고 있었다. 서해에서는 교전, 육지에서는 한국과 터키 월드컵 축구 3, 4위전, 동해에서는 금강산 유람선이 떠 있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뉴스를 세계 언론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북한은 그걸 노린 것이다. 관심. 세계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리면 아프리카처럼 원조도 못 받고 기아로 굶어 죽는다.

  전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로 집중되면서 긴장감과 축제라는 두 가지 사실이 번갈아 일어난 것이다. 세계의 초점을 받게도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가까운 나라는 경계하고 먼 나라와는 서로 교류하라는 손자병법의 말대로라면 중국 일본 러시아를 경계하고 미국 유럽 그 외 다른 나라와는 서로 도울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약 5천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고, 러시아는 약 1만 개, 미국은 약 2만 개를 갖고 있다. 일본도 전쟁이 일어나면 몇 달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준핵보유국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큰소리치는 중국 앞에서 번번이 사무라이 특유의 결벽증에 가까운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와신상담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 독도에 기관포를 쏴대는 일본을 보며 김덕팔은 새로운 중일전쟁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혹 전쟁이 일어난다면 청일전쟁처럼 이 땅에서가 아니라 우리와 먼 동중국해나 남중국해, 일본 본토나 앞 바다 태평양 쪽에서 싸우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렇다면 자명한 일이다.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핵무기는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옛 고구려처럼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 선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이나 나라나 강인해야 한다는 것!

  

  김덕팔은 아침과 밤에 한번씩 순찰차를 타고 00경찰서 지역을 늘 순찰했다.

  경찰서장이 퇴근도 않고 아침이나 밤에 꼭 일반 순경들이나 지구대장들과 순찰을 도는 바람에 00경찰서 소속 경찰 공무원들은 진짬을 빼고 있었다.

  독도 경비단장으로 왜놈 순시선 야마토함을 격파한 영웅적 공적이 있는 경찰서장이 다 뜻이 있어 하는 일이겠거니 싶어 아무도 불만을 함부로 쏟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간신배 같은 약은 놈들이 호시탐탐 김덕팔을 음해하기 위해 공작중이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옛 친일파의 아들 백일진과 한패인 놈도 있었다. 경찰 밑바닥부터 올라온 김덕팔이라 그런 자들의 생리는 꿰뚫고 있었지만 워낙 간교한 무리들이라 늘 주의하면서 여차하는 순간에 일벌백계로 다스릴 생각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언제 어디고 그런 무리들은 있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 보기 싫다고 호랑인 사자도 혈통만 고집하다간 멸종되기 쉽다. 하이에나들 무리와 똑같은 집단행동을 하는 간신들처럼, 어질고 착한 이들도 자주 대책 회의를 해야 하며 기회가 오면 야성의 동물처럼 동정 없이 악한 무리들의 뿌리를 과감히 잘라버려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하지 않았는가. 친구는 충고를, 적은 경고를 해준다고.

 

  남북한은 10년째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지만 자유 왕래는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통일보다 두 국가를 연합한 국가연합이 더 낫지 않을까?

  독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되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서독의 빈부격차, 20%에 가까운 실업률, 서독인과 유태인들의 동독 땅 찾기 소송들이 3만건 이상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견디다 못한 수상이 선거에 져 물러나고 독일 역사상 차음으로 여성 수상으로 바뀌었다.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 50년 간 다르게 살었던 삶에 대한 차이를 깨닫고 그것의 장점들을 발견해 내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 1달러면 빵을 먹고, 작장에 다니며, 적당한 일을 하고 쉬며, 좀 낡았지만 따뜻한 집이 있었던 동독인들에게 거만한 서독인들의 자본주의적 고효율 생산 위한 경쟁심 부추기는 바로 인간성의 말살을 가져 왔다.

  동독 자본의 90%가 서독의 신탁관리청으로 넘어가면서 자본주의를 모르는 경쟁력 없는 동독인들은 정리 해고 되었고, 경쟁력 있던 유리 산업 도시의 공장마저 문을 닫아 사람들이 떠난 황폐한 도시는 휑뎅그렁한 바람만 거리를 휩쓸고 있다.

  한국도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에게 서독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50년 동안 각자 다른 곳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 그게 가정이든, 학식이든, 예술이든,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는 독일의 여성 작가 다니엘 라단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없애기 위한 맹세로 손가락을 자를 때 그 자리에는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11명의 독립투사 김기룡, 유치홍, 정원주, 박봉석, 조응순, 백규삼, 강순기, 강창두, 황병길, 김천화, 김백춘도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손가락 끝에서 떨어지는 붉은 피로 태극기에 쓴 것은‘대한독립’이었다.

  친일파의 아들 백일진은 은근히 자기 집안의 땅을 김덕팔에게 자랑하곤 했다. 김덕팔은 그게 말로만 듣던 왜놈들 총독부로부터 받은 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철저히 가려낸 프랑스는 1950년대 드골의 등장으로 더욱 강해진 나라가 되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공산주의자들을 잡는다는 이름으로 돈과 권력과 무기를 쥔 친일파 들은 착한 백성들까지 같이 때려잡았다. 그것이 바로 제주도 4·3 학살 사건이며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었다. 그들은 왜 죽는지도 모르고 끌려가 집단 학살을 당했다. 그때 경찰 간부로 활약한 이가 바로 친일파 백일진의 아버지였다.  


  김덕팔은 맡은 경찰 일을 처리하러 아래위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가는 곳마다 뭔가 답답한 터질 듯한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꽉 휘어잡은 자리에 앉은 과장, 국장들, 그리고 그 위의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모든 구조를 장악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의 부하 직원까지 그와 똑같은 사람들로만 채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가난하지만 어질고 신선한 사람들의 말에 문을 닫아버린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경영자나 노동조합이나 똑같이 돈과 자리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릿발 같은 윗사람 맑으면 아랫물도 맑은 법!

  어떻게 뇌물을 먹은 백일진이 기업의 임원이 되었을까? 그건 바로 그 위의 관료들이 뇌물을 먹고 간신을 키운 꼴이다. 악순환-.

  김덕팔은 서장의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물 흐르듯, 발거음 닿는 대로 걸어갈 것이다. 물론 대로는 물도 막혀 흐르지 못하고 뜻하지 않은 쪽으로 걸어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닫고 있으므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은 그에게 새롭게 지혜를 깨닫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김덕팔과 같은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세상을 지켜보는 자는 적다. 거기에 자연의 지혜를 볼 줄 아는 자들은 더욱 적다.

  다만 인간사만 교묘하게 처리할 줄 아는 자들이 늘어날 뿐이다. 그들은 그들끼리의 싸움에 지쳐갈 것이며 더욱 못되어 질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 지혜를 깨닫지 못하니까. 동양의 여백과 서양의 조직을 깨닫지 못하니까. 동양의 자연과 서양의 인간을 깨닫지 못하니까.


  김덕팔이 지구대장과 같이 순찰차에 타고 순찰을 곧잘 돈다는 이야기는 했는데 그때마다 김덕팔은 나약해지고 못된 자존심만 키워 절대 양보할 줄 모르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앞에서 조금 천천히 가도 될 것을 소리를 내며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 인도에 다닐 때 앞사람이 와도 서로 조금도 피할 줄 모르는 주민들. 양보를 하지 않는 게 자기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러던 어느 날 김덕팔은 차들이 멈추는 신호등은 있지만 횡단보도는 없는 도로-왜냐하면 바로 조금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가 있기 때문에-를 그냥 건너는 한 신사를 보게 되었다. 다음 순찰 때도 우연히 그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긴 횡단보도가 없는데요.”

  김덕팔이 그렇게 말했다. 따지고 보면 무단횡단이었다.

  “대신에 차들이 서는 신호등이 있잖소.”

  신사는 당당했다. 나이는 40대로 보였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문화, 뭐 그런 말 있잖소.”

  그 한 마디에 김덕팔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거기에 횡단보도 선을 그었다. 사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는 결국 차에 탄 사람도 생각하게 되는 문화인 것이다.

  김덕팔이 순찰하는 길 가운데는 유난히 키 크고 푸른 나무가 많은 언덕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길만 올라가면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둣 눈과 가슴이 맑아지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덕팔은 그 신사가 바로 그 길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사와 김덕팔의 인연은 앞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낙엽이 지는 거리도 음악처럼 낭만이 있었다.

  장마가 오기 전의 무덥고 지루한 날 보다는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 훨씬 김덕팔에게 어울리는 계절이었다.

  요즘의 김덕팔에게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곧 음악이었다.

  그 만큼 바쁜 가운데서도 하나의 여유를 찾을 줄 아는 김덕팔이였다. 삭막한 도시에서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과 같은 낭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김덕팔은 문득 지난 가을에 독도에 피던 해국이 떠올랐다. 뭍으로 올라온 지 벌써 1년이 지나간 게다.

  독도.

  독도경비단장 시절.

  왜선 야마토함 격파.

  정말 꿈만 같던 시절이었다.

  가을은 짙어지고 있었다.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어질지 않지만 김덕팔이 만난 어진 사람들은 뛰어났다. 그들은 큰일뿐만이 아니라 귀찮고 더러운 일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일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었지만 김덕팔은 그런 그들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날은 김덕팔이 지구대장과 같이 그 언덕길 나무 밑에 차를 잠시 세워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일전의 그 신사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올라오다가 돌이나 나뭇가지가 길 가운데 있으면 바로 옆으로 밀어 놓았으며, 어린 아이가 뛰어 내려오면 위험하다고 한쪽 옆으로 가라고 말했다. 또 나이든 사람들이 내려오면 고개를 숙이며 길가로 내려섰고,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들어 푸르게 어울어진 키 큰 나무들을 쳐다보며 혼자 감탄하듯 미소를 지었고,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얼굴을 내맞기기도 했다.

  그 사의 그런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기분을 흡족하게 하는 것이었다. 저런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을 어질다고 하겠는가, 김덕팔은 그런 생각을 했다.


  어른들은 주어도 안 먹을 밥을 먹는 학생들.

  그게 바로 학교 급식이었다. 이미 저질 고기 파문과 불결, 식판에 남은 린스액 등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중국산 김치에 납과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 것이다.

  김덕팔은 학교와 급식업체의 수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벌써 여러번 문제가 된 식품의약안정청이엇고 복건복지부였다. 그리고 온 국민이 기생충과 납이 든 김치를 먹는데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지 않았다.

요즘의 구토와 피로는 회충 때문이 아닐까? 김덕팔은 약국에 구충제가 바닥나기 전에 식구들에게 하나씩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온 국민의 몸 속에는 회충과 납이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는 세상.

  말이 안 되는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 또 그런 사람을 뽑는 말이 안 되는 사람. 세상과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과 어진 마음을 길러두어야 한다.


  금융계 살린다고 정부가 뿌린 그 어마어마한 100조원은 다 어디에 갔을까? 거두어들이지도 못하고 있는 그 돈은 살아 있는 국민의 돈이다.

  그 돈이면 학교 급식 문제, 소년 소녀 가장, 비정규직, 불쌍하고 가난한 농어촌 사람들, 노인들,  다 살리고도 남는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건물들은 다 은행, 보험, 금융 감독원, 자산 관리 공사들이었다. 그 건물들만이 새로 높이 잘도 올라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어리어리했다. 그러면 그들과 어울린 정부는 왜 국민의 돈을 회수하지 않는가? 김덕팔도 경찰서장이라는 공직자로서 국민들 앞에서 면목이 없었다.

  부끄럽지 않은가!

  허덕이는 수많은 서민들이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0년만에 국군포로가 북한을 탈출해 돌아오고, 30년만에 납북된 어부가 돌아오는 나라, 바로 한국이다.

  그 생존포로는 1953년 포로교환 때 돌아왔어야 하고, 어부는 바로 송환되었어야 한다. 그걸 끈질기게 요구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면 국민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그들과 헤어진 그들의 핏줄이 몇 십 년을 목 메이며 기다리지 않는가? 수천 명의 납북자와 국군포로가 아직 북한에 살아 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가 다시 북송되어 함경남북도의

수용소에서 다른 탈북자와 함께 죽어 가고 있다!

  왜놈들에게 끌려간 조선인 징용자들은 발가벗긴 채 매를 맺으며 ‘어머니 배가 고파요’라고 못으로 갱도에 써가며 죽었다. 그 사할린 동포들은 왜 식구들과 영주 귀국도 못하는가! 왜놈들은 1945년 패망 때도 일본인은 사할린에서 다 찾아 갔다.

  해방 조국으로 돌아오던 조선인 징용자들이 탔던 우키시마마루호는 왜 폭파되었는가? 

  일제 피해 여성들은 명예를 보상 받았는가!

  열도의 남태평양에서 죽어간 조선인 학도병들은 넋이라도 되찾아 왔는가!

  그리고 차디찬 마주 벌판과 러시아 연해주의 땅 속에 묻힌 독립군의 이름과 그 자손들을 찾아보았는가! 


  대학은 교수 채용 비리와 연구비 착복 등으로 이미 수사를 받고 있었다. 김덕팔의 경찰서 지역 안에도 대학이 두 개나 있었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접수된 내용을 보면 거의 모든 대학에서 교수 채용 비리가 있었고, 연구비를 받고 쓰는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 이미 몇몇 대학에서 몇몇 교수가 구속되었지만 그건 회사나 공직 사회의 구조적 비리처럼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김덕팔이 수사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박사 학위를 둘러싼 비리가 포착되었다. 박사 학위 심사를 하는 교수들에게 몇 백만의 돈이 흘러들어 갔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들과 열심히 강의하는 훌륭한 선생님과 대학을 중심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대학은 투명하고 건전하게 발전해야 한다.

  김덕팔은 독도 해전 승리 후에 몇몇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대학의 이상한 제의와 교수들의 오만한 태도. 김덕팔은 초청한 것은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학식 이전에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모습조차 갖추고 있지 않아 보였다. 그런 그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대학은 연구뿐만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기관이 아닌가?

아무데나 침을 뱉고 마른 잔디 위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학생들. 김덕팔이 보기에 그럴 바에야 차라리 땅바닥에 버리고 밟으면 화재의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침도 가래도 뱉을 수 있다. 그러나 왜 하필 깨끗한 바닥이나 계단에 뱉는가? 바깥 흙이나 차라리 풀에 뱉으면 되지 않는가?

  그들은 마주치는 길에서 조금도 옆으로 길을 양보하지 않았다. 과연 이곳이 대학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앞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피하지 않는 것이 자존심인가? 그게 겨우 자기를 지키는 요즘 대학생들의 자존심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보통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김덕팔은 서둘러 대학을 빠져 나오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일본을 이길 수 있는가? 과연 우리나라의 앞날은 밝은가?

  김덕팔이 강연하는 도중에도 몇몇 학생들은 껌을 씹으며 옆 사람과 떠들고 있었다. 심지어 제일 어떤 여학생은 거울을 꺼내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그럴 바에야 왜 들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 학생들만 그러랴.

  거리에서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몰상식한 사람들을 수없이 본다.

  어린 학생들이 그들의 나쁜 것을 보고 어른 흉내처럼 따라 한다. 그러면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모르고.

  개성적이라는 학생들이 왜 남들과 똑같이 따라 하는가?

  김덕팔이 보기에 학생들의 머리 모양, 옷 모양은 거의 다 똑같았다.

  교수들 말에 의하면 강의실 안은 자유석인데도 한 한기 내내 지정석처럼 한 자리에만 학생들이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지도 않는 잠을 일부러 자고 심지어 제일 앞자리에서도 누운 학생이 있어서 무얼 읽어 보라고 시키면 정확하게 그 자리를 찾아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자는게 아니라 반항적인 청소년처럼 일부러 자는 척하며 관심을 끌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김덕팔은 기가 찼다. 스무 살의 대학생들과 청소년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인생 폭이 좁다는 뜻이다. 많은 책을 읽어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배우지도 못했고, 험하고 높은 산을 참고 넘어며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껴보지도 않았으며, 거리에서 약한 사람들을 한번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랑 까진 학생들은 제 식구들과 사회를 닮아 그런 것이니 우선 그쪽부터 흙과 나무와 산을 닮도록 할 것.


  새로운 중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 먼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아니면 동경만 앞 바다 태평양이나 한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일본 본토에서 일어나주길 김덕팔은 간절히 빌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제공격은 일본의 동중국해 가스전 폭격이었다. 역사적으로 전쟁 도발은 항상 일본이 먼저였다. 삼국, 고려 시대 왜구가 그러했고,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 때도 뭐 명나라를 치러가니 길을 빌려달라고? 왜 하필 우리 땅이냐? 홋카이도에서 연해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오키나와에서 대만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든, 아니면 제주도 밑으로 동중국해를 지나 남경을 쳐도 될 것을 왜 굳이 가만히 있는 조선을 치느냐. 또 가까이는 선전포고도 없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다가 원자폭탄 두 방 맞고 항복하지 않았는냐!

  섬나라 일본은 지진이 많아 언제 가라앉을지 몰라 불안해서 그런지 야금야금 남의 나라 탐내는 것은 왜구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싶었더니 기어코 중국이 가스전에서 석유 생산을 시작하자마자 선전포고는 역시 하지도 않고 우리나라 제주도와 대만 사이에 있는 동중국해 가스전을 폭격한 것이다. 새로운 중일전쟁의 시작이었다. 


  일본이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있는 것은 길게 이어지는 오키나와 열도가 하필 대만이 있는 동중국해(동지나해)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의 어조도(중국명은 한자 어순으로  조어도)는 거리롤 보면 제일 가까운 대만의 영토이어야 마땅하지만 중국이 조어도(고기를 낚는 섬)이라는 이름으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대만 위의 거기부터 우리나라 제주도 밑까지가 동중국해(동지나해) 가스전이다.

  저기 남중국해가 아니라 새로운 중일전쟁이 우리나라와 가까운 쪽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1984년 청일전쟁 때처럼 조선의 황소와 여자들을 다 끌어가던 것보다야 나은 것이다.

  한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마음속으로야 어떻든 철저히 냉정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살 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삼면의 바다에 미사일 배치를 다 끝내놓고 비밀 병기를 개발하고 있지 않았던가!

  중국도 일본도 한국의 지원을 바랐지만 한국은 두 나라에 휴전을 먼저 제의했다. 승산 없는 싸움. 새로운 중일전쟁은 오직 패자만이 나올 뿐이다. 중국은 이미 산뚱 반도 앞에서 러시아 중러 합동군사훈련을 한 바 있고 일본은 미국을 믿고 있었다. 이걸 풀 수 있는 나라로 서서히 중립을 지키는 한국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미국이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으로서도 경제대국의 자리를 한국에 내줄지도 모르는 싸움이었다.

  싸움에서는 중국이 밀리고 있었다.

  이제 바다와 하늘을 장악한 일본은 중국 대륙을 넘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41년 태평양 전쟁과 1990년 걸프전과 2002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국에게 배운 제공권 장악의 전술이었다. 그때 일본은 미국 뒤를 따라다니며 미국 함선에 원유를 보급했고 인도양과 대서양에서 대양 해군의 전술을 익혔던 것이다.

  중국은 본토를 위협받게 되자 1937년 중일전쟁의 악몽을 떠올리며 대만을 구슬렸다. 이른바 대만과의 밀약이었다. 즉 대만이 중국을 지원해준다면 영토 분쟁의 시발점인 조어도를 가장 가까운 나라인 대만의 영토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대만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본토를 위협하는 일본은 대만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중국과 대만의 밀약을 간파하고 대만 폭격을 시작했다.

  대만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어 중국과 군사동맹 관계인 북한이 일본 본토를 향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참전하면서 동북아시아는 전쟁의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몇 년 전 북한이 하늘로 쏘아 올린 것이 일본열도 바로 앞바다 태평양 쪽에 떨어졌을 때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우겼지만 일본은 대포동 미사일의 시험 발사로 발표했다. 일본은 경악했고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정찰위성을 2개나 우리나라 상공에 쏘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 대만과 전쟁을 하면서 일본 열도로 날아드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은 위협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3대 1의 싸움에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이제 일본 본토가 중국, 대만, 북한의 공세에 위협받고 있었지만, 미국은 전쟁 중지를 요구할 뿐 참전하지 않았고, 한국 또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중국과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은 한국이 이번 동북아시아 전쟁을 중재해줄 것을 비밀리에 요청했다.  


  한국은 동북아전쟁을 마감 지을 장소로 독도를 택했다. 중국, 대만, 북한, 일본의 정전협상 대표들만 독도에 들어오도록 했다. 미국과 러시아, 유엔 대표는 참관인 자격으로 한 명씩 참가했다.

  이번 전쟁은 일본이 밀리는 판이었다. 초반에 밀리던 중국이 대만, 북한과 더불어 3대 1로 일본과 싸우면서 승세를 잡았고, 마지막에는  큐우슈우에 상륙 작전을 할 지경에 이르자 다급해진 일본이 미국에 중재를 요청했고, 묘한 처지에 있던 미국은 끝까지 중립을 내세운 한국에 모든 정전협상을 한국에 맡기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동북아시아 전쟁이 침략주의 일본에 의해 확전이 되면서 위협을 느낀 한국이 중국과 대만의 밀약을 주선하면서 전쟁의 행방은 가름나기 시작했고,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본토에 심리적 타격을 준 것이었다.

  중국, 대만, 일본, 미국이 경제적으로도 크게 손실을 입었다.

  그런데 바로 독도조약을 맺는 곳이 김덕팔이 있던 독도 경비단여서 그런지, 독도해전과 영토 문제를 이번 조약에 포함시키려는 뜻이 있었는지 한국 정부는 김덕팔을 독도로 불러들였다.

 

  독도조약

 

1. 이번 동북아시아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

2. 중국, 대만, 북한, 한국, 미국, 러시아 6개국은 아시아에 항구적 평화가 올 때까지 일본에 전쟁감시단을 파견한다.

3. 대만은 독립국으로 유엔에 가입하고 중국은 이를 인정한다.

4. 동중국해 가스전은 중국 소유, 조어도는 대만 영토, 독도는 한국 영토, 쿠릴열도 4개섬은 러시아 영토임을 일본은 인정한다.  

5. 일본은 태평양전재을 일으켜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힌 아시아 및 태평양 각국에 사죄하고 피해보상 1000억 달러를 2년 안에 완전 지급한다. 

6. 동북아시아에 항구적 평화가 올 때까지 이 독도조약은 유효하며, 전쟁 당사국 중국, 일본, 대만, 북한과 중재국 한국과 참관국, 미국, 러시아, 유엔 대표부가 서명하고 인정한다.

  

  한 일본 신문에서 독도 조약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김덕팔의 얼굴을 크게 실었다. 그가 바로 독도해전에서 일본 순시선 야마토를 격파한 독도 경비단장이라는 글과 함께.

  경찰서장 김덕팔의 전자우편에 그를 협박하는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김덕팔은 즉시 보안정보과장에게 국제경찰 인터폴과 같이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독도조약을 반대하는 일본 정계의 거물이 뒤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김덕팔이 집으로 가는 길에는 긴 언덕길이었다. 거기는 나무가 많아 경치가 좋았지만 밤에는 인적이 좀 드물었다. 보안등을 몇 개 더 달아 훨씬 밝아졌지만 김덕팔은 언덕을 오르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달빛마저 보이지 않는 밤안개가 부옇게 긴 날 밤, 김덕팔은 그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런 날은 사고가 유난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지시와 순찰을 하느라 다른 날 보다 늦은 밤 12시가 지난 시각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언덕길로 들어섰다. 아까 같이 길을 건너던 사람은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김덕팔은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등의 선이 꼿꼿했다. 뭔가 모르게 약간 이상했다. 이를 때 김덕팔의 예감은 적중률 90%였다.

  그러나 너무 피로했고 내일 또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못 본 척하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김덕팔은 습관적으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 없는 나무쪽에서 소리가 좀 나는 것 같았다. 새나 고양인가? 어두운 수풀 속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김덕팔은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들을 쳐다보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검은 물체가 휙 하며 김덕팔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김덕팔은 본능적으로 뒤로 피했다.

   앞의 검은 물체는 복면을 쓰고 칼을 들고 서 있었다.

  “뭐야, 이 새끼!”

  김덕팔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얼른 옆에 있는 긴 나무막대기를 주어들며 그의 팔을 내리쳤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번개 같은 김덕팔의 순발력이었다. 매일 10킬로미터 씩 걸어 다니며 운동과 순찰을 한 김덕팔은 몸은 강철과 같았다.

  녀석은 힘 한번 못 써보고 꺼꾸러졌다.

  김덕팔은 녀석의 팔을 비틀어 뒤로 수갑을 채우고 녀석의 복면을 벗겼다. 콧수염이 난 놈이었다.

  “너 누구야?”

  김덕팔이 멱살을 잡고 말했다.

  “닌쟈-.”

라는 녀석의 말에 김덕팔은,

  “이 왜놈 새끼!”

하며 대번에 녀석의 머리를 덥석 잡고 얼굴을 주먹으로 세 대 갈기자 녀석은 그대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김덕팔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면서 순찰차를 불렀다.


  사랑? 그거 우스운 거지.

  김덕팔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이제는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다 컸다.

  그렇다고 김덕팔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언제나 사랑타령만 하는 세상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 그거 우스운 게다.

  누가 누구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말인가? 물거품 같은 것이지. 김덕팔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잘 알 수 없는 끈끈한 정 같은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 정마저도 때로는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을.

  조각난 정을 하나하나 줍는 사람들. 주어 다시 꿰맞추는 사람들을 김덕팔은 믿는다. 부부의 인연은 믿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다.


  선진 문화를 그렇게 믿지 말라.

  우리의 뒤떨어진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교와 기독교와 유교의 전통이 한 곳에 잘 섞인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중국은 일본과 기독교가 뿌리 내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유교보다도 호전적 민족주의 색체가 강한 신또오는 임진왜란 이후 에도시대 국수적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문화 일색인 미국과 유럽보다도 훨씬 다양한 것이다. 그래서 괴롭기도 했지만 그들이 결코 맛보거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 교육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보여준 우리의 문화에 세계는 눈을 떴고,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의 힘이었다.

  50년이 지난 생존포로가 자유와 형제부모를 찾아 이념과 사선을 넘어오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

  자유와 민주를 위해 끊임없이 항거하다 1987년 6월 항쟁의 민중혁명을 성공시킨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세계 금융구조를 받으며 금반지를 내다 파는 민주국가가 있었던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나라. 아직 그런 나라가 있더냐?

  김덕팔은 부자를 믿지 않는다. 부자이면서 어진 사람을 믿는다. 김덕팔은 가난한 사람도 믿지 않는다. 가난하면서 어진 사람을 믿는다.

  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 우리는 한 그루의 나무와 친해보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더 찾아보아야 한다.


  김덕팔은 식구들과 강화도 마니산에 올랐다.

  쉴 새 없는 지난 1년이었다. 그 동안 아이들도 부쩍 자라나 있었다.

  아내는 싸울 때 말고는 늘 말없이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유적 가운데서 우주에서 보이는 것은 중국의 만리장성과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빛이 있어 우주인들이 조사해보니 바로 참성단이었다. 바로 고조선의 첫 임금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신성하지 않은가!

  신선하지 않은가!

  지구의 불빛이 바로 이 한국 땅에서 우주로 빛난다는 좋은 징조이다. 일본도 굴복했고 완전한 남북통일도 멀지 않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의 정신문화는 간직해야 될 유산이다.

  마니산 꼭대기까지의 200계단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모두가 묵묵히 참고 올랐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서해 바다가 아련히 펼쳐져 있었다. 참성단은 단순히 돌로 쌓은 작은 제단이었지만 마니산은 물기를 가득 품은 푸른 이상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김덕팔과 예술이 무슨 관계가 있나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다.

  김덕팔의 어머니는 과일을 먹고 난 다음에도 씨앗을 버리지 않고 심었다. 지나가다 내버려진 꽃이나 나무도 다시 심어 살렸고, 여치나 방아깨비가 발에 치일 것 같으면 길가 풀숲으로 살려주었다.

  김덕팔의 아버지는 겨울 강가에 나가 혼자서 돌을 주었고, 값싼 꽃들을 마당에 심었다. 그래서 봄이면 라일락 향기가 온 뜰을 휘감고 돌아다녔고, 여름에는 검붉은 장미가, 가을에는 노랗고 하얀 국화가 피었다.

  어린 김덕팔은 초여름의 빨간 앵두를 한 바가지씩 식구들과 땄다. 채 익지 못하고 떨어진 어린 감은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꺼내 먹었다.

  밀레의 만종처럼 이삭 줍는 아낙네들처럼 이런 게 예술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김덕팔은 경찰서의 따스한 창가로 날아드는 벌과 무당벌레가 창밖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면 문을 열어 다시 밖으로 보내주었다.  

  이게 모두의 마음을 위한 예술이 아닐까?

 

  정규직 데모, 그거 우스운 거지.

  결국은 월급 더 올려달라는 것이고 비정규직은 안중에도 없지.

  그래서 유럽에서는 노조를 붉은 돼지라 하지 않는가?

  김덕팔이 수사해보니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다 비정규직에 있었다. 그들은 힘없는 대게가 청소원, 막노동꾼, 마흔이 넘은 남자 시간강사들이었다. 그들은 1년에 1000만원도 안되는 생활비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늘 걸어 다녔고, 버스나 전철만 탔으며, 그 흔한 식구들과의 외식 한번 없었으며, 옷을 한번 사면 10년을 넘게 입고 있었고, 10년이 넘도록 집안 도배 한번 하지 못했고, 10원을 아끼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무슨 자가용에 골프를 치겠느냐!

  그럼 윗물은?

  재벌은 300억 생활비로 횡령해도 구속하지 않고 일반 형사범은 몇 백만 원에 구속되는 세상! 유전뮤죄, 무전유죄! 이러니 백성이 경찰을 믿겠느냐, 검찰을 믿겠는냐! 재벌을 믿겠느냐! 정치인을 믿겠느냐! 나라를 믿겠느냐!  떨어지는 촉루는 백성의 눈물이요, 기름진 고기는 백성의 고혈이다!


  진정한 예술가가 수입이 없다면?

  죽지 않으면 예술이 된다.

  가짜 예술가가 수입이 없으면?

  양심을 판다.


  중국은 왜 북한으로 침략해 들어 왔는가?

  하루아침에 중국은 군사 행동을 개시했다. 언뜻 보기에는 북중전쟁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북한의 통일이 가까워질수록 중국은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군사 대국 고구려가 그들의 머릿속에는 떠나지 않는 것이다. 당시  최대의 왕국 당나라가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양만춘에게 패해 당태종이 도망가다 우물에 숨어 겨우 숨을 건졌으니까.

  이제 아시아의 일본은 그들에게 꺾였다.

  그러나 중국 대륙이 동북아전쟁에서 일본에 밀리며 폭격을 받자 그들을 도운 곳이 누구인가? 바로 새로운 3국연맹의 북한과 대만이 아닌가?

  그런 중국이 호시탐탐 북한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그걸 애써 모른 척 했던 북한과 한국과 미국의 책임이 아닐까?

  일본이야 잘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호전적 그들이기에 어쨌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고 했을 테니까. 가만히 있을 왜놈들이 아니지. 한때 아시아 최강국, 아니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었으니까. 동북아 전쟁에는 졌지만 대지진과 화산 폭발로 언제 열도가 침몰할지 모르는 그들은 끊임없이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한국을 노리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다시 일어서지 않았는가.

  미국은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비롯한 전 태평양 함대를 한국의 동해와 서해에 배치시켰다.

  북한 땅에서의 미중전쟁?

  미국의 전쟁 개입과 더불어 중국과 북한의 전선은 개마고원 일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북한과 중국은 벌써 수천 명의 전사자가 났지만, 미국과 중국은 서로 한 발의 폭격도 하지 않고 으름장만 놓고 있었다.

  김덕팔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나라가 준전시 상황이고 전 경찰 병력에도 비상이 떨어졌지만 왜 갑자기 중국의 남침이고 미국의 즉각 개입, 총 한 방 없는 두 나라의 이상한 전쟁이 벌어졌는가?

  혹 한국과 북한의 통일을 위한 비밀 협약? 그 정보를 손에 놓은 미국이 중국에 알려주고 미국이 개입하는 각본이 짜인 것은 아닐까?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중국과 미국은 그들의 위세를 보여줄 땅을 하나 잃는 셈이다.

  중국은 다시 압록강 위로 물러나고 그 대신 완전한 남북한 통일은 또 늦어질 것이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통일을 위해 한국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강하면 통일을 하든 말든 옆에서 누가 뭐라 그럴 수 있나.    

 

  이번에도 한국이 이 전쟁의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

  그럴수록 밝혀지는 전쟁 정보는 놀라운 것이었다.

  북한의 어느 군부 세력이 반 김정일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전에 중국과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만약 실패할 경우에는 중국으로 망명길을 열어준다는 것이었는데 중국과 미국이 그 정보를 미리 김정일 정권에게 넘겨주고 북한 민중 봉기를 두려워한 중국이 압록강을 돌파해 들어와 반란군과 전쟁을 벌인 것이었다.  

  이른바 서울협약이 맺어진 것이었다.

 

  <서울협약>

  1. 북한에 소요사태가 일어날 경우 중국은 자국의 안전에 위협이   될 때 즉각 개입한다.

  2. 중국과 미국과 러시아와 한국은 북한에 4국 전쟁감시단을 둔다.

  3.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다.

  4. 남북한의 자유 왕래를 제한적 왕래로 바꾼다. 

  5. 북한을 독도조약의 일본 전쟁감시단에서 제외한다.


  짧은 전쟁이니만치 간단한 협약이었지만 중재를 한 한국에 좋을 것 없는 이상한 협약이었다.

  김덕팔은 이 서울협약의 치안을 맡았다. 서울에 중국군, 러시아군 장성들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며 김덕팔은 야릇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중국이 반대했지만 미국은 한국과 러시아를 전쟁감시단에 끌어들였다. 아무래도 중국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러시아가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한 동안 기를 펴지 못하게 되었지만, 김덕팔의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번 서울협약에 알게 모르게 일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었다. 동북아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에 고개 숙여 끈질기게 요구했을 것이다. 북한을 일본 전쟁감시단에서 빼달라고. 남북한은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이 미국과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하나 둘씩 수십 년이 걸려도 야금야금 다시 일어서는 일본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들은 언젠가 독도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나올 것이다.


  일본이 왜 김덕팔에게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초청했을까?

  아무래도 겉으로는 일본 순시선 야마토함을 격파한 그의 모습이 독도조약 때 참가한 사진과 함께 최근의 닌쟈를 잡은 김덕팔이 일본에 보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과연 그것뿐일까?

  과연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김덕팔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느 정도 생각하면 문제의 반은 풀렸고, 나머지 반은 움직여보며 운에 맞기면 되었다.

  가지 않은 게 좋겠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가고 싶지가 않았다. 언젠가 한번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은 김덕팔에게 맞는 땅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감금 사건, 집단 따돌림이 많고, 아기를 사물 보관함에 넣어두고 게임을 한다든지, 청소년이 같은 동네 초등학생 목을 따서 교문에 걸어둔다든지, 비소를 몇 달간 음식에 타 먹여 수십 명의 목숨과 보험금을 빼앗는다든지, 화학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이 자기 어머니의 밥그릇에 독약을 발라 실험을 한다든지, 한국과는 성격이 다른 사건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이 범죄 검거율이 높은 것은 과학적인 수사보다 아직 왜정 때처럼 뒷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샅샅이 훑고 다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들이 괜히 김덕팔 좋으라고 초청을 할 까닭이 없다. 뭘 캐내기 위해서가 아니면 뭔가 위험한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덕팔이 사는 집은 언덕 위의 작은 연립주택 2층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아래층에 웬 외국인이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전에는 나지 않던 담배 냄새가 나서 아내가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몇 달 전에 왔다고 한다. 그동안 김덕팔도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담배 냄새야 창문 닫고 참아야지.”

  “창문 쪽이 아니라 가스렌지 쪽이라니까요.”

  “좀 참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사는 집에서 그건 힘든 일이었다. 자주 문을 열어 환기를 했지만 그래도 담배 냄새가 많이 날 때면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그 담배 냄새는 오전에만 나고 김덕팔이 들어오고 난 밤에는 전혀 나지 않았다. 불빛이 있는 걸로 봐서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하여큰 밤에는 상당히 조용해서 오히려 시끄러운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루는 김덕팔이 집에서 쉬는 날이라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이상한 것을 찾아냈다. 바로 물이 빠지는 배수구 아래쪽으로 검은 고무줄 같은 선을 발견했다. 아무리 보아도 케이블선 같아 보였다. 이런 게 왜 여기 있다는 말인가? 순간 김덕팔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사 온지 몇 달이 되면서도 연립 주택입구가 같은 곳에서도 김덕팔과 한번도 마주치지 않은 점, 담배 냄새 외에는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소형 카메라나 도청기가 달린 것 같은 케이블 선.

  김덕팔은 직감으로 수사에 들어갔다. 녀석의 우편물과 경비원에게 출입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 또 경찰청 외사과에 근무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녀석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국에도 한달에 한번은 간다는 것,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한 날에도 집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는 점, 그런 날이면 머리카락은 까맣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 듯한 동양인이 그 집에 들렀다는 점 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덕팔과 같이 온 사복 경찰은 그 케이블 선을 보자마자 소형카메라를 달 수 있는 도청 장치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독도해전 이후 강연해 온 동북아전쟁의 위험성, 독도조약에 얽힌 이야기, 서울협약에서 알아낸 놀라운 정보들에 대해 미국 정보국이 김덕팔을 위험인물로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경철서장이 영장도 없이 가택 수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내일 영장을 청구하기로 하고 사복 경찰을 돌려보냈다.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김덕팔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몇 시나 되었을까? 베란다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스윽, 바스락, 스윽 바스락, 뭔가 조금씩 끌리는 소리, 사람 발자국 소리처럼 무겁지는 않고 그렇다고 바람에 끌리는 낙엽 소리 같지도 않은, 규칙적으로 한번씩 쉬었다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베란다 배수구?

  김덕팔은 옷을 입고 권총을 찼다.

아내는 잠이 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공부하는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거실로 한발 한발 걸어갔다. 걸어둔 비상 전등을 집었다. 그것도 얼마 전 전철에서 산 장난감 같은 1000원짜리 작은 레이저 전등이었다.

  다행히 거실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바로 창문 앞에서 베란다 배수구 쪽으로 레이저 전등을 비추었다. 그 순간 김덕팔은 깜짝 놀랐다. 그건 바로 폭발물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김덕팔은 베란다로 내려서자마자 그 검은 물체를 집어들고 권총으로 베란다 창문을 깨고 밑으로 그것을 내던졌다. 아래쪽은 옹벽이 있고 잡초가 무성한 공터였다.

  쾅!

  김덕팔이 거실로 몸을 눕히자마자 섬광과 함께 폭발음이 들렸다. 김덕팔은 권총을 든 채로 베란다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의 베란다 창문은 산산이 깨져 있었고 김덕팔은 1층 녀석의 거실로 들어갔다. 캄캄했다. 녀석을 볼 수 없었지만 김덕팔의 손에는 권총과 작은 전등이 있었다. 내부 구조는 같았기 때문에 김덕팔은 어두움 속에서도 한방 한방 녀석을 찾으며 나아갔다. 안방과 화장실에도 없었다. 밖에서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가 났다. 반가웠지만 녀석을 잡아두어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작은 방 두 개, 그 중에서도 김덕팔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작은방에 딸린 붙박이장이었다.

  녀석은 분명 거기에 숨어 있을 게다.

  “손들고 나오지 않으면 사격한다!”

  김덕팔은 그렇게 외치며 근처 손에 잡히는 물건을 하나 붙박이장 쪽으로 세게 던졌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혹시 다른 방인가? 옆방을 슬쩍 쳐다보았지만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순간 바깥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디선가 새어들어 왔고, 김덕팔은 전등을 붙박이장문 위쪽으로 비추며 두 발을 쏘았다.

  그때, 

  “오케이! 오케이! 돈트 슛! 돈트 슛!”

하며 검은 물체가 튀어 나왔다.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지만 녀석은 얼굴에 비치는 레이저 불빛에 기선을 제압당해 두 손을 위로 쳐들며 권총을 바닥으로 던졌다.      

  김덕팔이 재빨리 녀석의 배를 한방 발로 차고 거꾸러진 녀석의 손을 등 뒤로 꺾었다. 그 순간 창문 깨지는 소리가 나고 경찰이,

“꼼짝마!”

하며 들어왔다.

  “나 경찰서장이다! 쏘지 말라!”

하고 김덕팔이 소리쳤다.

  그걸로 모든 상황 끝이었다.


  녀석은 미국 정보국 소속이었다.

  독도해전과 국산 신무기 신궁과 미사일 배치,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 그리고 독도조약에 관한 이야기들을 몇 번 강연한 것이 미국의 국익에 어긋난다는 말인가? 아니면 반일의 상징적 인물의 민족주의적 사고가 앞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국익에 방해가 된다는 말인가? 미국은 민족주의자를 암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미국은 그런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하여간에 김덕팔은 믿을 놈 하나 믿을 나라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벤란다 아래 공터에는 푹 파인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데 말이다.

  옹벽 위 언덕에는 늦가을이 찾아와 있었지만 아직 초록빛이 많은 편이었다. 여름만큼 짙푸르지는 않았지만 아직 풀이 무성했다.

  요줌도 가끔은 아이들과 거기를 오르지만 너무 공부에 쫓기다 보니 요즘 산책도 뜸해졌다. 김덕팔은 다음 휴일에라도 식구들과 함께 저 가을 언덕길을 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햇살이 따갑게 창문을 타고 들어와 내리쬐고 있었다.

  아내는 시장을 가고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집에는 김덕팔 혼자만 있었다. 김덕팔은 오랜만에 창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날이 따뜻해서 그렇지만 이제 찬바람이 불면 나뭇잎도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겠지, 그리고 언덕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올 겨울에도 썰매를 탈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유리창이 챙-, 하며 깨지는 소리가 뭔가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김덕팔은 순간적으로 소파에 몸을 엎드린 채 잠깐 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거실 창문은 주먹만한 구멍이 난 채 깨져 있었다. 그리고 벽 쪽 책장에 꽂아둔 책이 흐트러져 있었다. 김덕팔은 일어나 바깥을 살폈다. 아이들이 돌을 던진 것이 아냐,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김덕팔은 흐트러진 책을 꺼내보았다. 총알이 스친 자국이었다. 총알은 책을 뚫고 나가 책장 뒷벽에 박혀 있었다.

  김덕팔은 권총을 집어 들고 주위를 살피며 현관으로 나왔다. 밖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 햇살이 눈부실 정도였다. 김덕팔은 경비실 담장을 따라 언덕길을 살피며 걸어갔다.

  녀석은 반대 쪽 산으로 달아난 것이 분명했다. 녀석이 있었던 자리주위에는 신발 자국이 물기를 머금은 흙 위에 선명했고, 풀들이 많이 뉘어져 있었다. 그 자리 앞의 풀을 헤치고 보니 바로 김덕팔이 있었던 거실창이 빤히 보였다. 망원렌즈를 단 저격용 총이라면 거실 안에 누가 움직이는지 다 보였을 것이다.

  아-.

  김덕팔은 만약 식구들이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총알은 일본제로 밝혀졌다.

  일본제라면 몇 년 전 자위대에서 자위군으로 바뀐 일본 방위청에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김덕팔에게 총을 쏜 자가 일본인이라면, 라는 생각에 이르자 김덕팔은 경비원이 한 말을 떠올렸다.

‘머리는 까만데 한국 사람은 아닌 듯하고.’

  김덕팔이 사복 경찰 두 사람과 자신이 사는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경비원에게 물었다.

  “저 1층 집에 드나든다던 사람 혹시 일본 사람 아닙니까?”

  경비원과 마주칠 때면 깜짝 놀라서 자기 신분을 잊고 까딱까딱 고개를 숙이는 일본인의 습관이 나올 수도 있을 게다.

  “아참, 그 사람 아까 저 1층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차를 타고 가던데요.”

김덕팔의 육감이 또 움직이고 있었다.

  “큰 가방까지 있던데.”

  공항. 공항이다.

  “얼굴이나 옷차림은 어땠습니까?”

  “음, 글쎄, 머리카락은 좀 짧은 편이고, 옷은, 가죽잠바 같기도 했고, 얼굴은 좀 마른 편에-.”

  “이봐, 이 형사. 자네는 영종도 국제공항으로 가. 가서 좀 큰 가방  에 머리 짧고 가죽잠바 입은 일본인은 무조건 잡아.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그러나 김덕팔의 머리에는 영종도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이 맴돌고 있었다. 녀석은 분명 가까운 김포-하네다 선을 이용할 것이다. 여유가 있을 리 없지.

  김덕팔은 최 형사와 함께 김포공항으로 차를 돌렸다.


  김덕팔은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그게 녀석의 눈에 띌 것이고 그럼 녀석은 피할 것이다.

  공항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 형사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출국하는 곳에는 덩치 큰 최 형사를 보냈지만 김덕팔은 공항 경찰처럼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공항 안을 일부러 눈에 뜨이도록 누비고 다녔다. 분명 피하는 눈을 피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경찰 생활 30년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형사, 최 형사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김덕팔이 매서운 눈길로 주위를 살피며 출국장 쪽 에스카레이타에 막 올랐을 때였다. 짦은 머리, 큰 가방, 가죽점퍼를 입은 자가 에스컬레이터 몇 계단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아직 뒤를 돌아다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상한 기운이 녀석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전에 본 등줄기가 꼿꼿했던 닌쟈처럼.    

  김덕팔은 한발 한발 에스카레이타의 계단을 밟아 올랐다. 녀석은 에스카레이타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녀석이 슬쩍 뒤로 돌아다보았다. 녀석의 눈빛이 김덕팔의 눈과 맞닥뜨리는 순간 녀석은 후다닥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잡아라!”

  김덕팔은 바로 위 출국장에 있을 최 형사가 듣도록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재빨랐지만 김덕팔도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공항 안이 소란스러워지며 녀석이 치고 가는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기고 했다.

  “거기 서! 야잇 새끼야!”

  김덕팔도 모르게 자신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분노가 싸였기 때문일 것이다. 총을 빼들었지만 차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쏠 수가 없었다.

  녀석은 하필 출국장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때 덩치 큰 최 형사가 나타났고 녀석을 안듯이 그대로 덮쳐버렸다. 최 형사의 힘에 녀석이 쾅하고 뒤로 넘어졌다. 최 형사는 대번에 충격으로 정신이 멍한 녀석의 팔을 뒤로 비틀고 수갑을 채웠다.

  김덕팔이 녀석의 머리에 총을 갖다대었다.

  “너 누구야! 뭐 하는 새끼야!”

  녀석이 얼빠진 눈으로 김덕팔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일본 방위청 해상자위군 소속 정보장교로 나타났다.

  왜 녀석이 육상자위군 소속이 아니고 해상자위군 소속인가는 김덕팔의 독도해전과 동북아전쟁에 패배한 일본이 독도조약에 얼마나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인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미국 정보국과 일본 방위청의 한국 경찰서장에 대한 잇단 테러는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비난과 분노를 샀다.

  미국과 일본으로서는 뒤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독도조약으로 일본에 있는 전쟁감시단을 전쟁감시군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미국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현 정권의 타격이 컸다. 미국은 어떻게든 떨어진 위상을 되찾기 위해 한국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 어떠한 사죄를 받아낼 것인가?

  김덕팔은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협상에 들어갔다.


     <한미 협상>


1. 미국은 이번 김덕팔 경찰서장 암살 미수 사건에 책임이 있고, 한국과 한국국민에게 사죄한다.

2. 미국은 일본에 있는 전쟁감시단을 전쟁감시군으로 바꾸기 위해 중국, 대만, 한국, 러시아와 5개국회담을 개최한다.

3. 미국은 남북한의 완전한 통일에 적극 협력한다.

4. 미국은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과 김덕팔 경찰서장에게 각각 미화 100만 달러씩 합계 200만 달러를 보상한다.

     <한일 협상>


1. 일본은 이번 김덕팔 경찰서장 암살 미수 사건에 책임이 있고, 한국과 한국국민에게 사죄한다.

2. 일본은 전쟁을 포기하고 아시아에 항구적 평화가 올 때까지 중국, 대만, 한국, 러시아, 미국의 전쟁감시단을 전쟁감시군으로 바꾸는 5개국회담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3. 일본은 독도조약에서 맺어진 조선인 희생자, 징용자, 피해자등에 관한 피해보상을 올해 안으로 끝맺는다.

4. 일본은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과 김덕팔 경찰서장에게 각각 미화 100만 달러씩 합계 200만 달러를 보상한다.


  200만 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20억원이다.

  김덕팔은 이 돈을 받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난했던 아내와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반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경찰과 소년소녀가장을 돕는데 쓰기로 했다. 김덕팔은 독도해전에서 다친 독도 경비단원들과 선장 식구들을 찾아 도와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큰 일이 자나가자 김덕팔은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미 협상의 세 번째 항목인 미국은 남북한의 완전한 통일에 적극 협력한다는 문구가 새삼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가 있어. 지금은 <서울협약>으로 제한적 왕래를 하고 있지만 곧 자유 왕래로 바뀔 거야. 그런데 만약에 북한에 다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면-.’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감시단에서 이미 빠진 북한을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상의 5개국회담에 참관국으로 끼워 넣은 것도 미국을 구슬린 한국일 것이다. 그것은 북한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번 굴욕을 잊지 않을 게다.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끝끝내 미국은 믿을 수 없는가? 해방 후에,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 미국, 소련 믿지 말라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중국도 끼워 넣어야겠지. 요새 말로 외교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한미 협상과 한일 협상에서 약소한 대로 일본에 있는 전쟁감시단을 전쟁감시군으로 바꾸기 위해 한국, 중국, 미국, 대만, 러시아가 참가한 5개국회담이 동경에서 열렸다. 

  일본은 이번 김덕팔 암살 미수 사건으로 아시아에 대한 침략적 의도를 버린다는 <독도조약>과 <서울협약>의 정신을 또 한번 어겼기 때문에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5개국의 군인 1만 명씩 파견하여 5만 명의 전쟁감시군이 일본의 수도 동경에 주둔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호전적 패권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동북아전쟁과 김덕팔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5개국 전쟁감시군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1989년부터 13년 동안이나 경제에 생기를 잃고 헤매던 일본은,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한류로 인한 경제 활기에 편승해, 새로운 일본 민족주의적 수상이 정권을 두 번이나 계속 잡더니, 결국은 동북아전쟁을 일으켜 다시 한번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 선택의 잘못은 일본의 위정자들뿐만이 아니라 국수주의적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일본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었다. 일본은 유사 이래로 한번도 우리의 동학혁명이나 4·19혁명, 6월 항쟁 같은 민초가 거대한 흐름을 뒤집어 민심이 천심인 민주주의를 만들지 못했다. 늘 사무라이의 칼 아래서 벌벌 떨어 왔던 것이다. 한번도 혁명이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국제사회에 걸맞는 성숙한 사회성을 갖지 못하고, 아시아 국가의 피해에 대한 전쟁 책임 의식을 갖지 못하는 한 영원히 정치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기야 김덕팔은 늘 그렇게 살아 왔다.

  한때는 살아가기 위해 직장에도 연연했고 이름을 잃을까, 자리를 잃을까 고민도 했다. 젊었을 때는 사랑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나니 다 쓸데없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구걸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될 수 있으면 일찌감치 물 흐르듯 살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그게 어려울 테지.


  김덕팔은 현대 일본에 대한 자료와 신문 기사를 모으던 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1970년 전후 일본을 최고 성장기로 이끈 수출 폼목이 바로 3C이다. 그건 바로  Car, Color TV, Cooler(에어컨)이라는 것.

  둘째. 1989년에서 2002년까지 일본은 침체 빠뜨린 3N은 Nihongo(일본), NTT(일본통신), Narita(나리타 일본국공항)이라는 것인데 일본어가 왜 경기 침체의 원인인가, 하는 설명도 나와 있었다. 바로 동음이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음은 같은데 뜻이 다른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기야 핸드폰 문자 메시지 쳐 보내는 속도나, 대통령 기자회견 때 보아도 한국 기자들은 들은 대로 그대로 쳐 전송하고 밖에 나와 담배 피우는데, 일본 기자들은 친 글자를 한자 변환에 정신이 없다고 하니 그도 그럴 만하다, 싶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NTT(일본통신)은 또 왜?

  김덕팔이 듣기로 한때는 NTT 한 회사의 주식이 한국 전체의 주식 값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NTT가 왜 일본의 발목을 잡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다른 통신 회사에 빌려 주는 선로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 그래서 인터넷 전용선 값이 비싸 초고속 인터넷이 잘 보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덕팔이 알기에 이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싸게 굴어 선을 빌려주지 않으면 전봇대에 올라가서 다른 회사 선 잘라버리고 자기 회사 선 연결해버리지 않는가? 또 10킬로미터 전용선을 땅을 파고 깔아야 한다면 한국은 열흘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설사 땅을 파는 곳이 가게 앞이라도 주인과 잘 타협하면, 예를 들어 그곳에서 기름을 넣어준다든지, 그 집 물건을 사준다든지, 아니면 막걸리 값 적당히 찔러주면 다 해결된다. 부정비리가 섞인 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김덕팔이 수사반장 시절 한두 번 수사 해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일본은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 경우 땅 한번 파는데도 공청회니 뭐니 해야 한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나면 컴퓨터 기종이 바뀌어버리는 세상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셋째. Narita 일본 국제공항이 뭐가 문제인가?

  세계적인 물류 공항 나리타공항이 1990년대까지 활주로가 하나뿐이었다. 이게 믿어지는가? 당시 김포공항만 하더라도 활주로가 2개였다.

  그런데 왜 일본의 국제공항이 활주로가 하나뿐이라는 말인가? 땅이 없어서? 천만에. 김덕팔이 일본에 갔을 때도 나리타공항에는 벌판이 널려 있었다. 문제는 거기 활주로를 깔 땅에 하필 양계장을 하는 노인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냥 불도저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가 않다. 양계장 노인이 양계장 지붕 위에  써은 유명한 글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우리 닭들의 위를 날지 말라!’

  한 마디로 닭들이 알을 못 낳는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다음은 3D에 대한 설명이었다.

  말인즉슨 2002년 이후 일본이 경기를 회복하는데 효자 상품이 바로 3D라는 것이다. Digital camera, Digital TV, DVD가 바로 활기를 잃어버린 13년에서 경기 회복을 하는데 톡톡히 효자 역할을 한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덕팔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2002년 월드컵이 일본에 좋았던 것 같았다. 일본은 16강에서 탈락했다. 한국은 4강의 준결승전까지 나아갔다. 16강의 탈락에 일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허탈한 심정으로 한국 붉은 악마의 응원을 넋 놓고 바라보다 다이나믹 한국의 힘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힘에 이끌려 동경 한복판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얼싸 안고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아리랑을 외쳐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실로 격세지감, 상전벽해라 아니 할 수도 없겠지만 일본이 그 기를 받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한류로 이어져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아오더니 급기야 겨울연가의 고장을 방문한 일본 아줌마들이 춘천 시가를 청소하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냥 관광이나 하지 왜 그들은 깨끗이 청소를 하는가? 김덕팔이 보기에 그건 한 마디로 성지순례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본인들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인들은 자기 아내도‘겨울연가’에 빠져 자기가 들어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본 여자들은 욘사마(배용준)를 좋아하지만 일본 중년 남자들은 최지우를 좋아한다며 하며 친근감을 나타낸다.

  왜?

  독도해전을 겪고 독도조약을 참관한 김덕팔은 그들의 속내를 잘 알고 있다. 바로 고구려(북한)을 격파하기 위해 신라, 백제와 친해두자는 것이지. 고구려가 무너지면 그 다음 신라, 백제를 이간질시켜 신라를 없애고, 그 다음은 제 애비 나라인 백제를 쓰러뜨려 우리나라를 다시 한번 손안에 넣고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일본은 단 한번의 혁명도 없는 나라다. 착한 일본 민중의 힘을 믿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이 어려울 때 그대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김덕팔은 푸시킨의 시를 떠올렸다.

  다음은 김덕팔이 외운 대로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슬픈 것.

 

  괴로울 때는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그리고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조금 틀리는 데가 있을지 모르지만 김덕팔은 삶이 어려울 때 이 시를 곧잘 생각하곤 했다. 알고 보니 어릴 때 이발소에 머리 깎으러 가면 바로 거울 위 나무 판에 촌스럽게 불로 지져 새겨져 있던 시였다.

  그때는 이발소 주인이 똑바로 앞만 보고 있으라고 김덕팔의 큰 머리통을 억센 손으로 양귀와 볼이 속 들어가도록 짓누르며 바로 세웠고, 그 아픈 고물 바리캉으로 거의 민대가리나 다름없는 어린 김덕팔의 머리카락을 집고 다녔기 때문에 그 시가 왜 그렇게 미운지 몰랐다. 초등학교는 다니고 있을 무렵이어서 글자는 읽을 수 있었겠지만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은 시였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지내다 어려울 때마다 그 시가 불쑥 생각나곤 했다. 그러고 보면 그 푸시킨이라는 사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지나가버린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리움으로 바뀌곤 했다.  


  문제는 북한이었다.

  북한 군부의 쿠데타를 중국이 압록강을 돌파해 무력으로 진압한 이후 한국의 중재로 <서울협약>이 맺어졌다.

  중국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 한국이 의료와 구급 물자를 거의 모두 지원했지만 서울협약에 따라 남북은 자유롭게 오고가지 못하는 제한 왕래의 상태였다.

  그 북한 정권이 3대째 세습을 꾀하고 있었다. 이미 중국은 마치 다음 세자를 정하듯 그걸 인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민중 봉기와 반란이었다.

  과연 3대의 세습을 요즘 북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문제였다. 북한 민중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을 때, 중국의 개입을 미국이 막고 현 북한 정권이 미국이나 러시아, 한국으로 망명을 한다면 뜻밖에 통일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미국과 중국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김덕팔은 그런 생각을 했다. 믿을 수 없다면 자신을 믿어야 한다. 한국과 북한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은 북한과 대만과의 삼국동맹을 비밀리 추진하고 있었다. 이미 북한의 핵개발은 중지되었지만 핵무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만은 <서울협약>에 중국의 반대로 북한의 전쟁감시단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또 동북아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 몰리자 대만을 끌어들인 대가로 독립국으로 인정하기 했지만 완전한 승인은 하지 않았다는 중국의 최근 발언에 대만은 발끈하고 있었다. 그 틈을 한국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대만과의 공동 핵개발마저 비밀리에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미국과 일본과 중국의 정보망이 좁혀 들어오면서 한국은 더 이상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자 이 삼국동맹 협상의 최적임자로 경찰서장 김덕팔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두 번의 김덕팔 암살 미수 사건에 관여한 미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과 맺은 <한미 협상>을 의식한 것이었고, <한일 협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정보망으로 한국을 압박할 수는 있겠지만 힘으로 김덕팔 삼국동맹 협상단장을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갑자기 김덕팔은 경찰서장에서 한국, 북한, 대만의 삼국동맹 협상단 단장이 되었다. 물론 겸직이었다. 그게 어디로 보나 삼국동맹을 맺는데 유리했다.

  삼국선언의 뜻은 남북한의 진정한 통일을 위하여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의 개입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김덕팔은 다짜고짜로 대만과 핵무기 공동개발 선언을 했다. 그 선언이야 뭐 그리 어렵겠느냐 하는 것이 김덕팔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제발 그 핵무기 공동 개발 이야기만 없다면 삼국동맹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쉽게 대만에서 삼국동맹 선언이 맺어졌다.


  <삼국동맹 선언>


1. 한국, 북한, 대만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위하여 삼국동맹을 맺기로 선언한다.

2. 한국, 북한, 대만, 이 삼국은 북한에서의 전쟁감시단의 조속한 철수를 촉구한다.

3. 대만은 한국과 북한의 자유 왕래와 통일을 지지한다.

4. 한국과 북한은 대만이 자주독립국임을 재천명한다.

5. 한국, 북한, 대만의 삼국동맹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와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위하여 함께 노력한다.


  김덕팔은 삼국동맹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경찰서장으로 돌아왔다.

  언론에서는 연일 야단이었지만 김덕팔은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의 전쟁감시단 철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중국이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으로 삼국동맹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 꼴이었다. 그 뒤에는 한국과 대만과의 핵무기 공동 개발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미국이 중국을 설득하기도 했을 것이다.

  북한에서 전쟁감시단이 철수하고 나면 이제 남북한 자유 왕래가 다시 실현될 것이지만, 그동안 천만 이산가족과 수천 명의 납북자와 납북 어부, 생존 포로들은 또 죽었을 것이고, 죽은 자와 산 자는 또 갈라서게 될 것이다.

  산다는 것.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많이 살아보지 않으면, 아니 살아도 헛되이 살았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산 자들 사이의 헛된 싸움들. 그들이 죽어도 헛된 싸움은 계속된다. 결국은 자신들의 허영심과 이기주의와 욕심과 열등의식을 참지 못해 일어난 싸움이다. 누군가는 더 어리석으며, 덜 어리석은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차이 때문에 싸움은 일어나고 산 자들은 그 골을 영원히 메우지 못한다. 벼랑 끝에 홀로 선 소나무처럼 청정하다면야 어리석지야 않겠지만, 잡목림 속에 섞인 푸른 솔은 뿌리와 줄기를 뒤틀며 살아야 한다.

  죽은 다음, 죽은 자는 훌륭한 정신을 자손에게 남겼는가!

  살아남은 산 자는 거짓 없이 훌륭히 살고 있는가! 


  저녁부터 아무래도 이상하더니 밤에는 드디어 전 군과 경찰에 비상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북한에 무슨 사태가 일어난 것 같았다.    

  모든 일은 그날 밤늦게 다 밝혀졌다.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에 반대하던 북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고 거기에 북한군의 일부가 합세한 것이었다. 자정 무렵에 북한의 중대 발표가 한국의 뉴스를 타고 흘러 나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과 인민 혁명군은 무혈혁명에 성공했다. 다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성명이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속한 시일에 남조선과 조기 총선거를 희망한다.

3. 그때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권한은 인민 대표와 인민 혁명군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위임한다.    


  김덕팔은 몇 번이나 반복되는 그 뉴스를 들으며 이제 거의 다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북한도 상당히 다급한 것이다. 그러니까 조속한 시일에, 조기 총선거, 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이걸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러시아는?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나 그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알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인구 비례에 따른 남북총선거의 날짜가 잡혔다.

  11월 27일 일요일이었다.

  날씨는 포근했고 하늘은 맑았다. 아니 맑다 못해 눈부신 햇빛이 나뭇잎과 하얀 건물 벽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김덕팔은 개성 지역 남한 선거 순찰반으로 들어가 있었다. 개성의 한 초등학교가 투표장이었는데 길 양쪽에 늘어선 한옥에도 하얀 돌담에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을 달리면 개성이었다.

  북한에서는 인민혁명당과 공산당, 그리고 남한에서는 몇 개의 당에서 각각 후보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500명의 국회의원이 뽑히면 그들이 곧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우선 다수당의 대표가 임시 대통령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 기간은 2년이었다.

  “안녕하십네까?”

  북한 선거 순찰반원이 김덕팔에게 담배를 건네며 말을 붙여 왔다. 그들은 대게 북한 안전원이거나 아니면 이번 무혈혁명에 가담한 지역 인민들이었다. 그들은 전혀 긴장한 모습이 없었고 오히려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겠어요.”

  김덕팔은 담배를 끊었지만 마치 피우듯이 담배 연기만 내뿜으며 말했다.

  “남조선으로도 우리 선거반원들이 갔지요?”

  “네.”

  “나라 이름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남북연합국? 아니 이제 국회가 열리면 정해지겠지요.”

  “대한민국, 그게 좋지 않습네까?”

  뜻밖에 그는 그런 소리를 했다.

  “내래 월드컵 많이 봤수다. 그 대한민국-, 외쳐 부르는 소리 참 듣기 좋더구만요. 대한민국, 그걸로 하면 제일 간단하지 않슴메?”

  북한 주민들이 줄지어 서서 김덕팔과 북한 선거반원을 번갈아 쳐다보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기야 깃발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흰 바탕에 우리나라 전체 지도를 하늘색으로 그려 넣은 깃발! 그리고 거기엔 울릉도와 독도까지 파란 점으로 칠해져 있지 않던가!


  민주주의의 장점과 사회주의의 장점을 살린 민주사회의 나라가 만들어졌다. 그건 통일 독일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분명 백성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다수당의 임시 대통령은 남쪽에서 나왔지만 인민혁명당도 상당한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공산당은 몇 개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고 어느 당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거리는 활기에 넘쳤고 도시는 의외로 평온했다. 독일처럼 시간이 지나면 혼돈과 차별이 생길지도 몰랐지만 남으로 오는 북한 주민들은 여행, 친족 방문 외에는 적응훈련원에서 한 달간의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도록 했다.

  유엔도 남북한이 합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장일치로 인정했다. 다만 중국, 일본이 속이 쓰렸겠지만 이제 중국은 새로운 이웃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고, 일본은 전쟁감시군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삼면이 바다에 갇힌 지 60년이 지나며 섬나라와 같았던 남쪽 사람들은 각자 다른 여러 가지 일들로 북쪽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 북쪽의 치안 문제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간에 혼란을 가져 올 만큼 대규모의 이동은 없었다.

  북쪽의 돈은 남쪽의 돈과 1-1로 교환했다. 북쪽 사람들이 은행과 임시 환전소 앞에 늘어선 모습이 텔레비전에 자주 비추어졌지만 통일 독일에서 그랬듯이 경제적인 큰 타격은 없었다. 독일은 그 뒤 서독지역 10%, 동독지역 30%의 실업률과 많은 통일 비용이 문제가 되었지만 통일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정부에서도 그러한 교훈을 잘 알고 있었다.

  동독 지역에 서독인이나 유태인들이 자기 소유의 땅을 반환 소송을 통해 찾아가 헐값으로 되팔거나, 그 땅을 서독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이 되사들여 막대한 이익을 남기거나, 조용하고 평온하던 동독 마을들이 불도저에 헐려버려 황폐화되고 공장이 신탁관리로 넘어가는 일은 아예 금지되었다.

  동독에도 경제력 있는 유리 산업이 있었지만 몰락했고, 실력 있는 많은 인력들이 자본주의를 모른다고 해서 회사나 학교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되었지만, 남북통일조약에서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실업자가 될 기회를 마련했다.  

  통일 독일은 15년이 자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동독에도 합리적인 것이 있었다고.’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김덕팔은 결혼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

  자식을 낳았으니까.    


  중국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일찌감치 벌써 10년 전에 국경수비대를 경찰에서 군대로 바꾸었던 것이다.

  압록강 북쪽의 중국 국경에 더 많은 군인들이 배치되고 조선 자치족의 월경을 철저히 막았다. 이미 백두산은 반으로 갈려 그들은 장백산이라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발해와 고구려를 중국 지방 정권의 하나로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을 착착 진행하더니 이제 고구려 땅은 어쩔 수가 없게 되자 발해의 수도 상경을 이미 당나라풍의 유적으로 꾸며 놓았다. 중국에는 없었던 발해의 온돌이나 손끝 무늬 기와도 다 치워버렸다.

  중국은, 대한민국이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맺었던 간도협약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지금은 압록강 북쪽에 있는 땅을 언젠가 옛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올 때 조선족들이 동조하며 들고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여러 타 민족 자치구로 구성된 중국 전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이미 수백 년 동안 남의 나라 땅이 된 지역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100만 대군을 유지하면서 자체 개발한 최첨단 무기를 최전방에도 공급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구경을 맞댄 두만강 쪽보다 중국과 마주한 압록강, 백두산 국경이 훨씬 길고 그 만큼 긴장이 감돌았다.    남북으로 길어진 해안선에는 미사일이 추가 배치되었고, 먼 바다에는 미국에서 새로 들여온 이지스함과 자체 건조한 항공모함 떠 있었다. 그리고 넓어진 대한민국의 하늘에는 역시 자체 개발에 성공한 케이-20 전투기와 미국에서 도입한 최신형 에프-23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

  미국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만처럼 중국을 견제하면서 첨단 무기를 판매하는 새로운 시장이자 더욱 두터운 동맹국으로 여기게 되었다.

  일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호전적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시아에 유럽공동체와 같은 전쟁 없는 평화가 올 때까지 대한민국, 미국, 대만, 러시아, 중국의 5개국 전쟁감시군은 일본에 계속 주둔하기로 독도해전에서 승리한 김덕팔이 참관했던 <독도조약>에서, 김덕팔 암살 미수 사건으로 맺은 <한일 협상>에서 명시하지 않았던가!


  사실 지난 몇 년 간, 돈을 많이 주겠다느니, 더 나은 자리가 있으니 가지 않겠느냐는 등 김덕팔에게 여러 가지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김덕팔은 모두 거절했다. 돈과 명예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또 돈보다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그 사람이 있어야 될 자리가 있는 것이다.

  김덕팔이 오래 경찰서장을 맡고 있는 지역은 서울의 어느 곳보다도 사고가 적었고 평온했다. 학교 급식에 질이 낮은 고기나 기생충 김치, 탄저병이 걸린 고추 가루로 버무린 김치나 고추장, 농약 채소, 린스 발린 덜 닦인 식판은 사라졌다. 김덕팔이 초중고 교장 선생님들의 협조를 얻어 자신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부터 시작해 경찰 한 사람이 매일 다른 학교를 하루씩 점검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학교 앞이나 복잡한 길거리 안전은 각 지구대장이 직접 맡았다. 그래서 어린이 교통사고는 지난 몇 년 동안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기가스, 5분 이상 자동차 공회전 단속은 물론이고 우선 경찰서 주위부터 나무를 심었다. 햇볕이 드는 담장에는 무료로 담쟁이덩굴을 아름답게 키워주었다. 버스나 트럭에는 매연저감장치를 달도록 했다. 김덕팔이 시장이라면 매연이 거의 안 나오는 장치를 단 자동차나, 전기자동차만 다니게 하겠지만 하여간에 수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고 공짜로 나누어 주고, 심지어 각 건물의 옥상 안전을 점검한답시고 김덕팔이 왔다가는 각 건물의 옥상은 이상하게 한 달만 지나면 다 푸른 나무들이 자라는 곳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경찰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엉뚱한 짓 하고 돌아다닌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이상하게 구민들은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그건 그가 반드시 독도해전과 삼국동맹의 영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그가 그 이전부터 줄곧 해 온 일이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농민들에게 직접 쌀을 사서 나누어주었다. 그래서 구내 소년소년 가장이나 혼자 사는 어르신 집에 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김덕팔이 하는 일에는 이상하게도 기업들이 두 팔을 걷고 도와주었다. 나중에는 너무 도와서 오히려 문제가 생길까봐 김덕팔 쪽에서 은근히 걱정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기업에서는 공해 물질도 훨씬 덜 배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연말이 다가오면 김덕팔은 아내를 내세워 경찰 부인들이 나서서 김장을 하도록 했다. 사실 김덕팔 아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이 바로 김장이다. 아내는 해마다 김장때가 오면 태산 같은 김장을 할 걱정을 하면서도 못내 못 이기는 척하면서 그 굵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는 배추김치, 오이김치, 총각김치, 무김치를 척척 잘도 해댔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 김치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경찰대원들이 겨울 내내 같이 먹을 수가 있었다.


  김덕팔은 웬걸 다짜고짜 식구들과 휴가 여행을 준비했다. 코스는 기차를 타고 서울-원산-청진-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까지였다.

  소위 요새 유행하는 그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탄다는 말인데 그게 왜 하필 한겨울인지 모를 일이었지만 김덕팔의 말에 의하면 한겨울에 시베리아를 달려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그도 눈얼음으로 기차 문짝이 얼어붙어 닥터 지바고가 문을 열 때 통째 떨어지는 장면을 보기는 본 모양인데 그거야 러시아 혁명 때 화물 기차 이야기지 지금 설마 그럴라고.

  하기야 아직 어딘가 철없어 보이는 김덕팔을 누가 말리랴.


  시베리아 횡단 철도.

  눈덮힌 거친 겨울 들녘을 기차는 밤낮으로 달렸다. 김덕팔은 식구 넷이 침대칸 하나를 차지하고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기차여행 도중에 시끄럽고 더러운 꼴을 만나지 않도록 혼자가 아니라면 사전에 좀 들더라도 편한 여행을 꼭 알아봐두어야 한다. 

  이런 편한 여행이 몇 년 만이었던가.

  원산, 청진의 동해선을 빠져나오자마 기차는 러시아 국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거기서 기차는 하늘도 끝도 없는 검은 침엽수림 지대를 빠져나와 두세 시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간혹 15분식 쉬는 낯선 정거장에서 러시아 시골 주민들이 뛰어 나와 먹을거리를 싸게 팔았기 때문에 토산 음식을 팔아서 아내는 기차 안에서 몇 번만 간이로 요리를 했을 뿐이다. 

  바다보다 더 넓은 바이칼 호수 옆을 달릴 때는 그 맑고 맑은 물처럼 마음도 저절로 푸르러졌다.

  갈 때는 엿새가 걸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지나 폴란드의 바르샤바, 독일 국경으로 들어가 베를린, 함부르크를 지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들어갔지만, 올 때는 한번 갔던 곳보다 이왕이면 다른 곳으로 가보자는 김덕팔의 느닷없는 생각에 계획에 없던 유람선을 타고 발트해와 북해를 건너 노르웨이로 들어갔다. 김덕팔은 노르웨이가 뭐 놀스웨이, 말하자면 북쪽으로 가는 끝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왜 그랬냐, 하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느닷없이 산타에게 선물을 받고 싶다고 조르기에 김덕팔의 생각에 그 놈의 산타가 있다면 분명 이 지구 북쪽 끝에 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작동했고, 그리고 주소는 간단하고 용감하게도 무조건 - 산타마을 노르웨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렇게 몇 자 적어 보낸 아이들의 편지에 그 느르웨이 산타한테서 답장이 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전 세계 어린이들로부터 수많은 받지. 하지만 내가 바빠 일일이 다 찾아 가지는 못하지만 아주 착한 어린이에게는 다른 산타를 보내기도 한단다.

  하여튼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그때의 신비로움이란 김덕팔조차 정말 산타가 있긴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이들의 휘둥그러진 눈이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야부사란 일본 말로 매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2007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2003년 일본을 출발한 무인 우주선이 지구와 태양 거리의 2배를 날아 초속 30킬로미터로 돌고 있는 축구장만한 소행성에 착륙해, 흙을 퍼서 지구로 돌아온 것이다. 왜놈들 말로 일본 동경에서 총을 쏘아 브라질 쌍파울로에 있는 5밀리미터 크기의 파리를 맞춘 고난도 기술의 쾌거라고 한다.

  그러나 김덕팔은 믿지 않았다. 과연 그 흙이 진짜냐는 것이다. 김덕팔이 누구인가? 야마토함을 격침시킨 독도해전의 명장이요, 미국과 일본을 무릎 꿇게 한 그 유명한 경찰서장이 아닌가!

  일본은 2000년대 역사를 다시 고치기에 바빴다. 있다고 우기던 5만년 일본 역사를 다시 5천년 역사로 바꾸는 일이었다.

  왜?

  일본 언론은 한 일본 고고학자가 캐낸 5만전 유물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그가 가는 날, 하필 그가 파는 장소에서만 원시 유물이 나오는가?

  며칠 뒤, 그 일본 고고학자가 유물을 전날 밤 몰래 묻는 장면을 일본 언론은 공개했다.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그래서 일본은 학교 교과서 역사를 다시 쓰게 된 것이었다.

  그때 한국에 대한 역사왜곡도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일본은 그것만은 고치지 않았다.

  일본 과학이 최근에 거짓말 한 것은 또 있다. 

  역시 남북한이 통일이 되기 전의 이야기지만, 북한이 납치했던 일본인의 유골이 진짜가 아니라고 일본은 주장했다. 화장한 뼈였지만 일본의 과학 기술이 유전자 검사로 그 뼈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판독해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 북한이 일본인 유골을 찾지 못해 다른 사람 화장한 뼈를 보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일본의 허구가 드러났다. 그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이미 화장한 뼈는 유전자를 감식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은 또 한번 거짓 발표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전에 우주 소행성에서 갖고 왔다는 흙을 김덕팔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거 어디 아라비아 사막에서 돌이나 모래 좀 퍼오면 감쪽같이 속을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일본은 만주 벌판에 서 있는 광개토태왕 비문의 글자도 갈아서 조작했다. 그래서 3, 4세기에 일본이  우리나라 삼한지방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통치했다는 것다. 그러니까 1910년 일제강제점령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일본군 육군 장교를 만주에 보내 비문의 글자를 부수고 갈아 조작한 일본이 아니던가?

  이건 미국 우주선 이야기이지만, 김덕팔은 1968년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해 가지고 왔다는 흙에 대한 이야기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그때 김덕팔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흑백텔레비전이지만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

  그런데 어린 가슴에도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다. 달에는 공기가 없다는데 어째 우주인 뒤에 잘도 보이게 꽂아둔 미국 성조기는 저렇게 펄럭일까, 하는 것이었다.

  또 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왜 당시 미국보다 더 빨리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던 소련은 달에 가지 않았나? 그건 달에 무진장 방사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련은 우주인을 달에 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한 가지 더. 이건 김덕팔이 시사 잡지에서 본 것이지만 달에는 인간이 건축한 것 같은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도 나와 있었는데 거대한 피라미드의 스핑크스 같기도 하고 사람 얼굴 형상 같기도 한 거대한 구조물이 달 표면에 있었다. 미국은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달나라에 간 게 아니라 혹시 또 밤에 어디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그렇게 찍어 오면 누가 알랴. 거기가 달인지 사막인지.

  그러나 저러나 자체 로켓 발사대에서 이미 10년 전에 정찰 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가 일본 아닌가? 일본은 중국, 대만 당시 북한과의 동북아전쟁에 져 독도조약으로 6개국 전쟁감시단을 받다가, 지금은 김덕팔 암살 미수 사건으로 <한미 협상>과 <한일 협상>의 결과 5개국 전쟁감시군의 통제를 받는 처지가 되었지만 2007년 하야부사 우주선이 돌아왔을 때는 그야말로 일본의 절정기였다.


     2008년에는 미국 원자력 항공모함 워싱턴이 일본 요코스카항에 들어왔다. ‘원자’라는 소리만 들어도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일본에서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이 앞으로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5개국 전쟁감시군의 반대가 있었지만 미국은 밀어붙였다. 뻗어나가는 중국과 어떻게든 힘을 겨루어보자는 것이다. 바로 전쟁을 못해 안달인 나라가 일본과 미국, 그리고 옛 제국주의 나라들이었다.

  김덕팔은 처음에 그 항공모함 워싱턴을 미국 대통령이 왜, 하고 잘못 생각했다. 그러나 저러나 김덕팔은 아직 그 동네에서 경찰서장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남북한이 통일되고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남쪽 사람들은 북쪽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었다. 거리나 학교나 직장에서 도대체 뭐 잘났다고 같은 대한미국 사람끼리 차별한다는 말인가? 그거나 왜놈들이 조선 사람 멸시하던 것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김덕팔은 그런 싸움이 일어나면 거의 남쪽 사람들을 일단 잡아들였다. 그러면 그들은 대게 늙으나 젊으나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덜 떨어진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자가 남자답지 않고, 여성이 여성스럽지 않고, 어른이 어른답지 않고, 어린이가 어린이답지 않고, 학생이 학생답지 않고, 선생이 선생답지 않으면, 그 나라는 건강하지 않는 것이다. 외국에는 그 얼마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자들이 많은가. 그래도 아직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남아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런 게 싫은가? 그러면 그대도 덜 떨어진 사람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지켜야 될 사람의 도리는 있는 법이다.


  전란 속에서도 예술이 꽃필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고뇌 속에도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

  그럼 평시에도 예술이 꽃피지 못했다면 누구 탓인가? 작가인가? 시대인가?

  반반.

  민중은 평범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왜?

  그들이 너무 평범하고 따분하게 살고 있으므로.


  노르웨이 다음 간 곳이 옆 나라 스웨덴이었다. 그것도 스톡홀름 같은 데는 서울과 비슷할 것이므로 순록을 찾으러 가자는 김덕팔의 제의에 사내 아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싱긋이 웃어보였고 아내와 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랐다.    

  스웨덴 원주민이 키우는 순록 떼는 말고, 하필 야생의 순록을 넓고 넓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찾는다는 것은 무리였지만 김덕팔은 식구들과 눈벌판을 헤매고 다녔다. 나중에는 길까지 잃고 해는 저물어 간 끝에, 그 씩씩한 스웨덴 원주민이 아니었더라면, 더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다.  

  산타도 아닌 김덕팔은 왜 그렇게 순록을 찾아야 했을까?

그걸 지금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김덕팔은 원래 그렇다 쳐도 약간의 불만만 있었을 뿐, 그를 묵묵히 따른 식구들도 매한가지다.

  그 광활한 눈벌판에서 야성의 본성이 살아났다거나, 그 푸르고 푸른 하늘과 밤하늘마저 푸른 북극의 밤을 잊지 못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나중에는 좀 이해가 되었다.

  김덕팔과 그 일행이 길을 잃고 헤맬 때 본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들쥐를 잡아먹었나, 고양이처럼 입이 빨간 야생의 살쾡이, 그리고 멀리서 바라본 그 무시무시한 늑대 몇 마리는 아직 야생의 신비를 느끼기보다는 솔직히 두려웠다. 더군다나 아내와 딸의 비명 때문에 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귀가 일정이 촉박했다.

  그만 비행기를 타자는 아내의 말에,

  “한군데 더 가 볼 때가 있어.”

하고 김덕팔이 말했다.

  “어딘데?”

  아내의 말이 냉냉했다. 그 말 속에는 어디 또 야생의 눈벌판이니, 순록 떼니 하기만 해봐라, 는 식의 말투였다.

  “아니, 이번엔 화려한 산타 마을-.”

  산타클로스가 사는 산타 마을이 핀란드에 있다는 남편 김덕팔의 말보다 아내는 그 ‘화려한’이라는 형용사를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좋아. 그걸로 끝이야, 당신. 그 다음, 비행기 탄다.”

  아내의 말도 한 20년 같이 살다보니 자기 말투와 많이 닮아 간다고 김덕팔은 생각했다.

  핀란드의 로바니에미의 숲에는 진짜로 산타 마을이 있었다. 거기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밤이었는데 환하게 불이 켜진 통나무 집에서는 금방이라도 산타가 선물보따리를 들고 썰매를 타러 나올 것 같았다.

  산타 우체국 산타는 하루에도 3, 4만 통의 크리스마스 편지를 부치고 받는다. 눈썰매를 타볼 수도 있다.

  김덕팔과 그 식구는 열흘간의 시베리아 황단과 난데없는 산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그때도 김덕팔은 핀란드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원산-서울로 돌아오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또 엿새가 걸리지도 몰랐다.

 

  원자력 항공모함 워싱턴은 왜 일본으로 들어왔을까?

  일본에는 5개국 전쟁감시군 5만 명이 주둔하고 있어 미국의 입항을 반대했다. 일본은 어떻게든 재기의 기회를 잡으려고 은근히 환영했지만, 중국의 거세게 반발했다.

  문제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송유관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자흐스탄 지역의 유전 싸움이다. 파이프라인이 중국과 연결되면 미국과 유럽은 중동 석유 매장량의 반이 묻힌 전 세계가 앞으로 20년간 쓸 수 있는 카스피해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잃게 된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 석유 때문에 부시의 아버지는 1990년 걸프전을 벌였고, 그 아들 부시는 2002년 이라크전을 치르지 않았던가! 

  중국은 러시아와 미국은 몽고와 합동 군사훈련에 들어갔다.


  통일 대한민국 이전의 휴전선 보다 더 긴 압록강 국경지대.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은 두만강 쪽은 평온했지만 왠지 이 곳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일찌감치 유럽에서 동진정책을 펴서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바로 코앞인 벨로루시에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동구 유럽은 미국과의 경제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터키와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는 앞 다투어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유치했다. 특히 터키 앞바다 흑해는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로 빠지는 길목이었고, 카스피해 유전의 송유관 보호를 위해 미국과 터키가 몇 년 전부터 해상 수송로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석유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중국은 와신상담 이를 갈고 있었다.

  결국 미국의 석유 확보를 위한 동진정책으로 카스피해 지역에서 미중 패권 전쟁이 일어나,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몽고와 대한민국,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벌린 산뚱반도 앞 서해가 전쟁에 휘말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경찰서장 김덕팔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태평성대였다. 그건 좋게 보아서이고 나쁘게 보면 개판 5분전이었다. 로마가 사치스런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더니 대한민국도 늙으나 젊으나 어리나 정신병자도 아니고 몽유병자도 아니면서 남녀가 훤한 대낮에 섞여 왜 그리 씻고 누워 찜질을 해대는지.

  솔직히 김덕팔은 목욕을 보름에 한번 한다. 여름에 땀이 차면 할 수 없이 씻기야 씻지만 한겨울에는 한달에 한번 목욕할 때도 많다. 

  그들은 대게 바쁘지 않고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열심히 어질게 살지 않는 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남에게 한 치의 길도 양보하지 않고, 교통 신호와 속도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깨끗하게 정당하게 돈을 벌지 않고, 사기 쳐 돈을 벌고, 가난하고 착한 이들에게 권세를 휘둘러 자기 뱃속을 채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저들이 누리는 태평성대는 가난하지만 어진 자들을 짓밟고 이루어진 것이다.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독자들은 김덕팔의 말이나 행동이 노자나 장자가 말하던 ‘무위자연’과 비슷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일을 일부러 이루어 하지 않고 물이 흐르고 차듯 자연스럽게 놔둔다는 것인데-.

  갑자기 웬 노장사상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의 사상이 불교, 유교, 도교가 겹쳐져 있는데 어찌해서 요즘에는 통 도교 소리는 하지 않는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교 전통도 사라지는데, 하고 말할지도 모르나 김덕팔이 보기에 요즘 사람들은 이상하게 안 쓸 자리에 존칭을 쓰거나 마음도 없는 인사를 허리를 굽혀가며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30대의 김덕팔을 보고도,

  “아, 김자 팔자 덕자 쓰십니까.”

하고 말했는데, 그때 김덕팔은 좀 어색하기도 해서,

  “내가 쓰는 게 아닌데. 그냥 김덕팔 씨라고 하면 되요.”

하곤 말했다.

  또 마음도 없으면서 자기 예의를 차린다고 절을 깍듯이 하거나 또는 인사를 살짝살짝 하는데, 하여간에 그런 유교는 점점 이상하게 이용하면서, 일부러 이루려는 자는 반드시 패할 것이요, 집으려는 자는 잃을 것이다, 라는 그 욕심 없는 도가사상은 왜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잘 이야기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김덕팔은 자주 버스나 지하철은 탄다. 그러면 정류장이나  버스 제일 뒷자리 바로 앞에서 시끄럽게 입을 맞추거나 몸을 비트는 남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들도 도가사상에 따르면 뭔가 해보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결국 그들은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름다움에 집착해 성형 수술을 받다가 결국을 얼굴을 잃게 되지 않던가. 지금 잃지 않으면 나중에 잃게 된다.

  물론 김덕팔도 노자나 장자의 생각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도 가지 말라, 일부러 이루려 하지 말라며 교육도 굳이 시킬 것 없다, 자연스럽게 놔두어라, 고 했던 노자는 왜 굳이 3권의 책을 남겼는지, 아니 노자가 살 때는 지금부터 2600년 전이고 종이는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 나왔으니 좀 이상하지만, 하여튼 각박한 시대에 이 욕심 없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생각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부처와 공자는 2500년 전 사람이고 장자는 2300년 전 사람이며 예수는 2000년 전에 태어났다.


  어느덧 그의 나이도 쉰이 넘어 섰고 올해는 경찰 인사가 있었다. 한 지방 경찰청장으로 갈 것이냐, 통일 대한민국 경찰국장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만, 김덕팔은 인사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덕팔은 어디 한 단체의 장이 차라리 낫지 윗대가리가 있으면 대드는 성격이라는 게 아직 좀 문제였다. 그러니 서울보다는 좀 조용한 지방에 경찰청장으로 가면 딱 좋았겠지만, 발령은 경찰 정보국장으로 났다. 좀 비약하면 CIA 다음으로 전 세계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FBI의 보안국장 자리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자리는 독도해전의 승리, 동북아전쟁으로 맺은 독도조약 참관, 삼국동맹 선언의 주역인 김덕팔에게 딱 어울리는 것이었지만, 막상 본인은 영 못마땅했다.  

  김덕팔은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정든 경찰서장 자리를 떠나 경찰 정보국장으로 옮겼다. 모두들 대단한 승진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김덕팔은 경찰서장 자리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푸시킨의 말처럼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그런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이 심상치 않았다.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 무혈 시민혁명인 레몬혁명이 성공하자 이를 두려워한 한때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렸던 독재국가 투르크메니스탄은 더욱 문을 닫아걸었고, 우즈베키스탄도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석유 수출로 돈을 끌어 들이기 시작한 카자흐스탄도 이웃 나라들의 시민 봉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2015년, 미국은 이라크전 때와 똑같이 우즈베키스탄을 공격했다. 전쟁 명분은 민주화의 요구였지만, 카자흐스탄의 송유관이 중국으로 연결되면서 미국은 가스 매장량 세계 10위의 나라 우즈베키스탄마저 중국에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을 점령하면 다음은 카자흐스탄이 미국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것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다음에 대량 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구실로 2002년 이라크를 친 것과 똑같은 순서라는 것이다. 그때 이라크 후세인 독재정권도 사라졌고 대량 살상무기는 차지 못했지만 미국은 철수하지 않았다. 결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확보하려던 것이 미국의 속셈이었다.

  중국과 이미 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미국에게 즉각 철수할 것을 경고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중국 공군이 키르기스스탄 영공을 날아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갔다.

  미국에서 한국의 참전을 요구한다는 정보가 김덕팔 정보국장의 귀에 들어 왔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이 지상군 1만병과 이지스함과 항공모함, 에프-23 전투기를 흑해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도 한달 안으로.

  ‘그렇게 되면 중국과의 전쟁도 피할 수 없다.’

  통일 대한민국 경찰 정보국장 김덕팔은 그렇게 생각했다.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김덕팔은 거의 모든 국가정보회의에 참석했다.

  한달 안으로라면 한달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조기경보기였다.

  그 조기경보기 대한민국에는 1대뿐이라는 점이었다. 그걸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백두산 호랑이 정찰위성은 내년에나 쏘아 올릴 예정이었다. 그게 늦어 진 것이 조기경보기를 뺄 수 없는 이유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어디에서 조기경보기의 얻어 오는가?

  일본?

  일본에는 3대의 조기경보기와 3기의 정찰위성이 돌고 있었다.

  미국은 그걸 요청했다. 그것은 전쟁감시군에서 일본이 다시 풀려난다는 뜻이었다. 그걸 왜 독도조약과 한일협약 때 없애지 못했는지 김덕팔은 천추의 한이었다.  

  이미 미중전쟁으로 일본에서의 5개국 전쟁감시군은 와해되고 있었다.


  김덕팔은 고독을 이겨낸 남자였다.

  그러나 거꾸로 그 지독한 고독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말했던 것은 링컨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을 전보다 자주 쓰지 않는 걸 보면 스스로의 얼굴이 더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또 사라지는 낱말은, 석양, 저녁노을, 박력-.

  건물에 가린 도시의 저녁은 차가운 그늘만이 있을 뿐이다. 박력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만큼 어질고 단순한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그러나 김덕팔도 때때로 자신이 미약해보일 때가 있다. 강추위에 몸과 마음이 졸아들어 옹졸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방한복을 입고 다시 힘을 내야지, 하고 대기를 호흡하며 땅에 발을 내딛고 얼어붙은 12월의 밤하늘을 바라다보는 것이다. 거기엔 언제나 고독과 대자연의 힘이 있었다. 그것이 모든 힘을 다 회복시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깥바람을 들이마신다는 것만으로도, 넓고 높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때, 두꺼운 옷을 입어야 오랫동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정찰 위성으로 파악한 모든 목표물을 미사일과 전투기로 파괴하던 미국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상전에서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옛 소련에 속해있다가 독립한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와 힘을 합해 중국을 지원하면서 우즈베키스탄을 침공했던 미국은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미국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지원군을 다급히 요청하고 있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대한민국은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일본은 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 이지스함 각 4대를 터키의 앞바다 흑해로 급파했다. 중국의 일본 전쟁감시군은 그런 일본에 으름장을 놓았지만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힘은 없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일본 자위군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선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있을 게다.

  삼국동맹 선언!

  그 주역이 누구인가?

  김덕팔.

  그는 바로 최근에 있은 국가정보회의에서 절묘한 안을 내놓았다. 남의 먼 전쟁에 끼지 말고 중립을 선언하자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남의 나라 싸움이었다.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우는 두 마리의 개는 다 진흙이 묻는 다는 이전투구의 이야기가 있지.

  그러면 석유가 없다면?

   우선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세계 몇 개의 유전과 다른 무공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지.

  전기, 태양, 바람, 물, 바다, 수소, 연료전지. 메탄가스.

  아, 그리고 독도의 그 메탄하이드레이트!

  앞으로 200년간 쓸 수 있다는 청정에너지 자원이 지금 독도의 해저에 묻혀 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 독도를 포기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미중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중립선언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닿은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지대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옹졸이라는 낱말이 자꾸 맴돈다.

  옹졸.

  옹졸한 관계.                                                           

  옹졸한 사람들.

  김덕팔도 옹졸할 때가 있다고 했다.

  불교에 중생도 번뇌를 떨쳐버릴 수 있으면 부처고, 부처도 번뇌를 떨쳐버리지 못하면 중생이라는 말이 있지.


  미국은 결국 우즈베키스탄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하기야 점령도 옳게 하지 못했으니 철수라 할 것도 없지만, 이제 미국은 카스피해 지역 유전의 대부분을 중국과 러시아에 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인도마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송유관을 얻게 되었다.

  한편, 미중전쟁에서 중립을 지켰던 대한민국은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청진, 원산을 잇는 송유관 교섭을 러시아와 벌일 수 있게 되었지만 미국이 진 마당에 갑자기 다짜고짜로 서두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었다. 바로 인도로 들어가는 송유관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프가니스탄은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보복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이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국경을 나란히 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제2의 이라크, 우즈베키스탄이 될 수도 있었다.


  미중전쟁이 끝나자 김덕팔은 느닷없이 은퇴를 생각했다.

  정년퇴직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의 나이도 쉰다섯이었다.

  미중전쟁에 중립을 선언한 것이 독도해전의 승리와 삼국동맹 선언을 이끌었던 김덕팔이라는 보도가 나돌며 그를 은근히 좋아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게 되었지만, 막상 김덕팔이 참여했던 곳에서는 그를 질시하는 자 반, 그를 믿는 자와 반신반의하는 자가 각각 반반이었다.


  세잔느였지. 자기 긍정과 자기 신념의 용기를 가지라고.

  김덕팔도 때로는 흔들리는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

  비열한 놈들이 어디든지 깔려 있다.

  못된 놈들의 눈초리는 짓밟아버려야 한다.

  못된 놈들도 뒤돌아서면 자기가 못된 놈이라는 것을 안다.

  못된 놈들은 따끔하게 벌을 주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 로댕은 말했지. ‘한 사람에게 진리인 것은 만인에게도 진리’라고.


  1909년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맺은 간도협약으로 조선의 영토 간도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것은 외교권을 빼앗아 간 일본이 만주에 철도부설권을 따내기 위해 맺은 조약에 불과하다.

  원래 조선의 영토는 압록강과 토문강(송화강 상류)를 경계로 할 것을 청나라와 백두산정계비에 새겨두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2배에 가까운 엄청난 땅이다. 그때의 지도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백두산 호랑이의 모습인 것이다.

  결국 일본에 속은 청나라도 1931년 만주사변으로 만주가 일본에 넘어가고, 1937년 중일전쟁에서 상하이, 남경이 함락되며 대학살의 참변을 겪게 된다.

  정보국장 김덕팔의 귀에 서서히 간도 반환 문제가 들려오기 시작할 무렵, 시민 단체와 언론에서도 간도협약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돈도 사랑도 명예도 구걸하지 않겠다고 했지.


  통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간도협약에 대한 비밀 대책회의가 자주 열리고 있었다.

  “지금 영토는 요구하지 맙시다.”

  김덕팔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1909년 청나라와 일본의 간도협약은 무효이며 1909년 그 간도협약 이전에는 우리의 땅이었다는 사실은 밝혀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중국이 가만히 있겠소?”

  장관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다음날 김덕팔이 한 말이 크게 보도되고 말았다. 누군가 미리 무슨 짓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중국이 발끈하며 나섰다. 중국은 그 말을 한 통일 대한민국의 경찰 정보국장 김덕팔과 다른 장관들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덕팔이 거리끼지도 않고 먼저 사직했지만 다른 장관들이 머뭇거리자, 중국이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동안 통일 대한민국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간도는 우리 땅이다! 일본과 청나라가 맺은 간도협약은 무효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당선된 통일 대한민국 2대 대통령은 새로운 장관 자리에 김덕팔을 앉히려고 했지만 도무지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걸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들리는 말로는 그가 독도로 들어갔다고도 하고, 또 몰래 간도로 갔다고도 했다.

 

                             -끝-

                                        200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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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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